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에서 군위안부 문제는 오랫동안 걸림돌이 되어 왔다. 그 하찮은 문제를 놓고 왜 두 국가 간에 이렇게 소모적인 신경전을 벌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군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한국을 침탈해서 저지른 여러 가지 만행을 대표할 만한 사건이기 때문에, 일본이 그 만행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은 한 한국 정부로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오랜만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가 거론되는 듯했지만, 이 회담의 결과 이 문제가 속 시원하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때에 가해자인 일본의 입장에서 근대 동양사를 쓴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다. 일본은 그들이 한 일을 자기들 중심으로 정당화하면서 그들이 한국을 다스린 것은 한국인들이 원한 것이었다고, 한국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국인들은 게으르고 미개한 사람들이었는데 자기들이 도와주어서 한국이 조속히 개화되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그런 역사기록을 피해자인 한국인들이 읽는다면 분통이 터질 것이고 한국인들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반대로 한국이 근대 동양사를 쓴다면 일본이 쓰는 것과는 아주 다르게 기록할 것이 틀림없다.

역사의 기록은 객관적이어야 하겠지만, 누가 기록하느냐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해서 찬반논란이 많았는데,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서 기록하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인 기록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축자영감설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성경의 내용에 인간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보지만, 성경을 전승의 편집이라고 보는 성서신학자들은 그 전승과 편집의 과정에서 인간의 생각이 가미되었다고 본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는데, 구약의 기록에서도 승자의 입김을 발견할 수 있다.

▲ 구에르치노의 다윗을 공격하는 사울, Guercino, Saul Attacking David 1646, Oil on canvas, 147 x 220 cm ,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승자의 기록

어느 구약학자는 다윗이 성군으로 기록되고,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리고 왕권에 눈이 어두워서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한 간악한 사람으로 그려진 것은 승자인 다윗의 자손들이 구약을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윗이 어린 나이에 물맷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다는 기록은 개국시조의 성장설화가 연상될 만큼 그의 신앙과 용맹이 과장되어 보인다. 구약을 기록한 다윗의 자손들이 그들의 조상 다윗을 영웅적인 인물로 그리려고 노력한 흔적을 골리앗 사건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족장사에 기록된 다윗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의 삶이 과장되어 있거나 미화되어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다윗은 이웃 부족들을 쳐서 이스라엘 왕국을 견고하게 하고 태평성대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자재를 준비한, 정치적으로 신앙적으로 위대한 왕이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기록자들이 다윗이야 말로 왕이 될 만한 훌륭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앞에서 언급한 골리앗 사건 외에도 다윗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을 두 번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도 죽이지 않으면서,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왕을 인간의 손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사무엘서의 기록자는 다윗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신앙과 덕을 지닌 인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미화는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나타난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위태로운 전장에 내몰아서 죽게 만든 이중의 죄를 지은 후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 회개했다고 그에게 면죄부를 준다. 설교자들은 다윗이 회개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실상 그는 진지하게 회개한 것 같지 않다. 그는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가 죽을 병에 걸린 것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밧세바를 버리거나 최소한 멀리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밧세바를 버리기는 고사하고 총애해서 둘째 아이 솔로몬을 낳았다. 여기서 그의 회개가 말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당시 왕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용인되었다고 그의 행위를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단 선지의 지적대로, 우리아의 아내를 성폭행하고 그녀의 남편을 죽인 것이 죄라면, 우리아를 죽인 다음에 밧세바를 그의 아내로 취한 것은 죄가 아니란 말인가? 이 두 가지는 별도의 행위가 아니고 연계된 행위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 아이가 죄의 씨라면 둘째 아들 솔로몬도 죄의 씨다.

사무엘서에서는 여호와께서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 12:10)고 다윗을 저주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범하고 압살롬이 다말이 당한 것을 복수하기 위해서 암논을 죽였다. 그리고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게 맞서서 싸움을 벌인 것도 저주의 일환이다. 이 저주는 솔로몬의 아들 대에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싸우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남북으로 갈려서 동족끼리 싸우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역대기와 열왕기의 기록자는 사울보다 다윗이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밧세바를 총애하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 다윗의 실수는 지적하지 않고 넘어간다. 반면 밧세바의 아들을 왕으로 세운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일천 번제를 드리고 지혜로운 재판을 한 훌륭한 왕이었다고 아주 장황하게 솔로몬을 치켜세운다. 특히 스바의 여왕까지 동원하여 솔로몬의 행위와 지혜를 강조한다.

