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최재석 칼럼
목사들이 초심을 잃을 때 생기는 일
최재석  |  jschoi@cnu.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6년 06월 17일 (금) 01:27:09
최종편집 : 2016년 06월 30일 (목) 12:54:46 [조회수 : 669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다. 김천택은 ‘가다가 중지곧 하면 아니 감만 못하리라’고 노래했다. 교회에서는 처음 사랑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처음 신앙을 지킨다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뜨겁게 시작한 사람들이 중도에서 그 뜨거운 신앙을 잃고 미지근해지거나 신앙을 아예 잃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미지근한 신앙을 질책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 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도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처음 산뜻하게 출발하거나 중간에서 힘차게 달리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잘 달려가는 일이다.

신앙의 모범이 되어야 할 목사들 가운데에도 초심을 잃고 타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목사들이 초심을 잃을 때 생기는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들의 타락은 그들에게서만 끝나지 않고 그들의 교회에 속한 모든 교인에게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그런 유형의 타락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솔로몬이다.

 

   
▲ king-solomon


솔로몬의 타락

우리는 보통 솔로몬을 성군이라고 말한다. 그의 재판을 언급하면서 그를 지혜로운 왕이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예루살렘 성전을 완성했다고 치켜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목사들은 솔로몬이 한 것처럼 화려한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바치자고 말한다. 특히 그가 일천번제를 드린 것을 칭송하면서 우리도 그를 따라서 일천번제를 드리자고 한다.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보면 스바의 여왕이 그를 찾아와서 그의 화려한 궁전을 보고 놀라고 그의 지혜를 찬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신앙적으로 타락한 사람이었다. 역대기에서는 솔로몬의 재산과 지혜를 말한 다음에 바로 이어서 그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역대기만을 읽는 독자라면 그를 성군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열왕기에는 그의 공적 외에 타락상도 언급되어 있다. 그의 후궁이 칠백 명이고 첩이 삼백 명이었다. 그 시대에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지만, 솔로몬이 천 명의 처첩을 거느렸다는 것은 그가 성적으로 방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더구나 여호와를 믿는 그가 이방신을 믿는 처첩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통해서 들어온 모압의 그모스 신과 암몬의 목록 신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산당을 지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그런 불신앙을 보시고 그를 저주하셨다. 그가 여호와를 버리고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나라를 그에게서 빼앗아 그의 “신하에게 주리라”(왕상 11:12)고 말씀하셨다. 결국 그의 아들 대에 이르러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아주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솔로몬이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 아무리 백성을 잘 다스리고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하더라도 그가 초심을 잃고 여호와를 떠날 때 여호와께서 그를 저주하셨다. 중요한 것은, “푯대를 향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겠다는 바울처럼, 마지막까지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온 힘을 다 해서 달리는 일이다.


목사들의 타락

우리는 솔로몬을 닮아가는 교회 지도자들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만난다. 천막교회에서 시작해서 큰 교회를 이루는 경우 그 목사는 오직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헌신한 사람이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고 다윗의 유지를 받들어 성전을 지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듯이 하나님은 헌신적인 그 목사에게 큰 교회를 이루는 복을 주셨다. 그리고 그의 헌신적이고 진실한 신앙 태도에 감동한 많은 사람이 그와 함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런데 교회가 든든히 자리 잡고 많은 사람이 그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존경하게 되면 어느 때 부턴가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룬 것으로 착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교인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도 없어진다. 그의 기도도 처음처럼 간절하지 않고 습관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만다. 모든 교인들이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를 존경할 때 자기 위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이 생각하면서 오만해진다.

