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떽쥐베리는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로 유명하다. 작가요, 프랑스 자유군 장교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1944년 7월 31일 코르시카 섬을 떠나 프랑스 남부해안 그르노블-아네시 지구를 정찰하던 중 비행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실종 54년 후, 우연히 사망원인에 대한 단서가 발견되었는데, 생떽쥐베리(Antoine de Saint-Exupery)란 이름이 새겨진 은팔찌가 비행기 잔해와 함께 지중해의 한 넙치 잡이 어부의 그물에 걸린 것이다.
 
  작가는 용기 있는 조종사였다. 그의 모험심은 북서아프리카와 남대서양, 남아메리카 항공로의 개척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게 하였다. 그를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이러한 행동주의 작가로서 모습 때문이다. 스페인 시민전쟁에서는 ‘파리 쓰와르’지 특파원으로 파시스트와 맞선 시민군의 편에 섰고, 또 이미 제대한 44살의 나이임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나치에게 저항하였다. 애초에 그는 항공부대에서 비행기를 수리하는 병사였다고 한다.
 
  그는 숱하게 비행기 사고를 겪었다. 몇 번씩 공중에서 추락하여 중상을 입고, 체포당했으며, 구조 받은 경험이 있다. 이런 극한적인 경험들은 오히려 그의 생애를 풍요롭게 하였다. ‘남방 우편기’(1928), ‘야간비행’(1931), ‘인간의 대지’(1939) 그리고 ‘어린 왕자’(1943)와 같이 인간의 순수한 내면을 그려낸 수채화 같은 이야기들은 이렇게 태어났다.
 
  ‘미소’라는 이야기도 썼다. 적에게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 생떽쥐베리는 죽음을 앞두고 간수에게 담뱃불을 빌렸다. 성냥을 켜주던 간수와 눈빛이 마주친 그 순간 생떽쥐베리는 괜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불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미소는 간수와 마음의 간격을 좁혀, 그 역시 미소 짓게 하였다. 간수와 포로가 사이에 인간적 연민이 끼어들었다.

  간수가 “혹시 애들은 있소?”라고 묻자, 포로는 지갑을 찾아서 떨리는 손으로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간수도 자기 아이들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이런저런 꿈을 말했다. 생택쥐베리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더 이상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볼 기회가 없을 것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간수의 눈빛도 붉어졌다. 갑자기, 간수는 말없이 감방 문을 열더니, 그를 이끌고 뒷길로 인도하여 놓아주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감옥으로 되돌아갔다.

  ‘어린 왕자’는 독일군 점령 아래에 있던 프랑스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헌사 한 작품이다. 애초부터 ‘어린 왕자’는 어린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동화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어른이 되고나서야 이 책을 읽는다. 스테디셀러로 여전히 영향력을 가진 ‘어린 왕자’가 라디오 심야음악방송에서 청취자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많은 인용구절을 자랑하는 배경이다.
 
  이미 어른이 된 세대는 감수성이 많던 자신들의 사춘기를 회고하며 또 한 번 ‘어린 왕자’를 들춰본다. 그리고 ‘잠언’(箴言)처럼 들리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뿐 아니라, 행간과 여백 구석구석에 감춰진 꿈보다 영롱한 보석들을 찾아본다. 어린 왕자가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라며 독자가 꿈꿀 몫을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한 해가 다 지나가고 대림절(Advent)을 맞고 있다. 돌아보면 우리가 어려서 경험한 성탄절은 바로 어린 왕자의 세계였다. 아기 예수, 주님은 가장 가난한 어린 왕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성탄의 의미에 동화적 상상력을 선물하였고, 어린 아이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새 세상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냉정한 현실에 닳고 닳은 우리는 화려한 성탄 분장 속에 감춰진 아기 예수를 잃어버리고는 한다.
 
  사실 ‘어린 왕자’는 다 자란 어른들의 가슴 속에 깊이 묻어둔 꿈으로 빗어낸 어린 시절의 신화(神話)였다. 너무나 익숙해 스스로 잊고 살았던 일상의 세계에서 어린 왕자의 눈빛으로 동심의 보석을 하나씩 줍는 일, 그것은 내 마음 속에 크리스마스의 별빛을 채우는 그런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