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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이 알려주는 것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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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5월 18일 (수) 23:20:53
최종편집 : 2016년 06월 15일 (수) 14:16:17 [조회수 : 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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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맨부커상 2016년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것은 한국 문학계의 경사일 뿐 아니라 온 나라가 기뻐할 만한 일이다. 영국에서 주는 이 상은 영어권과 비영어권의 상으로 나뉘는데, 채식주의자는 비영어권의 작가에게 주는 인터내셔널 부문의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목표로 번역자들을 지원하기도 하면서 백방으로 노력해 왔는데, 이번에 한강의 소설이 맨부커상을 받게 된 것은 앞으로의 한국문학의 발전과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한강이 맨부커상을 받게 되면서 번역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었다. 우리나라 문학 작품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려면 외국어 번역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아무리 한국어 작품이 우수하다 하더라도 번역이 어설프면 그 작품의 진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의 경우 오랫동안 몇 가지 번역 샘플을 가지고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하다가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이 인정을 받아서 출판되었다고 한다.

   
huffingtonpost

한강은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좋은 번역자를 만나서 굉장히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한강이 스미스 같은 훌륭한 번역자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녀의 작품이 영어권에 알려질 수 없었을 것이고 맨부커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의 김성곤 원장은 “번역이 아주 좋았다. 데보라 스미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번역했다면 상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에서는 작가와 번역자 두 사람 모두에게 상을 주고 같은 액수의 상금을 준다는 데서 그들이 번역을 얼마나 중요시하는가를 알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계에서는 번역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다수의 한국교회가 채택하고 있는 개정개역성경은 100년 전에 나온 우리말 성경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동안 한글 맞춤법에 따라 고치기도 하고 일부 어휘를 바꾸기도 했지만, 개역개정성경에는 한국어의 어순과는 다른 문장도 나오고, 어투도 너무 권위적이다. 간단히 말해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와 그 성경의 번역은 거리가 멀다. 그리고 문장의 구두점조차 대부분 생략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글쓰기의 관행을 벗어나 있다. 더구나 부분적으로 쉼표가 있거나 앞뒤의 어투나 어휘가 일치하지 않아서 성경간행위원들의 불성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성경 번역의 낮춤말 어투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대부분의 개정개역성경의 독자들이 권위적인 어투를 성경문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성경문체라고 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특별히 예수님의 경우에 그런 권위적인 어투는 예수님을 권위적인 분으로 만든다. 예수님은 겸손을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우셨고 겸손의 모범을 보이신 분이었다. 그런 예수님이 권위적인 어투를 즐겨 사용하셨을 리 없다.

소외된 자들을 품으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신 분을 권위적인 분으로 바꾸어 놓아서는 안 된다. 겸손의 모델이신 예수님을 권위적인 분으로 만드는 문체를 성경문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권위적인 어투를 사용한 것으로 번역함으로써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분의 공생애 동안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으로 사역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역개정성경에서처럼 예수님이 만나는 사람마다 연령을 불문하고 우리말로 ‘너’ 혹은 ‘너희들’이라고 불렀다면 그분은 아주 예의가 없는 분이다.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려면 한국인의 예의범절에 맞추어서 번역해야 한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에게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고 질문하신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어느 종교지도자에게 와서 이렇게 질문한다면, 한국어를 사용하는 그 지도자는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시오.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질문하자 예수님이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한다. 한국의 법정이라면 재판장은 “피고 예수는 유대인의 왕인가?”라고 질문하고 피고는 “재판장님의 말씀이 옳습니다.”로 대답하는 것이 상례다. 한국의 법정에서 피고가 재판장에게 말할 때 “네 말이 옳도다”라고 말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어에는 유럽언어에 없는 높낮이 말이 있다. 우리말의 어투를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예의 없는 사람이 되거나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우리말 성경 번역에서 예수님을 그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성경번역자가 범해서는 안 되는 오류다. 그런데 그런 오류가 수두룩한 개역개정성경을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현재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교회 지도자들이 번역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현대어로 번역된 성경들이 나와 있는데도, 한국어에 맞지 않는 성경을 고집하는 교회지도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경번역에서 무차별적으로 낮춤말을 사용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 한 사람의 말투는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경우에 한해서만 말하더라도, 개역개정성경에서처럼 예수님이 무차별적으로 낮춤말을 사용하신 것으로 번하면, 그 잘못된 번역으로 인해서 예수님이 그분의 인격과는 전혀 다른, 권위적이고 예의 없는 분이 된다. 이것은 예수님을 높이는 일도 예수님을 바로 전하는 일도 아니다.

우리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의 수상작품으로 선정되면서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번 계기에 교회지도자들이 성경의 번역 역시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한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잘못 번역하는 것은 어느 문학작품의 번역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성경을 개역개정성경처럼 번역하면 예수님을 실제 예수님과는 아주 다른 분으로 왜곡해서 전하게 되고, 그런 오류를 범하면 맨부커상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하나님상’에서 제외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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