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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捐補)’ 아닌 ‘헌금(獻金)’을 꼭 해야 하나제물로서의 헌금은 폐기되어야 한다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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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2월 14일 (일) 14:30:25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5:45:53 [조회수 : 1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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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로서의 헌금은 폐기되어야 한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우리 기독교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헌금이 대두되면 유달리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믿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헌금은 그대로 돈이요, 돈은 삶을 영위하는 데에 필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다. 아니 관심이 아니라 욕구를 넘어선 욕망이다. 돈이라면 저 죽는 줄도 모르고 불로 날아드는 불나비처럼 서대는 것이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그런 것이 현실이니 헌금이라면 예민하게 구는 사람들만을 탓할 수도 없다는 게 우리 기독교가 안고 있는 커다란 숙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거야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더 심각한 건 헌금의 방법도, 그 용도도, 그것의 본질로부터 벗어나도 한참이나 벗어났다는 데에 있다.

그러다보니 교계의 일각에서는 극히 소수자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헌금 무용론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아니다. 그 제기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에 있다. 헌금은 구약시대의 제물을 말함인데, 성전이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신약의 교회시대가 도래해 있는 지금으로선 헌금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펄쩍 뛸 일이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헌금으로 대변되는 것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사 제도의 유지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 십자가를 지심으로 부활 승리하신 후 성령에 의해 교회가 세워짐에 따라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다가 마지막의 형해뿐인 예루살렘성전조차 AD 70년에 파괴됨으로 성전은 그 흔적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전이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 아닌가. 그런데 아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라고 말한다. 우리 믿는 사람 하나하나가 성전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혹자는 교회건물을 가리켜 성전이라 하기도 하는데, 교권 주의자들의 권위적 발상에 의한 것으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위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성전의 붕괴는 당연히 제사장 및 그제도도 폐기처분하고 말았다. 그런데, 정말이지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믿는 사람 하나하나를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 그것도 그냥 제사장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으로 삼아 주셨다.

구약의 율법인 헌 술과 그에 따른 옛 제도로서의 헌 가죽부대가 폐기되고, 복음의 새 술과 그것을 담을 교회 공동체가 새 가죽부대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니 제물인 헌금 또한 폐기되어야 한다. 

 

내 것도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 하지 마라

 

필자의 청년시절까지만 해도 교회들이 헌금과 연보라는 말을 같이 썼다. 어느 교회는 헌금이라 하고 또 어느 교회는 연보라 했다. 같은 교회에서도 이 두 말을 혼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헌금과 연보는 같은 말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설명의 편의상 그렇지 않을 경우부터 생각해 보자. 연보란 자기의 재물을 내어 남을 돕는 것, 다시 말해 구제를 말한다. 그러나 헌금은 제물이니 둘은 같은 의미의 말일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둘이 서로 겹쳐지는 부분도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똑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는 같다는 말인데, 헌금을 구약의 제물로 보지 않고 이 단어 자체가 의미하는 것만을 생각하면 그러하다는 것이다. 헌금의 첫 자는 ‘드릴 헌(獻)자’를 쓴다. 그러니까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돈이라는 뜻이다.

이리되면 사람을 돕는 구제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고 하는 의문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에 대한 대답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고자 한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세상에 이보다도 더 확실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헌금)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니 그렇지 않은가.

거듭 말하거니와 제물로서의 헌금은 이제 필요 없다는 주장은 옳은 것이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피의 그것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제물이 되어 십자가를 지심으로 피를 흘려 단 한 번으로 제사를 완성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10장에서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절)라고.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11-12),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14).

이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제물로서의 헌금을 드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를 헛되게 하는 것이 될 뿐이다.

그런데 이를 다른 시각으로 이해하여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었으니 그분과 우리의 재물이 따로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무엇인가를 그분께 드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제물이나 예물을 들고 와서 바쳐야 만날 수 있는 이방 종교의 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딴은 맞는 말이다. 우주만물 모두가 하나님의 것인데, 내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누구의 것을 가지고 누구에게 드린다는 말인가.

우리는, 나는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마치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마음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나뿐 청지기가 우리요 나라는 말이다.

우리는 물론 제물로서의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드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제물 아닌 것까지도 그래서는 안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었으니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롬12:1)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라 하시고, 또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0,21)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이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자칫 잘못했다가는 내 것도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고 하는 이기주의의 극치로 내달을 수도 있다.

 

사역자라해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건 아니다

 

그런데 신약의 복음서에도 헌금이 등장한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21:1)는데, 그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약의 교회가 생기기 전의 유대교 신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혹자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십일조의 당위성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분께서 당신의 제자나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것이었다.

