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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와 섹스할 궁리만 하는 노교수의 최후[책 뒤안길] 필립 로스의 장편 <죽어가는 짐승>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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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1월 11일 (수) 18:38:22 [조회수 : 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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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이 알고, 아무리 많이 생각하고, 아무리 음모를 꾸미고 공모하고 계획을 세운다 해도 그게 섹스를 능가할 수는 없어."

여보! '시들어가는 육체, 사그라지지 않는 갈망'에 대한 변주곡! 한 번 들어봄 직하지 않아요? 책 표지에 걸린 이 한 줄의 글이 책 내용이 어떨 거라는 걸 짐작하게 하고도 남소. <뉴욕 리뷰 오브 북스>가 '불온한 걸작'이라고 평한 걸로도 이미 그 내용이 얼마나 도전적일 건지 예감하게 되고요.

퓰리처상 수상자 필립 로스의 <죽어가는 짐승>은 나로서는 읽기 그리 녹록한 소설은 아니었소. 소설치고는 꽤 오래 잡고 있었던 책이고요. 원작자의 소행인지 번역자의 소행인지는 가늠할 길 없지만 숨 쉬는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오. 뭘 그리 주저리주저리 속삭여대는지, 원. 그리 숨넘어갈 만한 긴박함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모딜리아니의 <누워 있는 나부>를 쏙 빼닮은 모작으로 책표지에 주인공 콘수엘라의 나신을 내걸고 있는 것 자체도 매우 도발적이오.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가 우리 돈 1900억 원에 낙찰됐다는 소식도 접하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죽어가는 짐승>이 뒤늦게 인기를 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소.

나이 듦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죽어가는 짐승>(필립 로스 지음 /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펴냄 / 2015. 10 / 190쪽 / 1만2000 원)

여보! 원래 <죽어가는 짐승>은 2001년 발표된 소설이오. 전작인 <유방>(1972)과 <욕망의 교수>(1977)의 주인공인 대학교수 데이비드 케페시를 <죽어가는 짐승>에도 등장시킴으로 필립 로스는 자신의 늙어감과 아울러 주인공의 늙어감을 자연스럽게 유비하고 있소. 그러나 섹스에 결코 나이가 문제가 될 게 없다고 하오.

"아이가 나와 함께 있지 않은 밤이면 나는 아이가 어디 있을까, 뭘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일그러져버려. 하지만 아이가 저녁에 나와 함께 있다 집에 갔을 때도 잠을 못 자. 아이를 경험하는 것이 너무나 강렬해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한밤중에 소리쳐. '콘수엘라 카스티요, 나를 가만 좀 내버려 둬!' (중략) 우리 나이 때문에. 나는 쾌락을 누리지만 갈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죽어가는 짐승> 54쪽에서

시간은 흐르고 데이비드 케페시 교수는 늙어 가는데 그의 섹스 갈망은 사그라지지 않소. 바로 여기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죽어가는 짐승>을 탄생시킨 거요. 소설은 데이비드 케페시의 대화만으로 짜여 있소. 랩을 듣는 것 같은 잔잔함 속에 포르노그래피의 관능성이 결부되면서 성애의 사유를 낳았소. 외설시비가 그리 심하게 일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요.

미국의 마광수! 필립 로스는 그런 소설가라고 난 생각하오. 대학교수요 작가인 것까지 참 많이 닮았소. 마광수의 소설집 <나만 좋으면>의 표지와 한국판(영문판은 다름) <죽어가는 짐승>의 표지가 외설적 설정을 하고 있는 점도 비슷하오. 다르다면 마광수가 걸려든 시비에 필립 로스는 비껴 앉았다는 거지요. 물론 독자들 중에는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이들이 있을 거요.

여보! 영화가 너무 서정적이고 아름다워 눈치 채지 못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실은 <죽어가는 짐승>은 이미 이사벨 코이셋 감독에 의해 <엘레지>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 상영되었다오. 사랑을 믿지 않는 문학교수 데이비드는 24살 대학원생 콘수엘라와 하룻밤 열정을 불태우게 되는데, 그게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오.

