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 > 성서이야기
영감받은 성경이 왜 이렇지?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에 대한 답변청구
박경은  |  0117669763@nate.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6년 04월 29일 (금) 22:21:53
최종편집 : 2016년 05월 03일 (화) 14:02:50 [조회수 : 5225]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영감받은 성경이 왜 이렇지?

 

오천명 식사이적 사건에 대한 답변청구

오천 명을 먹인 급식이적 사건은 네 복음서에 모두 나타납니다. 그러나 완전히 똑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두 가지 점에서 일치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를 거두었다는 ‘수의 일치’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천 명을 먹인 급식이적 사건이 도대체 어디서 발생했다는 것인지를 명쾌하게 밝히지 않는 ‘이적 발생장소에 관한 불명확한 기술’입니다. 여기서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해 봅니다.

 

1. 수의 일치에도 불구하고 그 수에서 나타나는 차이점

 

[1] “다섯” 개의 떡

떡이 "다섯" 개라는 것에서 네 개의 복음서가 일치합니다. 그러나 그 떡의 재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요한복음만이 ‘보리떡’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이 가장 늦게 기록된 복음서로 알려지고 있는데 어떻게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마가복음과 요한복음보다 일찍 기록된 것으로 생각되는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말하지 않는 떡의 재료가 ‘보리’라고 말하는 것일까요(요6:9)?

 

[2]“두” 마리의 물고기

물고기가 "두" 마리였다는 것에서 네 개의 복음서가 일치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및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실 때 떡과 물고기를 동시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것으로 나타납니다(막6:41; 마14;19; 눅9:16).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이 표현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요6:11). 왜 그럴까요?

또 식사 후에 남은 떡과 물고기를 거둘 때 마가복음은 떡 조각과 함께 물고기도 거두었음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6:43).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조각’을 거두었다고 되어 있습니다(마14:20; 눅9:17). 그러면 물고기는? 물고기도 조각난 것들만 거두었다는 뜻일까요?

요한복음은 어떻습니까? 요한복음은 명확하게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고 되어 있습니다(6:13). 물고기는? 물고기도 같이 거두었다는 뜻을 읽을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까? 거두어지지 않았다고 읽게 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물고기는 거둘 것 없도록 남김없이 다 먹었다는 의미인가요?

 

[3]떡을 먹은 “오천” 명

네 복음서는 “오천 명”이라는 수에서도 일치를 보입니다. 그러나 명명백백하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 “오천”이 어떤 오천인지를 말하는 것에서 차이가 납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습니다(6:44). 마태복음은 이를 명확하게 표현하여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14:21)이라고 밝혔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남자가 “대략 오천 명”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9:14).

그런데... 요한복음 저자는 그 수를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지(?).... “오천 명쯤”으로 되어 있습니다(6:10). 물론 헬라어로는 ‘남자들이 앉으니’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는 예수의 말씀과 상응되기 때문에 남녀가 포함되는 ‘성인’으로 읽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들과 아이들은 서서 먹었다는 뜻이 됩니다.

 

2.‘불명확한 장소’를 말하고 있다는 것에서 나타나는 네 복음서들의 일치

네 복음서들은 식사이적 사건이 있은 후에 예수와 그 제자들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도무지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이 어디서, 어느 장소에서 발생했다는 것인지를 확정할 수가 없습니다. 식사이적 사건 이후에 장소를 이동함으로 이르게 된 도착지는 명확한 편인데 출발지에 대해서는 네 복음서가 모두 불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1]마가복음

⋅출발지: 막6:32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31절)‘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가 나와 있지를 않습니다.

⋅도착지: 오천 명이 식사를 마친 후 예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땅은 ‘게네사렛’ 입니다. 그렇다면 벳새다 맞은편이거나 게세사렛 맞은편 방향이라는 의미인데..... 어디입니까?

 

[2]마태복음

⋅출발지: 마14:13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배를 타고 떠나셔서 따로 빈들에 가셨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여러 고을에서 걸어서 따라갔습니다. 예수께서는 배를 타고 가셨지만 사람들은 걸어서 금방 예수께 갈 수 있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 곳이 어디인지?

⋅도착지: 오천 명이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께서는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22절). 그런데 그들이 도착한 곳은 ‘건너가 게네사렛’ 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게네사렛 맞은편 어디라는 의미가 되겠는데.... 대체 거기가 어디입니까?

 

[3]누가복음

⋅발생지(?): 눅9:10에 의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가셨습니다. 그때 무리가 알고 예수의 일행을 따라왔습니다(11절). 그때 예수께서는 말씀을 전하시며 치유사역을 행하셨는데 날이 저물어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 의하면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은 벳새다에서 발생한 사건이 됩니다. 그렇다면.... 벳새다라고 불리는 장소에 ‘남자만 오천 명쯤’ 모였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이는 이미 본문 안에서 상황에 맞지 않는 수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예수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들이니이다(12절)’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 팔레스틴의 벳새다가 얼마나 컸기에.... 남자만 오천 명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더구나 누가복음에 따라 이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벳새다’로 볼 경우 누가복음보다 더 일찍 기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마가복음과 충돌됩니다. 위에서 본 대로 마가복음에 의하면 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이 발생한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벳새다로 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막6:45).

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요? 그 엄청난 수가... 당시의 인구수를 감안해 볼 때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동일하게 겪은 유일회의 식사이적 사건이 어디서 발생했는지를 모르다니....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 때문일까요?