이러한 오만이 타락의 시작이다. 천사도 오만으로 인해서 타락했다고 한다.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보면 대천사 루시퍼가 자기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도전했다가 그의 무리와 함께 지옥에 떨어져 사탄이 된다. 사탄은 오만에 사로잡힌 대천사에 다름 아니다. 중세교회에서 일곱 가지 대죄를 열거할 때 맨 먼저 언급한 것이 오만이다. 이것은 오만이 모든 죄 가운데서 가장 큰 죄라는 것을 말해준다. 순수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하던 목사도 오만에 사로잡히면 루시퍼처럼 사탄으로 변하게 된다. 오만해진 목사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종이 아니라 교인들 위에 군림하는, 예수님의 양들을 자기 양으로 착각하는 목자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목사는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봉사하거나 희생하거나 목회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다. 말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신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한다.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 교인들이나 중직자들은 벌을 받는다고 그들을 저주하고, 그들이 교회를 나가기 원한다. 내가 아는 어느 목사는 교회의 뒷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가기를 원할 뿐 아니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의 부정한 처사를 비판하는 교인들을 내쫓는다. 결국 자기 말에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들만을 데리고 자기 말이면 모두 아멘하는 교회를, 자기 왕국을 만든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보아온 여러 목사처럼 자기 아들에게 목회세습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많은 사람이 목회세습에 문제가 있다고, 그것은 현대판 성직매매라고 말하지만, 그런 말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 아들에게 목사직을 넘긴다.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도 교인들의 교회도 아니고, 자기 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담임목사의 아들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아버지를 이어서 목회를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목사가 아들을 세습시키려고 하는 경우에 그 아들의 능력이 객관적으로 검증될 수 없다. 왕조사회도 아니고 북한도 아닌 한국의 민주사회에서 대를 이어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런 것 외에도 목회세습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들에게 목사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담임목사의 전횡이 한동안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든지 세습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세습을 위해서는 먼저 세습을 반대할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설교나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담임목사를 추종하는 거수기들만을 중직자로 세워놓아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불평하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몰아내기도 한다. 그런 교회를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사탄의 놀이터에 다름 아니다.

목회세습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이렇게 여러 가지 비신앙적인, 사탄적인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교회에서 전횡하고 아들에게 혹은 사위에게 목사직을 세습시키는 목사들은 그 일이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아주 뻔뻔한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목회세습이 부당하다고 성토하는 때에 ‘개야 짖어라 기차는 간다’ 식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목사들은 자기가 이방신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솔로몬처럼 타락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의 첫 사랑을, 순수한 소명의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바울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푯대를 향하여 달리기를” 포기한 사람, 중도에서 푯대를 향한 길을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행동이 한국교회의 문을 가로막는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까지 헌신해 왔다고 확신하는,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셔서 지금까지 성공적인 목회를 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아마 천막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을 때의 그들의 태도는 진실하고 헌신적이었을 것이다. 하나님 앞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목회세습으로 목회생활의 마지막을 더럽히는 것을 보면 그 사람들은 분명히 목회자로서의 초심을 잃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목회세습에 관해서 이야기해 왔는데, 세습보다도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재정의 유용은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재정적 비리가 외부에 알려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교회의 중직자들은 너도 나도 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비리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경우에 그런 비리가 외부에까지 알려지는 것은 그 교회가 엄청난 규모의 비리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리를 저지르는 목사들은 말로는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지만, 실상 그들은 기업체의 창업자들처럼 교회를 자기의 사유재산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들이 만든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에 대해서 왜 그렇게 말이 많으냐고 불평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헌금하라고 교인들에게 말하지만, 그 헌금을 자기의 개인적 재산처럼 사용한다.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에게 편리한 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한다. 말년에 이방신들의 신당을 예루살렘에 세운 솔로몬의 눈에 여호와가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초심을 잃은 목사들이 설교단에 서서는 요한계시록 2장 4-5절을 읽고 나서 교인들에게 첫 사랑을 잃지 말라고,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 이럴 때 그들은 완전히 개그맨이 되어 있다. 자신들이 하나님에 대한 첫 사랑을 잃고 있으면서 교인들에게는 첫 사랑을 잃지 말라고 게거품을 입에 물고 외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인들은 그것이 개콘인줄도 모르고 따블 아멘으로 화답한다. 이러한 개그적 장면이 한국교회에서 흔히 연출되고 있다.


마치면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여러 지도자에게서 말년에 타락의 수렁에 빠졌던 솔로몬을 보게 된다. 바울 사도는 푯대를 향해서 끝까지 달려간다고 말했다(빌 3:14). 그는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예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앞을 보고 달려간다고 말했다. 많은 목사가 바울 사도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면서도 그 말씀을 자기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초심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달리는 일은 쉽지 않다. 육체적인 욕망을 온전히 버릴 수 없는 우리 인간은 본능적인 욕망에 끌려서 명예나 물질을 탐하고 권위에 사로잡히게 된다. 바울은 원하는 것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것만을 행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말했다. 목사들의 경우에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칫 오만해지기 쉽다. 하나님이 도와준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이룬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오만의 유혹을 받을 때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한 바울처럼 자기의 육체적 욕망을 쳐서 물리치는 지속적인 싸움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오만으로 인해서 하나님까지 외면하는 타락자가 되고 만다. 오만해진 천사가 타락해서 사탄이 된 것처럼, 하나님을 외면하는 타락한 목사는 사탄의 무리에 속한다.