특히 열왕기에서는 3장에서 10장까지 여덟 개의 장에서 솔로몬을 장황하게 성군으로 치켜세우고 나서, 솔로몬이 거느린 7백 명의 후궁과 3백 명의 첩을 거느린 것, 그들을 통해서 들어온 이교도의 신과 우상숭배로 이스라엘이 타락하게 된 것 그리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솔로몬의 나라를 그의 아들에게서 빼앗겠다는 하나님의 저주에 대해서는 11장 단 한 장에서 아주 짧게 언급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역대기에서는 다윗과 솔로몬을 이상화하면서 솔로몬의 실수도 그에 대한 여호와의 저주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에 사울이 죽게 된 것은 그가 여호와 앞에서 죄를 범하고 신접한 자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사울의 허물을 지적한다(역상 10:11),

특히 열왕기와 역대기에 나타나는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기록의 차이를 살펴보면 전승을 편집한 사람에 따라서 두 왕에 대한 구약의 기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무엘서와 열왕기에서도 다윗을 성군으로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이지만 거기서는 그들의 실수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가 간략하게나마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역대기에 오면 다윗과 솔로몬의 실수는 감추고 장점만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들의 실수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사울의 범죄와 실수만이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에 대해서 사울은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내가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특히 역대기의 편집자는 다윗과 솔로몬을 이상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승자인 다윗의 자손이 다윗과 솔로몬에 관한 것을 기록했기 때문에 사울이 폄하되고 다윗이 성군으로 미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구약학자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일반 역사의 기록에서와 마찬가지로, 성경에서도 누가 승자인가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선민의 기록

그러한 시각에서 보면 에서와 그의 자손 아말렉이 악한 사람들로 기록된 것은 선민의 조상인 야곱의 자손이 구약의 전승을 수집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많은 설교자들이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의 허물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 일 후에 아버지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한 것을 보면, 그 팥죽 사건은 장자의 축복을 박탈당할 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창세기 기록자는 장자권을 판 것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창 25:34) 여긴 탓이라고 에서의 어리석음을 언급하지만, 야곱이 그가 받을 장자의 축복을 야곱이 훔친 것을 안 후에 에서가 아버지 이삭에게 그 축복을 애타게 간청하는 것과 야곱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으로 보아서, 실상 그는 장자의 축복을 가볍게 여긴 것 같지 않다.

야곱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술책을 쓰기 좋아하는 간교한 사람이었다. 그가 출생할 때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것에서도 지지 않으려는 그의 경쟁심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거짓말을 해서 에서가 받을 축복을 빼앗았고, 나반의 집에서는 술책을 써서 얼룩진 양들을 많이 만들어서 자기에게 돌아올 양의 수를 늘렸다.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만, 실은 에서가 받을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훔친 것이다. 야곱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형과 삼촌을 속인 사기꾼이었다.

그런데 선민의 조상이 된 야곱의 자손이 창세기의 전승을 편집했기 때문에,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에 이어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추앙되고 반대로 버림받은 에서는 악한 사람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에서는 우둔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야곱이 예상한 것과 달리, 지난날의 원한을 버리고 동생을 맞아들였다. 그리고 그들 형제가 가축을 기르면서 화목하게 살다가 그들의 가축이 많아져서 땅이 좁게 되었을 때, 에서는 그가 터 잡고 살던 곳을 동생에게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나갔다. 이렇게 에서는 동생을 용서하고 동생에게 양보한 착한 형이었다. 이러한 에서를 죄악의 상징이라거나 사탄의 세력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실상을 왜곡하는 일 아닌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왜곡하는 일이라고 분개하는 분들이 없지 않겠지만, 열왕기와 역대기에 나타난 편집자의 입김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말라기 1장에서 보면 여호와는 동생인 야곱을 사랑하고 형인 에서를 미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여호와는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3)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에서의 자손이 사는 땅 에돔을 “악한 지역”이라고 말하고 에서의 자손을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4)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철저하게 여호와에게 미움을 받은 에서는 “나는 그렇게 저주받을 만큼 악한 일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 자손까지 그렇게 여호와의 진노를 받을 만한 일을 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항의할 만하다. 에서는 야곱의 자손들이 기록한 것들을 해체해야 한다고 자기의 입장에서 구약을 쓴다면 아주 다른 기록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항변에는 수긍할 만한 점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패자인 에서의 항변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의 설교자들 가운데는 에서는 악한 인간이라고 그의 자손 아말렉은 죄성의 상징이며 사탄이라고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은 영적 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너 왔을 때 아말렉이 그들을 공격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여호와가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출 17:14)고 한 말과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리라”(출 17;16)고 한 말을 인용한다.

