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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 목사만 할 수 있나'축도권'의 허상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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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6월 15일 (수) 08:53:31
최종편집 : 2016년 06월 17일 (금) 15:57:19 [조회수 : 7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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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축도'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다. 그것을 '축복의 기도'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기도가 아니고 '축복의 선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개혁 교회들은 예배의 마지막 순서로 민수기 6장 24-26절 제사장 아론의 축도를 주로 사용하였고, 영국 성공회에서는 빌립보서 4장 7절을 사용했다. 그리고 한국교회와 일부 개혁 교회들에서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가장 널리 사용된 축도는 아론의 축도라고 한다.

아무튼 '기도'와 '선포'가 그럼 어떻게 다른가 물으니, 축도를 단지 기도의 일종으로 분류한다면 장로나 집사 등 누구나 축도할 수 있는 반면에 만일 선포로 볼 경우는 말씀의 설교권을 지닌 목사만이 축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즉 축도는 단순히 기도가 아니라 '성경 말씀을 선포하고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사만이 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결국 이 문제는 다시 설교권의 문제로 연결되고 있다.

 

'말씀 선포'는 목사의 전유물인가

그러면 과연 설교는 목사만의 전유물일까. 물론 교회가 일반적인 질서를 위해 일정한 자격과 조건을 지닌 목사에게 공적 예배의 설교를 하도록 한 것에 대해 나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무질서하게 아무나 나서서 설교하면 분명히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가 "반드시 목사만 설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설교가 무엇인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사역이다. 원칙적으로 전도에 별다른 제한이 없는 것처럼 설교에도 특별한 제한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설교가 주로 믿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데 비해, 전도는 단지 그 대상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설교 중 일부는 사실상 전도였다. 전도 역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일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전도할 때에 꼭 '전도권'을 받아야만 할 수 있나. 물론 아니다. 같은 원리로 일반 성도들도 이미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기쁘게 선포하면 왜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진정 모르겠다.

아니면 신학교에 가서 성경과 신학을 몇 년 배우고 안수 한번 받고 교단의 자격증을 받으면 갑자기 영적 신분이 상승하여 다른 성도들에게는 없는 무슨 특별한 선포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개신교 목사가 가톨릭 신부와 무엇이 다른가.

이는 마치 안전 운행을 위해 "오직 영업용 전문 기사만이 승용차를 운전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만큼 과도한 논리다. 오히려 나는 소속 공동체가 인정할 정도로 은사를 지닌 성도는 필요시 설교해도 좋다고 본다. 신학교 졸업장이나 목사 자격증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 했던 세계적인 설교자 '무디(Dwight L. Moody)' 선생이다. 그는 목사 자격증이 없었다.

사실 '축도권'이란 말은 그저 신학적 미사여구로 포장된 또 하나의 교권주의적 신조어일 뿐이다. 성경 어디에도 목사가 하나님의 대리자라거나, 또는 오직 목사만이 축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한글 성경엔 '축도'라는 용어조차 아예 없다. 이는 영어 성경도 마찬가지다. 어학적으로도 축도란 그냥 '축복 기도'를 줄여서 부르는 말일 뿐이다.

본래 중세 교회 축도의 기원은 미사 시간에 사제들이 행하던 '기복 의식'이다. 그래서 이는 소위 성직자 그룹의 교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방 종교의 무당이나 주술사들이 행하던 제사 의식을 복제하여 교회 안으로 들여온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축도를 '강복'이라고도 하는데 '복을 내린다'는 뜻이다.

만약 축도가 진정 성경적 기원을 가진 것이라면 차라리 성경에 나오는 용어를 사용하여 'blessing(축복)'이라고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굳이 'benediction(축도)'이라고 하는 이유는 로마 가톨릭의 사제 '베네딕토'가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기 위해 축도라는 의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과거 종교 개혁을 한 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잘못된 교리와 계급적 성직 제도와 종교 의식 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그 일부를 그대로 가지고 나왔다. 그래서 로마 교회에서 임명한 사제들만이 축도권을 갖는 것처럼, 아직도 상당수 교회에서는 목사만이 축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개신교의 강단은 성도를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정규 신학교는 커녕 아무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던 갈리리의 어부들도 설교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신약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다. 개신교에 성도보다 더 높은 영적 계급이나 신분은 따로 없다. 따라서 성도들도 필요하면 당연히 설교하고 축도할 수 있는 것이다.

