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그의 수상 소식에 필자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이웃나라 일본이 노벨문학상을 두 번씩이나 받는 동안 우리는 단 한 번의 세계적인 큰 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해 오던 필자이다. 고은 시인이나 황석영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에 오를 때마다 상 받기를 가슴 조리며 기다렸고, 그러다가 다른 나라 작가가 받게 될 때면 아쉬움에 마음으로 추적추적 겨울처럼 차가운 비가 내렸다.

그런데 우리의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수상의 쾌거를 이룬 것이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과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이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는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을 시점으로 한 표제작 ｢채식주의자｣, 처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에 취(醉)해 예술혼을 불태우는 사진작가를 시점으로 한 ｢몽고반점｣, 그리고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을 목격했으나 그래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혜를 시점으로 한 ｢나무 불꽃｣의 중편소설 세편으로 엮은 연작소설이다. 이에 대해 작자 한강은 “따로 있을 때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해지면 그 중 어느 것도 아닌 다른 이야기가 담기는 장편 소설”이라고 말한다.

필자가 작품으로 한강을 처음 접한 것은 2005년, 그녀가 ｢몽고반점｣으로 이상문학상의 대상을 수상한 후였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하여 문단에서 신예로 주목을 받고 있었으나, 일각에서는 그것을 아버지의 영향력에 의한 것이라고 폄하는 일도 없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사󰡕 󰡔다산의 삶󰡕 등을 쓴 중견작가 한승원 씨였던 것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사람들도 없지 않으니 그저 그런 거라고 치부하고 마는 수밖에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웃의 경사에 함께 기뻐하는 풍토가 그리운 것만은 사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벨평화상을 받자, ‘그가 그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냐?’며 입을 삐쭉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이에 외국에서는 이 같은 한국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설마한들 그게 사실이기야 하겠는가마는, 그의 수상을 저지하고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렇다고 상이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자기를 철저하게 과대포장한 결과로 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필자가 아는 한 사람은 국내외의 큰 상을 몇 개나 받았다. 기독교 신앙을 삶을 통해 실천한다고 하는 것을 이념으로 한다며 기부 받은 토지에 농장 간판을 달고 공동체를 시작했다. 여러 가지 바람직한 업적도 남겼다.

그러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 자기를 가리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자존심과 교만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독교 신앙과 교만은 상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한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손님이 오기라도 하면 농장에서 한창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 공동체 가족들을 불러들여 청소를 시켰다. 그에 대한 부당성을 말하는 가족에겐 그렇게 하는 것이 손님을 맞는 예의라고 입을 막았다. 나중에 나이 많아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공동체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말았다.

이야기가 한참이나 곁길로 빠지고 만 감이 없지 않은데, 하여튼 ｢몽고반점｣을 읽어 본 필자는 그 작자를 폄하하는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이제 그 내용은 머릿속에서 대부분 지워져 희미한 잔영만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그때 받았던 뭐라 말할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의 기억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 작품을 포함한 연작 소설 󰡔채식주의자󰡕가 한국문학을 온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큰상을 받다니, 필자의 기쁨은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맨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은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수여한다는 특징이 있다. 번역의 가치를 그만큼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번역을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학계에서 연구의 성과로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지만,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학문하는 사람에게 있어 번역은 외도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했다.

우리 문학이 이제껏 세계적인 큰상을 받지 못한 것은 그만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 없어서라기보다 번역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강이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를 만난 것은, 데버러 스미스가 한강을 만난 것만큼이나 행운이었다. 그러기에 한강도 “좋은 번역자와 편집자를 만나 행운”이라고 수상소감에 밝힌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눈고장(雪國)󰡕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자, 자기 집 앞에 몰려와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가 수상하게 된 세 가지의 덕택이라는 것을 말했는데, 그 중 하나가 ‘번역’의 덕택이었다. 그 역시 사이덴스 덱카라는 발군의 번역가를 만났던 것인데, 그런 면에서 한강이 데버러 스미스라는 뛰어난 번역가를 만난 것과 같은 맥락의 행운을 안았던 것이다.