얼마 전에 차흥도 목사가 당당뉴스에 ‘각성된 80년대 목회자들이 필요한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동기 목사들이 초심을 잃고 현실에 물드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젊은 시절의 순수한 열정을 회복하자고 그들에게 호소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타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그의 말대로 목사들이 젊은 시절의 순수하고 뜨거웠던 소명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계의 원로들이 말년의 솔로몬처럼 타락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의 타락한 삶을 반면교사로 삼으려 하기보다는 그런 사람들의 은퇴식에 가서 박수를 치고 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초심을 잃은 사람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솔로몬의 경우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을 생각해서 솔로몬의 대에는 큰 어려움을 주지 않았지만, 열 지파를 그의 아들의 손에서 빼앗아서 신하에게 주고 한 지파만 남기는 벌을 내리셨다. 결국 솔로몬의 죄로 인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남북으로 나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계시록에서 보면 하나님은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초심을 잃고 타락한 솔로몬으로 인해서 나라 전체에 하나님의 저주가 내린 것을 본다. 첫 사랑을 잃은 교회 전체가 벌을 받게 되는 것을 보기도 한다.

목사가 초심을 잃고 타락하면, 그 교회는 온통 사탄의 놀이터가 되어 버린다. 그 사탄의 놀이터에서 허둥대는 교인들이 너무도 불쌍하다.
 

최재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0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lois (118.XXX.XXX.90)
2016-06-19 23:27:43
천번 만번 지당한 말씀으로 공감하며 또다시 자신을 살펴 생애 마칠때까지 삼가 조심 할 것을 다짐하며 부끄럽지만 따가운 일침을 좋은 교훈으로 받습니다

목사에게 하는 얘기는 곧 동역한 사모도 공동 책임이 있기에 몇번씩 읽고 다시 읽어 오해 없이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힐난 하려고만은 아니실 겁니다. 얼마나 답답하시면 그러실까? 헤아립니다

신학 후 2년간 전도사 사역마치고 결혼한 개척교회 초반에 선배 여목사님들과 본교회 장노님들의 후원을 힘입어 구세군 제도 처럼 부부 목사를 도입하는 것이 이상적일것 같다는 뜻이 모아져 구역회에서 부담임으로 인준하고 지방회 걸쳐 논문 통과 한후 자격심사에 들어갔다가 어르신 목사님들의 불호령만 받고 포기했던 45년전! 아쉽지는 않았던 것은 한 목회자를 바로 내조하는<사모>역활이 남편 담임자 못지않게 드러나지 않는 구별된 헌신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드려야 했기때문였습니다

칼럼니스트께서는 목사들만 거론 하셨는데 목회 평생을 함께해온 조력자
사모의 책임을 말씀 않하셔도 공동책임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신학교 입학해서와 목사 안수 받을 때의 특별한 감격과 결단은 그때를 회상 하기만해도 흐려져 가는 사명이 되 살아 납니다.분명히 기억하고 기록해 놓으신 그분이 책임 지시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초심이 흐트러 졌나?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는데 자꾸만 이끌려가는 달콤한 육성의 욕심이 세상 기준에 맞춘 물질로 명예로 이성으로 도를 넘은 자식사랑으로 자신을 부추겨 끌고 가는데 거기에 못 이기는 척 져 주었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경외심과 떨림으로 자신의 부족을 충분히 고백하며 겸손히 두렵게 임했었는데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 서다보니 교인이 많고 적고를 불문하고 목회자는 가르치는자 성도는 배우는 자로 자리 매겨지다보니 되지도 않고 된 사람이어야 했던 거 같습니다.정작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로 당연히 받는 존경에 길들여져서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라는 선언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해당 사항으로 치부해온 우리 아니었나 회개합니다

<<사랑하는 목회 사역 준비생 여러분!>> 호소합니다

성전을 바로 세웁시다!

