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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꼭 교회에 내야 하나"함께 먹고 즐거워할" 십일조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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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5월 19일 (목) 07:52:37
최종편집 : 2016년 05월 23일 (월) 20:32:33 [조회수 : 66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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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십일조를 꼭 교회에 내야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교계의 원로인 K목사가 한 답변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나는 십일조를 교회에 낸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선교나 구제를 십일조로 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십일조는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K목사는 이어 "십일조로 나는 빵을 사지 않는다.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빵은 십일조를 뗀 나머지 돈, 하나님이 내게 허락해 주신 내 몫의 돈으로 산다. 그와 같은 동일한 이유로 나는 십일조로 선교나 구제나 후원을 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십일조로 나는 빵을 사지 않는다", 과연 옳은 말일까

물론 그렇게 발언한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상당 부분 다른 점이 있기에 부득이 여기서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많은 교인들은 '십일조'라고 하면 대개 구약의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과 성전 관리를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추가로 성 안에 거류하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것으로 흔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반적 상식 자체는 그다지 틀린 것이 없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은 지금도 과거 구약의 율법을 명분으로 한 십일조를 걷어 교역자 생활비, 교회당 관리비, 그리고 가난한 이웃의 구제에 쓰고 있다. 다만 어떤 경우는 그 중에서 구제에 쓰이는 비중이 너무 적어 따가운 지적을 받기도 한다.

반면에 일부 목회자들은 십일조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에 대해서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전술한 대로 "십일조는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이라는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성경은 이런 단순한 해석에 대해 쉽게 동의하기 힘든 명령을 다음과 같이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십일조)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신14:26)."

성경은 심지어 십일조로 '독주'까지도 사서 권속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권속이란 가족이나 가솔을 의미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신14:29)"도 와서 함께 먹고 배부르게 하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십일조가 '하나님의 돈'이니 감히 손대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반대로 다른 특별한 제한 없이 그 돈으로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해서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유감스럽게도 K목사의 일부 발언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아주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구약 십일조의 다른 중요한 의미는 단순히 '바치고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과 이웃이 함께 '먹고 즐거워하는 것'이란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독한 술까지 권하시며 이런 신나는(?) 명령을 내리셨을까. 그 해답 역시 성경에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신14:23)."

즉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성막)'에 모여 십일조를 함께 먹으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십일조의 진정한 목적이다.

그래서 결국 십일조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손수 전하신 복음의 핵심과 그대로 직결된다.

 

십일조를 왜곡하는 종교인들

이제 신약 시대의 성전은 교회당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 자신이다. 따라서 구약 십일조의 본래 정신에 따르자면, 필요시 십일조를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위해 즐겁게 쓰는 것도 지극히 성경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헌데 어떤 목회자들은 왜 이런 중요한 사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을까. 같은 성경을 들고 왜 딴소리를 하고 있을까. 말라기는 열심히 가르치면서 왜 신명기는 대충 넘어가는지 그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직접 "먹고 즐거워할 십일조"의 중요성을 간과한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십일조를 모두 교회당에 바치지 않으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떼어 먹는 것이다"라고 교인들에게 호통치는 위인들이 아주 많았다. 성경은 분명히 성도들에게 자신의 십일조를 직접 먹고 즐거워하라고 명령했건만 전혀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십일조를 잘 바쳐야 복을 받는다"고 하며 기복적인 '바침'을 수시로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시대착오적인 설교 덕분에 중대형 교회의 일부 목사들은 불의한 재산을 크게 축적하고 호사를 누리며 즐겁게 잘 먹고 잘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얼마나 성경에 무지하거나, 또는 그게 아니라면, 십일조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십일조의 정신을 온전히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10)."고 말씀하셨다. 당시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들에 의해 변질된 제물을 거부하신 것이다. 오죽하면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기를 원하셨을까.

또한 하나님은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1:11)."고 말씀하셨지만, 저들은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제물을 매우 기뻐하시는 것처럼 "돈을 열심히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제물은 그런 게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물질이 부족해서 피조물인 인간의 제물을 그리 원하실까. 그건 아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성결과 선행과 정의를 원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1:16-17)."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성도들은 바르게 알고 실천해야 옳다. 구약의 십일조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이다. 역사적으로 성전 제사 제도의 종결과 함께 율법의 십일조는 완료되었다.

그래서 사도들의 초기 교회에 구약 율법에 따른 성전 십일조란 결단코 없었다. 신약 교회에 유일한 헌금은 오직 '자원적 연보'만이 있었을 뿐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게 본래 개혁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이었다. 오늘날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의 교회들 대부분이 십일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당연한 것이다.

 

십일조는 사람을 위한 것

십일조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십일조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율법주의자들과 교권주의자들은 마치 사이비 무속 종교처럼 헌금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어찌 하든 신도들을 교회당 안에 속박하며 교회의 단물을 빨려고 한다.

그 결과 순진한 교인들은 부모가 빈궁해도 바치고, 형제가 배고파도 바치고, 자식이 아파도 바치고, 그리고 가난한 이웃이 울어도 먼저 교회당에 십일조부터 통째로 바쳤다. 그리고 그게 좋은 믿음인 줄로 착각했다. 또한 교회가 앞장서서 그런 교조적 바침을 대단히 숭고한 신앙적 헌신으로 칭찬하고 격려했다.

그러나 그건 바른 십일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율법'을 오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하는 배도한 행위다. 차라리 그 돈으로 먼저 빈궁한 부모를 돌보고, 배고픈 형제와 나누고, 아픈 자식을 고치고, 그리고 우는 이웃의 눈물을 씻어주어야 옳다.

