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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같은 사람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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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1월 29일 (일) 01:16:05 [조회수 :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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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이 점점 짙어가는 계절이다. 가장 어둠이 깊을 무렵인 동지(冬至)의 지척에 빛의 절기가 가까이 위치한 것을 보면, 교회력이 참 신비롭다. 세상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고인이 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79년 유신이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절규했다. 그는 죽음과 더불어 단숨에 명예를 회복하였고, 장례기간 중 ‘닭과 새벽 비유’는 가장 자주 오르내린 잠언처럼 들렸다.

  계절 탓만이 아니라, 여전히 어둠을 틈입하는 세력이 있다. 불순한 어둠의 그림자는 일상의 평화를 거부하고, 끝없이 불화를 생산한다. 어둠은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쌓이게 하고, 사랑의 능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깊은 밤에 절망할 일은 아니다. 밤이 깊으면 그 만큼 새벽도 가깝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밤을 크게 4등분하여 ‘저녁, 밤중, 닭 울 때, 새벽’(막 13:35)으로 나누었다. 어둠이 깊을수록 닭은 목울대를 가다듬고, 새벽은 가깝게 마련이다.

  독일 베를린 근처에 히틀러가 만든 작센하우젠 수용소가 있다. 이곳은 독일의 입장에서는 감추고 싶은 과거의 흑(黑)역사이다. 최근 난데없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우리나라 현실과 비교하면 마치 빛과 어둠처럼 역사교육에 대한 시각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독일에만 작센하우젠 류의 생생한 현장교과서가 수 십 군데 존재한다.

  작센하우젠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수용소이지만, 유대인뿐 아니라 유랑하던 집시, 소수 민족들, 심지어 히틀러에 반대한 독일인들까지 다양하게 수용되어 있었기에 더 유명해진 곳이다. 교육장답게 생체실험을 한 목욕탕, 사형장 등 끔찍한 전시시설들은 당시 짙은 어둠의 상황을 가리지 않고 대명천지에 드러나게 한다.

  작센하우젠 수용소를 관람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곳은 수용소 내부가 아닌 수용소 출입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수용소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외부와 내부로 연결하는 유일한 출입문의 높은 담벼락 위에 그린 둥근 시계였다. 그 시계 그림은 앞 벽과 뒷벽에 똑같이 그려져 있어,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 상상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그 지점에 하필이면 둥근 시계를 그려놓았을까?

  아마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이 절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을 그 둥근 시계는 양면 모두 ‘11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졸지에 자유로운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그들은 그림 시계를 보고 자신에게 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몇 시인가? 내 희망은 과연 몇 시인가? 그들은 운명의 시계처럼 정지된 그 절망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물었을 것이다.

  ‘11시 5분’. 수용소를 떠나면서도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하필이면 왜 11시 5분일까? 그 시각은 한 낮일까, 아니면 한 밤중일까? 지나간 역사여서 누구도 정답을 가르쳐 주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해석해볼 자유는 있었다. 11시 5분은 모두가 졸음에 취한 시간, 역사마저 지쳐 선잠에 든 시간이다. 어쩌면 둥근 시계를 그린 무명인은 깊은 어둠 속에서 희망을 말하려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한 밤중인 11시 5분, 그는 절망의 병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곧 새벽이 다가 올 것이라고, 어둠보다 더 나직이 구원의 음성을 들려주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당시 작센하우젠 수용소의 어느 독방에 마틴 니멜러 목사가 갇혀있었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전쟁 후 독일 고백교회 지도자로 우뚝 선 장본인이다. 여전히 회자되는 니멜러의 시 ‘그들이 왔다’는 그 자신보다 더 유명해졌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가톨릭 신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개신교 신자였으니까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다
  그런데 이제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시 ‘그들이 왔다’는 어둠의 기억에서, 절망의 사슬로부터 벗어나라고 말한다. 어둠을 이길 능력은 따듯한 공감과 빛의 연대이며, 역사와 소통하는 힘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의 어둠을 밝히고, 시대의 징조를 일깨우기 위해 ‘너 부터’ 등불을 들라고 채근하고 있었다. 과연 내 등잔에는 나 홀로만이 아닌 남과 나눌 만큼 넉넉한 기름을 준비하고 있는가, 살필 일이다. 그래야 진정 희망이 있다.

  갈수록 깊어가는 어둠 속에 대림절이 어김없이 다가왔다. 마땅히 등불을 켜는 절기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응당 깜깜한 어둠을 향해 빛을 비추는 그런 등불인이 되어야 한다. 등불을 밝히되 기름까지도 나눌 수 있는 그런 희망을 충전하는 존재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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