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사기단이 떴다
박지호·2016년 1월 3일 일요일/ 페이스북 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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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작은책>에서 부부사기단 인터뷰 기사를 써줬다. 몇 가지 잘못된 부분을 고쳐서 여기 노트에 올려놓는다. 보관할 가치가 있으므로.)

작은책이 만난 사람- 박지호, 민경자 (안건모, 작은책, 2016년 1월호)
부부사기단이 떴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럼없이 입을 맞추는 닭살 부부가 있다. 나이가 젊지도 않은 쉰넷, 쉰 살이다. 진주에서 살다가 강릉으로 이사해 2년째 살고 있는 박지호 민경자 부부다.

이들은 휴일만 되면 여행을 한다. 그런데 놀러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전국에서 농성하는 이들을지지 방문하는 여행이다. 지난 12월 6일에는 여의도 콜트콜텍 단식 농성장을 방문했다. 한 사람이 하루를 굶는 ‘릴레이 단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콜트콜텍은 기타를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지난 2007년 경영진들이 해외 공장을 세우고 국내 공장의 문을 모두 닫았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길거리에서 농성하고 있다.) 이 부부는 왜 휴일마다 농성장 지지 방문을 할까. 오늘 이야기는 박지호 민경자 부부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박지호 아버지는 보수적인 동네, 대구의 유지였다. 외삼촌 말에 따르면 백화점도 갖고 있었고 늘 번드르르한 양복에 백구두를 신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부인이 셋이었다. 첫째 부인은 딸만 하나를 낳았다. 아들이 필요했던 그 유지는 다시 여자를 얻어 아들 둘을 낳았다. “이번엔 예쁜 여자가 필요했나?”(박지호) 아버지는 37살 나이에 스무 살 차이 나는 17살 여자를 얻었다. 그 여자는 딸 셋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 아들이 박지호였다.

얼굴도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박지호가 세 살 무렵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둘째 부인까지 남편의 재산을 챙길 수 있었지만 영악하지 못했던 셋째 부인은 한 푼도 재산 상속을 받지 못했다.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박지호 어머니는 자식 셋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박지호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막내 지호를 맡길 데가 없어서 리어카에 태우고 소라나 번데기, 오뎅을 리어카에 싣고 다니면서 팔았다. 큰 누나 둘째 누나는 일찍 시집을 갔고 일곱 살 위 막내누나는 중학교도 졸업 못 하고 봉제공장 시다로 들어갔다. 억척같은 엄마는 조금씩 돈을 모아 답십리 판잣집을 전세로 얻고 노점 구멍가게를 냈다.

막내 박지호는 장학금과 공장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대학을 다녔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예비역 대학생 박지호는 학교 후배들한테 카리스마가 있는 선배였다. 때는 1987년, 독재정권에 대항해 날마다 시위를 하는 날이 이어졌다. 박지호는 도시 빈민으로 살아온 삶 때문에 자연스레 운동권이 된 학생이었다. 참여한 서클은 없었지만 집회마다 참여해 짱돌을 던졌고 노동야학도 했다.

같은 과에 눈에 띄는 여학생이 있었다. 네 살 어린 민경자였다. 초롱초롱한 눈빛에 예쁘고 청순한 민경자를 넘보는 남학생들은 많았지만 감히 사귀자는 이야기를 못 했다. 박지호는 처음에는 민경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지호가 보기에 독재정권이 판치고 있는 세상도 모르는 개념이 없어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게다가 잘사는 집 딸인 줄 알고 박지호는 데면데면 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지호는 어느 모임에서 민경자가 응봉동 산동네에 사는 가난한 집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민경자는 자기 아버지가 택시기사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박지호는 그 모습에 반해 벼르고 별러 어느 날 민경자에게 고백했다. 아주 짤막한 말 한마디. “너를 좋아한다. 사귀자.”

남학생이 자기한테 고백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 말이 진정성 있게 들렸다. 여성에게도 평등하게 대하는 박지호가 아주 마음에 없지는 않았다. ‘일단 사귀어 볼까’ 하는 마음으로 만나기 시작했는데 곧 연애 감정이 싹텄다.

민경자는 박지호에게 헌신했다. 학원에 다닌다고 속여 집에서 받은 돈이나 방학 때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박지호 학비에 보태기도 했다. 박지호가 교문 안에서 경찰들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 데모를 하면 민경자는 교문 밖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후, 1991년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박지호는 직업 특성상 외지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 부인과 떨어져 살 때가 많았다. 민경자는 천성이 착하고 활발했다. 시어머니를 혼자 모시고 살면서 구몬학습지 교사 일을 시작했다. 집에 혼자 계시는 시어머니한테는 치매에 걸리지 말라고 구몬학습지를 신청해 드렸다. 과목은 산수였는데 무척 재미있어 했다.