신약성서는 제물로서의 헌금을 말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연보를 말하는 게 보통인데, 그 연보는 교제‧친교의 뜻을 가진 코이노니아(롬15:26), 수금‧수집‧모집의 뜻을 가진 로게이아스(고전16:1), 소박‧성실‧정직‧순진의 뜻을 가진 하폴로테스(고후8:2), 풍성한‧큰 선물‧관대히 등의 뜻을 가진 하드로테스(고후8:20) 등의 역어(譯語)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긍휼과 동정의 뜻으로 쓰이는 엘레에모쉬네가 구제(행24:17)로 번역되고, 봉사와 섬김의 뜻인 디아코니아가 부조(행11:29)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들도 연보로의 번역이 가능한 말이다.

그렇다면 그 같은 연보는 어디에 쓰려고 하라 한 것일까. 바울은 연보를 가리켜 성도를 위하는 것(고전16:1) 이라 하는 데, 이는 일반 성도가 아니라 생활이 어려운 성도를 말하는 것이며, 물질사정이 어려운 교회도 이에 포함된다. 그밖에도 가난한 자들을 위하고(롬15:26), 성도를 섬기기 위하고(고후8:4), 흉년에 형제들을 돕기 위하고(행11:28,29), 내 민족을 구제하기 위하는(행24:17) 등의 일에 쓰려고 연보를 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어떻게 운영하고 복음 전하는 이들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다. 복음 전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내 보내시며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눅10:7)하다 하셨고,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마10:10)하다고도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이를 들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4)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9장은 당시의 일반적인 주변 상황과 율법적인 증거, 종교적 관행까지 들어 가며 복음 전하는 이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논리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교회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데, 당시는 아직 여러 면에서 교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 보면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며”(2:44,45)라 초대교회의 한 단면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믿는 사람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공동생활을 했다는 것도, 각자의 전 재산, 전 소유를 모두 팔아서 나누어 주었다는 것도 아니다. 이는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와 관련된 기사들을 포괄적으로 읽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고, 그리 말하는 주석가들도 많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연보에는 유무상통의 정신이 깃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이비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비노릇을 하면 사이비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유기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장소를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교회건물이다. 거기에서 모두가 함께 모여 예배도 드리고 교제도 한다. 그런데 그에는 비용이 들 수밖에 없고, 그 비용은 교인들로부터 모아진 헌금이라는 이름의 돈으로 해결한다. 제물로서의 헌금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실어 무엇인가를 드린다고 하는 의미로서의 헌금으로 해결한다.

사실 교회만큼 소중한 것도 없는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골1:24)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몸의 귀와 눈과 코와 입과 손과 발 같은 지체가 우리 믿는 사람들(고전12:27)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속화되고 타락하여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본 모습은 귀하고 거룩한 것이다. 그러니 교회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가운데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여기에 교회에도 헌금이 쓰여야 할 당위성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연보도 헌금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내는 연보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금의 용도는 구제와 교회운영의 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둘의 비중이 같을 수는 없다. 구제 쪽 비중이 월등히 높아야 한다. 초대교회시대의 연보도 구제에만 쓰인 것은 아니고 복음 전하는 자들에게도 적지만 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헌금은 어떤가. 구제에 교회 예산의 몇 퍼센트나 쓰이고 있는가. 이렇게 말하면 그 소중한 교회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봐라. 헌금으로 이뤄진 교회 예산이 쓰이고 있는 현실을.

이는 필자가 여기에 열거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세인들의 입줄에 오르내린 것들만으로도 이미 우리의 귀에 딱지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억!’ 소리가 날만큼 천문학적인 건축비를 들여 세운 웅장하고도 화려한 교회당들(그들은 이를 성전이라고도 하는데, 건축비 마련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고려의 대상에 들지 않았을까), 서민들 봉급의 몇 배나 되는 교역자들의 사례비, 거기에다 고급 아파트와 승용차, 도서구입비, 휴양비, 접대비, 자녀들의 유학비용 등등도 모두가 헌금에 의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 같은 교회들이 쓰는 구제비는 얼마나 될까. 건축비라든가 교회 관리비, 목사에게 들어가는 비용 등의 몇 분의 일도 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가분수도 그런 가분수가 없다. 머리가 몸통보다 몇 십 배나 더 커 아무리 힘이 장사라도 서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진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사라지고 가짜들만이 우글거려 하나님께 욕을 먹이고 있다.

