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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생각대로 될까?큰 결실을 향한 미미하고 하찮은 시작
박경은  |  011766976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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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1월 21일 (목) 00:18:42
최종편집 : 2016년 01월 24일 (일) 13:43:07 [조회수 :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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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생각대로 될까?

큰 결실을 향한 미미하고 하찮은 시작
마13:31~32(막4:30~32; 눅13:18~19)

 

   
 

   겨자씨 비유 이야기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복음서 저자들은 각자 강조하고 싶은 말씀을 따로 갖고 있기 때문에 본문이 문자적으로 똑같지 않습니다.

   그러면 같은 내용인데 어떻게 서로 다른 말씀들을 갖고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마가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

   일반적으로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고 보는 ‘마가복음 우선설’이 우세하기 때문에 마가복음이 마태복음으로 갈 때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피는 순서로 하겠습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와 관련된 말씀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막4:30). 마가복음 본문이 말씀하는 내용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이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능동적인 주권적 활동으로 시작됩니다. 사람이 심는 겨자씨가 아니라 ‘심기어지는 겨자씨’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31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에게 임하는 나라입니다. 마가복음은 그렇게 그림이 그려지도록 묘사되어 있습니다.

   겨자씨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습니다. 그러나 자란 후에는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시작, 큰 결과로 나타나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성장하여 커집니다.

   이에 따라 겨자씨 비유 이야기를 통해 마가복음이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수식적으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⑴하나님의 나라=처음에는 겨자씨 한 알 같이 시작되는 나라
   ⑵하나남의 나라=심기어지는 나라(사람이 만드는 나라가 아닌, 임하는 나라)
   ⑶하나님의 나라=거대하게 성장하여 큰 역할을 감당하는 나라
   ⑷하나님의 나라=그늘을 만들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나라


2.마태복음에 나타나는 하늘나라(천국)

   이와 같은 마가복음의 내용을 마태복음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의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나라(천국)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를 두고 마태복음 저자의 유대적 성향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직접 부르길 꺼려했으므로 하나님을 가리켜 말할 때 하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마태복음에 있어서 하늘나라(천국)로 표현됩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마가복음과 같이 천국은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마가복음과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마가복음에는 없는 표현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이라는 표현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는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천국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을 적시합니다.

   ‘자기 밭’은 자기 자신과 상관없는 나라, 자기 자신과 무관한 천국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전제합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본문에 의하면 하늘나라(천국)는 반드시 ‘자신의 것’이 되게 하는 자신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참여하지 않는 나라라면 아무리 놀랍고 복스러운 나라라고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나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마태복음도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란 후에는 ‘나무’가 된다고 했습니다(마13:32). 튼튼하고 묵직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아무리 많은 새들이 가지에 앉는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저자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그늘’이라는 단어를 생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늘’은 일종의 안식처, 휴식 개념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교회공동체는 박해받는 교회공동체였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마가복음 교회공동체의 상황은 마태복음 교회공동체의 상황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그늘’은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안식처’의 개념만이 아니라 ‘보호’의 개념도 갖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해를 가려주시면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그와는 다르게 마태복음은 ‘그늘’이라는 단어 대신에 ‘나무’라는 단어를 통해 건실하게 성장한 교회공동체를 생각하도록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서로 생생하게 교제하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3.누가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

   그러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비교할 때에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누가복음 저자는 마가복음 저자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겨자씨 비유를 말함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 저자도 마가복음 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칠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은 나라라고 소개하면서 내용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게 시작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저자도 마태복음 저자와 비슷하게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이라는 표현을 추가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자기 밭’인데 누가복음에서는 ‘자기 채소밭’입니다. ‘자기 밭’과 ‘채소밭’이 주는 인상은 매우 다릅니다. 채소밭은 이미 ‘개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기 밭’은 단순한 소유개념인데 비해 ‘채소밭’은 소유개념에 더하여 사람의 일상생활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와 관련된 ‘필요성’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누가복음 저자 역시 마태복음 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는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의 노력을 전제하고 있음을 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향해 임한다고 할지라도’ 그 하나님의 나라를 ‘나 몰라’라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내 것’ 삼기 위한 사람의 수고와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절대 필요성’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영성이 엿보입니다. 채소는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입니다. 고기는 여러 끼니 동안 먹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가끔씩만 먹어도 됩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를 끼니때마다 먹지는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를 가끔씩 먹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갈수록 고기를 먹는 빈도수는 점점 줄어듭니다.