2003년에 박지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부부는 지방으로 내려가자고 마음을 모으고 회사에 지방 발령 신청을 했다. 아이들이 중1,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2004년에 박지호가 경남 진주로 발령이 나자 진주에 방을 얻어 살았다. 박지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았고, 직장 일도 힘들어 마음이 괴로웠다. 어느 날부터 휴일마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박지호는 1년 이상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기도를 할 정도로 열성이었다. 교회에서는 그런 박지호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라고 치켜세웠다.

민경자는 교회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하는 일은 옳다고 믿어 교회를 같이 다녔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끌려다닌 사람은 아니었다. 민경자는 7년 동안 다니던 학습지교사 일을 그만두고 진주 아이쿱 생협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본래 신혼 때인 부천에 살면서부터 생협 회원이었다. 당장은 조금 비싸 보이는 유기농을 먹는 것이, 멀리 보면 농촌을 살리고 이 사회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다. 진주 아이쿱 생협에서 이사장까지 했다.

교회를 열성으로 다니던 박지호는 성경책도 읽고, 민중신학도 기웃거리면서 현 교회들의 신앙은 대부분 미국의 근본주의 신앙이라는 걸 깨달았다. 꼬박꼬박 내는 십일조가 자기 교인들을 위한 경비와 교회 재산 불리는 데만 쓰이는 것도 불만이었다. 교회에 갇힌 하느님은 진정한 하느님이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다. 교회를 그만두고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그 십일조를 모아 사회 정의를 위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학교 다닐 때 독재정권에 맞서 짱돌을 들었는데 현 세상에서 짱돌은 아니더라도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느님한테 십일조를 낸다. 신앙생활은 신만을 믿어야 하는 게 아니다. 개신교를 통해서 찾는 정의 사랑은 사회적인 정의 사랑과 같다. 십일조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 정의를 세우는 데 보태야 한다.”

민경자도 동의했다. 월급의 십 분의 일을 뗀 돈으로 여러 시민단체에 후원자로 가입해 회비를 냈다. 회비만 내는 게 마음에 차지 않아 여러 투쟁 농성장을 지지 방문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간 곳이 밀양이었다. 그때가 2013년 10월경으로 밀양 송전탑 투쟁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처음 간 날 밀양 할매들이 반겨 줬다. 단체도 아닌, 아무런 연고 없는 부부가 왔다고 신기해했다. 할매들은 송전탑 투쟁보다도 연대자들 밥이 먼저였다. 그리고 잠자리 걱정이었다. ‘밥 먹고 가라, 자고 가라’가 할매들이 달고 다니는 말이었다. 그 할매들에게 다음에 온다는 약속을 했다.

약속을 했던 할매들에게 미안해 다음 주 10월 9일에도 방문했다. 그때는 밀양 할매와 연대자들이 함께 노숙을 했다. 침낭에서 자는데 45도 되는 언덕배기라 자꾸 미끄러져 내렸다. 자다가 잠결에 발로 밀어 올렸다. 그런 곳에서 밀양 할매들이 자면서 한전 직원과 깡패 같은 용역들과 싸운다는 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밀양 할매를 만난 경험이 부부가 전국 농성장들을 지지 방문하게 된 계기였다.

부부는 휴일마다 농성장을 찾아다녔다. 청도송전탑,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삼척 동양시멘트, 구미 스타케미컬, 부산 생탁 택시 농성장, 만덕 재개발지구, 서울에 있는 재능 농성장, 인권위 광고탑에서 고공농성하고 있는 기아차 비정규직, 콜트콜텍, 세월호 참사가 터진 팽목항 등 한 달에 두세 번은 돌아다녔다. 2015년에는 긴 여름휴가를 아예 전국에 있는 농성장을 돌았다. 휴가 이름도 ‘전국 농성장 투어’였다.

“전에도 희망버스를 타고 단체로 농성장 방문을 자주 했지만, 우리 부부끼리만 가면 외롭게 고립돼 싸우고 있는 그이들이 더욱 힘을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단체가 아닌 일반인들도 우리 사정을 알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기 전에 먼저 농성하는 분 전화번호를 알아내, 우리가 간다고 전화를 한다. 그러면 관계가 더욱 깊이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2014년 1월, 박지호가 강릉으로 발령이 났다. 강릉에서도 휴일마다 농성장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강릉역 교차로에서 토요일마다 1인 시위를 했다. 피켓 내용은 다양하다. “노동자는 쓰다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No! 비정규직 No! 정리해고”, “돈이 아닌 사람이 주인인 세상으로! 진실을 인양하라”, “시험성적으로 미래가 결정되지 않는 사회, 학력차별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나는 시간당 5,580원 짜리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하라”....

