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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내 동기 목회자들은 어디에 있을까?젊은 목회자들이여,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
방현섭  |  racer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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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6월 23일 (목) 17:41:57
최종편집 : 2016년 06월 28일 (화) 12:59:14 [조회수 : 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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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 후배가 문득 전화를 걸어왔다. 뜬금없이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단다. 가끔 그렇게 전화를 하거나 불쑥 찾아오는 후배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이 후배는 학부를 졸업하고 노숙인 지원단체 같은 곳에서 일도 하고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이름만 대면 알만한 평신도공동체교회에 다니며 그 교회가 설립한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뜬금없이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열심히 다니다 얼마 전에 마쳤기에 늦었지만 이제라도 목회를 시작하려나보다 생각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워낙 생각이 복잡하고 깊은 녀석이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백수가 됐다. 딱히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지만 아이까지 있는 가장이 당장 먹고 살 일이 쉽지 않겠다는 입바른 걱정이나 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녀석의 동기인 또 다른 후배 이야기를 했다. 집안의 사업 때문에 목회를 그만 두고 동남아로 가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목회가 큰 성과가 보이지는 않았어도 자리를 잘 지키고 있길래 열심히 하나보다 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목회에 결국 마음을 붙들어 매기가 쉽지 않았나보다. 그는 그 친구가 목회를 그만 두게 되는 상황을 아쉬워하면서 자기 또래의 목회자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좋았던 애들인데 점점 변해가더니 아주 보수적으로 변해서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나는 후배에게 앞으로 점점 더 목회하기가 어려워질 텐데 외국으로 나가서 사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으며 젊은 후배들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도 지금이 끝물이지 곧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할 생각도 안 들 날이 10년 내로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번에 쓴 글처럼 길어야 10년이다. 10년 후에 교회와 사회 전면에 나서야 할 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높은 고학력과 고기능을 보유하고 있지만 숫자도 적고 경제력도 약해서 별로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젊은 세대를 품어 안지 못하고 시대 읽기를 게을리 한 교회는 더욱 심하게 공동화 빈곤화 될 것이다. 이 후배 녀석은 역시 특이하다. 그래도 여전히 교회에 희망이 있고 가능성이 있단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장 10년 후에 열심히 일해야 할 지금 너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내 나이가 48세이지만 나와 신학대학교를 함께 다녔던 동기들은 나보다 일곱 살이 적다. 이제 막 40줄에 접어들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몇몇은 지방 혹은 섬에서 단독목회를 하고 있다. 나름대로 소신 있게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면서 잘 목회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 어떤 동기는 공기 좋은 곳에 예배당을 멋지게 지어놓고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어떤 동기는 카페교회로 시작해서 일곱 개의 지역공동체로 만들기도 했다. 또 외국에 나가 있는 동기들도 있지만, 중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는 동기들이 제일 많지 않을까 한다. 어쩌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만나면 이제 제법 목사 티(?)가 나는 동기들도 많다. 조문 갔다가 식당에서 목소리 깔고 턱을 당기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있는 녀석도 봤다. 그런데 과연 이들의 10년 후 미래는 어떻게 될까?