본래 이 '설교'라는 용어 역시 한글 성경에 없던 단어이다. 다만 나중에 나온 번역본들에서만 일부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이고니온의 회당에서 전도(설교)했는데 '개역개정역'에서는 그 사실을 단순히 "말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행14:1). 회당의 전통과 관례에 따라 사도들이 말할 때 무슨 설교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도들에게 설교란 그저 말로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설교를 너무 신학적으로 포장하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다. 설교는 목사에게만 주어진 초월적 특권이 아니다. 다만 공교회는 예배의 보편적인 질서를 위해 신학적으로 잘 준비된 목사에게 우선적으로 설교와 축도를 위임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작은 교회나 특수 지역의 지하교회에서는 전임 목회자가 없을 경우 장로나 권사나 교사나 집사가 설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본래 개혁 교회의 강단은 성도를 차별하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개신교 프로테스탄트의 '만인제사장' 정신이다.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회당장만이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기서 제사 의식처럼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성전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엄숙한 '제사의 장소'였으나, 회당은 사람들이 가르치고 배우고 기도하고 친교하는 '소통의 장소'였다. 필요하면 어린 아이가 성경을 읽기도 했고, 아울러 집회에 참석한 누구나 낭독된 성경에 대해 자유롭게 묻고 답하며 토론할 수 있었다. 회당에서는 제단을 세우고 제물이나 헌물을 바치지 않았다.

물론 이런 회당 집회의 소통 정신을 모체로 하여 후일 신약 교회의 예배가 발전되었다. 즉 하나님과 소통하고, 또한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운 소통이 바로 '화평'인 것이며, 하나님과 수직적으로 화평하고 이웃과 수평적으로 화평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예배의 정신이며 또한 십자가 복음의 정신인 것이다.

사도들은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교회당 예배는 제사가 아니다. 예배를 이방 종교처럼 제사화하지 말아야 한다. 성전 제사는 이미 예수님께서 직접 온전한 제물이 되어 '단번에' 다 이루신 것이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7:27)." 그런데 오늘날의 어떤 예배는 왜 또 다시 '날마다' 바치는 제사처럼 헌물(헌금)을 강조하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는 민수기 6장에 기록된 제사장 아론의 축도를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그게 분명히 축원의 기도이지 무슨 선포라고 억지를 부리는가. 하나님께서는 성전 제사 제도를 수립하신 후에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어떻게 축복해야 하는지 직접 가르쳐 주셨다.

고린도후서 13장에 번역된 사도바울의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역시 편지에 흔히 사용하는 마지막 인사말이지, 그것을 무리하게 확대 해석하여 무슨 선언이나 선포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예를 들어 그 앞 절의 "평안할지어다"도 평안하기 원한다는 기원이지, 평안하라고 명령하거나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설사 백 보 양보하여 그게 선포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오직 목사만이 선포할 수 있다"는 신학적 근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성경에는 신약 교회의 예배 순서에 사도들이 교인들에게 축도를 했다는 기록이 없으며, 장로나 감독이나 목사에게만 축도권을 부여했다는 기록은 더욱 없다.

 

교회는 성도를 '제사장'으로 대우하라

사실 한국교회 일각에서 축도권과 설교권을 마치 목사 특유의 전유물로 둔갑시키려는 의도는 명백하다. 대부분의 바른 목회자와는 달리 일부 성직주의자들은 예배를 빙자하여 어찌하든 개신교 목사를 일반 성도와 차별화하고, 다른 '특별한 신분의 존재'로 인식시켜 교회 내에서 부당한 특권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지금도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심지어 어떤 부흥강사는 "오늘 내가 지닌 축복권을 모두 쏟아놓고 가겠으니 헌금 많이 바치라"고 큰소리친다. 마치 자신이 하늘 보고의 수문장이라도 되는 양 안하무인이다.