나는 지금 교회에 헌금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할 수만 있다면 많이 헌금하기 바란다. 교회의 바른 사역을 위해 적절한 재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과 친인척과 이웃을 먼저 돌보지 않는 교회당 헌금은 성경의 십일조 정신을 크게 곡해하는 것이다.

현대판 바리새인들은 지금도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를 삼키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랑'보다 더 위대한 계명을 주신 적은 결단코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러니 앞으로 개혁 교회는 더 이상 헌금이니 십일조니 하는 따위로 기만적 구실을 만들고, 어줍지 않은 교권으로 가난한 성도를 억압하거나 속박하지 말기 바란다. 그런 건 종교 업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성경이 명시한 진정한 십일조의 정신은 성도들과 이웃들이 함께 먹고 즐거워하며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로 나의 가족이 먹을 빵을 사는 것은 매우 옳은 일이다. 그리고 배고픈 형제와 가난한 이웃이 먹을 빵을 사면 그것은 더더욱 거룩한 일이다.

신약 교회에서는 성도가 성전이기 때문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신14:23)."

<관련 자료 다운로드>: 한국교회의 변절과 십일조 강요(2016 개정판, 총 69페이지)

 

신성남 집사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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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자녀 (152.99.38.13)
2016-05-24 16:51:01
목사직이 직분이 아니라 직업인 한국교회 제도상으로는 절대 십일조와 헌금 강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타락하고 개독교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근본적인 원인은 목사가 직분이 아니라 직업 즉 밥벌이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목사직이 직업이 되고 교회가 목사와 그 가족들의 모든 생활비를 감당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제도상으로는 절대 십일조 강요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 목사는 왜 일을 하지 않고 교인들이 내는 헌금으로만 생활하려고 합니까? 목사가 다른 일을 하면 목회가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바울은 자비량 사역을 했습니다. 바울이 할 줄 몰라서 그렇게 했습니까? 바울은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선교를 감당했습니까? 목회를 하면서 당하는 어려움을 감내할 마음이 없으면 목사를 하면 안 됩니다. 어려움을 감내하지 않고 편하고 좋은 것만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목사가 되면 안 됩니다. 사도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채찍질 당하고 옥에 갖히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는 등등.. 사도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바울은 그 당시 최고의 학부를 나오고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에는 흠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잘 아는 바울은 왜 자비량 목회를 했을까요? 보수를 받을 줄 몰라서 그랬습니까? 복음을 위해서 모든 어려움을 감수했습니다. 오늘 목사들은 바울까지는 안 되더라도 흉내는 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 절대 목회를 하면 안 됩니다. 그게 안 되니까 돈을 밝히고 교인들에게 시효가 지난 십일조로 협박하고 각종 헌금을 강요합니다. 목사가 직업이 되다 보니 돈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신약 성도들은 하면 안 되는 십일조를 내라고 강요하고 협박하고 각종 헌금을 많이 하도록 부추깁니다.(십일조 강요는 구속 사역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로 되돌리는 불신앙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성전도 제사장도 레위인도 없기에 당연히 십일조도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입니다. 사도행전에 사도회의에서 이방인들이 행해야 될 것에 대한 회의에서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보세요. 구약의 모든 의식과 관계된 율법제도는 없어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목사는 형편이 어려운 교인들이 내는 십일조와 헌금으로 생활을 하면서도 그들 보다 더 물질의 풍요를 누리면서 잘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좋은 차를 굴리고 자녀들 유학까지도 보내고 좋은 집도 가지고 있고 의료보험료 세금조차도 안내고 있습니다. (시골 개척교회를 하면서 힘들게 생활하는 목사들도 있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들도 교회가 커지고 교인들이 늘어나면 똑 같아질 것입니다.) 교인 들 중에는 집이 없이 셋방 살이를 하고 일용할 양식이 없고 자녀들 공부시킬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교회 밖에도 생활비가 없어 굶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모른 채 눈 감고 귀 막고 있으면서 교인들이 내는 각종 헌금으로 교회가 어려운 이웃은 돌아보지 않고 목사와 가족들의 생활비와 복지비는 늘려 가고, 목사 욕심으로 수 십 억, 수 백 억, 수 천 억원을 들여 호화로운 교회를 짓고 나서는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하며 자랑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목회라고 합니다. 이웃들은 돌아보지 않고 성도들의 생활비를 쥐어짜서 지어놓은 그런 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많은 돈을 교회를 짓는데 사용하는 것과 어려운 형제 자매들을 돌보는데 사용하는 것 중 어디에 사용되는 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심판대 앞에서 염소라고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정답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들과 교인들은 그런 진리는 외면합니다. 설교 중에 단 한마디도 언급 안 합니다. 목사는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는 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알기에 몇 교회는 사역자들이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고 교회 일을 몇 사람이 나누어서 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목사가 직업을 갖게 하려면 교회에서 목사가 하는 일을 줄여줘야 하며,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해야 합니다. 주일학교에서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듯이 성경에 대해 많이 알고 신실한 사람들이 새벽기도 인도, 수요일, 금요일 인도 등을 나누어서 해야 하고 그게 안 되면 교회 형편과 사정에 따라서 횟수를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믿음이 없다고 하겠지만 성경 어디에도 매일 교회에 모여서 새벽기도하고 수요일 모이고 금요일 모이라는 데 없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도 말씀을 안 가르쳐도 되고 기도만 해도 됩니다.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목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목회가 무엇인지 성경에서 뭐라고 하는지 바로 알고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없으면 그 직을 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약 성도들에게는 자유로운 신약성도들은 하면 안되는 시효가 지난 십일조로 협박하지 말고 바울이 말했던 연보를 하도록 해야 하며 연보는 교회 운영을 위해서 최소한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구제와 선교에 사용해야 합니다. 목사들은 천국 문에 앉아서 자기도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가는 사람도 못 들어가게 하는 목사에 해당되지 않는지 냉정하게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인들도 더 이상 목사들이 주장하는 말만 진리인줄 알고 따라가지 말고 성경을 바로 알고 목사들의 불법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장소이면 그것이 어디든, 어떤 건물이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교인들이 내는 연보는 교회 운영에는 최소한의 경비만 사용되어져야 하고 대부분은 선교와 구제에 쓰여져야 합니다. 심판대 앞에서 예수님이 어떤 사람을 염소라고 하고, 누구를 양이라고 했는지, 불법을 행한 자 들이라고 말씀하신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사도들이 수도 없이 말하고 있는 성도들이 행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와 목사, 교인들이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고쳐 나가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도 타락했습니다. 칭찬듣고 존경받아야 할 목사들이 일반인 보다 더 욕을 먹고 있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 교인 할 것 없이 교회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욕을 먹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첫째는 목사 들이고 둘째는 아무 것도 모르고 목사들이 하는 것만 보고 그것이 모두 진리인 줄 알고 따라 다니고 있는 어리석고 우매한 교인 들입니다. 목사들이 바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고 교인들은 성경은 보지 않고 목사가 하는 말만 듣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대 개혁을 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눈을 들고 보면 동서남북 어디서나 수많은 십자가가 보이지만 사회는 점점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원인은 교회가 역할을 못하고 목사와 교인들이 성경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십일조와 건축헌금 감사헌금 등등 수많은 돈을 교회에 내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을 하려고 하니 힘이 들고 이웃을 돌아볼 여력이 전혀 없으니 인색하다 구두쇠다 자기 밖에 모른다 등등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건축헌금, 감사헌금 할 돈으로 이웃을 위해 사용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교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목사들이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에 눈이 멀고 그것들이 최고인양 본분은 잊어버리고 목사라는 직함은 그런 것들을 갖기 위한 수단과 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의 잘못도 크지만 교인들도 성경을 바로 알고 불법을 행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성경을 바로 가르치지 않는 목사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몰라서도 그렇고 알면서도 넘어가기도 하고 또는 같이 동조하기도 합니다. 이 대로 가면 한국교회는 사람들로부터 영영 외면을 당하고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다행스런 것은 그나마 소수의 교회에서 십일조를 폐지하고 있다는 것과 자비량 목회를 하고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투자하지 않는 건축물 무소유 교회, 일정 교인 이상이 되면 교회를 다시 나누는 교회, 교회 내부에 사용하는 돈 보다도 구제와 선교에 더 많은 돈을 사용하고 있는 교회가 있다는 것은 비록 소수이지만 작은 희망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언제쯤에나 목사들이 회개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진리대로 행하게 될지... 현 상황에서는 그런 날이 올 것 같지않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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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litync (134.249.233.246)
2021-04-17 11: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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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Kim (115.139.220.151)
2016-11-30 15:27:27
*좀 투명하게 모두 오픈하고 떳떳하게 집행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공감합니다.