   하지만 채소는 그와 전혀 다릅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어느 누구를 가리지 않고 식생활에 반드시 있어야 만 하는 필수식품이 바로 채소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저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 채소밭’에 심은 겨자씨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누가복음 저자는 모든 인간들이 생존을 위해 채소를 거의 매 끼니마다 섭취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인간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인간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채소를 얻기 위해 부지런히 채소밭을 일구는 것과 같은 노력을 들여야만 ‘내 것’이 되는 나라입니다. 채소밭은 채소씨만 잔뜩 뿌려놨다고 해서 건실한 채소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 세 복음서의 본문이 말씀하는 핵심사항 비교정리

   이렇게 본문내용이 같을지라도 표현이 다르다는 것은 서로의 강조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에 따라 각 본문들이 전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1]주권적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 그러나 내 것으로 삼고자 수고할 때 가능한 나라

   마가복음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노력으로 만드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주권적으로 땅에 임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본문을 읽을 때 그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인간적인 수고가 없으면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자기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나아가 누가복음 저자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을 위해 반드시 식사 때마다 있어야 하는 채소 공급처인 채소밭 가꾸듯’ 수고하지 않으면 ‘나와는 상관없는, 나에게 필요 없는 나라’가 되고 만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작게 시작되지만 거대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

   한편 하나님의 나라는 작게 시작됩니다. 겨자씨 한 알과 같은 입장에서 출발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이 갈수록 성장하여 시작 때와는 비교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하여 거대해 집니다. 그것은 겨자씨와 나무가 대조되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3]안식과 충전을 위한 현실생활 속의 나라

   또 하나님의 나라는 안식처입니다. 공중의 새들이 언제든지 날개를 접고 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쉰다는 것은 그 다음의 날갯짓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보호받으면서 쉬는 중에 힘을 공급받고 능력이 충전되는 생활현장이어야 합니다.


[4]별 볼일 없는 하찮은 하나로 시작되는 거대 결실의 나라

   이에 더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 같이 별 볼일 없는 하찮은 하나가 이루어내는 거대 결실을 지향합니다. 거대 결실은 덩치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덩치에 비례하여 수많은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체험하는 삶의 공유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생활현장에서 경험되지 않는 나라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특히, 세 본문은 모두 “죽어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천국은 믿는 자가 죽은 후에 가는 나라’임을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세 복음서는 그런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경험되는 나라가 아니라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천국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5.생활 속에서 경험되고 나누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그러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론에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삶 속의 실체가 되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과연 생각대로, 소망대로, 세 복음서 본문에 나타난 말씀대로 그렇게 출발은 미미하고 하찮아 보잘 것이 없지만 거대 결실을 향해 나가는 출발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겨자씨 한 알을 심는 심정으로 쉴 곳을 찾지 못해 날갯짓하다가 지쳐가고 있는 이들, 지쳐서 떨어지고 있는 이들, 혹은 이미 떨어져버린 이들과 함께 거대 결실을 향한 첫 발 떼기의 작은 출발을 시도해 보고자 합니다. 보잘 것 없고 미미하고 하찮은 출발이겠으나 거대 결과를 소망하면서 모든 것 보다 작은 한 알의 겨자씨를 “(채소)밭에 뿌리는 심정”으로 성서적 신약교회를 이루기 위한 시작을 시도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지난번의 글, ‘성서적 신약교회를 향한 첫발 떼기 시도’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번에 확정되지 못한 교육-훈련 장소는 해당교회의 기획위원회에서 결의되어 예배 중에 광고가 된 상태입니다. 다만 교육관과 예배당의 시설에서 만족스런 교육환경에 적합하지 못한 점들이 상당하여 그에 대해 교회차원에서 조치하고 있는 중입니다.

   넓은 주차장과 편리한 교통망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날다가 지쳐버린 수많은 ‘공중의 새’들에게 안식을 주고 새 힘을 충전 받게 하기 위하여 봄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성서적 신약교회를 향한 목마름에 지쳐 날갯짓마저 완전히 포기될 지경에 있는 분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짐으로서 새로운 성서적 교회모델이 생겨나길 소망해 봅니다.

 

   
▲ 박경은 목사(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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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182.222.57.168)
2016-02-22 00:14:24
박경은 교수님께
교수님께서는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의 비교를 통해 "겨자씨의 비유" 아주 잘 표현하신 듯 합니다. 그 당시 듣는 자의 상황을 염두에 둠으로서 저자의 요점을 잘 짚어주심에 또한번 가르침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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