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8년 네델란드의 화가 헤라르트 다비트(Gerard David)는 자신이 태어난 브뤼헤(Brugge)시로부터 그림을 한 점 의뢰받았다. 시는 시청사 건물에 걸어둘 그림을 고향 출신의 유명 예술가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시측은 이 그림이 이곳에서 일할 공무원들에게 뭔가 교훈을 안겨줄 그림이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그렇게 하여 이른바 시청사 ‘정의의 홀’에 걸릴 그림이 탄생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캄비세스의 재판>이라는 그림이다.

그림의 주인공 캄비세스 2세는 페르시아의 왕으로 6세기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성경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레스왕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림에는 한 남자가 형벌을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팔과 다리, 가슴 복판의 가죽을 칼로 도려내고 있는 매우 잔인한 형벌의 그림이다. 심지어 왼쪽 다리는 거의 절반이나 가죽을 벗겨낸 채로 드러나 있는 모습이다. 도대체 이 사내는 누구고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기에 이렇게나 잔인한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형벌을 받고 있는 사람은 시삼네스라는 이름을 가진 재판관이었다고 한다. 시삼네스는 언젠가 뇌물을 받고 부정한 판결을 내렸는데 이 소식이 캄비세스왕의 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캄비세스왕은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 가장 잔혹한 형벌을 그에게 내렸다. 그가 가장 공정했어야 할 재판관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욱 가혹하고 준엄한 형벌은 그가 죽은 다음에 계속되었다. 왕은 이 부정한 재판관의 가죽을 벗겨 재판관의 의자에 씌우고 다음에 임명할 재판관이 바로 그 의자에 앉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왕은 시삼네스의 아들을 다음 재판관으로 임명했다.

다비트는 형벌과 의자 이 두 가지 사실을 한 그림 안에 모두 넣었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전면의 아버지 모습 뒤 오른편 상단에 아버지의 가죽으로 덧씌워진 재판관의 의자에 앉아있는 아들의 모습을 자그마하게 그려넣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가죽 위에 앉은 아들, 화가는 이렇게 이 잔인한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 자신의 고향을 관리하게 될 공무원들과 법관들에게 준엄한 경계의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이제 12월, 모든 모임과 기관, 부서와 조직들이 새로운 임원과 지도자들을 뽑게 되는 계절이다. 그런데 이 계절은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장(長) 자리에 욕심내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보게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굳이 12월이 아니더라도 이 사회는 지금까지 언제나 우두머리 자리에 대한 천박한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의 가죽 위에 앉을 각오. 어쩌면 한 무리의 장(長)이 된다는 것은 이 정도의 각오를 의미할 것이다. 적어도 그 정도의 경계를 마음에 품은 사람들만 감히 그 자리에 가고자 했으면 좋겠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 1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