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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사천 명 식사이적? 그러면 식사이적만 두 번?
박경은  |  011766976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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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7월 27일 (수) 14:31:40
최종편집 : 2016년 07월 30일 (토) 05:27:57 [조회수 : 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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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사천 명 식사이적?

마15:29~39(막8:1~10) ↔ 16:9~10(막8:19~20)

 

   성서에 기록된 이적사건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역사상에서의 실제 발생 사실 자체로 읽을 때에는 별다른 의미도 없고 말씀도 발견되지 않음을 계속 지적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에 기록된 이적사건들을 대할 때에는 그 이적사건에 어떤 말씀이 담겨 있는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이적사건을 통해 말씀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성서는 이적사건 기록물도 아니고 역사 기록물도 아니며 오직 생명의 말씀만이 담긴 책이기에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전하는 본문에 따르면 초대형 식사이적 사건이 두 번 발생했던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실제로 이와 같은 이적사건을 두 번 일으켰던 것으로 읽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마16:9~10; 막8:19~20).

   하지만 본문의 문학적 구성과 본문이 위치한 문맥 등을 검토해 보면 오천 명 식사이적과 사천 명 식사이적은 한 사건에 대한 확장된 두 이야기라고 보아야 설득력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만 두 번의 식사이적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고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 하나만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서로 다른 신학적 관점이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한 시각으로 본다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사천 명 식사이적 사건을 기록할 만한 특별한 이유나 필요성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 하나만 기록했다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현상에 대해 ‘필요한 의한 문학적 구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두 개의 이적사건을 필요로 하는 신앙적, 신학적 이유가 있었기에 하나의 이야기를 두 개의 사건으로 확장시켰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 하나만으로 충분했다고 보게 됩니다.

  따라서 사천 명 식사이적 사건에 대한 본문을 대할 때에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독특한 입장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고 개별적으로 해석하도록 수고해야 합니다.

 

   1. 그러면 먼저 마태복음의 오천 명 식사이적과 사천 명 식사이적이 별개의 독립된 두 사건이 아니라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에서 창조적으로 확대된 두 이야기임을 지적해 보겠습니다.

   오천 명 식사이적과 사천 명 식사이적이 하나의 이야기에서 창조적으로 파생된 두 이야기라는 것은 마가복음이 마태복음보다 먼저 기록되었다는 복음서들의 관계성에서 고려해 볼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물론 오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에서 사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가 새롭게 구성된 이야기 단위라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높습니다.

   이야기의 순서를 볼 때 원래적인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창조적으로 새롭게 구성된 내용이 나중에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오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가 원래적이고 사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가 나중에 창조적으로 구성된 문학단위라고 보게 됩니다.

   또 원래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는 빈도수가 더 높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이 사천 명 식사이적 사건의 원본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무엇보다도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은 네 복음서에 모두 나오는데 사천 명 식사이적 사건은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만 나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에게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책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을 원본삼아 기록한 마태복음 저자가 마가복음의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을 인용하면서 동시에 사천 명 식사이적 사건도 신학적 필요에 의해 함께 인용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사천 명 식사이적 사건이 마가복음 저자가 창조적으로 새롭게 구성한 이야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마가복음 저자가 개인적으로 새롭게 구성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마가복음 저자가 사천 명 식사이적에 대한 이야기 자료도 입수한 것일 수 있다는 시각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와 사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가 별도로 제각각 전달되어 가는 중에 마가복음 저자와 마태복음 저자가 동시에 각각 입수한 이야기 자료라고 보는 것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천 명 식사이적 사건이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과 별도로 구성된 서로 다른 이야기였다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이 부자연스럽다는 점과 두 이야기의 문학적 일치성 등에 대해서는 별로 설득력 높은 설명을 기할 수 없다는 점이 야기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천 명 식사이적 사건은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을 원본 삼아 새롭게 구성된 창조적인 이야기라고 보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를 마가복음 저자가 개인적으로 독특하게 창조해 낸 이야기냐의 여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한편 오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는 매우 유대적입니다. 동시에 사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는 매우 이방적입니다. 그런데 이방지향적인 누가복음에 이방적 내용이 담긴 사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누가복음은 주로 이방인들을 상대하여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이방인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사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할 이유나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전해 듣고 있는 복음의 주체인 역사적 예수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이미 이방인들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와는 별개인 사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가 또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천 명 식사이적 이야기는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이 서로 공유한 문학단위로서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을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하여 이방인을 위한 말씀으로 기능하도록 만든 창조적인 내용의 이적사건이라고 보게 됩니다.

 

   2. 그러면 사천 명 식사이적 사건에 담긴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를 위해 다음번에는 마태복음 안에 있는 오천 명 식사이적과 사천 명 식사이적을 비교해 보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사천 명 식사이적 사건을 비교해 본 후 서로 다른 내용을 통해 나타나는 서로 다른 관점의 차이, 강조점의 차이, 나아가 전해 주고 싶은 서로 다른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뜨거운 여름 뜨거운 믿음으로 보내시면서 풍성한 가을의 수확을 기대하시는 중에 믿음의 풍성한 결과도 더불어 거두시는 보람된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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