예배가 중요하고, 축도가 복되고, 그리고 설교 또한 매우 귀한 사역이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설령 목사나 장로나 다른 직분자가 없더라도 예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가정에서도 누구나 얼마든지 예배할 수 있다.

개신교의 목사직은 구약 제사장이나 신약 사도의 직무를 그대로 승계한 직분이 아니며, 다만 다른 장로나 집사와 마찬가지로 함께 교회를 섬기는 '은사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교회 내에 오직 목사만이 가진 특권이란 결단코 없다. 목사는 다만 가르치는 사역을 담당하는 장로의 직분일 뿐이다. 일부 목회자들이 주장하는 '축도권', '축복권', '선포권', '설교권', '예배권', '목회권' 그리고 '성직권'이니 하는 요상한 용어들은 모두 교권적으로 터무니 없이 과장된 것들이다.

사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그리고 축복하는 기본 자격으로는 '성도'라는 아름다운 신분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는 것이다. 모든 성도가 부르심을 받고 기름 부음을 받은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그런 당당하고 존귀한 제사장에게 "당신은 목사가 아니니 설교하거나 축도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는 게 말이 된다고 보는가. 아니면 요즘 목사직은 제사장보다 높은 직분이라는 것인지.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가 설교하는 예배는 '축도'로 끝내고, 전도사가 설교한 예배는 '주기도문'으로 끝내고 있다. 그럼 목사의 축복 기도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굳이 둘 중에 양자택일을 따지자면, 차라리 목사도 주기도문으로 마쳐야 옳지 않을까. 왜 똑같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한 전도사는 축도를 못 하게 하는지 그 이유를 정말 납득하기 힘들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의 '설교 사역'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마치 중세 교회가 신도들에게 성경을 읽지 못 하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심각한 오류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오로지 듣고 배우기만 하고, 반대로 전하거나 가르치지는 말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과거 믿음의 선배들이 '만인제사장'을 외치며 종교개혁의 역사가 시작된지 어느덧 500년이나 되었건만, 아직도 이 땅의 순박한 성도들은 교회 내에서 정당한 제사장의 대우를 제대로 못 받고 있다. 도대체 누가 그 거룩한 직무를 새치기하고 있는 것일까.