*교회에서 지원받으면 똑 같이 한통속 될테니까요.*
화곡동 시장거리 가까운 교회에서 경험 했습니다.(장로들이 월급을 받았지요)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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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구 목사 (112.184.235.165)
2016-05-31 19:39:04
신성남 집사님! 참 많은 십일조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계신다고 봅니다. 그런데 성경에 셋째 해 드리는 십일조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신26:12) 십일조가 있고 둘째 십일조가 있고 셋째 십일조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좀더 연구해 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성경에서 의미하는 첫째 실일조와 둘째 십일조와 셋째 십일조의 구분이 정확해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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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구 목사 (112.184.235.165)
2016-05-31 19:41:13
혹시 집사님이 주장하는 것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보시지 않았는지요?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는 것은 가능하지만 더 장확하게 성경경을 연구해 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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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생각하면, (203.226.192.46)
2016-06-01 15:44:31
1. 첫째 십일조, 둘째 십일조, 셋째 십일조 있다는 것 공부좀 한 사람 다 압니다. 그리고 신성님 집사님이 목사님보다 분명히 더 많이 알고 있어요. 괜히 남 가르치려고 하지마시고, 의견만 내세요.

2. 요즈음이 어느시대인줄 아세요. 십일조 공부좀 하시고 싶으면, 위키영어사전 들어가셔서, 검색창에 tithes라고 치시면, 십일조의 종류, 기원, 논쟁사항, 유대인의 십일조 생활, 각 국의 십일조 현황, 기원후 십일조의 역사 등 자세하게 나와요.

3. 정말로 교회를 생각하면 십일조를 폐지하세요. 예수님 시대에 종교 권력(제사장들)이 얼마나 기세 등등했는지 아십니까? 백성이 십일조를 안내면 사회에서 왕따를 시키고 죄인을 만들었어요.(마커스 보그의 <예수 새로보기>라는 책 읽으세요.) 그런데, 당시에 유대인들은 십일조 말고도, 로마에도 세금을 내야 하고, 성전세도 내야 하고 해서, 일년 수익의 35% 이상을 착취당했어요.