사이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이비노릇을 하면 사이비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마3:9)라고 한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불에도 타지 않는 정금 같은 교회가 되게 하라

 

그런데 구제 같은 이웃을 돕는 일에 헌금의 대부분을 쓴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만약 실제로 그리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멋들어진 교회건물들은 퇴색되어 갈 것이고, 교역자들에게 지급되는 사례비는 줄어들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이다. 아마 문을 닫는 교회까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리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그런데도 그리해야 한다”이다. 왜? 그래야 이 땅에 사이비성을 탈피한 올바른 교회가 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교회가 교회답지 못해 떠났던 교인들이 돌아올 것이고, 교회를 향해 독한 말들을 쏟아냈던 사람들이 기독교의 진면목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그 후는 전도의 문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넓어져 이 땅은 그리스도의 계절을 맞게 될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리 실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두르면서도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해 나간다면 반드시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교회를 새로이 개척하는 사람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결단으로 시작부터 그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아도 난관이 첩첩인 것이 교회개척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하지 마라.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시작하여 어느 정도 뜸이 들면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기복신앙 아닌 제대로 된 기독교 신앙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기 때문이다.

교회당을 성전이라며 부추겨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게 짓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계시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가 부족하여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헌금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 실린 보물(마6:21)로서의 그것을 바라신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 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행17:24,25)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9:13) 하셨다.

그렇다면 교회건물도 헌금도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아니다. 교회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헌금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앞에서 이미 말했음으로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으나, 헌금에 대해서는 한 가지만 더 첨언해 두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신앙, 깊은 신앙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바르고 깊은 관계에 의해 내 것이 되고, 그 관계는 헌금이라든가 하나님의 일 같은 것에 의해 튼튼해진다.

거듭 말하거니와 하나님께서는 물질이나 능력이 모자라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헌금을 하고 하늘나라의 일을 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그것들을 통해서 당신과 우리의 관계가 더욱 바르고 깊어지기를 바라서 하라 하신 것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지금까지 연보와 헌금에 대해서, 아니 연보를 포함한 헌금에 대해서 말해 왔다. 전술한대로 연보와 헌금은 같은 의미로 쓰기도 했으나 엄격히 말하면 똑 같은 것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연보는 가난한 이웃과 나눈다는 데에 방점이 찍히고, 헌금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데에 방점이 찍힌다. 그런데 작은 자 곧 사회적 약자에게 한 것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하는 것이니 결국 연보도 헌금이라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연보를 포함한 헌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약4:17)라 했는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지만 실천을 위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9:7)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후8:3)

미리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고후9:5)

헌금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즉흥적이거나 습관적이 아니라 미리 정하고 준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힘에 따라, 때로는 힘에 겹도록 하는 것이다. 설득이나 강요는 사기나 강탈과 동류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헌금이 쓰이는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고전13:3)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헌금을 꼭 교회를 통해서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다. 필자는 초신자 시절에 구제도 개인적으로 하면 안 되고 교회를 통해야 한다고 배웠다. 개인적으로 하면 교만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까운 일가친척이 돈이 없어 죽어가는 데도 교회를 통해서 도와야 된다는 말인가. 우리가 가장 먼저 도와야 하는 것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내 부모형제요, 일가친척이다. 내 형제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탈진해 가는데도 외면하고 교회에는 거액의 헌금을 한다면 그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되겠는가.

예수님께서 스스로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음으로 제물로서의 헌금은 필요 없게 되었다는 건 전술한 대로이다. 그런데 로마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라고.