그런데 아말렉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그들이 사는 땅에 이스라엘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400년 이상 이스라엘의 행방을 모르고 살던 아말렉은 그들의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이 그들과 같은 조상의 자손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들은 단지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의 영역을 침범해온 외부 사람들을 몰아내려고 했다. 이러한 아말렉의 공격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여호와가 당신이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공격했다고 해서 아말렉에 대해서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고 저주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인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아말렉은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왜 너희들은 우리 땅을 침범했느냐? 우리는 우리와 너희들과의 관계를 알지 못했다. 우리가 알았더라면 에서가 야곱을 대한 것처럼 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외부인으로부터 우리 땅을 지키려고 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이냐? 모든 인간을 창조한 여호와가 너희들만을 사랑했지 우리 부족은 멸절시키겠다고 했다니 그렇게 여호와의 편애가 심하단 말이냐? 우리도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손이니 여호와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

설교자들은 신명기에도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말씀이 기록되었다고 신명기를 인용한다. 신명기 25장에서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그들을 공격한 것을 언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보면 그들이 이스라엘을 전멸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들을 공격한 것이 아니고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18) 쳤을 뿐이다. 아말렉은 자기들의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을 쫓아내려 한 것이지 그들을 전면 공격해서 그들을 몰살하거나 그들이 가진 것을 탈취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여호와는 그러한 아말렉에 대해서, 출애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19)고, 다시 말하면, 그들을 진멸하라고 명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지나친 반응으로 보인다. 창세기의 전승을 편집한 야곱의 자손들은 에서의 자손들에 대해서 열등감을 느꼈던가?