세월 좋은 소리 한다고 하시겠죠?
임지 하나 얻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며 치열한 경쟁인데 무슨 꿩궈먹는 소리람? 나갈데가 있어야 가지 않느냐고 하겠죠?

우리가 그 진리를 신학교때 부터 터득 했더라면 그렇게 절반은 <하나님>이 절반은 <나>가 하느라고 무진장 힘들었던 목회가 아니요 전적으로 <내게 배우라>하신 그분이 하시게 맡겨드린 참 쉽고 가벼운 목회(마태 18:29-30)가 됬을 것입니다. 목회자 필수성품이되어야 할 <온유와 겸손>을 그분에게 배운대로 했어야 하는데 잘난 줄 안 <나>가 했으니 만들어 질때 까지 얼마나 연단이 심했는지? "왜 이렇게 사람 연단, 물질연단,끊일 만 하면 또 다시"...가끔은 기쁨도 주셔서 "나 목회 그만 둘렵니다" 말 않나오게꼼만...
사람됨이 하나님 성전까지 되었어야 했는데 그냥 성실한 사람 착한 사람으로 사람들의 인정만받고 나갔습니다

큰 성전. 대형교회부러워 하거나 시샘하지 맙시다

개척 할때 가는 곳 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교회만 보었습니다 ,저 만한 교회라도 있으면 원 없겠네...천막이라도 칠 땅이 있으면...
먼저 준비 되어야 할 것이 않된 채로...
우리의 과실 이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16-17)
성전된 나를 바로 세우지 않고 나가면 지탄받는 윗글 속의 사람들이 됩니다
사역 나가기전 성전을 청소하고 하나님의 성전이기때문에 하나님 그분으로 채웁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일 1:1) 말씀이 하나님 아시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안에 하나님이신 말씀을 정중히 모시고 있습니까?
말씀이 육신이되어 오신 예수님 그분을 제대로 모시는 작업을 시급하게 하십시요.
그분이 직접 가르쳐 주신 <산상수훈>그것 조차도 성전안에 모셔 드리지않고는 성전 구실을 바로 못합니다.
성령은 강권 하십니다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먹으리라"(요계3:20)

말씀인 그분을 모셨다 내쫓았다 하기를 얼마나 자주 하고 있는지?
아예 모셔 드리 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나와 함께 계시겠거니... 막연히 어렴풋한 믿음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으니 우리 속에 편안히 거하시겠습니까?

가끔씩 건드려지는 감동 혹은 습관적으로 다니는 교회 생활로 만족해 하며나 자신도 속고 있습니다
만일 아직 주님을 진심으로 모시지 못한채 자주 세상과 벗하는 영적 간음자라고 한다면 주님이 그 사람을 성전 삼고 들어와 편히 계실 수 없습니다 역겨워서 토해 낼 것입니다 (약4:4, 요계3:16참조)

사역의 소명을 확신한다면 사역 들어가기 전에 <내 성전 바로 세우기>로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부단히 노력하여 말씀으로 내 성전을 가득 채워봅시다
돌비에 새겨주신 계명처럼 마음 판에 꼭꼭 새겨서 말씀인 하나님께서 보혈로 정결케 하시고 기름부어 성별 시키시는 성전 만듭시다

뒤 늦게 성령이 터치해 주셔서 말씀 모셔들이기를 처음에는 입으로만 다음에는 마음으로 더 나아가니 비로서 영으로 됩니다.

목회 초반에 터득했으면 외치는 말씀이 때마다 강력한 생명력이었을 겁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b)
그렇게 평생을 바로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사역 했드라면 얼마나 신나는 목회로 전교인 <하나님 성전 >만들었을가요 전교인이 평생 열명 이라도 몇명이라도 좋습니다 한 사람 그 한사람이 바로 세워진 하나님의 참 성전이면 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온전한 말씀의 사람으로 <성전 바로 세우기>로 준비하면 여러분들 세대에 말씀의 사람이 희귀합니다
영은 영으로 구별 하기때문에 영분별하는 말씀의 사람들과 멋진 동역을 할 터이니 사역지를 내 힘으로 찾으려 말고 <내 성전 바로 세우기>를 최우선으로 삼고 부단히 자기 연마를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단의 조롱거리 되게 않 하실 분이 말씀이신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역 나갈 빛의 사자들! 말씀 품는 차세대 목사님들이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하소서!














,
리플달기
4 1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