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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죽었다!
강만원  |  mw14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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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2월 05일 (금) 22:36:39
최종편집 : 2016년 02월 22일 (월) 21:45:29 [조회수 : 4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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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죽었다!

 

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기독교실존주의자 베르나노스를 전공했다. 단순한 전공이 아니라, 심지어 베르나노스 국제학회 회장인 지도교수는 몇 시간에 걸친 예외적인 면담을 마치면서, “당신이 말하는 동안 나는 당신의 음성이 아니라 베르나노스의 음성을 들었다. 당신이 베르나노스다”라고 말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베르나노스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아내는 이 말을 무척 싫어한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서...

느닷없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베르나노스와 닮았다는 말이 자랑스러워서가 아니라, 그가 했던 말이 새삼 귓가에 울리기 때문이다.

<죽은 교회!>(église morte)

거짓과 탐욕, 그리고 추악한 성추행으로 한국교회의 더러운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오정현과 전병욱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에 대한 교회와 교인들의 대응을 보면서, 자정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교회지도자들을 보면서 나는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는 죽었다!>고....

그렇지 않은 목사들도 얼마든지 많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듣는 말이지만, 이런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몸에 간신히 붙어있는 세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대로 함께 죽어 땅에 묻힐 뿐 다른 아무 것도 없다.

일제시대에도 소수일망정 독립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독립을 외친들 일제가 망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독립은 없다. 유일한 대안이 있었다면 <임시정부>를 세우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은 목사가 있고, 나름대로 성실하게 목회하는 목사가 있지만 그들이 정작 한국교회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고작해야 끼리끼리 <공동체>를 만들어 자기들만 살겠다고 버티는 것 외에 한국교회에 무슨 영향력을 끼치는가?

한국교회는 죽었다. 자정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 회개를 모르는 한국의 <목사교회>를 보면서 <죽은 아들 불알 만지듯이> 헛된 짓 할게 아니라... 이제 예수께서 세우리라 선언하신 <내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살려야 한다.

미친 놈이 <과대망상>에 빠져 헛소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유대 율법주의의 타락과 불의에 맞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무너뜨려지리라>고 선언하셨던 예수도 당시에는, 심지어 가족조차 <미쳤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예수가 미쳐서 율법의 종말을 선언했는가?

유대 율법주의의 멸망은 <하나님을 모르는> 유대인들의 외식과 교만, 탐욕과 무지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다.

다시 말하지만, 목사들이 <소명> 운운하며 허튼 권위의식에 사로잡히고 교인들이 <축복> 운운하며 비루한 맘몬주의에 탐닉하는 한, 한국교회는 절대로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며, 구원의 능력을 잃은 교회는 <촛대>가 옮겨진 교회로 이미 <죽은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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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사야 (173.67.15.74)
2016-02-08 01:58:1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아무리 덩치가 크다고 하여도 썩어서 죽은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국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닌 게 맞습니다. 하지만 죽은자도 살리시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죽은 한국교회를 살리시는 기적을 보고자 한다면 "달리다굼"하시는 예수의 입에서 말씀이 나와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된 일에 사람을 동참시키기를 좋아하시는 예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어찌(기도)해야 할까요? 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은 위선자들처럼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즉 슬픈기색이나 의분을 내색도 하지 말고 단정한 모습으로 금식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추악한 인간죄성과 실수.허물등을) 금식하며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죽은 교회를 살리는 건 아마 기적중의 기적일 것입니다.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겸비하는 방법으로 금식기도를 바벨론철수작전으로 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중에서 아합처럼 악한 왕은 없었습니다. 이유는 마누라 이세벨을 잘못 얻고 그의 부추김대로 많은 우상들을 들여와 백성들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엘리야가 (갑자기 나타났다고는 하지만 갈고 닦은 충분한 기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심판을 선포하죠. 아합은 금식 기도를 합니다. 이런 악한 왕도 회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심판을 멈추시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기도할 때 안들어주실 이유는 명백히 없습니다. 그렇지요?

요나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다가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선포하자 니느웨가 왕부터 짐승까지 금식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지 않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리는데 요나를 쓰신 거죠. 이방도시가 선지자의 말을 듣고 금식기도하면서 100년동안이나 심판을 막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깨어있는 사람들이 기도하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조카 에스더에게 삼촌 모르드개가 말합니다. "네가 왕후가 된 이유가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스더는 금식기도한 후에 왕에게 나아갔고 상황은 뒤바뀝니다. 하만의 유대인 몰살계획은 무너집니다.
한국교회를 죽이기 위한 마귀의 책략을 뒤바뀌기 위한 대안으로 당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이때에 금식기도하라고) 하나님이 부르셨다면 어찌 대답하시렵니까?

무엇이 역사를 바꿉니까? 금식기도입니다. 금식기도가 나라의 운명을 바꾼 예를 성경은 수없이 들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명운이 소수의 독재자들과 그들에게 아첨하고 따르는 친일부패세력때문에 기울어간다해도 금식기도하는 나 한사람때문에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심이 어떠실른지요?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는 멍에를 함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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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5
하 어쩌랴 (112.163.179.132)
2016-02-07 08:38:23
거울을 보라.
선생인 목사들의 범죄로 인해 실망한 성도들아 그들을 거울로 삼아라.

