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이면 반짝이는 것들이 그리워집니다. 하루에 한 번씩 어김없이 찾아드는 밤 하늘인데 그를 수놓던 별빛과 달빛은 전과 같지 않습니다. 온통 가로등과 간판의 불빛에 희미해지고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교회 첨탑 위에 솟은 십자가의 불빛마저도 도시의 화려한 불빛과 같이 '빛공해'라 말하는 거겠지 싶습니다. 모처럼 별이 총총이 박혀있는 까만 밤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좋다' 하셨던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소 띤 얼굴로 '참, 좋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시 한편을 추억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대학시절 때때로 멈추어 서서 마음에 새겼던 윤동주 시비에 쓰여있던 '서시'입니다.

그 공간에서 까만 밤하늘의 별과 함께 머물렀던 때가 있었습니다. 1986년 4월말 잔인하도록 화려한 봄이었지만 개운치 않은 몸으로 까맣게 밤을 지샜던 기억이 납니다. 기도회로 모여 새벽을 맞은 거 같은데, 졸업 후 때로 기억나는 건 밤을 지새운 목적이 아니라 당시 전해져온 뉴스였습니다. 구 소련 체르노빌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고 그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했던 건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방사성 물질이 바람을 타고 일본까지 날아가 검출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안전하다'는 정부의 발표였습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잠시 제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불과했습니다. 아직도 사고지역 반경 30킬로미터에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데다 수십만 명이 죽고 또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데 말입니다.

그때 기억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시 기억해낸 것은, 1991년 4월 지금 일하고 있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부설 한국교회환경연구소)에 들어가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누구도 신경 쓰거나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사고였다고는 하나, 생각하면 할수록 '무모하리만치' 무감각했던 것 같아 부끄러워지고 낯빛이 붉어지곤 합니다.

두 가지 부끄러움이었는데, 첫 번째 부끄러움은 사실을 알았을 때 정작 사고가 일어난 원전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난처함에서 온 것입니다. 나의 필요로 인해 돌아가고 있는 위험 시설임에도, 그것이 어떤 시설이고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무심했습니다. 또 그런 위험시설이 우리나라에 몇 기나 있는지 아는 바가 별로 없었습니다. 뒤늦은 깨달음이었던 만큼 부리나케 연구모임에 합류했고, 당시 원전이 '깨끗하고 안전하며 경제적'이라는 한전의 논리를 거꾸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들에게 내가 아는 사실과 함께 원전으로부터 자유한 삶을 살자고 청하곤 하였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문제를 부각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지키고 돌봐야 할 '지구동산'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느라 분주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하늘 나는 새'를 봄으로 탐욕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청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끝없이 솟는 욕망을 내려놓아 마음이 가난해지면 하늘나라의 삶 곧 모두가 골고루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두 번째 부끄러움은 아무 생각 없이 낭비하는 전기로 인해 원전이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 죄책감에서 온 것입니다. 체르노빌 사고가 나고 25년이 지난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접하면서 강한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갖은 후 한참을 주목하는 동안 우리나라에 원전은 9기였었는데, 후쿠시마 사고 시점에서는 21기(현재는 23기)로 2.3배나 늘어나 있었고, 국민 한 사람이 쓰는 전력량이 4배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까지 잊고 지냈다는 것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에너지에 대한 탐욕의 끝은 어디일지, 그 끝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두려움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커져가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고요한 달빛과 별빛에 달래보려 해도, 은은하면서도 품격 있는 거룩한 불빛을 찾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화려한(?) 밤 하늘에 마음은 마냥 무거워지곤 하였습니다. 그 속에서 '더 크고 더 밝게' 빛나는 붉은 십자가라도 보게 되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리고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듯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며 다시 일어나 "생명에 대한 사랑이 그 두려움을 넉넉히 이기리라"' 노래하며 걷게 하십니다.

어느덧 졸업 후 어언 26년이 흐르는 동안 신음하는 피조물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주는 십자가 불빛을 바라보는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내게 주어진 길이라 믿기에, 어제와 같이 오늘을, 오늘과 같이 내일을 걷고 또 걸어갈 것입니다. 이 땅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쫓아오던 햇빛"이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린 모습을 보면서 함께 이 길을 걸어가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늘 땅 물 벗의 풍성한 생명을 위해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