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이면 나는 어머니의 묘소에 갔다. 어머니날에 자기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우리 어머니는 5월 8일 어머니날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5월 8일은 어머니날이자 어머니 기일이다. 그런데 올 4월 중순에 어머니 묘소를 개장해서 유골을 납골묘원으로 모셨으니 이제는 어머니가 누워계시던 묘소가 아닌 납골묘원을 찾아가야 할 판이다. 그런데 어머니 유골을 화장해서 잿가루로 만들어 유골함에 넣어놓았으니, 그곳에 가면 어머니가 거기에 누워계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다. 어머니의 옛 모습을 떠올리기가 어려울 것 같다.

우리는 좋은 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무엇보다 먼저 어머니를 생각한다. 일전에 텍사스에서 열렸던 LPGA에서 6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한 신지은 선수는 우승소감을 묻는 아나운서에게 어서 어머니에게 달려가고 싶다는 말로 소감을 마쳤다. 내가 젊어서 객지에 나가 살 때 평소에는 어머니를 잊고 살다가도 열에 들떠서 하숙방에 혼자 누워 있을 때면 언제나 어머니가 생각났다. 내가 그렇게 아플 때에는 내 이마를 만져보시고 열이 있다고 걱정하시며 한약방에 달려가서 감기약을 지어다 달여 주셨던 어머니!

누구에게나 어머니의 품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우리가 어머니의 젖을 빨고 그 젖을 만지며 자랐을 뿐 아니라,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날도 정해진 것 아니겠는가!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잔소리가 싫다고 짜증을 내거나 어머니와 많이 다툰 자녀들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어머니에게 순종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우리는 청개구리 같아서 특히 궂은 날 어머니를 생각하며 운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더 고마워하겠지만, 나는 특별히 어머니에게 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묘소에 가서도 나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생각했다. 실상 우리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아버지가 할 일까지 해주셨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병석에 누워 계셔서 농사일을 전혀 거들지 못하셨다. 지개를 지고 짐을 나르는 것은 물론이고 호미를 들고 풀을 매는 일도 하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병수발을 하면서 논밭 일을 도맡아 하셨다.

다행히 논밭이 몇 마지기 있었지만, 그 농토로는 어머니 혼자 일하면서 내 형을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에 형은 초등학교만을 졸업하고 어머니 일을 돕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형이 보리방아를 찧어가지고 집에 오다가 지개를 내려놓고 쉬고 있는데, 중학교에 진학한 형의 친구들이 지나가면서 ‘중학교에 못 간 놈도 사람이냐!’고 비아냥거렸다. 어린 아들이 울면서 집에 와서 지개를 내려놓기도 전에 울면서 그 말을 전했을 때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런데 마침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고등공민학교가 생겨서 형은 별로 학비를 들이지 않고 그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형이 그 학교를 마쳤을 때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갔지만, 형은 자신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학을 포기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형을 고등학교에 보냈다. 아마도 ‘중학교에 못 간 놈도 사람이냐!’는 말이 어머니의 가슴에 못 박혀 있었던 것 같다.

형보다 다섯 살 아래인 나는 형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우리 집 형편으로 형 하나를 가르치는 것도 어려운데, 나를 중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초등학교를 마쳐갈 즈음 어느 날 아침 내가 학교를 가려는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르시더니 작은 아들은 집에서 일을 시키라고 말씀하셨다. ‘애들 둘을 다 가르치다가는 빚더미 위에 앉게 될 거야. 그리고 임자가 일하다가 아프게 되면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거야.’ 아마도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나를 중학교에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머니는 ‘우리 애들이 당신을 닮아서 모두 약질인데, 일을 시키면 당신처럼 될 거요. 그러니 내 자식들은 지개를 지지 않게 하겠어요.’라고 대답하셨다. 지금도 나는 그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그 단호한 어조까지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형을 대학까지 나를 고등학교까지 가르치셨다. 내 대학과정과 대학원 과정은 형이 도와주었다. 주변에서는 이 일을 두고 모두들 기적이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 일은 오병이어의 이적에 가까운 기적이다. 물론 어머니는 극도로 근검절약하시면서 열심히 일하셨고,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셨다. 요즘 길거리에서 채소를 놓고 파는 아주머니들을 보면 나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그 물건들을 사주자고 하면 집사람은 잘 응하지 않는다. 농번기가 되면 내가 학교에 가는 날보다 집에서 일하는 날이 많았다. 어떻든 어머니가 우리 형제를 가르친 것은 분명히 기적적인 일이었다.

