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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성공
최창균  |  onnuree@mensa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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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3월 11일 (금) 17:38:47
최종편집 : 2016년 03월 11일 (금) 17:45:25 [조회수 : 3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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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성공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예배가 소중한 것이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자는 의도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이라는 단어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성공이란 것은 마치 사업에 성공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예배가 잘 드려졌는지 여부가 받는 분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드리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의미 같습니다. 사실 예배가 잘 드려졌는지 여부는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며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 뿐입니다.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마음이 벅차오르고 희열을 느끼는 건 우리가 은혜를 받은 것이지, 하나님께서 예배를 온전히 열납하신 것하고는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예배가 아닙니다. 공연입니다. 성공하는 건 예배가 아닙니다. 사업입니다.

예배는 보는 게 아니라 드리는 거라고들 합니다. 사실 여기에 쓰인 ‘보다’라는 동사는 눈으로 보는 걸 의미하기보다는, 어떤 행위를 한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입니다. 예를 들어 진료본다는 말을 할 때, 이것은 진료하는 걸 구경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료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죠. 예배본다는 것은 예배를, 경배를 하는 의미이지, 예배드리고 있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말의 의미를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예배에 성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 중심된 의미를 보면 문제제기를 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에 성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 주위에서 계속된다면, 인본주의적인 신앙을 돌아보는 차원에서 한번쯤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는 주님께서 대신 죽어주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 예배를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주님께 온전히 맡기십시다. 우리는 그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십시다.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 앞에 나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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