지금 교인들이 얼마나 허덕이는지 아십니까? 십일조를 내는 교인은 국가 세금 + 십일조 및 기타 헌금 등등해서, 거의 30%를 내요. 그러면 교회라도 교인들의 부담을 줄여주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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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14.43.7.225)
2016-05-30 17:22:39
신선생님의 오늘날 절체절명의 옳은 말씀입니다.
절대 공감합니다.
지금 저희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그래요
어머님이 아파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저희가 그동안 평생교회 받친 십일조 엄청되는데 교회에서는 모친을 위하여 음료수 하나없어요
저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받쳤고 보답을 받고함이 아닌데
왜 이리 울적할까요?
하나님이 도와 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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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 (117.30.118.225)
2016-05-28 11:37:15
김동* 목사는 분은 좋은 분이지만, 십일조는 마치 우상처럼 섬김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말하는 십일조는 성경과는 무관한 자신이 만든 '신앙원칙'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성경의 십일조는 신집사님의 견해가 훨씬 성경적입니다. 오래전 유대종교연구소(?)인가에 있는 한 목사님의 유대인의 십일조 계산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용은: 100만원이 수입이라면 0.2%인 2만원을 예루살렘성전 제사장을 위해 먼저 뗍니다. 이것을 '테루마'라 합니다. 그리고 남은 98만원원에서 십일조를 합니다. 이를 ;마아세르'라 하는데 희년을 제외한 6번의 마아세르 중 제1,2,4,5년은 본인이 직접 자기 성읍 주변의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집행합니다. 그리고 제 3,6년은 역시 본인이 자기 성읍의 고아와 과부 등을 위해 씁니다. 이렇게 할 경우 총 11만 8천(11.8%)를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 역시 받은 것에서 10/1을 떼어 덜받은 동료들에게 주어 서로간에 평균을 추구했습니다. 저도 옛날은 10/1을 꼬박꼬박 교회에 냈는데, 보니 교회의 돈쓰는 것이 성경의 정신에서 이탈했다는 생각이 들어 위 방법대로 실천해보았습니다. 효과는?... 만점입니다. 돈이 마땅히 가야할 곳에 가게 되고, 기독교인을 싫어하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 대부분 교인들이 이렇게 하면 그동안 십일조로 호강하던 종교업자들은 상당수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또 전도도 잘되어 교인이 늘어나고 어렵게 사는 개척교회 목사님들도 생활이 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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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지나가다가 (1.221.228.110)
2016-05-27 17:33:21
신명기를 보니...
신명기를 14장을 보니 26절의 십일조에 대한 규례는 드리기로 정한 곳이 너무 멀어 드릴 수 없는 경우 입니다.(24절)
그리고 27절에서는 레위인을 위한 규례도 계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일부만을 보고 전체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외국에 나가 있다면 십일조를 굳이 본교회에 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러나 K목사님이 십일조를 드릴 곳이 머시겠습니까?
그분에게는 빵사먹을 일이 없겠지요.
이곳에 이런 글을 쓰면 돌 맞을지 모르겠지만 글쓰신 분의 주장을 일반화 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옳다구나 하시는 분들은 남들 얘기에 무조건 맞장구 치지 마시고 성경 좀 챙겨보세요.
그리고 교회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싫다면 그 정신은 지키며 소득의 1/10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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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신성남 (49.50.206.22)
2016-05-27 20:20:38
'지나가다가'님, 이건 거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면... 십일조의 정신이 거리에 따라 변한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본문 서두에 밝혔듯이 저는 레위인을 위한 규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규례 이상의 다른 조항도 있다는 것을 추가로 지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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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
지나가다 (1.221.228.110)
2016-05-31 13:52:55
쓰여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당시 시대 속에서의 거리라고 하는 물리적 공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기에 주어진 법으로 보입니다.
그냥 네 마음대로 하라가 아니라 단서가 있는 조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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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성경공부좀 잘하세요. (203.226.192.46)
2016-06-01 15:26:46
맞습니다. 십일조에는 단서 조항이 있어요. 농산물의 십일조 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에서는 만약 십일조를 농산물로 내지 못할 정도로 거리가 멀면, 현금으로 내는 것도 용납합니다. 단지 현금으로 낼 때는 십일조에 해당하는 현금에 1.2배를 내야 되요. 왜인줄 아세요? 유통마진 20%를 생각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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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지나가다님! (220.85.198.226)
2016-06-01 14:49:33
님이야 말로 전체를 보고 그대로 이해 하셔야 합니다.
23 네 하나님 여호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라.

그럼 위의 말씀이 농부, 어부등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말씀인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2차,3차 산업에서 경제활동하면서 돈으로 받고있는데,
그 돈으로 당연히 필요한것을(빵을 포함해서! 원하는 모든것을!) 사먹어야지, 돈을 그대로 씹어 먹을순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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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농산물 십일조 (203.226.192.46)
2016-06-01 15:28:28
구약시대에는 정말 농산물의 십일조만 했습니다. 매우 드문 예를 빼놓고, 장사치들은 십일조를 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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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신명기는 법률문서 (203.226.192.78)
2016-05-26 17:00:55
법률에 들어 있는 단어는 원칙적으로 단어의 뜻을 확장시키지 않고, 좁은 의미로 그리고 문자적으로 문장을 해석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자 혹은 해석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많은 사람을 죄인 만들고, 애꿎은 사람잡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률 문서에서 단어를 하나 바꾸는 과정도 매우 엄격합니다.