신앙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그 기적을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36세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한글을 깨우치지 못해서 찬송가는 물론 성경조차 읽지 못하셨지만, 기도하실 때 보면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고 어려운 말을 섞어가면서 청산유수로 기도하셨다. 교회에서는 무학자인 어머니의 열심을 10년 동안 지켜보고 46세에 서리집사로 임명하고 창평구역의 구역장 일을 맡겼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물론 이웃 동네에서까지 우리 집을 ‘예수 집’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열심히 기도하는 집사였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이 일하지 못하는 농가에서 여자 혼자서 농사를 지으며 어린 자식들을 키우게 되었으니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이때 어머니는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큰 아들이 지개를 짊어지고 집에 들어오면서 울 때, 어머니는 내심 울먹이면서 내 아들이 지개를 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을 것이다. 이웃에서 모두들 그렇게 두 아들을 가르치다가는 쪽박 차고 나서게 된다고 비아냥거리거나 만류할 때도 어머니는 열심히 기도했을 것이 틀림없다. 가정예배를 볼 때면 항상 어머니는 먼저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들의 교육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이러한 기도는 한국 어머니들 모두의 기도일 것이다. 우리 어머니의 경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없었더라면, 10여 년 동안의 모진 고생을 견디면서 기적을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7, 8년 전에 초청을 받아서 내가 고향 교회를 찾았을 때, 어머니를 잘 아는 장로님이 서정남 집사님의 작은 아들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이어서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병석에 누운 가장을 간병하면서 여자 혼자의 손으로 두 아들을 대학까지 가르치고 신앙 안에서 자녀들을 키워서 두 아들을 모두 장로로 세웠다고, 신앙인의 모범을 보인, 장한 어머니였다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덕을 칭송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의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던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때 무거운 쇠스랑으로 고구마 두둑을 만들다가 허리를 펴면서 ‘후유’하고 큰 숨을 몰아쉬던 어머니의 모습이 내 눈앞에 떠올랐다. 내가 일하기 싫어서 꾀를 부릴 때면, 나를 돌아보시면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이 짓을 하냐?!’고 퉁명스러운 음성으로 나를 나무라시던 어머니를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자식들은 지개를 지지 않게 하겠어요.’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장차 지개를 지지 않으려면 학교 다니는 동안 열심히 지개를 져야 했다. 농번기에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일할 때도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머니가 원하셨던 대로 그리고 내가 원한 대로 나는 지개를 지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의 소원도 내 소원도 성취되었다. 하나님은 내가 지개를 지지 않는 정도 이상의 복을, 분에 넘치는 복을 내게 내려주셨다. 우리 교회에 다니는 한 여학생이 내 연구실을 찾아와서 ‘교수님은 현대영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라고 말한 일이 있다. 어머니를 통해서 기적을 이루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더라면,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많은 현대 인문학자들처럼 무신론자 아니면 불가지론자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에게 감사했지만, 어머니에게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갈 때면, 나는 그 묘소에 잔디를 입히기도 하고, 비료를 뿌리기도 하고, 파란들이나 모뉴먼트 같은 제초제를 뿌려서 잡초를 제거하기도 했다. 그것이 내가 지금 어머니를 위해서 해드릴 수 있는 것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유해가 묻힌 그곳에 어머니가 누워 계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묘소에 가면 항상 어머니를 마주 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가면 허리를 펴며 숨을 몰아쉬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이 짓을 하냐?!’ 하시던 그리고 ‘우리 자식들은 지개를 지지 않게 하겠어요.’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나는 그때마다 눈시울을 적시며 중얼거렸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지난달 중순에 형님에게 전화를 했다. 부모님 산소를 개장해서 유해를 서울 근교에 마련한 공원묘원의 납골묘에 모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형님도 그 문제를 나와 상의하려던 참이라고 하시면서 내 제안을 반가워하셨다. 내가 그렇게 제의한 것은 가족을 위해서 납골묘를 마련해 놓으셨으니 부모님의 유해를 그곳에 모시는 일을 계속 미룰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80세가 넘은 형님이 계속 서울에서 전주까지 내려오실 수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 다음 바로 형님이 일꾼들을 데리고 오셔서 부모님의 묘소를 개장했다. 부모님의 유해를 태워가지고 가루를 만들어서 예쁜 옹기함에 담아서 가지고 가셨다. 그리고 납골묘에 유골함을 잘 모셨다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오셨다.

이제 어머니날에는 서울 근교에 있는 부모님의 납골묘를 찾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머니를 위해서 해드릴 일이 없게 되었다.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어머니 유해가 묻혀 있는 묘소를 찾아가서 잔디를 입히고 비료를 주고 제초제를 뿌리면서 어머니를 위해서 내가 이런 일이라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흰 돌 안에 모셨으니 내가 어머니를 위해서 할 일이 없어졌다. 좀 편하기는 하겠지만, 허전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해서 나는 어머니와 더욱 멀어지는 것 아닌가!

그리고 어머니의 유해가 묘소에 묻혀 있을 때는 어머니가 그 안에 누워계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요소 앞에 서면 어머니의 옛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고 어머니와 대화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의 유골을 태워서 가루로 만들어 그릇에 담아놓았으니, 어머니의 형체가 모두 없어진 것을 내 눈으로 보았으니, 납골묘에 가면 그곳에서 어머니의 옛 모습을 떠올리기가 어려울 것 같다. 어머니의 옛 모습을 떠올릴 수 없는 그곳에서 전처럼 어머니와 대화할 수 있을까? ‘어머니 고맙습니다.’라고 중얼거릴 수 있을까?

▲ 윤주영 사진전 "우리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