노교수 역에 벤 킹슬리가 열연을 하고 콘수엘라 역엔 페넬로페 크루즈가 관능미 넘치는 대학원생을 감당하오. 200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소.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덜 섹시하다고 할 수 있소. 대신에 애잔하고 서정적이오.

'나이 듦'과 '욕망'의 끝은 사랑

영화 <엘레지>의 스틸 컷

여보! 늙어가면서 욕망조차 잃을까 애달파하는 노교수 데이비드 케페시는 자신의 집 소파에 앉아 누군가에게 계속하여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소. 이야기의 중심에 섹스와 욕망이 자리하고 주변으로 죽음, 쿠바, 성혁명, 베토벤, 모차르트 등을 배치하여 사변적 욕망의 침실에 영원히 머물기를 갈망하오.

늙어간다는 것, 죽는다는 것에 못지않게 몸의 쾌락과 멈출 수 없는 섹스에의 희구가 얼기설기 얽히면서 포르노그래피에 버금가는 19금 이야기들을 전개하오. 62세의 노교수와 24세의 제자, 벌써 이러한 등장인물로도 사회적 금기는 성립되오. 그런데 이들의 섹스라니?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그 섹스를 잊지 못하는 노교수의 엉큼함이라니?

사랑보다 욕망에 사로잡힌 노교수는 늘 제자 중 누구와 섹스 할 궁리만 하오. "하지만 말해봐, 섹스보다 큰 힘이 어디 있어?"라는 말을 당연시하며. 그에게 결혼과 사랑은 없소. 그저 섹스만 존재할 뿐. 학기가 끝나면 종강 파티를 열고, 파티가 끝나면 어린 제자와 섹스를 나누는 것, 그게 노교수가 노리는 욕망 분출 작전이오.

"꼭 필요한 매혹은 섹스뿐이야. 섹스를 제하고도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까? 섹스라는 용건이 없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용건 없이 누구에게 그렇게 매혹될까? 불가능하지." - <죽어가는 짐승> 28쪽에서

굉장히 단정적이고 확신에 찬 어조 아니오. 여보! 이 시건방진, 욕망의 열차에서 내릴 줄 모르는 노교수는 자신의 말대로 키 크고 머리칼이 검디검은 쿠바계 아이, 둥글고 풍만하고 완벽한 가슴을 가진 24살의 콘수엘라를 자신의 섹스 대상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오.

욕망의 상대요, 섹스의 상대로서 전부였던 매혹적인 콘수엘라가 떠난 2년간 노교수가 사랑이 무언지 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오. 하지만 2년 후 나타난 콘수엘라는 유방암 환자로 등장하오. 죽음 앞에 놓인 콘수엘라, 나이 먹어 죽어가고 있는 노교수, 이들에게 욕망을 무엇일까요.

여보! 이미 전통적 결혼의 사슬에서 이혼이란 탈출구를 통해 자유를 획득한 노교수의 '해방'은 오래가지 못하오. 애착과 소속감을 안전히 배제한 욕망으로 만의 섹스가 구원이었던 그에게 이제 '죽음'이라는 현실이 다가온 거요. 섹스가 단순한 '마찰과 얕은 재미'가 아닌 '죽음에 대한 복수'가 된 거요.

섹스와 욕망, 나이 듦, 죽음, 사랑 등에 대한 냉소주의가 현실을 바로 본 것은 다행스런 일이오. 그러기 위해 작가는 유방암 환자라는 설정을 들이밀어 데이비드 케페시를 설득하오. 역시 극한 상황은 설득력이 있었고, 노교수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은 채 사랑어린 시선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오.

그의 적나라한 선정적 랩의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섹스, 질병, 집착, 죽음, 사랑, 가슴, 쿠바, 나이 듦을 이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이가 또 있을까 싶소. 욕망으로 튕겨 나오는 죽음의 변주곡! 분명히 필립 로스는 이 점에서 마광수의 선정성을 뛰어넘은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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