예를 들어, 코를 흘리면 벌을 내리는 법이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코 흘리는 사람만 벌을 받아야 합니다. 침을 흘리는 사람에게는 벌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법률을 시행할 때는 그 대상과 범위가 명명백백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십일조가 들어있는 부분은 법률문서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 명령은 법률적인 명령으로 매우 엄격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을 십일조로 드렸는지를 살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십일조의 대상은 밭에서 난 소출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밀, 포도주, 기름 등등입니다. 그 다음에 소 떼와 양 떼도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희생제물로 쓰였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십일조는 법이고, 십일조의 대상은 농산물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여기에서 보시면, 박하와 운향 모두 식물입니다.

현대 기독교인이 반드시 십일조를 지켜야 한다면, 밭에서 난 것과 기르는 가축의 십일조만 내시면 됩니다. 벼 재배하시는 분은 벼의 십분의 일을 내야 하는 겁니다. 월급이나 장사를 해서 번 수익은 십일조의 대상이 아닙니다. 유대인들도 자기가 재배한 밭의 소산 가운데 십분의 일을 냈고, 장사를 하거나 제조업을 해서 발생한 부가가치의 십일조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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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
빛의자녀 (152.99.38.13)
2016-05-30 17:41:22
십일조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유효기간이 경과한 폐기 법률입니다. 신약시대에 십일조를 주장하는 것은 성전을 다시 세우고 제사장과 레위인을 세워 제사 제도를 부활시키자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단순히 십일조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엄밀히 따지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사역을 거스리는 것으로 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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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
지나가다가 (1.221.228.110)
2016-05-31 14:01:04
오직 은혜입니다.
십자가 사역과 유효기간의 관계에 대해 조금더 듣고 싶네요.
어디까지가 유효기간이 적용되는지요?

십일조에 있는 정신까지 유효기간이 다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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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
빛의자녀 (1.224.64.173)
2016-06-01 20:37:58
지금은 신약시대이고 더구나 이방인인 우리는 성전과 제사장 레위인이 없으니 당연히 십일조(첫째 십일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교회를 성전이라고 하고 목사를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십일조(첫째 십일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제사장이라고 하면 교회에서 각종 직책을 맡고 있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레위인으로 봐야 하고 그들도 십일조로 생활해야 합니다만 이들에게는 보수는 전혀없고 헌신만 강요하고 심지어 사비를 털어 봉사하라고 하면서 목사들은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해야 한다고 하면 앞뒤가 안맞는 말이죠. 이렇게 시작하면 말이 길어 지기 때문에 여기서 맺고요. 일단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99% 이상이 목사들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첫째 십일조만 말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교회가 십일조로 목사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모두 첫째 십일조일 것입니다.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라 단지 가르치는 자 일 뿐입니다. 목사를 제사장이라고 일컬으면서 십일조를 주장하는 것은 제사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일부 양심있는 신학자와 전.현직 목사님들이 십일조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는 것만 봐도 십일조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둘째와 셋째 십일조는 가족과 친지 이웃들을 위한 것인데 성격과 사용 방법 등으로 봐서 성전에 꼭 다 바쳐서 제사장들이 집행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십분의 일 만큼은 가족과 친지 이웃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으로 봐야합니다. 그러므로 둘째와 셋째 십일조는 일률적으로 꼭 교회에 내야 되는 것이 아니라(교회에 내면 모두 목사 생활비로만 사용되고 이웃을 위해서는 거의 사용되 않습니다.) 가족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면 된다고 판단됩니다. 하나님께 바치고 싶으시면 어려운 이웃을 도와 주십시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한 것이 예수님께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낸 것은 예수님께 한 것이 아닙니다 속지 마십시요. 마태복음 25장에 심판대에서 염소와 양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보세요. 염소가 되지 않으시려면 교회에다 꼬박꼬박 십일조다 감사헌금이다 건축헌금이다 등등 하지 마시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바친다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생활이 쪼들리고 반찬도 잘 안 사먹고 외식도 잘 안하고 친구들과 동료들 부하직원들에게는 빵한 조각 잘 사주지도 않아서 인색하다 구두쇠다 소리 듣고 아이들의 용돈과 학원비도 줄이고 여행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고 부모님 용돈을 잘 드리지 않으면서 돈을 모아서 하나님께 바친다고 실컷 교회에다 바쳐 놓고는 염소로 분류되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이 것은 제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정해 놓은 염소와 양을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잘 판단해보세요. 더 이상 목사들의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오. 저도 얼마 전 까지는 교회에 십일조를 내야 되는 줄 알고 냈습니다만 지금은 안냅니다. 돈이 아까워서 안 내는 것이 아니라(교회 운영에도 돈이 필요하니까 얼마를 냅니다만) 그 것보다 몇 배 많은 금액을 염소가 안 되려고 구호단체와 이웃돕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꼭 십분의 일에만 국한하지 말고 형편에 따라서 교회가 아니라 진짜 예수님께 바치시기 바랍니다. 목사님도 형편이 어려워서 생활이 영세민 수준이 된다면 목사님께 도움을 드려도 되겠습니다만 단지 율법에 있다면 것으로 십일조를 교회에다 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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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
지나가다가 (1.221.228.110)
2016-05-27 17:49:57
아.... 그렇군요....
그럼 창세기 3장 19절 말씀을 따라 꼭 땀을 흘리고 먹을 것을 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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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
성경공부 똑바로 하세요 (203.226.192.8)
2016-05-28 10:42:21
창세기 3장 19절은 인간 실존에 관한 이야기예요. 지나가다가 님도 노동으로 먹고살 수 밖에 없잖아요. 이것이 십일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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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
지나가다라 (1.221.228.110)
2016-05-31 13:57:32
아... 오해 없으시길...
오늘날 사람들이 일은 하지만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땀흘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비꼰것 뿐입니다.
당시 주 산업이 농사와 목축이었기에 밭에서 난것과 기른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 의미는 수고의 댓가입니다.
그것을 법률적 잣대로 이야기 한다면 우스워진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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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잣대를 균일하게 (203.226.192.46)
2016-06-01 15:32:41
그러면 사람들이 주로 월급을 받으면, 월급에서만 십일조를 합니까? 시대상황이 변했으니까, 십일조는 필요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으로 그에 맞게 교회 운영하시면 되요.