죄인들이 쓰는 교회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6:23-26)."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나도기자의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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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자녀 (152.99.38.13)
2016-06-16 14:57:46
목사들이 축도를 자기들만 할 수 있다고 하는 권위의식과 특권의식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축복을 빌어주는 기도의 형태여야지 자기가 축복을 내려주는 것과 같은 선포형식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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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7
김 목사 (216.188.255.212)
2016-06-18 04:01:36
빝의 자녀님,
축도에 대해 더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축도가 뭔 지?
왜 축도가 주보의 맨 마지막에 있는 지?
그 내용이 뭐야 하는 지?
축도는 누가 하는 지?
등등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쉽게 정장복 교수가 쓴 "예배학 개론"이란 책을 구입하여 보십시요.
그 책의 "주보 편"에 잘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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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54
김 목사 (216.188.255.212)
2016-06-19 02:50:17
신성남 집사님의 글엔 맞는 것도 있지만, 축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맞는 건 맞다 하고, 틀린 건 틀리다고 해야 합니다.
축도에 대해 바른 이해/지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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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48
김요셉 (66.87.120.13)
2016-06-28 05:26:45
당당뉴스 편집님. 신성남 집사의 축도 글은 틀린 것입니다
축도가 뭔지도 모르고
축도가 왜 예배 순서 마직에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 입맛대로 쓴 신성남 집사의 주장은 엉터리 입니다.
예장합동, 기감에 한 번 물어 보시고
이런 엉터리글은 싣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 그러면 당당뉴스의 모든 글도 의심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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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
강영구 (112.184.235.165)
2016-06-23 20:16:36
신성남 집사님의 글을 가끔 읽습니다. 그런데 점점 쇼킹한 이론으로 치닫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성경에 없는 것을 굳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잘못이라면 성경에 자동차를 타고 다니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으므로 지금 사람들은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 안 됩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 아론에게 축복을 선포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기(민6장)에 그것이 기원이 되었고 사도 Paul이 바울 서신에 기록한 것에서 축도를 만들었다고들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Claremont 학장이던 수하키 교수는 자기는 목사가 아니지만 축도는할 수 있지만 성만찬은 할 수 없다고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성경에 목사만 성만찬을 인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나요? 그런데 그 옛날에는 제도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옛날에 대통려이 없었지만 지금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듯이 지금은 그것을 제도로 규정하고 있고 목사에게 주어진 축도와 성만찬 집례 권한을 부여했음을 제도적으로 규정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넫 자꾸 이미 제정된 제도를 하나하나 부정하면 교회를 부정하게 되고 결국 예수를 부정하는 수순으로 가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교회를 망가뜨리려는 악한 세력에게 영향을 받아서 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물론 교회가 천국은 아니기에 무엇이든지 다 온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재단하고 평가하고 판단한다면 우리가 십판주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결국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몫인데 우리가 너무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지는 않는지와 오늘날에도 박봉에도 힘겹게 영적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수많은 목회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침을 밷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담임 목회를 31년째 하고 있지만 은행에 10만원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그러면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지요. 말씀을 붙잡고 살기에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데 집사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오히려 그 소망을 잃어 버릴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부분을 터치하고 연구하시는 것은 좋으나 교회를 당가뜨리는 일은 삼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신실하게 묵묵히 목호ㅣ하시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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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0
강영구 (112.184.235.165)
2016-06-23 19:52:53
의견쓰기는 11200자까지 쓰실 수있습니다. 욕설 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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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강영구 (112.184.235.165)
2016-06-23 19:52:47
의견쓰기는 11200자까지 쓰실 수있습니다. 욕설 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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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210.210.216.153)
2016-06-20 13:34:28
이제서야 사람들이 이분의 필력에 관하여 왈가왈부 하네요.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 의도인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그 논리력, 간추려 말하는(글쓰는)지식부재 등 글을 읽다가 마무리가
되는 느낌?

즉 도대체 뭘쓰고 있는거지?
즉 도대체 어떤 논리로 이런글을 썼지?
즉 도대체 이게 정확히 신학적으로 맞는건가?
즉 도댜체 이사람이 모이게 하려는자 인지? 파 헤치려 하는자 인지?

참... 두서없는 메아리..., 뜨겁지 않은신앙,,,여러가지 연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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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9
면도날 (183.97.157.59)
2016-06-19 09:49:01
문제는 글이 너무 길다는 데 있습니다.
축도 하나 말하려고 그렇게 길게 쓰니 난독이 될 수밖에요. 님은 요약해서 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래 댓글들을 보니, "성경과 성서"를 따지는 분이 있네요. "하나님"과 "하느님"은 어떻습니까?

차라리 "바이블"이라 하고, "신"이라고 하면 그런 논쟁이 없어질까요? "펀치"나 "하키"처럼 바이블은 이미 외래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한 가지 의문, 담임목사는 누구에게 축도를 받지요? 그야말로 "신"에게 직접 축도를 받나요?

담임목사는 목회전문가로서 설교와 축도를 하지요. 이세돌 같은 프로기사는 많은 기전에서 바둑을 두고, 바둑해설도 하지요. 하지만 아마추어도 바둑대회에 나가고, 바둑해설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느 쪽을 더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의 축도권이니 설교권이니 하는 것은 그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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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
김 목사 (216.188.255.212)
2016-06-19 02:44:42
축도, 하나님의 복 선포에 관하여 - "축도는 담임목사가 하는 게 정상이다"
"축도는 담임목사가 하는 게 정상이다"
축도, 하나님의 복 선포에 관하여

미주 뉴스앤조이 기사 입니다.
newsnjoy점us/news/articleView.html?idxno=6344

위 글을 보시고 축도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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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4
잔나비 (110.70.52.50)
2016-06-18 22:17:46
응.!!!

