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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은사와 신학[2]...
사두환  |  kbecc@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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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7월 12일 (수) 00:00:00 [조회수 :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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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결국은 모든 성경을 무리 없이 접하고 바로 깨닫게 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학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학문은 항상 학문의 한계성 안에 카테고리가 형성되어 지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논하는 일에 부분적일지라도 신학의 카테고리로 대하는 것을 주의해야할 일이다.

성경은 성경 자체로서의 완전한 신학이기 때문에 교단신학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이를 성경신학 또는 성서신학으로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신학의 교재는 달리 있을 수도 없이 성경 자체가 교재이므로 이 원칙의 준수를 떠나서는 성경신학이라고 말할 수가 없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말씀의 은사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말씀의 은사는 방언과 통변과 신유에 은사처럼 느닷없이 거저 주어지듯 임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말씀의 은사 적 성격은 타 은사와 같이 임한다.
즉 문자의 말씀의 뜻에 합당한 그 이면에 있는 신령한 빛을 느끼고 체험하는 영적 현상은 타 은사의 성격과 같이 주어진다.

말씀의 은사는 이를 토대로 하여 꾸준한 성경의 정독과 함께 연구하는 학자의 자세로 성경을 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말씀의 은사는 지속적인 이러한 노력에 의하여 개발되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평생에 신구약 성경 한 권의 중심으로 말씀연구가 되어져야 하는 것이며 때가 이르면 성경 안에서 성경과 성경으로 이어지는 말씀의 해석이 바늘에 실 가듯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 지게 된다.

이러한 해석의 수준에 이르면 그 어떤 말씀을 증거 할지라도 성경과 성경이 전혀 무리 없이 스스로 이어져서 온전한 이해로 인도하는 신령하고 참된 교수법의 능력이 갈수록 탁월해 짐과 동시에 영 안에 말씀의 빛이 축적이 되어 그 빛의 룩스(Lux)가 상승되어 진다.
이에 상대적으로 말씀과 말씀에 충돌을 일으키는 왜곡을 꿰뚫는 눈이 크게 밝아지게 된다.

동시에 성경 한 권 외 다른 어떤 신앙서적과 신학적 가치가 높은 책일지라도 갈수록 별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이는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의 때에 생각을 버림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전혀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 속에서도 진리의 옥이 발견됨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성경은 그 자체가 전체로 진리의 옥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진리의 옥이 비교되어 지는 견지에서 이르는 말인 것이다.

(*주의 : 성경 외, 성경 사전과 원어 사전 등 성경의 지리와 배경과 역사적인 참고 서적 등은 기본 지식을 바르게 알기 위하여 늘 참조하는 것은 기본 원칙 임을 전제로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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