1, 님의 주장은 <농산물의 십일조>에서 <십일조>는 문자대로 받아들이고, <농산물>은 시대 변화에 따라 받아들이겠다는 말씀입니다.

2. 법률 문서는 법률 문서로 받아들여야지요. 법률문서를 역사문서나, 소설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기야 그것을 분리하여,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신학의 깊이가 없는 목사님들이 많기는 하지요.

3, 법률을 제정할 때도 담겨 있는 정신이 있어요. 그런데 신집사님의 글은 그 법률 제정정신(십일조 제정정신)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법률 정신은 맞지만, 방법이 너무 시대 착오적이니까 십일조를 폐지하자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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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소리샘 (183.102.176.224)
2016-05-26 01:40:33
어떤 안경을 썼느냐에 따라 모든 것들이 달리 보이는 법입니다. 신집사님의 글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다가 우연히 보게 되면서 글을 올립니다.

신집사님! 성경을 얼마나 연구하셨는지는 몰라도,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집사님의 글을 보면 극히 일부분의 것으로 전부인 것처럼 호도하는 글들을 종종 봅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집사님께서 쓰신 내용의 십일조는 일명 "둘째 십일조"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첫째 십일조(레27:30, 민18:21, 신12:6)가 있습니다. 그것은 레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반면에 둘째 십일조(신14:22-27)가 있습니다. 둘째 십일조는 여호와의 절기 때 성소에 갖고 와서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둘째 십일조는 매 3년에 한 번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십일조 제도는 신약에 와서도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고전9:7, 마10:10 등등).

신집사님께 부탁드리기는 자신의 좁은 사견으로 성경을 호도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왜곡되고 잘 못된 글들이 내용을 모르는 성도들을 얼마나 현혹시키고 부정적인 반감을 갖게 하는지 알지 않습니까?

다시한번 부탁드리기는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글보다, 좋은 글로 성도들의 마음을 불로 뜨겁게 지펴 주시는 글을 많이 올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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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3
편리한 안경 (203.226.192.78)
2016-05-26 22:02:33
1. 십일조를 내면, 넓은 마음이고, 십일조를 안 내면, 좁은 의견이다. 이말씀이네요.

2, 십일조를 잘 내면, 성도들의 마음을 불로 뜨겁게 지피는 것이고, 십일조를 안내면, 냉냉한 성도라는 말씀이네요.

3, 님은 참 편리한 안경 쓰셨네요.

4, 그나마나 성경 인용좀 잘하세요.

4-1. 복음서에서 십일조를 내용으로 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율법만 중시하는 바리새인을 향한 경고입니다.(마23:23, 눅 20:42)
4-2 그 다음이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교하는 비유입니다.(눅 18:9-14) 이비유도 바리새인의 행동을 경고하는 비유입니다.
4-3 히브리서에서 멜기세덱 및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십일조 이야기가 나오지요.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율법에 의한 십일조가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드린 것도 아니고, 의무로 드린 것도 아닙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렸다고 하는 십일조는 단지 십분의 일이지 십일조가 아닙니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십일조/멜기세덱/아브라함을 소재로 해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임을 설명하는 글이지, 십일조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4-4 마지막으로 고전 9:7 은 목사도 월급받아야 살 수 있다는 거지, 십일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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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5
노집사 (220.85.198.226)
2016-06-01 16:19:20
1. 소리샘님 글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느끼게 했나요?

2. 어떻게 이렇게 결론을 내렸나요?

3. 비꼬지 마세요.

4. 역시 비꼬지 마세요. 인용 잘하신것 같습니다.

4-1. 언급하셨던데로 율법만 중시하는 바리새인을 향한 경고입니다.
4-2. 언급하신데로 바리새인의 행동을 경고하는 비유입니다.
4-3. 말씀은 공감합니다만 갑자기 히브리서에 대한 언급은 왜 하셨나요?
4-4.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현대 교회의 재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십일조가 없이도 목사님들에게 월급을 줄수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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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나익성 (124.62.35.6)
2016-05-26 09:54:09
설교자의 양면성
성경에 기록된 각종 헌금에 대한것은 신명기에 기록되어 잇습니다.
설교하는자의 못된 의도대로 편집되 설교할수 잇는것이 공교롭게도 "성경" 입니다.말라기서와 전혀 다른 신명기의 내용을 읽어 보시면 무당들이 얼마나 교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지 알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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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
나익성 (124.62.35.6)
2016-05-26 09:49:17
그것은 아닌데요?
소리샘님. 그건 아닙니다. 십일조를 호도하고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설교하는것이 목사들 아닌가요? 그동안 거짓으로 설교해온 십일조에 대한 정의를 정확이 알려하는 교인들을 이단이나 불순분자로 매도하는것이 한국형 목사아닌가요? 그런 무당같은 목사들에게 개화이래 지금까지 속임을 당해온 평신도들은 십일조에 대한 올바른 정의한 글이나 설교에 대한 스스로 저항하며 무당의 편을 들어줍니다. 그리고 교인을 가장 우려먹는 구절이 말라기에 기록된 한문장인데 그문장을 앞뒤로 살펴보면 교인들을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무당에게 속아 부자되는조건으로 알고있고 스스로 그렇게 믿으려 몸부림을 칩니다. 무당인 담임목사와 십일조와 성전이라는 거짓에서 해방되 보십시요. 믿음안에서 자유가 무엇인지 알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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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
신성남 (49.50.206.22)
2016-05-26 07:39:13
소리샘님, 둘째든 셋째든 왜 십일조를 온전히 안 가르치냐는 게 글의 요지입니다...
첫째 십일조는 이미 글 서두에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열심히 잘하면, 둘째 십일조의 정신은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십일조의 정신은 모두 같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반감'이라고 하셨는데,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어야지 그러면 긍정적이어야 옳은지요. 도대체 성경 어디에 개신교 예배당에 가서 십일조를 바치라는 명령이 있습니까.