이처럼 한 나라의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번역이 작품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몰라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번역이라는 것이 외국어를 능통하게 한다 해서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문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번역에 대한 전문지식도 갖추어야 한다.

잘된 번역이란 총체적인 면에서 원문과 가장 가깝게 옮겨진 글을 말한다. 내용뿐 아니라 문체와 그 결이 옮겨진 글에서도 되살아나야 되고, 읽을 때의 호흡도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 외에도 난해도, 문화와 풍습, 방언 등의 많은 것들이 가능한 한 원문에 가깝게 옮겨져야 한다.

성경 번역도 마찬가지다. 아니 기독교인에게 있어서의 성경은 단순한 하나의 책이라는 개념으로서는 설명이 안 되는 절대가치이므로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데도 성경 번역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내용상에 있어서는 이전보다 진전된 것이 사실이나 문장의 음률 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퇴보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문장에 있어서의 음률은 소리를 내어 읽을 때 크게 영향을 끼친다. 음률이 무시된 문장은 읽을 때 호흡이 맞지 않아 곤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잘 조화된 문장은 마치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고도 아름답게 들리도록 읽혀진다.

지금 새로이 번역된 성경과 이전의 성경을 비교하며 소리를 내어 읽어 보기 바란다. 이전의 성경이 낭독에는 더 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이전의 성경을 쓰고 있는 교회도 많다. 새로 번역된 것이라 해도 이전 성경의 글자 몇 개, 단어 몇 개만을 고친 것을 쓰기도 한다. 그런 대부분의 목사들은 아마 전의 성경으로 외워 둔 성구가 많다 보니 그것을 버리고 새로 외우는 게 힘이 들어서가 아닐까 한다.

하기야 성경이 어떻게 번역되든 상관이 없는 목사들도 없지 않다. 성경은 오역까지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그리된 것이니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하는 목사까지 있으니 더 말해 뭘 하겠는가.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믿지 않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그 같은 목사 한 분은, 교역자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응당 대접을 받는 게 옳다고 한다. 입으로는 그리 말하지 않지만, 생활에서 보인 것은 그러하다. 사모도 상석이 아니면 앉는 일이 없다. 100명 내외로 모이는 작은 교회지만, 사모가 손에 물을 묻히는 것은 자기 집에서 뿐이다.

차제에 한국의 문학계는 훌륭한 문인들이 나올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는 한편, 데버러 스미스처럼 뛰어난 번역가가 길러지도록 하는 데에도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한국은 하나에서 열까지가 모두 경제 일색이다. 이래도 경제요 저래도 경제다. 경제 외의 다른 말을 하기라도 하면 역적으로라도 몰아갈 기세이다. 먹고 살기가 극난한 세상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경제만을 되뇌다가는 오히려 경제를 망치고 마는 수도 있다.

총알이 귓전을 스치고, 바로 옆에서 포탄에 의해 전우가 죽어 가는 전쟁터 같은 극한 상황에선 문학 같은 예술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이기 위해서는 밥만 먹고 살아서는 안 된다. 그 같은 것들이 사회에 바르게 고루 기능한다면 그게 더불어 사는 경제성장에도 이바지하는 것이다.

성경의 보다 바른 번역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의 중대 과제이다. 새로이 번역된 성경들의 문장을 보라. 그것을 보고 잘된 문장이라 할 수 있는지. 아직까지 구두점은커녕 마침표조차 찍지 않은 성경이 출간되고 있으니 이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우리 기독교에 있어 성경의 바른 번역보다 더 시급한 문제도 없다. 여기에서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바란다. 히브리어나 헬라어 같은 언어에 능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 신앙을 바로 인식하고 있는 학자, 우리말 문장에 능한 사람 등 성경번역에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범교단적으로 팀을 구성하여 번역에 착수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루지 말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 믿고 안심하며 읽을 수 있는 성경을 내 놓을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