여기에서의 ‘몸’은 사람들 저마다의 전존재를 말한다. 그리고 그 몸을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삶 자체, 생활 자체를 드린다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가 드려야 할 진정한 예배이다. 환언하면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이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 같은 신앙생활이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바른 예배라는 말도 된다. 그런데 그 일부가 연보를 포함한 헌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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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성도 (122.XXX.XXX.146)
2016-02-15 16:46:32
저도 십일조 헌금을 가지고 차라리 그돈으로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우리 부모님 그리고 처 부모
님께 절반씩 나누어 드리면 그분들이 그돈을 얼마나 소중하게 잘 사용하실까 라는 생각을 한두번
해본적이 있었습니다.
연세드신 분들이 평생을 농사를 지으면서 사셨으니 무릅, 허리, 몸이 온전한 곳이 제대로 된곳이
있으시겠는지요.
또한 그런 몸으로 계속 농사를 지으시는데 말씀들은 안하시지만 오죽 힘이 드시겠습니까!
큰 교회를 섬기니 내가 십일조 좀 안낸다고 해서 표가 나는것도 아니고 교회산림에 지장을 받는
것도 아니니 차라리 그게 더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회에 내가 낸 헌금이 어떤식으로 사용되는지도 잘 모름, 물어봐도 잘 가르처 주지도 않고...)
주보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엄청 다양한 헌금 기록란에 명단이 수두룩하게 올라오는것을 봅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는 부흥회다 뭐다를 하면서 교회에 많은 헌금을 해야만이 하늘의 상금이 쌓여
천국에 갈수 있다고 더 많은금액을 헌금하도록 유도(?)를 합니다.
또한 설교시간에 담임목사께서 돈을 많이 내거나 잘내는 성도들을 몇번 칭찬을 해주면 다음
주일에 더 많은 성도들이 헌금명단에 이름을 올리곤 합니다.
정말 돈이 부족해서 그렇게 하는것인지 아님 적당한 돈이 있어도 많은게 좋은거라고
거둘수 있을때 더 거둬놔야 한다는 생각에 그러는것인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설교에 넘어가서 가정의 형편이나 주의 환경을 무시고하고 분수에 넘치는 헌금을
하려드는 사람들 정신을 차리도록 합시다.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라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가정이 평안하고 안정이 되어야 모든일이 잘 된다고 했습니다.
가정이 안정이 되어야 종교 활동도 편안해지고 교회에서의 생활도 평안해 지고 은혜도 많이
받습니다.
반대로 가정은 현재 신음하고 있는데 교회에 나가서 종교활동 아무리 해본들 그게 어디 기쁘게
봉사게 되겠는지요.
하나님을 섬기고 종교 활동도 좋지만 가정의 안정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교회에서도 성도들을 가르칠때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하기 보단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 성도가 늘 건전한 의식을 가지고 있게 하고 건강한 가정과 행복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이됩니다.
그래야 종교 활동도 더 왕성해지고 교회내 봉사도 활발해 지지 않겠는지요.
리플달기
13 4
갈릴리 (118.XXX.XXX.97)
2016-02-27 22:07:30
임종석 씨의 헌금페지론에대하여
상당히 공감도 가고 현실적인면도 좀 있고 그럴듯 싶은데 문제는 좀있네요
개척 교회에서 인원이 20여명인데 헌금이 연보가 아니니 내지마라
그러면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나요 주일 설교하고 월요일부터 담임목사님은 일당 공사장이라도 가서 일해야 겠네요
헌금을 강요 하고 헌금 했더니 복을 주시더라, 어떤 교회에서 장로 피택되였는데 1억씩 낸다 뭐하는 거냐 누구는 빛내서 헌금 하더니 1년안에 60평 아파트로 이사 갔다 공갈 협박하는 그런 사람이 문제이고 한국교회 물말아 먹을 일이지 무조건 안된다면 국가에서 공과금과 생활비 지원하나요
리플달기
2 1
하나님의 나팔소리 (211.XXX.XXX.225)
2016-02-16 08:00:25
상당히 그럴사하지만
글을 올리신 분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성경적인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에 많이 공감하지만, 완전히 공감하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셨고, 마태복음23장 23절에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으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저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이전에 이미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때부터 있었던 십일조와\도 하나님이 물질의 주인이심에 대한 고백으로 드리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무형의 교회와 유형의 교회를 다 인정하십니다. 부름받은 모인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인데, 그 회중들 가운데, 누군가가 건물이나 집을 예배처소로 내어주면 굳이 건물을 구입하지 않고 월세를 주지 않고도 교회가 운영될 수 있지만, 전에 돌아가면서 아파트를 가진 몇집이 예배장소를 재공하다가 결국은 자주 오는 것이 번거롭고 무엇인가 접대해야 하는 부담도 있으니, 목사님, 기도처소를 구해야 한다고 총무권사님이 말씀하셔서 기도하고 임원회의를 거치고 교구협의회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1년간 기도하고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기도처소를 구하고 함께 기쁨으로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은 한국 교회의 70%가 청장년출석성도가 50명 미만인 미자립교회이다보니, 목회자가 택시운전을 해야 하고, 사모가 직장을 나가야 하는 형편(저도 역시 개척교회목회자로서 대형교회 부목사로 있을때는 200-300만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개척 8년째가 되어도 자립이 안되니, 지난해 사용한 월평균 사례가 자동차 운영비 빼고, 월 135만원, 그러니까 할수 없이 사모가 일하러 나가야 하고, 그러면 그만큼 전도와 봉사에 빈자리가 생기고, 그래서 영혼구원과 전도할 시간은 줄어들고, 교회 부흥은 점점 멀어지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대개 대부분의 교회들은 우리교회처럼 매월 당회자 제직회를 통해 헌금의 총액과 지출내역을 일일이 다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매월이 되지 않으면 분기별이라도 될 것입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서 목회자 이중직에 대해서 공감들을 해나가는 편이지만, 목회자가 목회만 하지 않고, 목회자나 사모가 직장을 다니면 또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들 비판합니다.
저처럼 대형 교회에서 부목사로라도 있어본 사람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만, 내 친구나 후배처럼 평생을 아직도 개척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들과 그 자녀들의 피눈물나는 현실을 잘 모르면 당당뉴스에서 시시콜콜하게 자기 입맛다는대로 그렇게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쪽에다 맞추어서 교회를 비난하니, 그나마 사람들은 쉽게 교회를 떠나고 그리고 믿음도 잃어버리고 나중에는 완전히 망해서 땅을 치면서 망가져서 오는 사람들을 저는 24년간의 목회생활속에서 수없이 만나고 있습니다.
저도 신학교, 신학대학원 몇 개씩 나왔고, 성경공부 할 만큼 했습니다. 당당뉴스를 볼때마다 한국교회를 세우고 연약한 성도들을 세우는게 아니라, 안 그래도 힘든 한국 교회를 더욱 어렵게 하는 악역을 하는 면들이 훤하게 보여서 참으로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바로 알게 하는 면들도 있지만, 결국은 교 회를 뱌로 세우는게 아니라, 바리새인처럼 자기 지식이 올바르다고 내세우면서 교회를 비판하고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세우는게 아니라 믿음과 교회에 대한 신뢰를 더욱 무너뜨리는데 쓰임받는 것같아서 먼저 자신의 양심을 살펴보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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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61.XXX.XXX.53)
2016-02-20 23:52:52
성경말씀을 믿지 못하는군요.먼저 주면 흔들어 누르고 넘치도록 주시겠다고 했는데....섬기는 교회식구들 가운데서 제일 가난한 형제자매들 보다 더 가난해지면 교회는 부흥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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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노생일 (23.XXX.XXX.9)
2016-02-20 08:15:05
[목회자나 사모가 직장을 다니면 또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들 비판합니다.]--> 사람들이 뒤에서 비판하는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전혀 없고, 대놓고 비판하는 경우엔 분명 정당한 답변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면 그만큼 전도와 봉사에 빈자리가 생기고, 그래서 영혼구원과 전도할 시간은 줄어들고, 교회 부흥은 점점 멀어지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월평균 사례가 자동차 운영비 빼고, 월 135만원, 그러니까 할수 없이 사모가 일하러 나가야 하고, 그러면 그만큼 전도와 봉사에 빈자리가 생기고, 그래서 영혼구원과 전도할 시간은 줄어들고, 교회 부흥은 점점 멀어지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부흥이 full time 목회자/사역자의 수가 부족해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수가 너무 많아서 교회부흥이 안 됩니다. 사례비 안 받고 굶기를 밥먹듯하는 건 예사고, 두드려 맞고 처형당하며 박해받던 사도들 시대에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요즘 만약 사역한다고 끌려가 처형당하는 시대여도 "풀타임 봉급만 주면 교회부흥 더 시킬 수 있는데.." 라고 말할지 궁금합니다. 아마 현재 목회자들 대부분이 풀타임봉급 두배 준대도 도망갈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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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yinchrist (1.XXX.XXX.11)
2016-02-17 13:30:17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노략질하는 이리라...
바울 사도는 분명히 두 손으로 일해서 쓸것을 충당했습니다...
일도 않고 하나님 이름 팔아 먹고사는 ㅁㅅ들은 정말 불법을 행하는 이리들입니다... 예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자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갖가지를 행사합니다. 그러나 ... He'll say: I never knew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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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세마네 (112.XXX.XXX.123)
2016-02-16 11:32:08
작은교회의 어려움은 연보 헌금의 문제와 별도입니다
저도 대형교회에 다녀보았고, 작은교회도 섬겨보았습니다만 이 글의 주제는 연보냐 헌금이냐에 대한 것이지 작은교회의 재정형편이 어려운데 이런 글 쓰시면 어쩌란 말이냐 하는 그런 하소연 하는 것은 번지수가 맞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 개척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대형교회가 성장주의, 자본주의식 독점적 교회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형교회 하나가 수십개 내지 수백개의 작은교회로 쪼개어져도 지금 대부분의 한국의 개척교회나 작은교회보다 규모가 클 정도로 비대해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의 크기가 어느 정도 평준화 되고 나면 목회자 간에 편차도 줄어들고 교회 사이에 재정규모도 평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현실을 바로 보시고 문제를 바로 아셔야 제대로 목회를 하실 수 있습니다.
작은교회 형편이 어려우니 헌금 나오지 않게 하는 글을 쓰면 가슴 아프다는 얘기는 하나님 내 사정 어려우니 성경책에 헌금 많이 내게하는 구절 많이 써주시지 않고 왜 그렇게 성경책 쓰셨냐고 불평하시는 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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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세마네 (112.XXX.XXX.123)
2016-02-16 02:59:38
연금과 헌금에 대한 종결판이라 할 정도로 정확하고 명쾌한 설명 감사합니다
평소에도 임목사님의 주옥 같은 글을 잘 읽고 공감하며 감사하고 있습
니다.

