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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도 변하는 사회에 적응해야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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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6월 04일 (토) 18:59:13
최종편집 : 2016년 07월 15일 (금) 02:35:37 [조회수 :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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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여성에게도 안수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포럼이 열렸다고 한다. 그 모임에서 연사들은 성경에는 여성 리더십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주장하고 고린도전서와 디모데전서에 나온 여성 폄하의 기록도 여성에게 안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 전의 유대사회에서는 여성을 사람의 수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3,000년 전이나 2,000년 전에 기록된 성경에서 여성 지도자가 나온 것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고 아주 특수한 경우였다. 따라서 성경의 기록을 가지고 여성에게도 안수를 해야 한다는 근거를 찾으려고 해서는 설득력을 얻기가 힘들다.

여성에게도 안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인간은 변하는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데에 기대야 한다. 인간의 사회는 끊임없이 변해 왔다. 그리고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IT 분야의 변화다. 나이든 사람들 가운데는 IT 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아예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 남녀관계의 변화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여성호주제가 허용되더니 간통죄가 성립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보수적인 사람들 중에는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 우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말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요즘 집안에서 여자를 이기는 남자가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간 큰 남자로 간주되는 세상이다.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 어색하게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남자들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백종원 씨의 요리교실이 인기를 끌고 남자 육아휴가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여성 팀장, 여성 사장, 여성 회장 밑에서 남자들이 일하고 여성 대통령 밑에서 남성 장관들이 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것은 구약의 시대나 신약의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신약시대에는 여자들을 사람의 수에조차 넣지 않았고 그 시대에 유대인 남성들은 그들이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기도를 매일 드렸다고 한다. 그러한 사회에서 기록된 성경에서 여성 리더십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여서 일반화할 수가 없는 일이다. 더구나 고린도전서와 디모데전서에서는 여성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분명히 금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 안에서 여성 안수를 위한 근거를 대려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근거로 해서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경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남녀의 문제는 당대의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에서 교회가 어떻게 여성을 지도자로 내세울 수 있었겠는가? 만약 그렇게 했다면 그 교회는 당시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도 감히 어떻게 여자가 지도자가 될 수 있느냐고 교회를 비난했을 테니까 말이다. 인간은 주어진 문화 안에서 그 문화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애써 노력하며 살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외면하는 사람 혹은 주어진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낙오자가 되게 마련이다. 당대의 문화를 외면하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는 것과 같다.

 교회도 주어진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교회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하게 된다. 보수적인 교회에서 외면당하는 여성 리더십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려면 현대 사회의 여성 리더십에서 그 근거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된 포럼에서는 가부장제도에 대한 언급이 부수적인 것이 되어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여성해방운동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여성도 인간으로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문학에서는 여성주의비평이, 신학에서는 여성주의신학이 자리를 잡았다. 이런 때에 성경만을 가지고 여성 안수의 문제를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진정한 보수는 옛 가치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가미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외면하는 보수는 결국 골동품이 될 염려가 있다.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여성이 재벌총수로 활동하고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에 교회에서는 여성이 제대로 발언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런 교회는 현대인에게 외면당하게 될 것이 뻔하다. 현대인에게 외면당한다면 그 교회가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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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소리 (122.35.176.192)
2016-06-08 14:10:42
고린도전서 11:3-15에서 바울이 설명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가부장제도적 태도 아닌가요? 그리고 고전 11장을 기록한 바울과 고전 14:34-35에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집에 가서 남편에게 배우라고 말한 사람은 같은 사람 아닌가요?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창세기에서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이 창조주의 뜻인가요? 그것 역시 가부장제적인 사회에서의 통념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나요? 바울은 학식 있는 사람이고 신앙인이었지만, 당시 사회의 통념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가 지금 21세기에 생존해서 남녀관계에 대한 글을 썼더라면 고전 11장이나 고전 14:34-35 같은 글은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편적인 판단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요? 우리는 여기서 분쟁거리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분별하자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바른 관점이란 어떤 관점을 말하는 것인가요? (6월 7일에 제가 쓴 댓글은 그 댓글을 유발시킨 글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무의미한 글이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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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줄 (1.220.214.82)
2016-06-08 09:26:45
바른 관점
여성의 안수를 세상의 문화에 견주거나
남성이 우선해야 한다거나 여성이어서 안된다는 식으로
분쟁거리를 만들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바울이 고전 11:3~15 로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분별해서 찾아야 할 것이며

바울도 예수님이 여자를 제한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음을 이해한다면 단편적인 판단은
자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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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소리 (122.35.176.192)
2016-06-07 20:23:05
사회와 교회를 분리해야 한다면, 교회는 사회를 등져야 하나요? 교인들은 사회 밖에서 살아야 하나요?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열린 마음을 지닌 분이었고 진보적인 분이었습니다. 교회와 사회를 분리시키려는 태도는 닫힌 사고의 결과입니다. 달리 말해서 예수님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여성을 제한하지 않으셨는데, 왜 보수교단에서는 여성에게 안수하지 않나요? 우리는 관념적 사고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삶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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