설마 오늘날 예배당이 성전이고 목사가 레위 제사장이란 허황된 주장은 아니시겠지요?

만일 진정으로 성경대로 십일조를 하고 싶으시면... 지금이라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서 다시 성전을 세우고 레위 제사장에게 바치십시요. 그게 율법에 명시된 십일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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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
노집사 (220.85.198.226)
2016-06-01 16:07:36
실제로 읽고나서 느낌은 둘째 십일조가 부각 되는 느낌입니다.
십일조의 정신이 같다는 말은 공감합니다만,

본문을 읽고나서 제가 느낀것은
십일조가 함께 나눠 먹는것으로 사용되어져야 하는구나 라는 둘째 십일조의 사용법에 포커싱되고
첫째 십일조의 의미는 찾아 볼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결국, 신집사님 역시, 십일조의 의미에 대해 온전히 글을 쓴것이 아닌, 십일조의 일부 내용만을 강조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또한 위의 '예배당, 성전, 목사, 레위 제사장'을 언급하는면서 비꼬는면은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구약의 성전, 레위와 신약의 예배당, 목사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일부는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성전은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 공부하고 기도하는 역할, 레위는 하나님 말씀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역할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A이고 B는 B이다는 식으로 비꼬는것은 정말 에러입니다.

(마10:10) '일군이 저 먹을것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고9: 13 14)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신집사님글을 읽고 순간적으로 '십일조는 이렇게 사용되어져야 하는구나' 라고 느꼈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글을 균형있게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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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빛의자녀 (152.99.38.13)
2016-06-01 17:59:19
노집사님께서는 성전과 교회, 제사장과 목사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목사님들이 그렇게 주장을 하고 성경을 왜곡해서 가르친 것들을 진리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에서만 제사장만이 여호와께 나아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실테지요. 신약에서 목사는 단지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자에 불과하며 주의 종이니 사명을 받았느니 대언자니 목자니 하는 것은 목사님들이 자기들의 권위를 세우고 미화시키기 위해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일꾼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는데 지금 목사님들이 일한 만큼의 댓가만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수천년전에 뿐아니라 우리나라도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먹을 것이라고 해봐야 정말 세끼 밥만 먹고 걸칠 옷만 있고 비바람만 피할 수 있으면 생활이 가능했습니다만, 집사님께서도 아시겠지만 현대의 생활은 과거와는 전혀 다릅니다. 먹는 것도 먹는 것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자녀 공부시키고 심지어 유학까지 보내고 모든 가족의 통신요금에 차량구입과 유지 주택제공과 관리 등에 돈이 엄청 들어갑니다. 목사님 한 분 생활비만 교회에서 책임지라고 한다면 그나마 조금은 이해가 될지 모르겠으나 그 모든 가족의 모든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과 은퇴 후에 까지 교회가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교회제도는 목사들의 생활을 위해서만 교회와 교인들이 존재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전도사들만 하더라도 1주일에 한 번 교회 나와서 일을 합니다만 적지 않은 사례비에 학비보조를 받고 강도사와 부목사도 담임 목사 만큼은 안되지만 사례비에 주택제공과 기타 생활비를 보조합니다. 교인들에게 시효가 지난 십일조와 감사헌금 기타 수많은 헌금을 강요하고 거두어서는 이들의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제하고 나면 얼마가 남습니까? 예수님과 사도들이 수도 없이 말한 성도들의 생활은 어떠해야 되는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심판대에서 양과 염소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세요. 교회에 십일조하고 헌금 많이 한다고 양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이웃은 돌보지 않고 목사님들과 기타 교역자들의 생활을 위해서 존재해서야 되겠습니까. 밑에도 글을 올렸습니다만 바울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만 복음에 장애가 될까봐 다른 사람들의 본을 보이기 위해서 자기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이방인들이 행해야 될 것에 대한 회의 결의 내용을 보면 구약의 제사 제도와 관련된 모든 율법은 효력을 잃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전과 제사장, 레위인 제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십일조가 있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십일조를 주장하는 것은 성전을 다시 세우고 제사장과 레위인을 세워 제사를 드리자는 말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저도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집사님과 같이 목사님들이 하는 말이 모두 진리인줄 알았습니다. 십일조도 당연히 했었고요. 교회가 성전인 줄 알고 건축헌금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고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인 줄 깨닫게 되었고 이제는 염소가 되지 않고 양이 되기 위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집사님께서도 성경을 잘 살펴보시고 지금 현재 한국교회와 목사들의 실상을 살펴보시고 교회가 왜 이렇게 타락해서 사람들로부터 온갖 욕을 다 듣고 예수 믿는 것이 죄인이 된 것 같은 현실이 되었는지 냉정하게 살펴보시고 잘 판단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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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218.233.98.178)
2016-05-22 13:01:45
먹사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마치 자신의 사유물인 양 자식에게 세습하는 목사님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현존자 하나님을 정말 믿으십니까?
교인들의 헌금으로 기업을 만들고, 자신의 아들을 그 기업의 총수로 앉히는 목사님께 묻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지금 하나님께서 목사님 곁에서 목사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계심을 정말 믿으십니까?"