연금과 헌금에 대한 성경적 근거와 해석에 한치의 오류나 사심이나 흐트러짐 없이 이렇게 정교한 짜임새를 갖춘 설명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십일조에 대해 직접적 언급은 없는 편이나 성전의 폐지와 함께 사라진 제도임이 명백히 드러나기에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재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온전히 가르쳐주는 핵심입니다. 십일조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백 퍼센트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쓰는 재정의 100 퍼센트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청지기로 쓴다면 거기에 구차스럽게 십일조를 따로 떼낼 필요도 없고 교회에 내었는데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닌 데에 쓰이는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요즘은 교회에 도둑이 득실거려서 배달사고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배달사고가 염려되는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은 삯꾼 도둑들에게 배달 맡기지 말고 직접 필요한 곳에 전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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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yinchrist (1.XXX.XXX.11)
2016-02-17 13:26:05
아멘...
노략질하는 이리라 하신 자들이 너무나 많은 현실입니다...
참교회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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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세마네 (112.XXX.XXX.123)
2016-02-16 03:15:58
연금은 연보의 오타입니다.
핸드폰이라 수정이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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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112.XXX.XXX.160)
2016-02-15 15:55:29
하나님은 제사와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했으며,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사단의 종이 되어 망한다고 한탄 하셨다(호6:6, 호4:6 참고).

