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돼서라도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녀들의 넋

요즘 영화계에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조정래 감독의 <귀향>이 그것이다. 2월 24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그 첫날 15만 4천 명의 관객이 들었고, 4일째에는 75만 명을 넘어서면서 손익분기점인 60만 명을 상회했다. 3‧1절에는 하루에 무려 42만 명이 몰려들어 놀라운 흥행 성적을 올렸고, 어제(3.5.토)는 25만 2855명의 관객을 모아 개봉 11만에 누적 관객수 237만 5033명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제작과정까지 그렇게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녹록치 않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난관의 연속이었다.

이 영화 <귀향>의 태동은 지금으로부터 14년을 거슬러 올라간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각본과 연출에다 제작까지 맡은 조정래 감독은 그해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한 장의 그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끔찍한 처녀시절을 보낸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심리치료 과정에서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그림이었다.

일제는 제 나라 군대의 성노예로 쓰려고 이 땅에서 20만 명이라는 가공할 만큼 많은 수의 처녀들을 끌어갔다. 그녀들 가운데에는 아직 초경도 치르지 않은 소녀들도 적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그녀들은 차례를 기다리던 성에 굶주린 야수들에 의해 몸도 마음도 갈가리 찢겨 누더기가 되어 갔다. 그러다가 1945년 패전의 전운이 감돌자 저들은 저희의 만행을 감추려고 그녀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불태워 죽였다.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현실이 그랬다. ‘태워지는 처녀들’은 그 당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강일출 할머니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숨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 그림을 본 조정래 감독은 큰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서 잠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막연히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어디선가 살아 있는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학살됐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소모품처럼, 물건처럼 취급하다가 죽여 버린 것에 경악했어요.”

“충격을 받아서인지 몸도 많이 아팠어요. 그리고 새벽에 꿈을 꿨죠. 구덩이에서 불에 타 죽은 소녀들이 어느 순간 일어났는데, 피로 얼룩진 옷들이 흰옷으로 바뀌고 상처도 없어진 거예요. 발을 살짝 들더니 소녀들이 하늘을 나는데, 뭐랄까 장관이었죠. 돌아가신 분들이 지금 고향으로 너무 돌아오고 싶어 하는구나,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때부터 이걸 영화로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조정래 감독은 모든 것이 낮 설기만 한 이역의 전장(戰場)에서 피어 보지도 못한 채 봉오리로 짓밟혀 죽어간 소녀들이 나비가 돼서라도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귀향>의 골격을 엮어 갔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귀향’은 ‘歸鄕’이 아니다. 국어대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鬼鄕’이다. 조 감독은 이 영화가 한 번씩 상영될 때마다 타국에서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령이 고향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의도로 돌아올 귀(歸)자 아닌 귀신 귀(鬼)자를 써 <鬼鄕>이라 했다 한다. 영어로는 ‘Spirits' Homecoming’이다. 조 감독은 이와 관련하여 또 이렇게 말한다. “타지에서 돌아가신 많은 소녀들을 고향으로 모시고 따뜻한 밥 한술 드시게 하자, 그게 제 목적이자 목표”라고.

영화 <귀향(鬼鄕)>을 꼭 봐야 할 사람들

그러나 그토록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누구의 가슴에도 공명할 것 같은 내용으로 만들려 한 이 영화는 투자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조 감독을 아끼는 사람들은 만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위안부’는 한국 영화계의 마지막 남은 금맥 같은 소재이지만 흥행성이 떨어져 영화로 만들려는 감독들이 없었던 것이라는 거였다. ‘이 영화를 만들고 감독 생활을 끝내려는 거냐’는 사람도 있었다.

시나리오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가면, ‘소재도 마이너이고, 이 영화 100% 안 된다’고 심한 말로 거절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쟁이 나면 어차피 여성은 당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국적을 의심케 할 만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도권의 어느 도시 시장선거에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린 한 사람은 이런 망언을 하기도 했다. ‘젊은 사람이 이런 거 하지 마라. 위안부 할머니들 가짜라는 걸 몰라? 몸 팔러 간 여자들이지’.

