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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때문에 회당에서 쫓겨난 사람 (1) (요한복음 9: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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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7월 05일 (수) 00:00:00 [조회수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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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어둠에 갇혀 지내야하는 인생이 할 수 있는 일은 구걸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 날도 나는 구걸을 하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의 곁을 지나가다 말고 서서 뭔가를 쑥덕거리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동전이나 주려나하는 기대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몸을 집중시켰다.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해 발달된 예리한 귀가 그들의 말을 포착했다.

   
듣고 있자니 나를 소재로 '죄'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평생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던 '그 얘기'를 면전에서 또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나의 죄 때문이거나 부모님의 죄 때문이라며 날 보면 '회개하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부모님을 보면 '니 때문에 자식이 저렇게 고생한다'는 차가운 눈초리를 보내며 학대하였다.

'도대체 나나 우리 부모님이 무슨 죄가 있길래 이런 고통을 받아야한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어머니의 태가 열리지 않아, 내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이 고난을 겪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라는 욥기 2:10절 말씀이다.

환영받지 못한 저주받은 탄생은 말 그대로 어둠감옥에 갇혀 지내는 생이었으며, 어머님은 나보다 더 괴로워하며 늘 '나보다 하루 늦게 죽게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 저주의 사슬이 끊길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이었다. 죽음만이 이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죽는 날만 고대하며 오늘도 희망없는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 무리였다. '누구의 죄냐?'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은 이미 '나나 부모님'을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스승은 단호한 어조로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놀라운 말이었다. 누구나 당연히 생각하던 것을 그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그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진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역발상이었다.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에 눌려 마음 한번 편히 가져보지 못한 나와부모님에게 이 말은 눈물나게 고마운 해방의 말씀이었다.
모두가 '죄의 문제'로 차가운 눈으로 볼 때 그 분은 따뜻한 애정의 눈으로 전혀 새로운 해석과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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