비젼의 사람 책중에서 홍성사출판사 지은이 이재철 목사. 100주년 기념교회 현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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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239)
2016-05-21 19: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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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월정연보를 교회에 낸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선교나 구제를 월정연보로 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월정연보는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월정연보는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이기 때문이다"

"월정연보로 나는 빵을 사지 않는다.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빵은 월정연보를 뗀 나머지 돈, 하나님이 내게 허락해 주신 내 몫의 돈으로 산다. 그래도 나는 월정연보를 뗀 하나님이 내게 허락해 주신 내 몫의 돈으로 공익적으로 선교나 구제나 후원도 한다."

그런데 내가 낸 월정연보로 교회에서 무엇을 하는 지 궁금하다.

내가 낸 월정연보를

하나님이 선교와 구제와 후원을 위해 쓰지않고 무엇을 하는 지 정말 궁금하다.

빵도 사지 않고, 선교와 구제와 후원도 하지 않는데 그 돈은 왜 없어지는 지 정말 궁금하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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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190.215.99.9)
2016-05-21 00:24:16
김동호 목사님의 글을 먼저 기사화 하는게 어떤지요?
평생을 목회에 헌신한 목사님이 성경과 다른 해석을 했단 논지를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정도로 자신이 있으시면 직접 김동호 목사님께 답문을 하시는게 어떠신지요?
이런 류의 글을 올리는 당당 뉴스도 참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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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종교개혁 (175.213.129.57)
2016-05-20 21:28:22
진실된 글 신성남 집사님 감사합니다.~~~ 이 글을 대한민국 정통교단 성도들이 다 읽어야 하는데요.~~~ 목사들이 돈사이다...나쁜 집단들~~~목사들 말씀을 왜곡 시키지 말아라. ~~~나쁜 씨끼들.~~~목사없는 평신도 교회가 지역별로 많이 생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인데~~~교단은 왜 이렇게 많고~~~신학대학교는 수 없이 많네~~~이제는 가나안 성도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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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성도 (122.101.20.74)
2016-05-20 09:48:34
헌금도 상식적인 선에서 해야....
십일조 관련하여 그 동안 내가 수시로 들었던 내용이 본 컬럼에 다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계속해서 하나님께 바치면 언젠간 자신이 큰 복을 받는다고는 하는데
실제 그 복이 어떤것인지 모르지만 예전이나 전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변화가 없습니다.
가정적으로 쪼들리는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다를게 없고요 아이들이 커가니 오히려
형편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제 아내는 매월 급여가 들어오면 맨 처음 하는게 교회에 십일조 송금을 합니다.
부모님 용돈도 제대로 못드리는 형편인데 교회엔 십일조며 감사헌금, 일천번제에 여러가지 항목의
다양한 헌금은 빠지지도 않고 계속 드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헌금때문에 제 아내와 트러블도 있었습니다만 전 형편에 맞게 헌금을 드리는것이 모두를
위해서 좋다고 늘 얘기를 했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하는 관점과 종교관이 다를수가 있는데요 전 헌금을 하더라도 어느정도 상식선
이란게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상식선의 도를 넘어서는 순간 그 행위가 가정내에서 불화의 씨앗이 될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든 성당이든 절이든간에 적당히 거둬야합니다.
물론 교회입장에서는 많이 들어올수록 좋겠지만 지나친 헌금은 곧 분란의 씨았을 만들수가 있고
또한 나를 불행하게 하는 원인이 될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단순하지만 적당한 헌금이 모두를 위해 좋다고 생각이 되네요....
그리고 이젠 헌금문화도 좀 바뀌었으면 합니다.
헌금을 하는데 내가 낸 헌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도 모르고 누가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헌금
그냥 이대로 모른척하고 넘어가주어야 하는것일까요.
좀 투명하게 모두 오픈하고 떳떳하게 집행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것을 자세히 알려는것도 사탄이 조정하는거라고 누가 얘기하시던데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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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192.113.130)
2016-05-20 04: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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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뉴스를 후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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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종교개혁 (175.213.129.57)
2016-05-23 11:30:51
500년전 종교개혁은 종교개악이었다.
500년전 종교개혁은 종교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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옭은 말씀입니다 (112.173.204.236)
2016-05-20 19:07:45
교회의 지원받으면 똑 같이 한통속 될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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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57
포이멘 (183.109.98.239)
2016-05-20 12:40: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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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 (67.173.221.80)
2016-05-19 21:25:38
큰일났읍니다 !!
먹사님들이 개때처럼 달라들어 난리가날것같읍니다 ^^
참고로 저는 약20년전부터 항상하는말입니다 신명기를 읽어보아라. 먹사님들 다른것은 다 설교해도 위 신명기는아직 설교하는사람 못본것같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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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종교개혁 (175.213.129.57)
2016-05-20 21:29:22
정확한 지적 날카롭습니다.
아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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