그러나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를 마련한다는 소식에 접한 시민들은 금액의 다과를 가리지 않고 참여해 왔다. 남녀노소도, 직업도 가리지 않은 이들은 7만5000명을 상회했고, 이로 모아진 금액은 순 제작비의 50% 이상인 12억여 원에 이르렀다. 배우와 스탭들은 재능기부로 이에 화답했다.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생존한 영옥 역을 맡은 배우 손숙은 노 개런티 출연 의사를 밝히고, ‘국민이니까, 이 나라 국민이니까, 누구나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스태프로 참여하든, 배우로 참여하든, 관객으로 참여하든’이라 말하여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귀향>, 이는 그냥 영화가 아니라 국민이 만든 국민의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 가운데엔 좀 더 많은 국민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음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필자도 이 영화를 꼭 보라고 권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굴욕적인 ‘12‧28 위안부 합의’를 일본에 해 준 사람들은 꼭 봐 주었으면 한다. 그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 같은 것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일본의 입맛에 맞는 것을 합의라고 해 주었다. 그러니 합의 후에도 일본은 여전히 ‘위안부’에 관한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16일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일본)정부가 발견한 자료에서는 군과 관헌에 의해 강제연행을 보여주는 자료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위안부’에 대한 강제성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바로 다음 달인 3월 2일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전시 성폭력이 가장 비인간적인 만행의 하나라고 강력하게 비판하면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의 말도 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아주 짤막하게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도 ‘12‧28 합의’를 합리화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 나온 초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에는 ‘위안부’라는 말과 사진이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이 영화 <귀향>을 필히 봐야 할 사람은 많지만, 우선 위에 든 사람들만이라도 봐 주었으면 한다.

이제 생존 할머니는 44명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귀향>은 완성도가 그리 높은 영화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제작 초기에 주위로부터 날아들었던 우려의 목소리와는 달리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건 일반적인 인기몰이와는 다른 사회현상의 표출이 아닐까 한다. ‘12‧28 합의’의 불가역적 운운하는 내용에 대한 불만 등이 <귀향>을 통해 가시화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두고 영화저널리스트 김형석 씨는, ‘<귀향>의 관람은 단순한 영화관람이 아니라 시민들이 이 영화를 통로로 한-일 위안부 합의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의 뜻을 표시하는 일종의 시위’라 했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만도 할 수는 없다. 시사회를 통해 본 <귀향>에 대한 반응은 일본에서조차 상상을 초월할 만큼 좋았다. <귀향>의 일본 시사회는 2월 14일 요코하마시 소재의 요코하마 시네마린에서 열렸는데, 일본인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박수를 쳤다 한다. 그들은 이 같은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상상한 것보다 더 놀랍다.’ ‘일본에서 개봉했으면 좋겠고, 모두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일본 국민은 다 이 영화를 봐야 한다.’ ‘이 영화는 세계 사람들이 다 봤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있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일본 사람으로서 정말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이 영화를 보는 걸로 조금이라도 소녀들에게 공양이 될 것 같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이는 네 나라 내 나라 문제가 아니다.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풀어야 할 문제이다.

이 땅에서만도 20만 명의 소녀들이 끌려가고, 그중 단 238명만이 살아 돌아왔다. ‘12‧28 합의’ 당시 46명이 살아 있었으나, 그 후로도 두 분이 더 세상을 떠 이제 44명만이 생존해 있다.

이 분들이 모두 숨을 거두기 전에는, 아니 숨을 거둔 후에도, 모든 일본군 ‘위안부’의 영령들이 지하에서라도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듣기 전에는, 그리고 그분들에 대한 일본의 망언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지 않는 한, 그로 인한 우리의 아프고도 슬픈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데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니, 누가 무슨 권리로 그리 합의를 했다는 말인가.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니라는데, 국민 다대수가 아니라는데, 도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그리했다는 말인가.

모든 것이 낮 설기만 한 이국의 전쟁터에서 채 피어 보지도 못한 봉오리로 짓밟혀 죽어간 소녀들이 나비가 돼서라도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한‧일간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협의는 다시 진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