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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암울한 미래,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당사자들은 왜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을까?
방현섭  |  racer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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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6월 09일 (목) 15:04:34
최종편집 : 2016년 06월 11일 (토) 23:20:47 [조회수 : 2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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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열렸던 한국기독교연구소의 예수목회세미나에 참석하고 온 후 나는 공포증이 생겼다. 강사 중 한 사람이 했던 이야기의 한 대목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한국교회의 수명은 앞으로 7년 남았다.’ 정확한 워딩까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앞으로 7년 후에 한국교회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될 것, 교회가 심각한 문제에 닥치기 시작할 것이고 문을 닫는 교회가 속출하게 될 것, 대충 이런 이야기이다. 7년 후에 교회가 문을 닫을지 아니면 7년 후부터 대환란이 시작되는 건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요지이다.

7년 후면 나는 55세가 된다.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니다. 마지막 열정에 불을 붙여야 할 나이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망하게 될 것이라니, 그것도 7년 후에! 10년 20년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7년이라니! 도무지 용납이 안 된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7년 후를.

나는 주일에 2-30명 남짓 예배하는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작은 교회라 그런지 교우들은 대부분 소시민들이다. 교회가 크지는 않지만 부족함을 느낀 적은 별로 없다. 뭐라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십일조를 하는 등 교회재정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출이라고 해봤자 월 100만 원의 담임자 사례비, 목회보조비와 소속목사들 여름휴가비 정도 챙겨주는 것 외에는 크게 지출할 것도 없고 대부분 먹고 마시고 교회 행사를 위한 지출이 고작이다. 50평 남짓이나마 땅과 건물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1년 경상비는 3,500만원 겨우 결산하는 정도의, 적게 수입하고 적게 지출하는 그런 교회이다. 그런데도 걱정이 된다.

지금 교회 사업과 재정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5-60대 교우들은, 7년 후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거나 은퇴한 상태, 자녀들이 주는 용돈을 받으면서 소일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경제능력이 현저하게 감소한 상태가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그들의 뒤를 이어 바통을 받을 세대의 면면은 어떤가? 아마도 내 또래일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교회 운영을 전적으로 책임질 만큼 풍족한 사람들은 없다. 그저 근근이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고 과하지 않을 정도의 취미생활을 할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라나고 부모는 늙어가는 세대로 가족 중 하나가 사고를 치거나 무슨 병에라도 걸리면 금방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30대는 몇 명 없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먹고 살기 힘든 것처럼 그들도 사는 형편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교회에는 청년들이 몇 나오는데 대부분 감신대를 졸업하고 교단의 기관이나 시민단체, 직장에서,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직책을 맡고 있다. 이들이 헌금을 내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얼마 전 유치원 교사로 취직한 청년이 있으나 그 역시 헌금은커녕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고 허덕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장 상사와 학부모들의 갑질에 지쳐있다. 목사가 헌금생활을 잘 권면해야 함에도 그들의 삶이 어떤지 뻔히 알기 때문에 차마 뭐라 말도 못하고 그저 같이 한숨만 쉬어주고 있는 형편이다. 7년은 고사하고 14년, 21년이 되어도 이들이 정말 떵떵거리고 잘 살지 의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강사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무슨 수를 쓰기 전에는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도 쉽지 않겠다.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교회 문지방을 넘어 들어온다든지 하지 않으면 적어도 10년 후에는 매우 힘든 상황이 될 것 같다. 젊은 세대는 역사 이래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노령화는 심각한 수준이고 이미 노령사회로 진입했다. 그러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이다. 젊은이가 노인 2-3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개발도상국들의 추격은 재빠르지만 한국사회의 경쟁력은 소진돼가고 있다. 그렇다고 미래를 획기적으로 리포메이션 할 묘안도 없는 것 같다. 사회변화가 교회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교회가 발 빠르게 대응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 같지도 않다. 교회도 사회도 그냥 그렇게 시한부 선언을 받은 말기암 환자처럼 손 놓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런데 교회는 더욱 심각하다. 죽을 날 받아 놓은 사람이 욕심사나와 보이기까지 하다. 벼랑 끝으로 달려가면서도 이익과 권력에 눈이 멀어 다투고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감리교회는 말하기조차 피곤하고 부끄럽다. 미래의 당사자인 젊은 세대가 교단의 정책에 기여할 언로 자체가 막혀 있고 신학대학 부담금 같은 추가적 부담만 가중시키면서도 생계를 걱정해 주거나 목회에만 전념할 여건을 마련하는 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젊은 세대는 언감생심 혜택을 받을 꿈도 못 꾸는, 매년 부담금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은급부담금을 꼬박꼬박 바치고 있다. 교단 지원금 달라는 신학대학이란 데는 교수임용으로 물의를 빚어 학생을 종탑에 올라가 시위하게 만들고 학생들을 경찰에 고발하는 추태를 부리는 것도 부족해 또 총장 선출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게다가 교수의 성추문까지! 시대가 이런데 교단 원로라는 분들이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게 고작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라니 기가 차다.

