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더위가 왔습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다들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말에 직장 동료들과 모임이 있어 계곡에 다녀왔습니다. 큰 아이는 아침 일찍부터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고 산토끼를 구경했습니다. 작은 생수 통에 된장을 조금 넣고 물속에 넣어두니 그 속으로 물고기들이 들어가 금방 여남은 마리를 잡았습니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저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들을 모래를 파서 집을 만들어 넣어두고 바라보며 놀다가 저희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물고기들도 모두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오전시간 계곡에 세 명의 아이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는 아이들이 물속에서 놀아도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녔습니다. 뜰채가 있으면 그냥 건져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플라스틱 물통 하나를 물속에 넣고 기다리면 물고기가 그 속으로 들어와 신속하게 건져 올리면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지나고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온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물고기들은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그 많던 물고기들이 다 어디로 숨었는지 계곡의 주인은 이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 수많은 물고기들은 분명 바위 사이, 모래 사이에 들어가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저녁이 되면 다시 계곡의 주인이 되어 유유히 헤엄치고 다녔을 것입니다. 제가 어릴적 공익 광고 중에 ‘빌려 쓰는 지구’라는 주제의 광고가 있었습니다. 후손들에게 빌려 쓰는 자연이니 잘 보존해서 물려주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후손들에게도 그리고 자연 속에 터를 잡고 사는 동식물에게도 빌려 쓰는 것이니 자연을 소중하게 다루어야겠습니다.

   지난 주 친정이 베트남인  A성도의 아버님이 모국에서 소천 하셨습니다.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A성도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장로님은 A성도가 없는 2주 동안 두 아이의 주 양육자가 되셨습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을 모두 도맡아 하시면서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아들을 죽인 범인도 양아들 삼아서 키우셨는데 이정도는 해야지”하고 두 아이에게 자장면을 먹이십니다. 평소 장로님과 항상 함께 지내던 터라 엄마 없이도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믿는 대로 살기 위해 애쓰시는 장로님을 통해 선한 영향을 받습니다.

   아픔을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기꺼이 타인의 십자가를 함께 져주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면 세상은 한결 따듯해질 것입니다. 아픔을 당한 이웃을 따듯하게 돌보는 일은 제사가 아닌 긍휼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입니다. 타인의 고난 앞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죄를 지적하는 것은 제사를 먼저 지내는 것입니다. A성도 부친의 소천과 농번기에 2주간 귀국한 것을 두고 이런 저런 사정을 따져 묻는 이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사입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헤아리고 A성도가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긍휼입니다. 긍휼하려면 자기 생각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타인의 아픔에 동참하면 됩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일은 인력으로 자연을 바꾸고 훼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있던 그대로 자연이 존재할 수 있도록 두면 됩니다. 필요하다면 나는 잠시 빌려 쓰고 처음 그대로 두고 나오면 됩니다. 숲 속에는 건강하고 튼튼한 나무도 있지만 떨어진 낙엽도 있고 죽은 나무도 있습니다. 건강한 것은 좋은 것이고 죽은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도 생명도 다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숨어있는 물고기도 나타나 보이는 물고기도 본질적으로는 같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지적(知的)으로 해석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타인의 슬픔과 아픔과 어려운 처지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한 인간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나이, 성격, 빈부, 학력, 국적, 이 모든 것이 존재를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A성도의 존재가 흘리마을의 축복이자 기쁨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이 이 땅에 내신 존재인 저 자신과 이웃을 긍휼히 여기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