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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람을 날로 새로워지게 하라(고후4:16-18)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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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1월 02일 (토) 20:27:08 [조회수 : 1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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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장 16-18절

속사람을 날로 새로워지게 하라

 

가. 육신의 낡아짐으로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 세월이 흘러가면서 육신(겉사람)은 차츰 낡아지게 되어 있다. 육신이 낡아지는(수동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세월이 가면서 늙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그런데 육신의 낡아짐으로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바울은 육신이 낡아지더라도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였다. 이는 신앙인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 본문에서 ‘낙심하다’(엑카케오)는 ‘마음을 잃다’ 즉 ‘불타던 마음의 열정이 꺼지다’라는 뜻이다. 육신이 낡아짐에 따라 모든 선의를 잃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도는 하나님의 섭리,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한다. 솔로몬이 육신의 낡아짐을 받아들인 말씀을 참조하라(전12장).

* 육신의 낡아짐으로 실망할 수는 있으나 이는 아주 위험하다. 우리가 낙심함으로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성도는 육신은 낡아지더라도 오히려 속사람(인격)을 날로 새로워지게 해야 한다. 그런데 육신의 낡아짐으로 낙심하는 사람은 속사람이 새로워지게 하는 일에 실패하기 쉽다.

 

나. 속사람을 날로 새로워지게 해야 한다.

16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 날이 갈수록 우리의 겉사람인 육신은 낡아진다. 그러나 성도는 우리의 속사람마저 낡아지지 않도록 속사람을 잘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도록 힘써야 한다.

* 여기서 ‘새로워지다’(아나카이노오)는 위를 향하여 더욱 성숙해지고 인격적으로 완전해지는 것을 말한다. 육신이 낡아짐에 따라 낙심하여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욕망에 휩쓸려가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죽은 고기는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떠내려가지만 산 고기는 물살을 헤치고 위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는 것에 비유된다. 속사람이 새로워져야 역경(늙음)을 이기고 승리한다.

*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성도는 육신이 낡아지더라도 더욱 건전한 정신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본문에서 ‘새로워지다’(수동태)는 사람의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을 보여준다. 인생은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지만 보배가 되시는 주님을 모시면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7-10절 참조).

 

다. 성도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18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을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성도는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육신의 세계에 집착하지 말고 영생의 세계를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육신은 낡아지더라고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속사람을 새로워지게 하는 비결이다.

* 육신의 삶은 긴 것 같지만 실상은 순간에 지나간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다(시90:10). 또한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라고 하였다(시90:5). 육신은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 되지 못한다.

* 성도는 영원한 세계를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하다’(스코페오, 분사형)는 흐트러지지 않고 항상 주시하는 것을 말한다. 눈에 보이는(분사형) 것들도 항상 있어서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삼층천에 다녀온 경험으로 항상 보이지 않는 세계를 주목하면서 경건하게 살았다.

 

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아름답게 한다.

17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려 함이니...”

* 바울은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받는 환난을 잠시 받는 것이요 가벼운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바울이 당한 환난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오직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광을 바라보고 환난을 기쁨으로 감당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신앙의 신비에 속한다.

*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이는 내 멍에는 쉽고(가치 있고) 가벼움이라”고 하셨다(마11:29-30). 예수님이 지신 멍에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영원한 나라의 영광이 멍에를 쉽고(가치 있고) 가볍게 질 수 있도록 만든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아름답게 한다.

* 죽음을 체험했던 사람들, 특별히 천국과 지옥을 체험한 사람들은 삶의 변화를 체험한다. 보이는 세상에 속하여 먹고 마시는 일에 집중하던 사람들이 그 후에는 고상한 일을 추구하게 된다. 이기적이던 사람들이 이타적인 사람이 된다. 어둠에 속하여 살던 사람들이 빛 가운데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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