목사로서 가슴이 아픈 것은 선생인 목사들의 범죄가 단순히 성도들의 비난의 대상이 될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목사들의 범죄는 경건한 나와 상관없는 강건너 불구경 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것을 성도들이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목사들의 범죄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강건너 불구경하듯 목사들의 범죄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는데 비하여 그 스스로의 발등의 불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 가슴아프다.

제자는 선생을 뛰어넘을 수 없다.
성도들의 교육을 책임졌든 목사들. 그중에 본문에 언급된 오정현 목사와 같이 제자훈련에 특화된 사람이 한국교회에 어디 있으며, 전병욱 목사와 같이 열정적인 지도자가 또 어디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늘날 성도들이 입을 모아 욕을 하는 대상으로 전락되었다면 그들에게 교육을 받은 성도들의 머지 않은 장래에 그들과 같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됨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성도들은 선생인 목사들의 범죄를 보며 나의 길에 조만간 이를 강력한 죄성의 이끌림에 경고를 받는 것이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니겠는가?
선생인 목사들이 일부러 삯군과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의 길엔 우리가 알지 못하며 목사들조차도 성도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모순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죄성은 회개와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잡초와 같아 끈질긴 생명력을 가져 다 소멸된 것같은데 어느날 더 번성해 영혼을 잠식당하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성도들아 사람의 내면의 죄성을 억누르면 억누를 수록 그만큼 곧 폭발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곧 닥칠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곧 죄성은 풍선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바람이 가득한 풍선을 강하게 누르면 누를수록 경건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듯 풍선을 강하게 누를수록 곧 터질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범죄한 목사들이 그러한 처지였으며 우리도 지금 그런 처지이다. 따라서
범죄한 목사들을 보고 손가락질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죄성이 그들과 같이 폭발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성도는 그런 죄성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풍선으로 비유되는 죄성을 강하게 억누르지 않고 살며시 잡고 있는 성도들의 삶과 생활에 있는 것이다. 죄를 억누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보라. 그만큼 반발도 강한 것을 느낄 것이다.

성도들아 경건했던 목사들이 한순간에 범죄자로 비추이는 것을 단지 비방하는데 힘을 쓰지 말라.
오히려 그들을 바라보면서 내 안에도 내가 억눌러도 종내에는 터질 수밖에 없는 죄성이 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더러움에서부터 지키는데 힘을 다하라. 존경했던 목사들의 범죄를 본다면 지금부터 당장 나를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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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4
포이멘 (183.109.99.69)
2016-02-07 06:46:11
,
순례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사제중심의 카톨릭을 피해서

결국은 종교회복의 개혁교회를 이루어냈습니다.

이제는 목사중심의 한국교회를 피해서

종교회복을 시킬 순례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목사가 우상인 한국교회는 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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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8
최화평 (122.35.176.192)
2016-02-06 21:18:58
이사야 시대에 여호와는 당신을 외면하는 백성들에게 몹시 실망해서
그들을 저주했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을 귀신들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저주하실 만큼 절망에 빠졌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하는
일이 그때와 비슷해 보입니다. 한국교회는 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만한 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교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사야처럼 나를 보내달라고 나설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깨서는
그루터기를 남겨두셨습니다.엘리야가 지쳐서 로뎀나무 아래 누워있을
때 그에게 먹을 것을 주시면서 격려하셨던 여호와는 오늘도 절망에 빠진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여호와는 그때도 말씀하셨습니다. 남겨놓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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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8
소금 (200.239.54.138)
2016-02-06 16:58:52
한국 교회는 이미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부 도덕하고, 정의감이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부의 상징이 되어버린 한국 대형 교회들의 모습들은 만장을 내건 상가집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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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8
늘 봄 (112.159.43.17)
2016-02-06 13:15:25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요? 다음 세대를 위해 움직여 가는.. 암세포를 보듬은채 그 고통을 함께 나누며 다른 세표들을 살리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름 없는 그분들의 수고에 동참해 보지 않고 절망의 자극적인 언어 유희를 삼가해 주기 바랍니다. 내가 만나고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분의 섭리를 존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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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2
아르케 (39.115.50.86)
2016-02-06 16:33:21
<암세포를 보듬은 채...> 지나치게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미 활력을 잃은 암세포는 보듬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 발광하는 암세포는 다른 세포를 먹어버리고, 마침내 생명을 죽입니다.

지금 한국교회, 특히 예장합동의 처신이 댁은 <죽은 암세포>라고 보십니까? 어제 오정현의 불의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동서울노회에서 13 명의 장로와 안수집사들을 일시에 제명했습니다. 성범죄자, 논문표절자, 사기꾼 목사들에게는 면죄부를 주면서... 언어유희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목사라면 이런 비판을 들으면서 불쾌하게 생각하며 삐질 일이 아니라 교단을 탈퇴하든, 시위를 벌이든 불의에 맞선 행동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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