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떠나라

불과 250여 년 전 조선의 위대한 국왕이었던 '정치가 정조'는 왕실 정치의 핵심을 인재등용에서 찾았다(정치가 정조, 2001). 사람을 찾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 곧 정치의 목적이자 존재이유라는 통찰이었다. 이런 동양적 사유가 서양에서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Easton, 1952)이란 정치체계론적 시각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란 리더의 역량에 흥망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꼭 국가나 정부에만 적용되는 경험칙이 아니다. 셋 이상의 사람이 결집된 공동체라면 필연적으로 작동하는 정치의 '프린시피아'(시대를 관통하는 정치의 원리)다.

따라서 탁월한 정치가란 '가능한 것(현실)'과 '바람직한 것(이상)'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고자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자원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다.

현실만 있고 이상(理想)이 없다면 속물이고, 이상만 있고 현실이 없다면 공허하다. 그래서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내는 정치적 모험을 감행하는 리더는 존경과 충성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리더의 사심(私心)과 사욕(私慾)이 공의(公義)의 명분으로 포장돼 나타날 때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을 세우는 최고의 후원자이자 최후의 정치적 보루는 이사회다. 이사회는 대학을 직접 지배하지 않고 총장을 중심으로 교수사회에 학교운영의 마땅한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대학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 왔다. 이는 보편적인 역사적 전통이다.

설령 한 시절 무능한 총장과 일부 부도덕한 교수가 분란을 일으켜도 대학사회의 자정능력을 믿고 기다려줬기에, 이사회는 든든한 어른으로 자리잡아 왔다. 따라서 이사장職이 권력의 최상부로 올라가기 위한 중간 정착지나 지렛대가 아니라는데 권위의 상징이 놓였다.

세속에서도 이럴진대 감신의 이사장職이 세속의 명예와 富를 누리기 위한 안락한 쾌락의 자리겠는가! 감신은 이 시대 빛과 소금이 될 감리교 목사후보생을 양성하는 사관학교다.

감신 이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양심으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정치력을 요구받는다. 소외된 자들의 고독하고 세밀한 외침에 귀 기울이며 학교가 순항(順航)하게끔 총장과 교수집단을 격려할 마지막 책임을 수명(受命)한 자리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학내 사태와 총장선거의 뿌리를 살펴보면 현 김인환 이사장은 ‘이사장다운’ 리더십은 고사하고 호위무사를 자처한 몇몇 이사들을 앞세워 학교를 독점, 전횡(專橫)하려는 사리사욕(私利私慾)을 노골적으로 조직화, 공식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이사장의 모습은 마땅히 기대했던 현명하고 탁월한 정치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총장을 뽑는 자리에 절반의 이사들이 불참한 것은 그들의 게으름이 아니다. 이사장을 향한 뜨거운 불신임(不信任)이다.

사태가 이러할진대, 불만이 있으면 나타나서 발언하라는 이사장의 완고한 태도는 고지식함을 넘어 자격 없는 자가 꿰찬 ‘완장’을 떠올리게 한다. 왜 절반의 이사들이 나타나지 않았는지, 그들은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링 위에 올라와 싸우라’고 유인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력도 없고, '가치의 배분'을 통한 조율도 못한 채 허망한 권위 뒤편에 숨어 절반의 양심적 이사들의 숨통을 누르고 있다. 氣싸움만으로 자기편이 이길 것이라는 이사장의 미망(迷妄)은 졸렬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건강하고 새로운 세력의 탄생을 예고한다. ‘정치란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다는 속설은 과히 틀리지 않아 보인다.

정치적 상황은 언제나 '실존 상황'이다. 그것은 그 상황을 입체적으로 읽고 대안을 찾아내는 리더의 통찰력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안타깝게도 김인환 이사장은 기득권 제도의 보수화된 형식주의 뒤편에 숨어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어쩌면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안이 없기에 말라 비틀어진 형식논리에 기대, 불참 이사들의 살아있는 절규를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단지 19명 이사 중 한 명이라면 대세에 ‘묻혀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사장이란 직위에 있는 이상 그는 최선을 다해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을 지는 길은 실체적 진실에 마주하겠다는 용기를 갖춰야 가능하다. 해법은 이사장 혼자 찾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혜는 덤이다.

바람직한 그의 역할은 필요한 것을 모두가 찾아내게끔 도와주는 것이지, 정답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다. 독자적인 해법은 항상 오답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해결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발상과 그릇된 이해는 모두를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아갈 뿐이다.

지금이라도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라. 그것이 두렵다면 그냥 조용히 내려오면 된다.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다.

2016. 6. 24. 총대학원 학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