48세 목회 16년차 목사인 내가 볼 때 그리 멀지 않은 미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해야 할지 암담하다. 그러나 지난 총회에서 미래를 위한 어떤 법안을 제정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생각나는 거라곤 동성애 동조 옹호하는 목사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거 정도?(이게 총회 의결사항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 어느새 감독, 감독회장 선거철이 다가왔다. 그들이 도대체 왜 감독이 되려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도 꼴에 선거권자라고 예비후보자들의 문자메시지를 수시로 받는다. 문자 메시지라는 게 고작해야 ‘푸른 6월처럼 아름다고 건강한 감리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거나, ‘뜨거운 여름에 목회의 여정에 여백이 있으라’, ‘나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처럼 감리교회를 위해 일사각오 하겠다’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미래는 암담한데 덕담이나 늘어놓으려고 감독 되려는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말해야 할 사람들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니 한심할 뿐이다. 정신없이 쓰다 보니 한풀이만 길어졌다.

상황이 이런데... 정말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당사자인 젊은 목회자들은 왜 자기들의 미래에 대해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는가? 목회의 꿈을 제대로 펼쳐 보기도 전에 날개가 꺾일 처지에 놓여 있고 목회는커녕 생계도 막막하게 될 현실이 코앞에 닥쳤는데 왜 당사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인지 모르겠다. 궁금하다. 다들 넉넉한 보험이라도 들어 놓은 건지?

사족으로, 미래의 교회를 걱정하면서 너무 경제적인 차원으로만 접근한 것 같아 송구스럽다. 또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욕먹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인정할 건 인정하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회라도 운영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건 당연하고 돈이 있어야 목회도 하고 선교도 하고 구제도 할 것 아닌가. 목회자도 먹고 살아야 하고! 까마귀가 먹을 것을 때마다 엘리야에게 물어다 주듯이 때마다 베푸시는 은혜에 의존하고 있다면 내가 전적으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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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온순 (175.223.11.75)
2016-06-11 12:59:23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의 부흥을 사람의 수와 경제적인 면에서 결산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과연 그것이 부흥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교회에 수십만명이 모인다 하여도 아니, 전세계 인구가 다 교회에 다닌다 하여도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공동체 안에 없다면 교회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대교회의 위기는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위기에 대한 여러 담론들이 있으나 저 또한 소신을 피력해보고자 합니다.

1. 영적인 창기

신학교나 교회에서의 가르침은 어떠한 박해가 있어도 본질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라는 진리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교회를 향하여 그것만은 강조하지 말라고 요청합니다.독선적이며 배타적이기 때문에 친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의 교회나 신학교가 이에 부응하여 세상과 더 잘 어울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위해 웃음을 팔며 내 것도 다 내어 주는 영적인 창기의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교회의 탄생인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믿음의 선진들이 죽어갔던 이유는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유구한 역사가 흐르고 제 아무리 인공지능을 통해 사람의 능력을 자랑하는 시대가 올지라도 신학교나 교회가 끝까지 목숨바쳐 지켜야 할 것이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고 가르치고 증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받은 일반 교육은 차치하고서라도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목사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신학교육만 열 두 해 받아왔지만 교회의 본질을 위하여 그 단순하고도 명확한 주님의 가르침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은 과연 누구였는지, 머리로는 가르쳐 주었으나, 그 지식이 가슴으로 흘러 목숨을 내 놓고 증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심장으로 그 가르침을 주신 분은 누구였을까, 지금도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랴.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까지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아니었을까요. 사람을 기쁘게 하셨더라면 십자가에 달리시지도 않았을 것이며 달렸다해도 내려오는 일이 더욱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시기 전까지 아니, 성령하나님이 오시기 전까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길을 가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녀들에게 '영생'과 '부활'을 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려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목회자들이 선포해야할 말씀(설교)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대를 향하여 하시고 싶은 말씀을 가감없이 전해야할 사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우선이 되어 교회가 꼭 전해야할 인간의 근원적인 죄와 회개를 촉구하지 않는 설교가 난무하여 교회를 다닌 연수는 죽음앞에 이를 만큼 장구한 세월을 자랑하여도 여전히 들어야 할 복음을 듣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에 대한 지적이나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것을 잘 분석을 하면서도 그렇게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는 근원적인 것을 교회가 전하지 않은 직무유기로 인하여 오늘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3. 동성애자들이나 사회의 약자에 대한 태도

