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리고의 맹인을 고치시는 예수- 니콜라 푸생 작(프랑스 국립박물관연합)

‘청맹과니’란 말을 아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나 앞을 보지 못하는 눈,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사전은 풀이한다. 쉽게 말하면 ‘눈뜬장님’이란 말이다. 좀 더 풀이하면 ‘사리에 밝지 못하여 눈을 뜨고도 사물이나 사안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시대에는 모두가 제 잘난 맛에 산다. 그런데 참 희한한 건 그 잘났다고 뻐기는 게 십중팔구는 청맹과니 짓이다. 정치인들이 그렇고, 경제인들이 그렇고, 더 나아가 영혼에 울림을 줘야 할 종교인들 또한 그렇다. 싸잡아 말해서 미안하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예수께서 사셨던 당시도 그랬다. 오죽하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고 하셨을까.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니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을 염려하셨다. 자신이 맹인인 걸 아는 이는 그리 문제가 될 게 없다. 문제는 자신이 맹인인데 잘 보고 있다는 이들이다.

예수께서 지나실 때 한 맹인은 길가에서 구걸을 하다가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라며 예수께 자신의 아픔을 호소한다. 당연히 그는 눈을 뜨게 된다. 이런 기적이 오늘날에도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기적이 별로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맹인이란 걸 깨닫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예수 당시에는 유대 지도자들이 청맹과니 짓을 했다.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대표적인 눈뜬장님들이었다. 예수의 사역 절반이 이들의 청맹과니 짓을 나무라고 고치는 일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예수와 같이 탁월한 리더십이 없다. 가끔 교황이 한 마디 하면 그래도 무엇인가 반응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개신교 지도자 중에는 그런 지도자가 없어 참 안타깝다. 이유가 뭘까. 목사인 나로서는 참 치부를 들추는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이 그런 걸. 대형 교회로 대별되는 풍요의 전당에서 울려 퍼지는 메시지가 TV의 중계를 타지만 역시 그 어느 울림도 예수의 리더십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청맹과니 짓을 꾸짖는 그가 청맹과니니 그렇지 않을까.

자신이 본다고나 안 했으면 좋겠다. 청맹과니 주제에 누구에게 눈을 뜨라 마라라 할 수 있겠는가. 내남직 우리가 눈을 떠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그런 거 말고, 정말 청결한 개가 되어 똥 묻었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는 접어두고라도 교회는 꼭 그래야 한다.

“세상 안에서 깨어 있어 자신의 사명과 과제를 의식하는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신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칼 바르트의 말이 새삼 생각난다. 에둘러 말하면, 신학부재가 교회를 청맹과니로 만들었다.

명함에 얼마나 많은 직함이 씌었느냐가 인물을 보는 기준이 된다. 연봉과 아파트 평수가 능력이 된다. 이런 사회는 철학이 없는 사회로 청맹과니를 만들 수밖에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 사이즈와 학위증 사본으로 목사를 평가하는 이 시대의 교회는 당연히 청맹과니 생산 공장이 되고 만다. 그 공장의 사장과 사원이 아무리 이 사회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고, 심지어 삿대질을 하며 눈 뜨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쳐도 그저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다. 혹 당신이 청맹과니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