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愛의 중심에 피는 꽃

“사람으로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기독교가 도덕과 윤리를 위한 종교인가

사람답지 못함에 머물러 있음이 많은 사람을 보면 더러는 ‘사람 좀 되어라’라든가 ‘언제 사람이 되려고 그러느냐’라는 등의 말을 하기도 한다. 사람답지 못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로도 이해가 가능한 말이다.

필자는 이를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정리하여 마음에 품고 좌우명으로 여기며 산다. 그러며 크리스천다운 크리스천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한다. 크리스천다운 사람치고 사람답지 못한 사람은 없고, 사람답지 못한 사람으로 크리스천다운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도 되지 못한 사람이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사람답다는 면에서 크리스천은 불신자보다 나아야 되고, 집사는 무직분자보다 나아야 된다. 그리고 장로나 목사는 이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 그렇다고 무직분자나 집사는 장로나 목사보다 못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무직분자가 세월이 흘러 집사가 되고 집사가 장로가 되는 것이니 연륜이 싸일수록 나아져 가야 한다는 말이다. 목사와 장로는 교회의 지도급에 위치하고 있으니 무직분자나 집사만 못하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기독교가 도덕이나 윤리를 위한 종교는 아니다. 새 생명으로의 구원을 푯대로 하는 종교이다. 그런데다가 그 구원은 도덕과 윤리 같은 것들을 요소로 하는 사람다움의 인격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 하나로 받는다. 정말 구원을 받는 데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믿음 하나로 넘치도록 충분하다.

그런데 어쩌랴. 그 믿음이 도덕과 윤리도, 사람다움과 인격도 요구하고 있으니.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라 말한다.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행함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을 주축으로 하는 기독교인으로서의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행함이라는 말이다. (거기에 전도와 같은 것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으로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일들을 만나기도 한다.

‘시체장사 그만하라’니…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그 끔찍했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있다. 그 생각을 하면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인데도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 가슴이 얼얼하게 아려 온다. 그런데 생때같은 자식을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하여 잃고 가슴에 묻은 사람들이야 어떻겠는가.

참사가 있고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는데도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할 책임 있는 사람들은 참사의 원인이라도 밝혀 달라는 유족들의 요구를 외면이 아니라 방해하는 데에 앞장섰다. 그런데도 힘없는 유족들은 농성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으로 나갔다. 제발 원인이라도 밝혀 달라며 단식을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도 곡기를 끊어 뼈만 앙상하게 야위어 버린 유민의 아빠 김영오 씨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에서 일부러 진한 냄새를 풍기며 치킨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폭식으로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체장사 그만하라”라고도 했다.

이러고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싶다.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 아닌 사람들이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람들이다.

인간을 보수와 진보의 양진영으로 갈라놓게 하는 사상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진영논리에 매몰시켜 이성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게 한다. 내가 속한 쪽이 하는 일이면 악한 것도 옳은 게 되고, 상대방에서 하는 일은 옳아도 나쁜 것이 된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한‧일 합의 후에도 불거졌다.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주위에는 매일 매일의 24시간 내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사람들이었다. 소녀상이 일본의 요구에 따라 옮겨지는 것을 막으려고 모여 온 사람들이다.

대학생들은 소녀상 옆에서 문화행사를 하기도 했다. 혹한에 떨며 밤을 지새우는 이들을 위해 시민들은 먹을 것을 가져다 놓았다. 소녀상 앞에는 꽃다발이 수북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악의 찬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남성은 소녀상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종북 좌파! 종북 좌파!”를 외치고는 소녀상에게 절까지 하고는 사라져 갔다.

‘어머니부대’라고 하는 단체는 할머니들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이 책임을 인정한 만큼 위안부 할머니들도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딸이나 어머니가 위안부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의미의 말까지 하는 어머니도 있었다. 말로만으로 본다면 그녀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을 다 품고도 남을만한 박애주의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정신의 소유자라 해도 그녀는 문제의 핵심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일본이 책임을 인정’했다 했는데, 그것은 책임회피를 위한 ‘인정’이라는 탈을 쓴 것이었을 뿐이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면 통렬한 반성이 뒤따라야 하는데, 합의 후의 일본은 어찌하고 있는가. 망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 내어 위안부 할머니들과 우리 국민들의 아픈 가슴을 마구 헤집어 대고 있지 않는가.

필자는 자기의 딸이 강제로 끌려가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그것도 한 번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노리개가 되었다면, 그녀가 그 같은 말을 하지 못했으리라 본다. 그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하기 전에 그 말이 평생을 눈물로 살아 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얼마나 더 아프게 할 것인지부터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람다움의 꽃은 사랑이고, 그 사랑의 꽃은 모성애인데, 그녀는 그것을 모독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세상이 그런 것을. 부모가 자식을 죽이기까지 하는 일도 없지 않은 것이 세태이니 그녀만을 나무라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나 해야 할 것인가.

세상이 변하니 부모자식간의 사랑도 변하는가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부모 명의의 땅때기가 별 가치가 없었을 때에는 효도라고 하는 것의 옆에도 가려 하지 않던 자식들이 개발로 그 땅이 금값이 되자 갑자기 효자가 됐다는 말은 이제 이야깃거리 축에도 못 드는 흔해 빠진 것이 되었다.

