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오후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 너는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형님한테 크리스마스 인사도 않냐?” 나는 그의 말을 되받았다. “동생이 인사해오기를 기다렸지. 확실히 너는 인사를 아는구나. 크리스마스 칸타타 연습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고 말하자, 그 친구는 “야 네 나이에 무슨 칸타타냐?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고문 노릇이나 하면 되지.”라고 대꾸했다. 이 친구는 몇 해 전에 찬양대를 그만두고 지금 고문노릇을 하고 있다. 이 친구는 진즉부터 나에게 찬양대를 그만 두라고 말했지만, 찬양대에서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리고 찬양대를 그만 두면 교회에서 봉사할 일이 없어지겠기에 나는 계속 찬양대석을 지키고 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찬양대 이야기가 나오자 이 친구는 교회에서 풀릇 독주를 하다가 실수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집에서는 잘 되는데 사람들 앞에 서면 꼭 실수를 한단다. 두 곡 중에서 한 곡은 잘 해냈는데, 두 번째의 ‘아르르 여인’ 중의 미뉴엣에서 실수를 하고 보니 나이 든 사람이 민망스러워져서 풀릇을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자기야 말로 방안 퉁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자존심 강한 이 친구가 이번 실수로 크게 상처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우기 어려운 악기를 너무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다음부터는 악보를 보면서 하면 긴장감이 적어져서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도 노래하면서 가사를 깜빡한 일이 있는데, 그 후부터는 가급적 악보를 보면서 노래한다고 덧붙였다.

이 친구는 교회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자기네 교회 목사의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믿음이 중요하다고,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반복적으로 말하는데, 아주 기본적인 말을 거듭하기 때문에 여러 번 듣다 보니 어머니 잔소리처럼 지겨워졌다고 했다. 유치부로부터 시작해서 70년 가까이 판에 박힌 말을 계속 들어 왔기 때문에 이제 설교 시간에 졸리기만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졸면 존다고 자기 부인이 다그치니 이제 아예 설교 시간이 싫어졌단다.

그래서 나는 ‘그거 큰일이구나. 원로장로가 그렇다면 그 교회에 문제가 크겠다.’고 농담조로 받아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교인들 가운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리고 가끔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맞장구를 쳤다. 내가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은 바울 서신을 중심으로 믿음을 강조하는 분이었다. 거의 매주일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있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설교에 감동이 없다고, 목사님이 매주일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한다고 불평했다. 그러면서 하나 둘 다른 교회로 옮겨갔다. 그런데 다른 교회에 가도 별 수 없을 것이다. 교인들은 여기 저기 오아시스를 찾아다니다가 가나안 교인이 되고 만다.

내 친구의 이야기는 이렇다. 믿음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란다. 그러나 교회에 여러 해 나오는 사람들은 교회에 처음 나올 때 그런 교육을 받고, 또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니까, 주일마다 혹은 해를 거듭하면서 믿음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어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우리가 평소에 느낀 것이나 경험한 것이 목사의 이야기와 비슷하거나 같아서 목사의 말이 내 마음의 코드를 울릴 때 심금이 울리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인들의 실제 삶과는 거리가 먼 추상적인 이야기만 하니까 전혀 동감하는 것도 감동할 만한 것도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이어서 내가 어느 신약신학을 전공하는 교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그 신학교수에게 로마서에서 강조하는 믿음과 마태복음에서 강조하는 행함이 다른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질문한 일이 있었다. 그 신학자는 로마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로 초신자들을 위한 것이고, 마태복음에서 강조하는 것은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다고 말했다. 수십 년을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주일마다 믿음에 대한 것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그 친구의 말대로 듣는 사람이 지루해질 만하다.