보이지 않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마음의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눈에 보이는 돈은 눈에 보이는 목자의 몫이니 각자 하나님을 아는 분량에 따라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목자의 것은 목자에게 바치면 된다.

그러나 목자가 명심할 말씀이 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전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목자가 스스로 돈은 거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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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XXX.XXX.45)
2016-02-15 21:12:38
그 어느교회가 헌금을 목사갖는가? 요. 교회도 체계가 있고 질서가 있지요.
일봉성도가 아니라 반동성도? 그리고 무등산, 사람중에 목사가 세워지는것이니 목사를 신이라 생각하지않고야 어찌 그런말을 할수 있을가요?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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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XXX.XXX.69)
2016-02-15 11:56:21
연보나 헌금이나
.
연보니 헌금이니 용어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연보가 어떻게 쓰이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배부른 자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쓰인다면

성도님들의 연보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의 연보가 될 수 있습니다.

연보를 바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이는 가에

관심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괜히 연보를 바치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연보가 교회에서 잘 사는 삯꾼 목사들에 의해 빼돌려지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것은 하나님께 바친 연보때문이 아니라

빼돌려진 연보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차라리 연보를 바치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빼돌리지 않고 목사가 빼돌렸어도 성도님들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방관하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나니아와 삽비라보다 더 엄한 심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들까지도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연보를 하지 않았다면 둘째 사망에서 구원 받았을텐데...

마가복음 9장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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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줄 (1.XXX.XXX.82)
2016-02-15 11:31:33
본질을 회복해야
감리인이라면 장정에 따라 "감리회 신앙고백" 6호를
고백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와 친교, 교육과 봉사, 전도와 선교를 위해
하나가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믿습니다."

