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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대통령[34] 세계정치 가요제
이승칠  |  gooneye7805@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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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7월 07일 (금) 00:00:00 [조회수 : 2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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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지구촌의 지도자들은 노래자랑을 통하여 친목을 도모하는 분위기인데, 노래가 저속하고 박자개념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한 북한의 김정일은 가라오케에 계속 동전을 넣고 금지곡만 부르기에 더 왕따를 당할 입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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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홀아비의 노래솜씨는 뛰어나 칭찬도 받고 상도 받는데, 우리집 대표가수는 열심히 노력은 하는데 남들이 쳐다보지를 않아 속앓이를 하고 계시는데 원인이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1966년 10월 2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월남참전 7개국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이 당시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동갑내기(1917년생. 뱀띠)인 것은 물론이요, 그때까지의 인생역정도 비슷했으며 외모도 붕어빵이었다고 합니다.

월남전을 시작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로 뒤처리를 맡은 존슨은 월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군사적 압박이 필요했고 그만큼 아시아 우방의 결속된 참전이 요구되었는데, 한국의 대규모 파월에 심술이 난 회담 의장인 마르코스가 개회사에서 30분간에 걸친 평화론을 주창하였기에 기가 찬 존슨은 혼자 손등박수만 치는 묘한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다음날 오전 11시부터 예정에도 없었던 제3차 본회의 비밀회담이 말라카낭宮 소회의실에서 긴장감 속에 비공개로 속개되었는데, 오후 2시가 되어 존슨 대통령의 오른팔이 朴 대통령의 왼팔을 끼고 두 사람 모두 만면에 미소를 띠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꺽달이와 짱달이’결혼 행진으로 끝이 났습니다.

3대의 비행기에 러스크 美 국무장관을 포함한 수행원 50여 명과 170여 명의 보도진들을 거느린 존슨 美대통령 부부 일행은 마닐라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필리핀을 떠나 월남, 태국, 말레이시아를 순방한 뒤 10월31일 오후 3시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남편의 술 문화를 바가지 끓어 육박전(陸朴戰)을 벌렸기에 필리핀에 동행하지 못했던 육영수 여사는 모처럼 연옥색 한복차림으로 버드 여사에게 장미 꽃다발을 안겨주자, ‘Wellcome! COW -BOY!’‘JONSON, SAY YOU LOVE US’라는 플래카드와 피켓을 든 응원단들이 군악대에 맞추어 존슨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텍사스의 황색장미’와 ‘고향의 봄’을 부르기 시작을 했습니다.

강서구 발산동 삼거리를 조금 지나자 차를 세우게 하고 朴대통령을 이끌고 연도로 내려가 누렇게 익은 들판이 물이 채 마르지 않은 논으로 들어가 벼 이삭을 손으로 잡아 보면서 두 분은 농촌출신 코드를 확인 했으며, 노량진 전차 정류장에서도 차에서 내린 존슨 대통령은 환영인파 속의 농악대들에게 둘러싸여 농악 장단에 맞춰 박수까지 치는 존슨 대통령에게 1000여 군중이 몰려들자 경호원들이 당황했습니다.

양국 원수가 탄 승용차가 남대문에 이르자 500마리의 비둘기가 발목에 오색 테이프를 달고 날아 올랐으며 남대문을 돌아서자 고층건물에서 색 종이와 꽃가루를 뿌렸습니다. 시청 앞에 차가 이르렀을 때 군중은 거리를 꽉 메우고 다시 한번 군악대와 학생 밴드는 ‘텍사스의 황색장미’와 ‘고향의 봄’을 부르며 축제를 즐겼습니다.

1966년 당시 한국의 1인당 GNP가 130.8달러였고 필리핀은 269달러로 동남아시아에서 선두그룹에 들어 있었는데, 평소 짠돌이로 유명한 朴대통령이 축제비로 1억5000만원을 책정했으며 멋진 노래까지 곁들였기에 반전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2001년 6월, 취임 2개월의 초보 총리 고이즈미는 첫 외유로 미국 방문길에 올랐는데, 미국 외교사에서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회담은 매우 각별한 관계로만 한정되는데 부시 대통령이 일면식도 없던 고이즈미를 별장으로 안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빈정대었습니다.

부시정권은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기 위해 유럽에서 영국에 버금가는 역할을 일본에 맡겨야 한다는 내용의 '아미티지 보고서'가 새로운 아시아 전략의 근간으로 채택한 것을 눈치챈 고이즈미는 부시를 영화 '하이눈'의 게리 쿠퍼와 닮았다고 치켜세우고, 엘비스의 노래 제목(Love me tender)을 인용하면서 눈웃음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여 만에 9.11테러가 터졌기에 일본은 재빨리 자위대 함정을 인도양으로 보내 미군의 급유를 맡았으며 이라크 전쟁 때는 위헌 논란을 무릅쓰고 무장한 육상자위대를 복구활동에 파견했습니다. 그렇게 다져진 두 정상의 관계는 열 네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이어집니다.

올해 9월 퇴임을 앞두고 6월 말에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문한 고이즈미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 29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엘비스 프레슬리의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난 당신을 원하고 필요하고 사랑해요)를 함께 불렀습니다.

다음날 부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성 팬인 고이즈미를 위해 자신의 전용기로 엘비스 생가 방문에 동행했는데, 감격에 겨운 고이즈미는 체면 같은 건 잠시 접어두고 프레슬리가 생전에 즐겨 썼던 선글라스를 끼고 프레슬리의 춤 동작을 흉내 내어 부시 부부와 동석한 엘비스의 딸과 전 부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흐르게 하였습니다.

고이즈미는 마지막 회견에서 프레슬리의 노래 제목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달콤하게 사랑해 줘요)’를 인용해 미국에 감사를 표명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러브 미 텐더’는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 부주석 시절인 1979년 1월 75세의 나이에 미국을 처음 공식 방문해 이 노래를 불렀으며,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도 70세이던 1996년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이 노래를 열창했습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와 운동권 가요 ‘상록수’를 애창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지만 엘비스의 노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엘비스 보다 자신과 외모와 취향이 비슷한 영국의 ‘톰 존스’를 사모합니다.

조영남을 가수로 등용한 ‘딜라일라’로 박근혜 대표에게 연정을 제시했으며 ‘Keeping on running’으로 빈축을 사고 있으며 ‘고향의 푸른 잔디’로 귀향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는 나라를 위해서 라면 때론 모욕도 참고, 개인적인 감정도 억제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고이즈미 수상이 “한국인은 격한 성품을 가진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9월에 방미를 하시면 톰 존스는 잠시 접어두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헉!헉! Burning love”를 불러 북제 미사일에 놀란 부시를 더욱 숨차게 하시어 40년 전의 한미관계로 되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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