시민들 반응은 여러 가지다. 대부분 무관심하지만 어떤 이는 긍정의 미소를 짓고, 어떤 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어떤 이는 박수를 치기도 한다. “나는 시간당 5,580원 짜리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으면, 그런 곳에서 일하고 있음직한 청소년들이 지나가다가 “와, 사랑해요!” 하면서 박수를 치고 지나간다. 그럴 때는 마음이 뿌듯하다. 횡단보도를 건넌 뒤 가지 않고, 건너편에서 피켓에 쓰여 있는 문구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듯한 사람도 있다. 아주 가끔 차를 세우고 “야, 개새끼야! 이 새끼 또 나왔네” 하고 소리를 지르고 얼른 내빼는 자도 있다. 그러면 “야, 개새끼야! 진주의료원 폐업을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데 뭐가 잘못됐어?” 하고 욕을 하지만 차는 벌써 저만큼 달아난다.

민경자는 강릉으로 이사 와서는 무슨 활동을 할까 생각했다. 집 근처에 있던 건물에 시민단체가 모여 있었다. 한살림, 강릉시민행동, 강릉생명의숲, 강릉경실련이다. 층마다 돌아다니며 그날 하루에 다 회원으로 가입했다. 시민단체 관계자가 ‘스스로 와서 가입한 사람은 드물다’고 신기해했다. 민경자는 강릉경실련에 가입을 하면서 지난 총회집을 볼 수 있냐고 부탁했다. 재정이 너무 약했다. 회원도 별로 없고, 활동도 없었다. 한살림은 재정은 튼튼했지만 지역단체와 연대가 전혀 없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 세월호 참사 내용으로 조합원 교육도 하고 분향소도 차리고 서명도 받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활동할 일이 없어 그냥 회원으로 남았다. 가장 많이 활동한 단체는 강릉시민행동과 강릉생명의숲이다. 그 가운데 강릉생명의숲에서는 ‘숲을 사랑하는 모든 회원의 모범’이 됐다고 상까지 받았다.

이들 부부는 강릉이 삶의 전환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우선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신영극장이라는 독립영화 단체에 참여하면서 솔아 같은 젊은이도 만났다. 탄광 노동하던 여자와 용산 대책위에서 활동하던 부부가 귀농해 복숭아 농사꾼으로 살고 있는데 그이들하고도 친해졌다. 그 밖에 귀농한지 3,4년 된 사람들도 만났다. 틈만 나면 가서 농사일을 도와주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다. ‘사는 데 욕심을 버려야 한다’, 강릉에서 깨달은 것이다.

“관계망이 넓어지면 특별히 노후를 준비하다든가 할 필요가 없다. 관계 자체가 자산이다. 어울려서 살면 된다. 나는 이 일, 너는 저 일, 서로 잘하는 걸 하면서 나누고 살면 삶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진주 내려갔을 때 노후 준비 어떻게 하나 생각했는데, 여기서 조금 버는데도 나름대로 의미 있게 사는 걸 보고, 삶의 불안이 없어졌다. 시골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진주에서는 빵을 먹었는데 여기선 아침저녁 밥을 먹게 된다. 계속 농산물을 받으니까 그걸 소비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 부부가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도 독특하다. 아이들은 모두 대안학교를 보냈다. 깊은 뜻은 없었다. 다만 공교육을 불신했다. 둘 다 대학 수능거부 선언을 하고는 가지 않았다. 큰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 동안 부천 아이쿱 생협 직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올해는 2년제 지식순환협동조합대안대학을 들어갔다. 둘째는 진주 새노리라는 공연 단체에서 1년 동안 단원으로 활동했다. 군대를 갔다 오고 난 뒤 현재는 서울 OO제과점에서 일하면서 빵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다.

부부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만 나오면 경제적인 것까지 독립을 해야 하는 걸 원칙으로 세워 놓았다. 그래서 큰아이에게 늦게 들어간 대안대학교 입학금과 생활비도 앞으로 5년 안에 갚겠다고 하는 상환계약서를 받아 놓았다. 물론 이자까지 쳐서 받는다. 전에도 50만 원씩 1년 동안 빌려 준 600만 원도 돌려받았다. 작은아이는 가게 기숙사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들 부부는 그런 아이들한테 고마워한다.

“아이들이 그런 삶에 동의를 해주고,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고 있는 게 정말 고맙고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박지호, 민경자는 내년 1월에 다시 진주로 내려간다. 거기서는 또다시 주말부부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부부는 그렇게 가끔 떨어져서 사는 게 좋단다.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 닭살 부부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든 농성장 지지 방문은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점점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농성장지지 방문뿐이 아니라 문선대들이 하는 율동을 보여주기로 했단다. ‘부부사기단’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그 이름엔 두 가지 뜻이 있다. 자기들이 율동을 보여주면 사기가 오를 것이라는 의미로 ‘부부사기단’이기도 하고, 아니면 율동을 너무 못해서 ‘사기 쳤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부부사기단’이다.

그래서 요즘 아주 촌스러운 몸빼 바지를 입고 ‘불나비’를 연습하고 있다. 집회 가면 모두들 청바지나 등산 바지를 입는데 몸빼 바지 입고 가면 오히려 신선해 보이지 않을까 해서 사 입었다. 오늘도 이 부부는 ‘불나비’ 노래에 맞춰 율동을 연습하고 있다.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밤이면 밤마다 자유 그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