이런 교회를 운영하는데 헌금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점쟁이께 주는 복채처럼 여겨서도 않되고
직분을 얻는 수단으로 삼아도 아니되며
사유화 하도록 방기해서도 않됩니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은 교회의 지체들의
마땅한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음모에
속아 휘말리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의무는 다하고 권리는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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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110.XXX.XXX.45)
2016-02-15 21:16:50
옳습니다.
답답하게 하는자와 시원하게 하시는 분의 방향이 정 반대임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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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gloryinchrist (1.XXX.XXX.11)
2016-02-15 11:31:15
오랫만에 참된 말씀을 듣습니다...
오랫만에 참된 말씀을 듣습니다...
거의 모두가 제 믿음의 핵심과 같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모이는 모임이 어디에 있습니까...???
좀 가르쳐 주십시오...
sangkillee@hanmail.net
제천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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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아멘 (175.XXX.XXX.223)
2016-02-14 20:01:04
백번 천번 지당한 말씀..
생활로서의 신앙, 삶 자체가 예배가 되는 신앙이 본질인것 같아요..
병든 장인.장모님과 생활이 어려워 최하층 생활을 해나가던 우리 친척들에게 물질로 도와 드리는 것보다 교회 십일조와 헌금 철저히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하던 사이비 목사들에게 세뇌되어 철없이 교회다녔던 젊은 시절이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참 바보같았습니다
슬픈 현실은 아직도 한국교회내에 젊은 시절의 저같은 맹신도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부지런히 열심히 깨웁시다 평신도들을..
귀한글 올려주신 필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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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75.XXX.XXX.223)
2016-02-15 14:41:18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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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yinchrist (1.XXX.XXX.11)
2016-02-15 11:27:19
아멘님, 다행입니다...
십일조 없는 교회를 애타게 찾고 있는 중입니다만... 노략질하는 이리들이 없는 참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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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1.XXX.XXX.173)
2016-02-15 21:51:21
교회개혁실천연대 홈피에도 좀나오고 이리저리 검색해보면 더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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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110.XXX.XXX.45)
2016-02-14 22:56:06
교회 없애고 모일필요없고?
참 기막힌 발상? 무교회주의로군! 에 라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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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yinchrist (1.XXX.XXX.11)
2016-02-15 11:28:27
누가 교회를 없앤다 했습니까...???
목사인가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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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5
(110.XXX.XXX.45)
2016-02-15 21:22:02
목사님은 적인가?
목사님은 적인가? 목사 알레르기 증.희한한 병증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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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
(110.XXX.XXX.45)
2016-02-15 21:03:57
교회말살 비법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정면 반대 되니까 하나님 불순종으로 쇠퇴할수밖에 없고, 재정난에 선교가 중지될것이며, 운영이 어려워 목사들은 생계를 위해 목회를 포기하는일이 속출할것이고, 불신자와 타 종교에서 교회 쇠퇴를 크게 반길것이며 등등... 뻔한뻔자 아닌가요? 에라E...나 마빡에 붙이고 답변도 싫소이다. 리플달면 더 나쁜ㄴo m. 리플달면 큰 욕 나올가 겁나유,,,달고 싶으면 차라리 교회페지운동하자고 하요. 그게 솔직한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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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0
게세마네 (112.XXX.XXX.123)
2016-02-16 03:09:44
제사보다 젯밥에 눈이 팔렸습니다.
교회가 없어지고 망할 것울 걱정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헌금 적게 들어와서 사례비 줄어들거나 못 받게될까봐 엄청 걱정하는 속 사정이 다 들여다 보입니다.