그 친구의 말이 수긍할 만해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30분 이상 통화했었던 같다. 집사람이 방문을 열고 무슨 전화를 그렇게 오래 하느냐고 잔소리를 했다. 지난번에 이 친구가 비슷한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때 나는 『마리 앙뜨와네뜨』를 재미있게 읽던 참이라 바쁘다고 말하면서 전화를 잘랐었다. 이번에는 교회에 다녀와서 쉬고 있던 참이고 그가 구구절절 내 마음에 드는 말을 골라 했기 때문에 그칠 줄 모르고 이야기가 이어져 갔다. 그의 풀릇 이야기에 이어서 내가 어느 모임에서 노래한 이야기, 교회 이야기, 그가 이사한다는 이야기, 내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는 내가 보내준 책을 잘 읽었다고 하면서 교회 지도자들이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죄의식이 없는 것은 그들이 루터를 따라서 믿음을 강조하고 행위를 외면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책에 줄을 쳐 가면서 읽고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책이니 읽어보라고 말하면서 빌려주었단다. 까다로운 이 친구가 내 책을 인정해주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서 『착각에 빠진 한국교회』에 대한 반응이 좋다고, 우리교회의 박 집사님도, 이 집사님의 사촌도 하루 만에 그 책을 다 읽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감동을 받았다고 혹은 깨달은 점이 많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더 할 말이 있었지만, 내 책에 대한 반응이 아주 좋다고 자꾸 말하면, 친구는 의기소침해 있는데, 자랑이 너무 심해질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어떻든 저자의 입장에서는 독자들이 자기 책을 좋아하는 것처럼 기쁜 일이 없다.

내 말이 끝나자 이 친구는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한번은 집안에 일이 있어서 형님들이 자기 집에 오셨는데, 주일에 같이 자기 교회의 예배에 참석했단다. 형님들도 모두 장로라서 예배를 마친 후에는 자연스럽게 교회에 대한 이야기, 그날 들은 설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단다. 그 자리에서 이 친구가 목사의 설교에 대해서 하는 말에 형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의하면서 신앙이 생활과 관련이 있어야 하고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그 교회 목사의 설교는 너무 원론적이어서 감동이 없더라고 말했단다. 주일마다 그런 설교를 한다고 하니까 한국 목사들의 대부분이 그런 수준이라고 답하더란다.

내가 전에 나가던 교회에서 교인들이 목사의 설교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할 때 나는 찬양에 힘쓰면서 목사의 설교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찬양대에서 찬양하면서 찬양을 통해서 감사를 느끼고 감동을 받았을 뿐 아니라, 내 나름의 시각에서 성경을 보면서 거기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주일이나 수요일에 목사가 이야기하는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목사의 설교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목사의 설교 내용이 뜬 구름 잡는 것이냐 감동을 주는 것이냐가 아주 중요했던 모양이다. 내 친구의 말대로 주일마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추상적인 이야기만을 듣는다는 것은 지겨울 것이다. 왜 목사들이 그렇게 교인들의 삶과 맞닿지 않는 추상적인 혹은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까?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이 세상에 관심이 없고 세상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는데, 목사들은 세상에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교회라는 우물 안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우물 밖의 세계에 대한 관심도 이해도 부족하다. 목사들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교회에서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의 교육을 거치고 나서 담임목사로 안수를 받는다. 젊은 시절에도 담임목사가 된 후에도 계속 교회 안에서만 생활한다. 우물 밖에는 해가 비치는 쾌청한 날이 있는가 하면 비가 오는 음울한 날도 있고,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여름이 있는가 하면 꽁꽁 얼어붙는 겨울도 있다. 그런데 목사들은 그런 외부 날씨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교회라는 온실 안에서 살기 때문에, 교인들이 살아가는 험한 삶의 현장을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목사와 교인들이 사는 세계가 이렇게 서로 다르니까 목사의 이야기가 교인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한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목사들이 있다. 그런데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한다면, 그 성경해석은 성경이 기록된 3,000년이나 2,000년 전에 살았던 인간의 사고와 경험 안에서 맴돌게 된다. 그런데 그 오래 전의 사고와 경험은 현대의 것과 아주 다르기 때문에 옛날의 음조에 맞춘 목사들의 노래 가락은 현대인의 심금에 공명을 일으키지 못한다. 청중의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 이야기, 교인들이 공감하지 않는 추상적인 이야기 소리는 허공으로 날아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성경만을 가지고 성경 안에서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성경의 내용을 현대인의 삶에 적용시키거나 현대인의 삶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내 친구의 형님들은 교인들이 동감하고 감동하는 설교를 하려면 풍부한 경험이 필요하고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단다. 다양한 경험을 직접 하기 어렵기 때문에, 문학작품이나 신문을 통해서 간접 경험이라도 해야 하고 많은 책을 읽어서 현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대인이 어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지, 현대인의 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단다. 참 옳은 말이다.