그랬을 가능성이 많다. 에서의 자손들은 남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신들의 땅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 왔다. 그러나 야곱의 자손들은 애굽에서 파라오의 노예로서 400년 이상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야곱의 자손들은 그들의 손으로 구약을 기록하면서 그들의 조상 요셉이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될 만큼 신앙과 덕이 출중한 인물로 그리기는 했지만, 그 후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파라오의 노예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여호와에게 불순종했기 때문에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던 일을 염두에 둔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가 된 것은 여호와 앞에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드러나는 것은 야곱의 자손들은 구약을 기록하면서 그들의 조상들에 대해서 자랑스러운 것은 과장해서 기록하고 부끄러운 것은 감추어버렸다는 점이다. 여호와에게 불순종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한 기간이 60여 년에 불과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여호와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이 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호와께서는 악을 저지른 이스라엘 민족에게 400년의 혹독한 시련을 겪게 하신 후, 그들이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제 그 참혹한 노예생활을 벗어나서 희망의 땅을 찾아가는 길에서 에서의 자손들이 그들을 공격해 왔기 때문에 그들의 울화통이 터졌을 만하다. 더구나 구약을 기록한 야곱의 자손들은 그들의 조상 야곱이 아말렉의 조상 에서에게 부당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구약에 나타나는 아말렉에 대한 저주는 그들의 조상이 한 일에 대한 죄의식이 가미된 열등감으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의 언행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사무엘상 15장에서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여호와의 명을 전한다. 그들을 진멸해야 할 이유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아말렉이 그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아말렉에 대한 이스라엘의 복수심은 실로 집요하다. 아말렉을 치는데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3)고 한다. 그런데 에서도 그의 후손인 아말렉도 이렇게 잔혹한 복수를 당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복수에 대해서 에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나는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피해자였지만, 그가 돌아왔을 때 그를 받아들였고 같이 살던 땅을 그에게 양보했습니다. 왜 여호와께서는 나를 이토록 미워하고 내 자손을 잔혹하게 멸절하려 하십니까?” 예정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야곱을 택하고 에서를 버리기로 또한 다윗을 택하고 사울을 버리기로 예정하셨다고 말한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도 에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왜 여호와는 욕심 많고 간교한 동생을 택하시고 피해자인 나를 버리셨단 말입니까? 공의로우신 여호와께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택하고 버리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아시는 여호와께서 에서를 그토록 미워하셨을 것 같지 않다. 정말 그랬다면 우리 인간보다 나을 것이 없는, 정확히 말하면 인간보다도 못한 실망스러운 신이다. 에서와 에서의 자손 아말렉을 그렇게 그린 것은 야곱의 자손이 창세기의 전승을 편집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야곱의 자손이 여호와의 선민이 되었기 때문에 족장설화를 편집한 야곱의 자손들은 야곱을 이상화하고 야곱과 경쟁 관계에 있던 에서는 저주받을 사람으로 폄하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후에 열왕기에서 특히 역대기에서 다윗과 경쟁 관계에 있었던 사울이 폄하되고 다윗과 솔로몬이 이상화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야곱의 자손은 다윗의 자손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아야만 하나님을 전능한 분으로, 모든 인간을 지으신 분으로 섬길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고, 당신이 지으신 만물을 사랑하시는 분이고, 진실한 분이고, 공의로운 분이고, 그리고 선한 분이라고 믿는다.

마치면서

야곱의 자손이 편집한 창세기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드린다 하더라도, 에서와 아말렉을   죄성의 상징으로, 사탄의 세력으로 보는 것은 성경의 문맥과 맞지 않는다. 여호와가 어느 부족보다 그들을 미워하고 악하다고 말한 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선민 이스라엘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직후 그들을 공격한 아말렉의 행위가 괘씸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다른 이방 부족에 비해서 특별히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온당한 해석이 아니다.

아말렉을 사탄으로 본다면 이스라엘 외의 모든 족속을 사탄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들 역시 여호와가 지으신 인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사탄의 세력으로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여호와가 자기들만을 사랑한다는 극히 이기적이고 독선적이 선민들의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나왔다. 생존을 위한 부족 사이의 싸움이 치열했던 당시에는 이러한 잔혹한 살상이 용인되었겠지만, 관용의 폭이 넓어진 21세기의 독자들이 그 당시의 사건들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역사적인 안목이 부족한 탓이다. 하나님은 우주를 지으신 분이고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만물을 사랑할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많은 설교자들이 에서나 아말렉을 죄성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그들이 영적 해석이라고 말하는 알레고리적 해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을 사탄이라고 보면서 특히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은 사탄의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알레고리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갖다 붙인다. 한때 많은 설교자들이 은혜롭게 성경을 해석하면 된다고 믿고 영적 해석을 좋아했다. 그러나 성경의 전체 문맥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영해는 성경을 왜곡한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해석학자들은 알레고리적 해석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특별히 가해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글을 읽을 때는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그리고 사려 깊게 앞뒤를 살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본의 입장에서 동양의 근대사가 기록된다면 한국의 근대사가 어떤 내용일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일본인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을 찬탈하여 온갖 만행과 착취를 자행한 일본인들은 한국에 큰 은혜를 베푼 착한 사람들이 되고 한국인들은 주체성이 전혀 없는 우매한 사람들이 되고 말 것이다. 에서나 아말렉에 대한 기록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잠언에서도 송사를 할 때는 어느 한 편의 말만 듣지 말고 양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구나 승자인 야곱의 자손이 에서와 아말렉에 관해서 기록한 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하려면 패자인 에서의 입장도 참고해야 한다. 한일관계에서 가해자인 일본정부가 하는 말에 대해서 피해자인 한국인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처럼, 선택받지 못한 에서는 야곱의 자손이 편집한 구약의 기록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