사회의 기득권층이나 그렇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와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건강한 사람이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 모두 예외일 수 없습니다. 창조의 질서대로 산다고 하는 이성애자들도 그리스도 밖에 있다면 주님 앞에서는 모두 마찬가지이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안타까운 것은 진정으로 동성애 자들을 위하는 길은 그들이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죄들에 대하여 직시하도록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끌지 않은채 그들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가서 복음을 듣게 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위로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것은 교회가 마땅히 할 일로서 자랑할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다른 단체의 공동체나 다를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위기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정치적이고 땅의 것으로 해석하여 티끌에 불과한 육체의 구원에 우선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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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is (118.218.215.90)
2016-06-11 07:54:01
목사님! 20년만 더 사신후에 소인의 말이 회상 되셨으면...

늙어 철드는 한날 한날은 하나님계실 자리를 <나> 라는 인간이 차지하고 행세 했던 날들에 비해 하루가 천년의 가치보다 귀합니다

시편 139편 앞에 날마다 옛 사람 <나>가 숯불을 머리에 쓰는 것 같이 부끄러우니 회개로 깨어지고 은총으로 천국입니다

말씀을 외면하고 버린 우리들의 결과 입니다
건방지다고 일축하셔도 좋습니다 늙은이 그대로 달게 받겠습니다
6.25 전쟁을 통과하며 삶의 울타리는 완전 페허로 상황은 반전되어 극한 고난을 치뤄오기를 한두해로 끝난 날이 아니고 족히 30여년 걸린 개인사입니다

대신 얻은것은 하나님이 모든것위에 <나다>라고 나타나 주신것 그 임재와 함께 함입니다

말씀이 말씀되게 하기를 부단히 나를 쳐 단련시켜도 다시 육으로 돌아가고
또다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고백되기 까지 삼 사십년 말씀 사랑을 암송으로 마음에 새기다 보니 말씀을 태초부터 계신 창조자 그분을 마음 성전에 편히 모실 자리를 드리게 되고 있습니다
귀하신 목사님! 용서하세요
소인의 경험을 tip 으로 추천드리고싶습니다
불경 암송 독경하는 스님 보면서 부끄러웠던 젊은 날에 "우리가 저들 만큼도 경건 하지 못하고야" 하고 간혈적으로 하던 성경 암송을 목회보조 40세쯤에서 부터 본격적이였습니다 참 어려워요. 자기씨름을...생각이 온통 암송으로 지배를 받는 시간이 늘어나며 옛 사람 껍질이 벗겨지기를 오래 걸렸습니다
육체를 위한 건강훈련에 쓰는 그 이상의 암송시간이 균형 잡히면 어느 정도 사람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가 아니고 <하나님>으로요

그만큼 해 보신 후에 답답한 원로 늙은이들이 왜? 질문해 주세요
내가 당한 고난 또다시 회개치 않은 책벌로 자손들에게 내려질 가봐 몸에
소름 돋을 정도로 두려워지고 가슴아픕니다

<동성애> 입에도 내기 두려운 가슴 떨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절대적인 섭리 주권으로 보호 받은 민족인데 돌려 드리는 감사가 인권은 빙자한 성 소수자 옹호라니...
그일 말고 "불 같고 반석을 쳐서 부서뜨리는 방망이" 아니 다이나 마이트 같은 하나님 말씀 앞에 떨립니다
"내 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날마다 수도 없이 드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들의 거룩함이 동성애까지 이르러야 합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의 속성이라면 천번이고 만번이고 함께 하렵니다

우리의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예언함"을 온 우주 전체의 보편성인것 으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왕이신 <예수> 말씀인 그분을 내 던지고 창조의 기본 질서를 외곡하며 까지 사수해야할 진리라고 주장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소돔 고모라의 현실이 앞당겨 질 뿐이지요
안타깝게 호소합니다
<인권 해방> 진정한 인권과 자유 <나다 >하시는 하나님 뿐이십니다

위에글 잘 읽었습니다 조금더 영에 속하시는 속도가 빨라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그연세때 더 육적인 계산으로 살아온 모범생.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뇨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팔복의 천국이 땅에서부터 맛보게 됩니다

오늘 대한 민국 심장부에서 벌어질 그림들을 상상하니 늙은이 맘 가눌 수 없어 하소연 합니다
실례한것 있으면 용서하세요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주님의 보혈로 씼겨 주시는 한량없능 은총을 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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