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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하나님의 백성(벧전2:9-10)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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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6월 04일 (토) 21:44:34 [조회수 : 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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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장 9-10절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가.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10절,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는 자니라.”

* 오늘은 평신도주일이다. 평신도(laity)라는 말은 헬라어 ‘백성’(laos)에서 유래하였다. 이전에 성직자가 아닌 사람들을 평신도라고 하였으나 사실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평신도다. 그러므로 평신도 운동은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성직자와 같은 자세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데 있다.

*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긍휼을 얻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긍휼을 얻는’(분사, 과거형)은 성도가 은혜로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그 신분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이 백성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도는 귀한 존재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칭하며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하였다(9절). 성도가 참으로 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분이 귀한 만큼 이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나. 하나님의 백성 평신도에게는 사명이 있다.

9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평신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고귀한 존재인 만큼 또한 그의 사명이 작지 않다. 지금까지 평신도의 개념은 성직자에 반하여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입장에서 이해하였다. 이제는 평신도에게도 성직자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평신도는 결코 구경꾼이 아니다.

* 평신도 운동은 마틴 루터에 의해 확립되었다. 그는 ‘만인제사장직’이라는 이념을 정립하고 평신도가 더 이상 구경꾼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성직자나 평신도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똑같이 귀중한 존재다. 마찬가지로 평신도도 성직자와 똑같은 심정으로 사명감을 갖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도의 사명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사명이다. 특권에는 사명이 따른다.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고귀한 존재인 만큼 또한 사명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 성도는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야 한다.

9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본문에서 성도의 사명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아름다운 덕을 선포할 것인지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빛을 삶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그것은 말로 할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해야 한다.

* 우리는 하나님이 사망(어둠)에서 생명(빛)으로 인도하셨다고 말로 선포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서 ‘선포하다’(엑상겔로)는 ‘천사로부터’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려면 빛 가운데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 바울은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하였다(엡5:8-9). 빛의 자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길이다. 빛의 열매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낸다.

 

라. 빛을 드러내는 성도가 귀하게 쓰인다.

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 본문은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귀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비록 세상에서 배척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된다고 격려하시는 말씀이다.

* 본문은 ‘그러나’로 시작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세상에서는 버려진 돌이었으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퉁이 돌이 되었다는 말씀을 반영한다. 즉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는 말씀이 이를 말한다(앞7-8절 참조). 성도의 길도 이와 같다.

*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은 힘들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관을 갖고 살면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이 진리를 선포하다 배척을 받은 것처럼 성도들도 진리를 따를 때 배척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소망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산 돌’같이 귀하게 쓰임을 받는다(앞4-5절 참조). 진리를 따르며 빛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진정 귀한 일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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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자녀 (1.225.99.74)
2016-06-08 05:39:59
. 한국교회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목사의 백성이요, 목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겁니다. 목사와 그 가족들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십일조도 하고 감사헌금도 하고 목사의 명예와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해 주기 위해 건축헌금도 합니다. 하나님께 바치시고 싶으면 교회에 헌금하지 말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세요. 예수님은 소자에게 이웃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 했고 목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했으며 그것이 심판대에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했습니다. 착각하지들 마세요. 교회에 헌금하는 것은 거의 목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정말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서 헌신하는 자라면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차, 좋은 집에 살려고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차리기 보다 먼저 이웃과 형제를 돌아볼 것입니다. 자기 보다 이웃을 먼저 돌아보는 목사는 단언컨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인은 먹을 것이 없어 쩔쩔매도 목사는 그 들이 내는 헌금으로 잘삽니다. 개척교회에서 힘들게 사는 목사도 있다고 하겠지요. 그들이 교인들이 적어서 헌금이 적어서 그렇지 교인이 늘어나고 헌금이 많아지면 그들로 모두 똑 같아집니다. 교회에 뻔질나게 다니고 헌금 많이하고 목사 뒷바라지하는 것이 빛의 자녀로서 삶이 아닙니다.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갖추고 있지말고 실제 삶이 경건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했습니다. 성도들이라면 법과 윤리 질서도 잘 지켜야 합니다. 일반인보다 더 잘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빛의 자녀로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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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225.99.74)
2016-06-08 05:39:38
오늘은 평신도주일이다. 평신도(laity)라는 말은 헬라어 ‘백성’(laos)에서 유래하였다. 이전에 성직자가 아닌 사람들을 평신도라고 하였으나 사실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평신도다. 그러므로 평신도 운동은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성직자와 같은 자세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데 있다.

그러면 성직자라는 용어를 따로 쓸 필요가 없겠네요.

성직자라는 용어 대신에 성경에 삯꾼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성직자 대신에 삯꾼 또는 고용된자(하이얼드)가 어떤지요?

개혁교회에서 성직자하면 무당같은 느낌이 들어서 영 어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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