 

묻습니다. 믿음 좋은 여러분께.... 성서영감론....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축자영감설? 동력적 영감설? 유기적 영감설? 부분적 영감설? 완전영감설?

“영감을 받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는 측면에서 복음서 저자들이 받은 ‘영감’의 문제를 놓고 질문해 봅니다. 수를 나타내는 표현이 왜 이렇게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은 것일까요? 성경말씀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어야 하며, 어떤 착오도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복음서 저자들이 받은 영감이 어떤 영감이길래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지?

성령의 감동으로 영감을 받아 기록했다는 성경본문에 나타나는 이런 차이점을 두고 볼 때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영감을 받은 결과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어떤 영감을 어떻게 받은 것이길래 나타나는 현상입니까?

이거....오천 명 식사이적 사건..... 역사적으로 실제 발생한 사건.... 문자 그대로 실제 사실이기는 한 겁니까? 역사적으로 유일회 발생한 사건...... 정말 맞기는 한 겁니까?

그리스도인들의 성서관...., 재정립되지 않으면? ..... 만나야 할 말씀은 더 이상 없는 것이죠.... 깊이 고민하면서 님들이 고정적으로 갖고 있는 성경관, 성서영감론을 재정립하도록 믿음 안에서 수고 좀 하시기 바랍니다

 

박경은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6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7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ㄱㄴㄷ (182.222.57.168)
2016-05-22 01:54:34
답답하다.., 박경은 목사의 글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자들.., 예수님은 얼마나 답답하셧을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오병이어는 사실이 아니다. 라는 결론이 아닌 각각의 복음서의 신학의 중요성을 이야기 함을 귀기울여 다시 읽기를 바란다..
리플달기
1 6
사람애비 (175.113.32.147)
2016-05-06 10:38:53
복음서의 기자들은 급식이적이 무엇을 뜻하는 일인지 말하려는 것이지, 신문기사처럼, 6하원칙에 의거하여 부스러기의 양이나 먹은 사람의 수, 그 장소를 정확하게 보도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도 거의 30년이나 지나서 기록했는데, 현장보도 같을 수 있나요? 기억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영감설에 대한 타당한 이해를 촉구하려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이 글을 보고 불신자들이나 비판자들이 더 좋아하는군요. 분별이 필요합니다.
리플달기
3 7
비젼 (58.120.172.40)
2016-05-03 19:07:37
5천명이 모일수 있었던 이유? 요한복음 6장 4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수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가는 도중이었기에 가능? 하지 않았을 까요
리플달기
6 7
현대인에게 복음서는 복음이 아 (203.226.192.36)
2016-05-02 00:28:37
오병이어는 실제 일어난 사건이 아니지요. 단지 신학적 언어일텐데. 저는 신학적 언어가 언제 사실적 언어로 바뀌었는지가 궁금해요. 목사들이나 제사장들 사이에서는 신학적 언어를 쉽게 받아들여도, 신학적 언어에 둔감한 사람은 언제든지 신학적 언어를 사실적 언어로 이해하기가 쉽거든요. 다른 말로 하면, 언제든지 신학적 언어는 사기성 언어로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많은 문서들 중에 그래도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문서를 선택된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위경이라고 불리는 문서를 보면, 당시에도 신학적 언어가 사실적 언어로 둔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참 불행한 일이지요. 고통을 극복하려하지 않고, 허구를 희망삼아 평생동안 고통을 참아내는 것 말입니다.
리플달기
8 12
류인용 (1.234.194.161)
2016-05-01 19:34:17
동감합니다..
성경은 오류가 많지요 말도 않되는 이적과 기적...
그걸 믿는 자나 그걸 믿고 목사가 되어서 설교하는 자나..
박경은님도 신학나와서 교회당 차려서 설교하고 이렇게 이야기 하지만
밥먹고 살아야 하니 인간의 본능을 이용해햐하는 종교성....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성경... 천지창조를 말하는 성경.....무수히 나타나는 성경의 신화성.... 정말 어이가 없지요..
그런대 그걸 믿는 사람들... 참 이상해요...

박경은님도 분명 공부하셔서 알지만 말도 않되는 글을 믿으라고 이야기 하니...
구원???????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거짓도 왕 거짓말을 하는 목사님... 역시 먹사들이야
구원은 기독교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어느 종교에도 있읍니다..

박경은님 꼭 이런 말도 이야기 하여주세여...
아집과 고집의 종교 최고의 종교라고 떠드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거짓이 섞여있는 성경.. 골라서 교양으로 수양으로 믿고 다스리라고...

박경은님을 통해 다시보게 되는 거짓이 섞여있는 성경...
영감은 개코다... 언넘이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믿는거야....오류 투성이구만....

구원이 어느 종교에나 있다..용쓰지말고 전도하지도 말아라 구라좀 치지 말고
믿고 싶으면 아무 종교나 믿으면서 착하게 살면 되지....
리플달기
5 11
나익성 (180.228.228.23)
2016-04-30 12:40:40
동감입니다.
부흥회때 자주 등장하는 단골매뉴 아닌가요?
말라기서의 십일조와 함께.
누구도 반문하거나 의심할수없게 만드는 한국식기독교의 ㅜ모순
리플달기
6 9
북소리 (14.183.60.134)
2016-05-01 01:48:06
성경은 믿음없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 같이 입증된 오류나 모순이 없다. 단지 의심과 믿음 없음이 문제의 근원일 뿐이다.
리플달기
10 9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