하나님은 돈이 없어서 선교 못하고 교회 문 닫게 되도록 놓아두실 그런 거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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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110.XXX.XXX.45)
2016-02-22 15:11:48
우리하나님
같은 하나님 믿으면서 할일도 많은데 그리도 할일없이 전도는 못할망정 그런 글이나 쓰다니, 사탄이 따로 따로없군. 우리하나님과 당신하나님 다르다고 볼수밖에 없네요. 리플을 달지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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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yinchrist (1.XXX.XXX.11)
2016-02-17 13:18:25
아멘! .
아버지께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원하시면 얼마든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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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길 넓은길 (112.XXX.XXX.64)
2016-02-29 22:49:43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 지고 나를 따르라...
물질이 있는곳에 네 마음도 있다. 신앙의 관점,또는 깊이에 따라 물질관이 다
르겠지요
주님은 말세에 믿는자를 보겠느냐? 의미 심장한 말씀을 하셨지요
아마 이 시대를 두고 하신말씀이 아닌가? 바울의 말씀처럼 영의 사람과 육신의 속한 사람의 차이겠지요.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어짜피 소속이 다르면 어쩔수 없지요 예수님도 요6:63절 에서 "살리는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성령을 체험하고 은혜를 받으면 환경을 이길수 있는 힘이있지요.
모든것이 감사고 늘 아쉬움 뿐이지요.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신앙생활하면 그야말로 신앙생활은 또 하나의 짐이요 고역이지요.
시대는 갈수록 편리한 세상. 세속화 인본주의 종교 다원주의 성적쾌락주의 물질주의 맘몬이즘, 즉 물질이 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이때 거듭남의 성령체험없이 교회다니는 정도의 신앙으로 헌금생활, 전도생활,
헌신 봉사 충성등 개척교회에서 그런 얘기했다가는 다 떠가지, 어림도없지 그런얘기는 2000년전 사도행전 교회에서나 나오는 옛날얘기로 알죠 그러니 주일성수조차 율법이라고 치부하는 시대가 됐고 헌금,십일조 말하면 삯군목사로 매도되는 현실, 주님은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예수님의 비유가운데 네 종류의 밭이 있지요. 이것이 바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의 마음밭인데 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13: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13: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13: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안타까운것은1/4 즉 열매맺은 밭은 옥토밭이지요.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겸손한 마음의 밭,..물질문제도.모든것이 주께로 부터 왔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형편에 맞게 드리는것입니다.
이것이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것입니다. 이런신앙의 사람에겐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가뭄이와도 시들지 않도록 양식이있게 책임져 주실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하신 말씀은 내 나라는 이 땅에 있지않다 라는것입니다.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것입니다.각자의 행한대로 갚아주신다는것입니다.
한국교회가 10년 어간 사이에 물질주의로 획 돌아섭습니다.교회안까지 사단은 예수님에게 3가지 육신이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시험했지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물리쳤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여지없이 물질앞에 좋은차, 좀더 낳은 아파트,편리한 문명의 제품들을 접하하면 시간도 육체도 마음까지 현대문명의 자유인이 아닌 노예로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전락괴고 있다는것을 모르고 있죠.
그러면서 내가 왜 이렇게 물질에 압박을 받는지 시간에 쫒기는지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지 평안을 잃어버렸지요 성경은 사람의 행복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않다고 했습니다.그리고는 모든 불평 원망을 교회로 화살을 돌리지요
그 배후 세력은 사단임에도 그걸 알지못하고 또 인정하지않죠.
물론 오늘날 교회도 목회자도 늘 자신을 성찰하면서 먼저 본을 보이고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점 반성하며 회개합니다.
그러나 어떤 무 책임한 성도나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은 거룩한 성자인양
신학적으로 십일조와 헌금이 어떻고 하면서 한 마디 던지면 신학과 신앙이 바로 정립되지 않은 교인들이나 평소 부정적 시각의 교회인들은 맞아 바로 그거야 하며 그들의 생각을 더 확고하게 일이됐으니 그들의 영혼을 누가 책임질것인가?.벧전5:8-10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
한심령을 세워주고 이끌어줘도 바로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교회를 지키며 세워나가는게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온 교회와 성도가 힘을 합해도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교회지도자라는 사람이 온 교회는 타락하고 자가가 거룩한 성자처럼 광명의 천사로 대중에 인기를 얻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이미 어렵게 전도해온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돌이킬수 없는 지옥 자식이되게하는 사단에 하수인 노릇을 한것을 아는가?
당신의 철학적 지식 학문과 업적으로 유명인이 됐을지라도 사도바울은 오히려
그 많은 학문과 지식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예수그리스도의 발견 그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다고 고백하며 주를 위해서 죽는것도 유익하다고 말했지요
사나 죽으나 주의것이다 순교를 영광으로 알고 순교로 생을 제물로 드렸건만
교회에다 헌금 몇푼 내는것 가지고 ... 어제 오늘 이야기기 아지만 목사들 가운데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믿지않고, 부활믿지않고, 예수님의 재림 믿지않고,천국과 지옥 믿지않지 않는목사들이 예외로 많지요. 이런 목사들의 특징은 전도에 대해서 , 기도에 대해서, 봉사,헌신, 충성이란 말을 쓰지않습니다.
다 부질없는 짓 이기때문에 그리고 그런것을 말하는 목사들을 시대에 안 맞는 무식한 목사로 취급하지요,이런 목사들은 겉으로는 인권, 평등.자유,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내 세우지만 우리가 얼마나 추하고 악한 죄인이라는 말은 안하지요. 한국교회, 한국의 크리스챤 사는길은 가슴을 치며 나 부터 회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높아졌던 마음 교만했던 마음 교회와 성도를 분열시킨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회개하는길 밖에없습니다. 회개합시다.
고상한 철학적 이런 목사 밑에서 신앙생활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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