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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이라면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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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1월 27일 (금) 22:46:18 [조회수 :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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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에서 생존했던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일반인들도 있었지만 특별한 지성을 소유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과학자이기도 했으면서 문학가이기도 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프리모 레비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문학이란 말하자면 인간이 누구인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시간이 한 방울씩 흐른다.”와 같은 문장을 쓸 수 있는 한 문학가가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신의 은총이요 섭리이리라. 프리모 레비는 그의 책에서 행악자를 고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간을 성찰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그의 책을 다른 많은 참상의 보고서와 구별시킨다.

우리말로 번역된 프리모 레비의 아우슈비츠 생존기 제목은 <이것이 인간인가>이다. ‘도대체 인간이란 이런 것이란 말인가’의 의미를 담은 제목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탈리아어 원제는 이것과는 다소 다르다. 원제 <Se questo è un uomo>를 번역하자면 아마도 이쯤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인간이라면.” 만일 이것이 인간이라면 어떻다는 말일까? 작가는 있었어야 할 것만 같은 그 다음 말을 제목에 적지 않았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말이 잔혹한 현실에 대한 절망의 탄식을 표현하는 말이라면, ‘이것이 인간이라면’이라는 가정은 이 절망 이후로 눈을 돌리게 한다.

주위에 들리는 소식은 온통 비인간, 몰인간의 소식뿐이다. 한 노인이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도 사람들은, 언론은, 방송은 정작 왜 그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조차 묻지 않는다. 그저 흥분한 얼굴로 어느 쪽의 폭력이 더 큰 문제인지에 대해서만 열변을 토할 뿐이다. 하나님을 믿는 노인 농부는 쌀값이 개 사료 값보다 싼 형편을 탄식하며 농민이 농사로 살 수 있도록 제발 쌀값을 조금 올려달라는 말을,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살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고 싶어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러나 ‘잘 살게’가 아니라 ‘그저 살게만’ 해 달라는 그의 말은 그가 병석에 누워있는 지금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쩌면 프리모 레비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프리모 레비는 한 편의 시로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네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따스한 집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는 당신, 집으로 돌아오면 따스한 음식과 다정한 얼굴을 만나는 당신, 생각해보라 이것이 인간인지. 진흙탕 속에서 고되게 노동하며 평화를 알지 못하고 빵 반쪽을 위해 싸우고 예, 아니오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죽어가는 이가.”

오신 주님을 기억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희망하는 기다림의 절기와 함께 이제 교회력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주님은 인간으로 오셨다. 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인간이라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모든 이유는 바로 이 사실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빌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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