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간으로 하나님의 달력은 한해를 마무리한다. 오늘은 교회력 마지막 주일인 ‘영원한 주일’이며, ‘왕 되신 그리스도의 주일’이라고도 불린다. 지난 일 년 동안 대림절 첫째 주일부터 시작해서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그리고 왕국절(또는 창조절)을 지키며 오늘에 이르렀다. 교회는 절기를 시작할 때에 강단색을 바꾸었고, 성찬식을 베풀었으며, 새로운 날들을 축하하고 기념하였다.

  그리스도교 역사관에 따르면 교회력은 해마다 한 바퀴씩 순환하며, 나선형으로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지금은 곧 지난 시간이 될 ‘영원한 주일’부터 이제 다가올 시간인 ‘대림절 첫째 주일’ 사이인 일 년의 끝과 시작이 서로 물려있는 ‘끄트머리 주간’이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3).

  어둠이 점점 깊어가는 계절이면 누구든 마음의 창가에 등불을 밝히려는 마음이 들 것이다. 겨울 추위가 임박한 시절이니 불씨를 나누려는 마음도 따듯하다. 대림절 절기문화인 ‘기다림 초’는 우리 가정과 시대를 향해 시간의 징조로서 등불을 밝히는 일이다.

  영원한 주일이 있는 한 주간은 무엇보다 죽음을 생각하는 기간이다. 오랜 교회 전통에 따르면 이 주간에는 올해 먼저 소천하신 분들을 추모한다. 칼 라너는 “세상을 떠난 이들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앞서 간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종말과 아주 가까이에 존재한다. 그러기에 내 인생을 성찰하며 자신도 죽음 앞에서 결코 제외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로 유명해진 라틴어 격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그리스도교 상징물 중에는 해골이 종종 등장한다. 러시아정교회의 이중십자가에는 반드시 맨 아래 아담의 해골이 존재한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는 십자가 위에 삼위일체를 그린 마사초의 벽화가 있다. 원근법으로 유명한 벽화를 더욱 인상 깊게 하는 것은 그 아래 길게 누워있는 해골 상 때문이다. 해골 상에 새겨져 있는 ‘나도 당신과 같은 모습이었고, 당신 또한 나처럼 이렇게 될 것이다’란 문구는 살아있는 사람조차 잠시 그 자리에 멈추게 만든다.

  영원한 주일을 맞아 평소 불 밝히던 양초 대신에 강단에 등불을 켜 두었다. 등불은 빛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라고 하시고,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 맨 처음 생겨난 것이 ‘빛’이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3-4). 해와 같은 발광체가 생겨나기 전, 그보다 먼저 빛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등불 아래에는 조개껍데기를 두었다. 조개껍데기는 인생의 순례를 상징한다. 스페인의 유명한 산티아고순례의 상징은 바로 조개껍데기와 지팡이이다. ‘등불과 조개껍데기’ 모두 인생의 길을 밝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생은 한마디로 순례이다. 평생 정지된 삶을 사는 붙박이 인생은 없으며 누구든 끊임없이 움직이고, 순간순간 선택하고, 나날이 변화하고, 자의든 타의든 동행하며 살아간다.

  그러기에 자신할 수 없는 인생의 길 앞에서 등불을 의지하게 마련이다. 그 등불은 영혼의 창이고, 지혜의 불꽃이며, 역사의 빛이다. 사실 모든 인생 중에서 ‘그저 그런’ 무의미한 삶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영원한 주일’은 내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친밀함을 느끼는 기회이다. 어두운 내 발 앞에 등불을 두며, 내 길을 비추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한다. 우리는 누구도 예외없이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 안에서 주를 의지하고, 희망을 두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지금 살아있음을 축하하라. 그리고 오늘, 지금 여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내 마음 속에 은총의 등불이 켜져 있음을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