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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라야
박창진  |  5016park@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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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7월 13일 (수) 10:14:47 [조회수 : 6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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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이들에게 그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 5:20)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이전에 자신이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말을 폐하러 오지 않고 완전하게 하려고 왔다 하셨다(17절). 이 말씀 이후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용법을 사용하신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란 무엇인가? 박윤선의 경우에는 복음서에서 외식과 연관시켜서 예수님이 책망하시는 내용과 연관시켜 결국엔 불의를 가리킨다고 주장하였단다. 그들이 율법을 지킨다면서 외식을 행하였기에 그들의 의란 결국 불의였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해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그냥 따르는 모습이 많다. 참 안타깝고 안쓰럽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잘못인가? 율법은 옛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삶의 방식이다. 그것은 거룩하다. 구약에선 찬양의 대상이며 내용이었다. 율법을 지키는 자가 복되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란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그것은 복되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기에 의인 것이다. 이는 의에 대한 구약의 용례이기도 하다.

그들이 외식을 행했다. 그게 의인가? 아니다. 불의다. 외식은 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의를 떠난 것이고 의를 어긴 것으로서 불의이다.

그들이 율법을 지킨 것과 외식을 행한 것은 한 묶음이 아니다. 분리하여 생각하여야 사안이다. 율법을 지킨 것은 의이지만 외식을 행한 것은 율법 준수가 아니며 불의인 것이다. 박윤선의 경우에는 마땅히 분리하여 생각할 바를 분리하지 못한 잘못을 범하였다.

그들보다 더 나은 의란 무엇인가?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과 연관되어 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로 주어졌다. 여기에서 옛 사람은 모세이다. 넓게는 그로 대표되는 옛 언약의 백성들이다. 그 내용은 옛 언약의 율법을 옮긴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를 율법의 정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다. 여기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주장이 생겨났다. 그것은 율법의 정신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하시겠다고 하신 율법이다. 곧 완전하게 된 율법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하여 율법의 정신을 부연하여 설명하신 것이 아니다. 율법과 예수님 자신이 완전하게 할 완전한 율법을 대조시키신 것이다. 완전한 율법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약 1:25)으로서 성령의 (율)법(롬 8:2), 그리스도의 (율)법(갈 6:2)이기도 하다. 법이라는 번역은 율법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문맥에서 일관성이 있다.

간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율법 아래에서 옛 언약의 백성이 이성에게 음욕을 품었다면 그것이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범한 것인가? 만약 범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속죄제를 통하여 죄 용서를 받아야 했다. 구약 시대에 음욕을 품은 것이 죄로 정하여지고 죄 용서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릴 것이 요구되었는가? 구약 성경 어디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음욕을 품는 것이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 아니었다. 육체의 성관계를 가지진 않았지만 음욕을 품고 살 수 있다. 어떻게 되는가? 간음으로 나아갈 여지가 있다. 그렇게 나아가지 않더라도 그것은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에 온전히 부합되지 않는다.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는 완전하게 된 율법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음욕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된다. 음욕까지 버려야 한다. 죄이기 때문에 돌이켜야 하는 것이다. 간음과 연관된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된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한 이유이다.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와 더 나은 의의 대조가 가리키는 바이다. 전자는 율법 준수를 통한 의다. 옛 언약의 세계에서는 그 의를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후자는 예수님에 의해 완전하게 된 율법 곧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준수를 통한 의다. 예수님에 의해 완전하게 된 새 언약에서는 그 의를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옛 언약에서나 새 언약에서나 완벽하게 지켜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옛 언약에서 다윗 왕은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지만 새 언약에서는 옛 언약에서의 의와 같은 수준에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예수님의 구속 역사를 경시하는 것 나아가 멸시하는 것이다. 그분이 장성하지 못한 언약의 세계를 온전하게 하셔서 장성한 언약의 세계를 여셨는데, 장성하지 못한 언약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은 경시 내지는 멸시가 된다. 그렇게 예수님을 경시 내지 멸시하는데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완전하게 된 율법은 모세의 율법보다 내용적으로 더 강화되었다. 율법을 지키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인데, 어떻게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름으로 지킬 수 있다.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갈 5:16).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거부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예수님에 의해 완전하게 된 율법을 지킴으로 인한 의가 아니란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으로 주어지는 법정적 칭의라는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 곧 율법 준수의 의와 법정적 칭의는 정상적인 대조가 안 된다. 법정적 칭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주어져 있었다. 그들이 출애굽의 역사 안에 있음으로 이미 주어진 것이었다. 하나님과 언약 관계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법정적 칭의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의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무지한 결과이거나 아니면 오늘날의 신자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에 대한 회피 내지는 거부이다. 예수님에 의해 완전하게 된 율법 곧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준수를 회피 내지 거부하는 것이 된다. 율법보다 내용적으로 더 강화되었는데 지켜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어떻게 포장하여 말하든지 간에 결국엔 그러한 의미가 된다.

그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에서 용서받아 의롭다함을 얻는 법정적 칭의가 주어지고 그것이 영원토록 불변이어서 삶의 문제로 인해 하늘나라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에 어떤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주장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도 당연히 자기들 식으로 이해하고 말하게 된다. 하나님에 의해 이미 주어진 법정적 칭의로서 불변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절대 안전에 대한 보장이니 말이다. 그들이 인지하였든지 못하였든지 간에 그 주장은 절대 안전에 대한 인간적인 욕심 추구이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농담을 하신 것이 아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가 아니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율법 준수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물며 율법 준수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거짓, 표절, 횡령, 간음 등의 상태라면 율법 준수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회개하지 않고도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하늘의 하나님이 비웃으실 뿐이다.

바울 사도가 불의한 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며 여러 윤리적 죄들을 언급(고전 6:9~11)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자의적으로 풀면서 하나님께서 담은 의미와 다른 소리를 하는 자들은 회개하여야 한다. 진정으로 그 자리에서 돌이켜야 한다. 칼뱅이든지 박윤선이든지 알미니우스이든지 그 누구이든지 간에 그들의 잘못된 주장을 답습하면서 그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꼭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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