10년 후에 교회의 허리 역할을 맡아야 할 지금의 30대들은 교회에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교회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선 생존문제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독립도 결혼도 하지 못하고 삶의 현장 한 복판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온갖 멸시와 갑질, 막말과 착취를 당하면서 대들지도 못하고 그냥 비정규직, 알바, 일용직, 임시직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로 미래에 대한 소박한 꿈조차 꾸지 못하며 온 몸으로 혼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러니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사치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교회가 이들의 아픔에 공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정된 고용이 보장되지 않은 젊은이들의 저항에 종북과 좌파의 딱지를 붙여 시대의 아픔이 된 이들을 외면하고 사회적 약자의 몸부림에 비난의 손가락질을 해대기 일쑤였기에 교회는 이들에게 적이 되었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하우스푸어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교회의 중추로 건축, 원로목사 대우, 목회자들의 사례 등을 전담했던 헌신적인 사람들은 줄어들게 된다. 교회는 빚과 지출을 감당하기가 더욱 어려워 질 것이고 필연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회가 섬겨야 할 노인 교인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좋은 시절을 다 보낸 교회에게 험난한 시간들만 남아있는데 이를 위한 대책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 동기들은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원래 맨땅에 헤딩 하듯이 개척하여 밑바닥부터 시작했던 목회자는 그러려니 하고 소박하게 살았으니 앞으로 닥칠 어려움이 만만치는 않겠지만 큰 동요 없이 그 자리 지키면서 살겠지만 중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지내는 목사들은 큰일이다. 지금도 나이가 찬(?) 부목사들을 내보내는 것이 큰 골치꺼리이다. 지금은 먹히는 목회방법이 10년 후 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통할 지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그 방법은 규모 있는 교회의 규모 있는 교우들이 동의하는 전통적인(과거지향적인) 방법이다. 앞으로 펼쳐질 현장은 그런 목회자가 가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파이는 점점 작아지고 있는데 그 파이를 나누어 먹을 사람들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신학대학들이 졸업생 수를 조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살만하고 제법 재미있게 목회할 만한 교회의 수는 한정돼있고 또 그 수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친하게 지내던 동기 사이가 극한 경쟁에서 대결하는 적이 될 지도 모르겠다. 지금 세속 한가운데서 젊은이들이 벌이고 있는 전투가 10년 후에는 내 동기들이 뛰어들어야 할 전투가 될 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속한 감리교회만 생각해보자. 우선은 젊은 사람들의 생각의 기준을 고려해야 한다. 무한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약자에 대한 차별과 거부를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소수자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배제도 중단해야 한다. 목회자들끼리 극한 경쟁을 벌이지 않도록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소신 있게 목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지원도 고려해야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목회를 등한히 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본부도 허리띠 졸라매야 하고 의회구조도 축소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기여도 기대도 할 수 없는 은급제도도 개편해야 한다. 노인네들만 모여서 감리교회의 대사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과감하게 미래의 주인공들이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권한을 물려주고 물러나야 한다. 양적 성장만을 외치던 선교방식도 이제는 예수의 길을 재대로 따르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감독회장이니 감독이니 하면서 명예욕에 빠져 추악한 선거를 하지 못하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개혁이 되지 않는다면 감독제도 폐지해야 한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렇게 많다.

내 주위에 있는 젊은 목회자들에게 감리교의 현재를 비판하면서 미래를 걱정하면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감리교회는 희망이 없다. 그냥 망해버리는 게 차라리 나을 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망해버리기라도 하면 독립교단으로 가든지 할 텐데. 나는 감리교 개혁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내 주위에는 소위 운동권들이 많다. 운동권들의 생각도 이렇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들은 이미 뭔가 기관이나 연구소, NGO등 한 가지 이상 직책 맡은 일이 있고 거기에서 재미있게 일하고 있으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보수도 받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목회도 소신껏 하고 있다. 그러니 감리교회가 어찌 되는 큰 타격은 없다. 맞다. 감리교회 개혁에 쏟을 힘이면 사회운동에 더 적극 참여하는 게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이기적이다. 만약 그들의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고 보수가 나오지 않고 잘 되지도 않는 교회밖에 보지 못하는 시선반경을 가졌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중고등학교 다닐 때 나름의 내적 소명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일평생 주님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고 신학대학에 와 앞만 보고 연혼구원의 사명 하나로 달려온 내 동기들은 자신들의 열정이나 열심과 무관하게 몰락할 위기에 처한 자신들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을까?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교단의 어르신들이, 노인네들이, 중대형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 여전히 성장 부흥만 외치는 부흥사들이 결정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 결정되는 정책들이 과연 미래를 뚫고 나가기에 충분히 좋은가?

처음에 통화한 후배는 여전히 감리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뭔가 자기가 그동안 경험했던 일들을 얘기했다. 참 좋은 이야기들이고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볼 때 교회 제도권 밖에서 해온 일들이다. 제도권 밖의 일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조합되고 조정된다면 분명히 희망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아이디어들이 이 안에 들어올 수 있으며 들어와서 버텨 살아남아 채용될 수 있을까? 그건 모른다. 그건 나와 그와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

감독(회장) 선거가 닥치고 있다. 선거권이 있건 없건 대다수의 젊은 목회자들은 감독이 감독회장이 누가 되는 관심도 없고 기대도 없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미 1,500여 년 전에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벌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리교회의 일에 관심을 갖고 누가 어떤 공약을 내세우고 있고 그 공약을 지킬 의지가 있는 사람인지 살펴보는 작은 일에서부터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이번에 표를 행사하지 못한다면 다음, 그 다음에 기회가 반드시 온다. 그 한 표가 우리와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무슨 공정선거 캠페인 같이 돼버렸지만... 문제는 우리의 의지이고 그 의지를 모으는 일이다. 오늘부터라도 젊은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들이 만들어가기 위한 생각을 하면 좋겠다. 젊은 목회자들이여, 깨어 일어나라!

 

사족 : 이 글에서 전화통화를 한 후배의 이야기는 사실 이 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냥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을 뿐임을 혹시라도 보게 될 후배에게 말해둔다.

또 난 미래학자가 아니다. 제발 나의 어설프고 얕은 지식으로 떠든 예측이 전적으로 빗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미래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결국 우리 자신의 손에,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고백은 나에게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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