목사들만큼 가십꺼리 수준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도 흔치 않을 것이다. 설교의 예화로 쓰기 위해 다방면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기도 한다.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보려 한다.

꽤나 부자인 할머니가 자식들을 불러 모아 놓고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상자 하나를 앞에 내 놓았다. 자식들은 그것이 보석함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자식들의 짐작대로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패물들로 가득했다. 자식들은 이것도 나누어 주시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자식들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어머니의 입만 응시했다. 할머니가 말했다. “이것은 지금 내가 너희들에게 나누어 준 재산만큼의 값이 나가는 패물이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다가 죽을 때쯤 해서 효도를 가장 잘한 자식 하나에게 줄 것이다.”

자식들은 앞을 다투어 효도에 들어갔다.

몇 년 후 할머니는 세상을 떴다.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자식이 달려가 보석함부터 찾아 감춰 두고는 어머니의 소천을 다른 형제들에게 알렸다.

그것도 모르고 다른 자식들은 상중임에도 서로에게 숨겨 가며 은밀하게 보석함을 찾았으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을 수중에 넣은 자식은 모른 척하고 있다가 장례가 끝나자 보석상으로 달려갔다. 보석상의 말을 들은 자식은 너무도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모두 이미테이션입니다.”

부모자식간의 세태를 함축성 있게 말해 주는 이야기이다. 실화가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현실이 이러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진정한 효도는 실종되고 이미테이션 효도만이 기승을 부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 효도조차도 재산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행함을 중시한다고 전술했는데, 그 행함에서 효행이 빠진다면 그것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 말이 될 것이다. 십계명 중 다섯 번째는 “네 부로를 공경하라”라는 것은 믿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제1계명에서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그 뒤의 것들 여섯 가지 계명은 사람에 대한 것인데, 그 가운데 첫 번째가 이 부모에 관한 계명이라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에게서조차 효도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져 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보고 싶거든 자신의 효심을 들여다 볼 일이다.

앞에서 든 일화의 할머니에게서 보듯 부모들도 옛날과는 달라 자식들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노인들 사이에서는 재산을 자식들에게 미리 물려주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버렸다. 일찌감치 자식들에게 다 주어 버리고는 홀대를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자식들이나 부모들이나 피장파장인 것 같다. 아니다. 내리사랑이라고 극히 드문 경우를 빼면 부모는 자식을 맹목적적으로까지 사랑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들로부터 시설에 버려진 노인들조차도 자식자랑을 하다가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웃지 못할 희극이 아니고 뭣일까 싶다. 가끔 부모가 어린 자식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일까지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정신이 온전한 사람들의 소행은 아닐 것이다.

인간애의 꽃

부모의, 특히 어머니의 마음을 잘 나타낸 전설이 있다. 일본 것이라는데, 일본 아닌 한국에서 들은 것이다. 필자는 장기간 일본에 체류한 적이 있는데, 왜인지 그것을 거기에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듣게 되었다. 사실을 말하면 일본에 그런 전설이 실제로 있는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다른 어느 곳의 전설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의 정점은 모성애인데, 그것이 잘 드러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느 마을에 홀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잘 모시는 효자 총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총각은 같은 마을의 처녀를 몹시 연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말도 못하고 속만 태우다가 상사병이 들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해 큰맘 먹고 처녀를 찾아가 청혼을 했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제 머리털을 뽑아 신이라도 삼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처녀는 한 마디로 거절했다.

“저는 당신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총각은 무너져 내리는 심정으로 이유를 물었다.

“그것은 당신이 나보다 더 사랑하는 여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가장 사랑합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저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하지 않습니까?”

총각은 처녀의 말에 수긍이 되었다. 그래서 다급하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어머니를 죽여 간을 빼다 주세요.”

말을 듣고 총각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애틋하게만 보이던 어머니가 자기의 사랑을 막는 방해꾼으로만 보였다. 순간 그는 어머니의 목을 졸라 죽여서는 간을 꺼내어 그릇에 담아 가지고 처녀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가다가 그만 발이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릇의 간은 내동댕이쳐졌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는데 어디선가 “애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둘러보니 땅바닥에서 간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의 마음이다.

모성이란 그런 것이다. 옛날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의 어머니들도 그와 다르지 않다. 앓아누워 있는 자식을 보면 차라리 자신이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죽어 가는 자식 대신 자기가 죽겠다고 나설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요, 모성애이다.

그런데 자신의 가녀린 딸이 우악스러운 사내에게 짓밟혔는데도 용서한다? 그것도 그 사내가 책임을 모면하려고 거짓 용서를 빌고는 뒤로 돌아서기가 무섭게 당신 딸이 좋아서 스스로 치마끈을 풀었다 하는데도 용서한다? 거짓말이다. 자기 딸이 아닌 남의 딸을 놓고, 제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기 딸이라고 한 거짓말이다.

우리는 크리스천이 되려 하기 전에 사람부터 되어야 한다. 물론 지금도 크리스천이요 사람이지만, 크리스천다운 크리스천이요 사람다운 사람인지는 겸허한 마음으로 점검해 봐야 한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 부모요 자식인지도 돌아다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