현대인의 삶을 이해하려면 다양한 독서를 해야 한다. 문학, 역사, 경제, 철학, 심리, 과학 등 여러 학문분야의 책은 물론이고, 일간신문, 여성잡지, 심지어 연예인들에 관한 잡지까지도 두루 읽어야 한다. 어느 신학대학 교수가 신학대학에서 ‘철학입문’을 설강했다가 수강하는 학생이 적어서 폐강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한 일이 있다. 나도 ‘성경과 문학’을 가르치다가 수강생이 적어져서 폐강된 일이 있었다. 목사들이 다양한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은 신학교의 풍토나 교육과정의 탓도 있는 것 같다.

다른 데서도 이야기 한 일이 있지만, 한번은 미국에서 신약학으로 Ph. D. 학위를 받고 모 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시면서 수십 권의 신앙서적을 낸,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목사님과 대화하다가 내가 문학 이야기를 꺼낸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내 이야기를 많이 듣지도 않고 ‘그것 인간에 대한 이야기 아니요!’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분의 부인이 소설가인데도 문학에 대해서 반감을 표시하는 그 말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실 만큼 하나님이 끔찍이 사랑하시는 인간을 외면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인간을 잘 지도할 수 있을까? 참 안타까운 일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에 관해서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말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도 말한다. 구약에 제시된 십계명을 보아도 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에 관한 계명이지만, 나머지 6가지 계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가르침이다. 십계명의 비율에 따르면 목사의 설교는 40%가 믿음에 관한 것이고 60%가 삶에 관한 것이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내 친구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30%, 삶에 관한 이야기가 70%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자기네 교회 목사는 95% 이상을 믿음에 관해서 말하기 때문에 답답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외에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일용할 양식, 죄의 용서,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우리 삶의 여러 국면에 대해서도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의 새들백교회는 지역사회에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성공했다고 한다. 이 교회의 성공을 통해서 우리는 교회가 우선적으로 현대인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파악하고 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풀어주려는 노력 없이 믿음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구약의 계명이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인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친구의 불만을 들으면서 동감하는 점이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 교인들의 태도에는 네 가지가 있다.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문제를 알면서도 침묵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그 문제에 대해서 불평만 하는 사람이 있고, 그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 문제를 알면서도 입을 다문다. 좋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네 부류 가운데서 진정으로 교회를 걱정하는 사람은 개선책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목사의 설교를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는 친구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이 친구는 이 교회에서 건축위원장을 맡았었고 지금 시무하고 있는 목사를 모실 때 청빙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누구보다도 자기 교회를 사랑하는 신실한 사람이다.

아내는 연속극 하나가 끝날 동안 계속 전화를 한다고 성화였다. 자기는 전화에 대고 마냥 별 의미도 없는 수다를 떨면서 내가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대해서 말이 많다. 집사람이 내 방을 들락거리면서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오늘은 통화가 너무 길어졌으니 그만 끊자고 말했다. 요즘 집사람의 잔소리가 심해졌다. 어떻든 그 친구나 나나 이제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에 생각도 말도 많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