검증 된 목사만 가능하다.(혼란 방지=질서)

아주 급할 때 (생사 갈림 길)는 성도도 가능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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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
김 목사 (216.188.255.212)
2016-06-19 02:46:36
축도는 왜 담임목사가 하는 게 정상인가??
축도, 하나님의 복 선포에 관하여

미주 뉴스앤조이 기사 입니다.
newsnjoy점us/news/articleView.html?idxno=6344

위 글을 보시고 축도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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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
게세마네 (112.148.220.123)
2016-06-18 12:59:39
목사들에겐 충격적인 내용이 맞습니다.
의사에겐 진료권이 있고, 약사에겐 조제권이 있습니다.

목사도 하나의 사회가 인정한 직업군에 포함시키면 그들도 뭔가 ~권을 가져야 함이 마땅합니다. 설교권, 축도권, 축복권, 안수권, 세례권, 집례권(결혼식, 장례식) 등등의 ~권을 매우 심하게 챙기는 편입니다. 마치 국가가 주는 공인자격증을 받은 것처럼 목사가 챙기려는 ~권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목사자격증은 엄밀히 말해서 교단이라고 하는 종교단체가 발급하는 자격증이고 이것은 국가의 공인자격증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교단이라고 하는 종교단체는 이미 성경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상업화된 요소가 매우 많이 들어와 있고, 이방종교와 무속신앙의 색체도 많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목사를 배출하는 신학교도 이미 상업화된 교단의 영업적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체제 속에서 배우고 안수를 받은 목사들은 당연히 순수한 성경 말씀의 해석에서 멀어진 상업화된 교리체계와 세속화된 종교형태를 기독교의 정체성인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설교권, 축도권 등에 대해 신성남 집사와 같은 주장을 하면 그들의 영업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너무나 상업화 되어서 성경말씀의 본질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졌기에 현재 체제가 고착된 기독교가 성경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잘못된 주장이라고 반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래에 김목사라고 밝힌 분도 정장복 교수의 예배학 개론을 마치 성경보다 더 중요한 책인양 주장하고 있는데 그런 교수가 쓴 책이 성경보다 더 진실을 가르친다고 할 수 없으며, 어떤 세계적인 신학자의 주장이나 해석도 성경 자체의 본질적 진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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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3
김 목사 (216.188.255.212)
2016-06-18 03:52:08
딱 하나만 더 말씀 드리지요
간단히 씁니다.

"축도"는 예배를 인도한 담임목사가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가 허락/승락/유임한 부목사, 전도사, 강도사, 장로, 집사, 권사, 평신도 등도 할 수 있습니다.
단, 조건은 스데반처럼 1) 믿음이 좋고, 2) 성령이 충만하고 3) 주께 헌신된 자라야 할 것입니다.

"축도"에 대한 것도 자세히 설명 드려야 하는 데, 시간이 없기에 생략합니다
한마디로 "축도"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목사도 포함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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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9
김 목사 (216.188.255.212)
2016-06-18 03:33:31
축도에 대한 비판/ 지적을 잘못 하셨습니다.
교회에 대한 다른 비판들은 옳게, 바르게 잘 하신 것이 많지만
이번 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축복권, 축도권, 설교권, 기도권 .. 등등도 비성경적인 것으로서
바른 교회, 바른 목사들에게는 적용 되지를 않습니다.
그런 것을 운운한다면 비성경적인 목사, 엉터리 목사, 사이비 목사가 주장하는 것이니
성경적으로 바르게 하는 교회 목사들에게는 적용시키지 마시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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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뉴스야 정신차려라! (175.139.32.39)
2016-06-17 17:29:41
당당뉴스가 처음에는 신선하고 좋았는데
요즘은 맛이 갔네.
너무 많이 앞서가네.

이런글을 올리는 이유가 무얼가?
누구 생각이니?

교회를 흔드는구나.

목사들이 정신 못차리니 이젠 교인들이 난리야.
언제까지 이런 글 보고 있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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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자녀 (152.99.38.13)
2016-06-16 14:57:46
목사들이 축도를 자기들만 할 수 있다고 하는 권위의식과 특권의식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축복을 빌어주는 기도의 형태여야지 자기가 축복을 내려주는 것과 같은 선포형식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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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 (216.188.255.212)
2016-06-18 04:01:36
빝의 자녀님,
축도에 대해 더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축도가 뭔 지?
왜 축도가 주보의 맨 마지막에 있는 지?
그 내용이 뭐야 하는 지?
축도는 누가 하는 지?
등등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쉽게 정장복 교수가 쓴 "예배학 개론"이란 책을 구입하여 보십시요.
그 책의 "주보 편"에 잘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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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 (216.188.255.212)
2016-06-19 02:50:17
신성남 집사님의 글엔 맞는 것도 있지만, 축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맞는 건 맞다 하고, 틀린 건 틀리다고 해야 합니다.
축도에 대해 바른 이해/지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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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239)
2016-06-16 07:58:06
.
예배는 제사가 아닙니다.

목사는 무당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래서 축도는 다함께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배가 제사가 되고 목사는 무당이 되며 기도는 자신의 자랑이 됩니다.


항상 옳은 글로 소경들을 이끄시는 신성남 형제님께

영원한 하나님의 복에서 평안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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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108.28.149.89)
2016-06-15 21:43:21
그럼 직접 하시면서 신앙생활하세요...
집사님의 견해에 수긍도 되면서... 모든 이들이 축도할수있다... 있을수도 있지요 .. 만인제사장들이니...하지만 한가지 .. 직임을 무시할수는 없지요
하나님이 교회안에 직임을 두실때.. 첫째는 , 둘째는 ...이 first..
first 는 오직 하나이지요. 일등병이나 병장이나 대장 모두 나라를 위해 싸우지만 ..누구나가 다 명령권자가 되는것은 아니지요 .. 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지휘체계가 확실해야 하지 않겠어요? 영적 전투의 장에서 질서는 중요합니다.
집사님 교회에서 먼저 모두가 축도하자고 하세요 누구도 뭐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배의 축도는 지금처럼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가 함이 바람직 하다고 보여집니다 ... 축복은 얼마든지 하지만 예배의 축도는 ?...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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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축도해요 (203.226.192.118)
2016-06-15 21:32:39
1. 예배에서 말씀선포보다는 성서해석이란 말이 더 적절합니다. 목사들이 무슨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까? 참고자료와 협소한 개인적 경험을 참조해서, 개인적 해석을 전달하는 것일 뿐이지요.

2. 설교는 실천신학, 성서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등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잘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그것은 신적 권위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3. 축도는 모든 성도들이 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 교회는 목사님과 성도들이 축도를 동시에 합니다. 물론 축도문은 목사님이 파워포인트로 미리 작성해서 스크린에 올려놓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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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만도 못하네 (220.70.232.205)
2016-06-16 11:18:31
웃기는 소리네요
감리교는 신천지만도 못한 종교단체입니다.
성서라는 단어 그만 쓰고 성경이란 단어를 쓰시구요
먹사들이 정신못차리고 영적자질이 부족하니
설교,축도의 권위를 내려놓는 것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맙시다~

신천지 발끝만도 못한 감리교야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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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118.33.209.74)
2016-06-16 04:56:17
별 희한한 소리가 다 출현 했네!
정말 별 쓸데 없는 소리들이 교회를 어지럽게 한다.
만인제사장설이 그렇게도 해석되는 것보니 이단이 그레서 출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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