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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집사님의 반박에 대한 재 반박
권현익  |  pariskw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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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1월 09일 (월) 01:20:25
최종편집 : 2015년 11월 13일 (금) 06:59:50 [조회수 : 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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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올려지는 댓글로 인하여 <합동 헤럴드>라는 신문에 이미 올린 내용을 요약하여,  신성남 집사님이 댓글을 통하여 제시한 열 가지 반박문에 열 가지로 답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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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2015-11-01 09:04:41

칼뱅이 제네바의 '종교적 학살'에 대해 책임을 면하기 힘든 이유...

권현익 목사님의 반박글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으로서 저의 입장을 추가로 밝히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해서 여기에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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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칼뱅의 명예는 물론 소중합니다. 다만, 마찬가지로 카스텔로의 명예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반박 : 저는 지금 칼뱅의 명예를 지키려하기 위함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  좀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ctrl+c, ctrl+v>로 들이대는 <무논리>가 아닌 사료들을 통하여 사실에 접근해보자는 것입니다.

집사님의 <칼뱅의 학살> 주장의 유일한 근거인 카스텔리옹의 증언이 허구일 수 밖에 없음을 진술하였음에도 여전히 믿을만한 사료라고 주장하신다면, 좀더 심도를 높여 그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임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2. “카스텔로는 무명인이 아닙니다. 그는 칼뱅의 동료로서 <제네바 신학교의 교장>이었으며 당대에 이미 베스트셀러 책을 내기도 한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따라서 칼뱅에 대한 글을 허위 조작하여 '공상소설'을 쓸 정도로 몰지각한 사람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할 근거가 없다고 봅니다. 즉 그가 신학 이론이나 논조에 있어서는 적대적이고 감정적으로 서술할 수는 있으나, 칼뱅과 관련한 여러 사실(Fact)들을 실명까지 동원하며 전체 내용을 소설처럼 조작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게 더 무리한 주장입니다.”


반박 : 저는 단 한번도 카스텔리옹의 신학적 자질에 대해서 평가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집사님은 카스텔리옹을 무한 신뢰하시는 근거가 “그가 무명인이도 아니고 베스트셀러 저자이기에 그런 황당한 역사 언급을 할 사람이 못된다”는 식의 논리는 별 정당성이 없어 보입니다.

<제네바 신학교의 교장>이라는 글은 어디서 갖고 오셨나요? 혹시 카스텔리옹이 당대에 얼마나 인정 받는 신학자였는지를 증명이라도 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거짓이요, 포장된 왜곡이지요. 그는 오

   
▲ 카스텔리오

늘날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콜레쥬의 교장이었습니다. <쥬네브의 신학교>는 쥬네브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155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집사님께서 그토록 보호하고 싶어하시는 카스텔리옹의 증언이 얼마나 비역사적 사실을 넘어 소설인지를 다시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1640년에 프랑스 왕국에서 명목상으로 왕국의 서열 제 2인자이었던, 리셀리유 추기경(1585-1642)이 위그노들을 완전히 말살하기 위한 수단의 한 방법으로 칼뱅 개인의 사생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꼬두리를 잡아내기 위한 역사 편찬 작업을 명합니다. 그래서 칼뱅의 고향인 느와용의 역사 자료를 비롯한 프랑스가 갖고 있는 모든 기록들을 다 동원하여 찾아 낼 것을 지시하였는데, 놀랍게도 칼뱅에 관하여 그 어떤 혐의(불어 역사 원문에 rien n'est ressorti : 아주 강한 부정문으로 그 어떤 것도 나온 것이 결코 없었다는 뜻)도 찾아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추기경이 죽은 후 그의 이름으로 출판된 저서(Œuvres théologiques , 1647)에서 칼뱅에 대한 언급을 하였는데, 다름아닌 칼뱅 당시 쥬네브에서 함께 살았던 볼섹이 남긴 유언비어인 칼뱅이 동성 연애자였다는 주장만 살짝 실어 놓았을 뿐입니다.

둘째, 카스텔리옹의 증언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또 다른 중요한 증거는 1766년에 출간되는 철학자 볼테르(1694년-1778년)의 “「범죄와 형벌」에 대한 해설”(Commentaire sur le livre Des Délits et des Peines, 1766)이라는 책입니다. 볼테르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그 동안의 수 많은 학살을 고발하기 위하여 모든 자료들을 추적, 수집하여 그의 책에 게재합니다. 칼뱅에 관하여서는 “ 장 칼뱅은 의사 <세르베>를 서서히 불에 타 죽게 했고, <칼라브로아 장틸리스>의 목을 자르는데 힘을 보탰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장 칼뱅의 계승자들은 1632년에 <앙트완>을 화형시켰다. 과연 이성이, 신앙심이, 정의가 이 모든 살해 행위들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볼테르는 카스텔리옹처럼 도매금으로 칼뱅이 수 십명을 화형에 처했다고 말하지 않고, 사람들의 이름을 제시하면서 자료의 정당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볼테르의 책 그 어디에서도 카스텔리옹이 주장하는 수 십명을 학살했으며, 유아 세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집행했다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서술 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셋째로, 칼뱅이 학살을 자행하지 않았다는 또 다른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데오토르 베즈가 세르베 사건으로 유럽의 다른 지역(루터교를 포함)에서 ‘쥬네브는 관용이 없는 잔악한 도시’라고 공격을 해 오자,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종교적 이유로 수 많은 사람들을 처형한 당신들이 세르베 사건 외에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은 쥬네브를 과연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라고 반박을 합니다. 베즈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카스텔리옹을 비롯한 살상을 목격한 사람들이 베즈의 말에 반박하고 나서야 했겠지만, 반박은 지금까지도 없음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넷째, 쥬네브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역사가들의 진술들이 카스텔리오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집사님은 츠바이크의 글을 인용하여“칼뱅은 4년 동안 적어도 58명을 처형하고, 76명을 시외로 강제 추방했다고 한다. 그 중에 10명은 참수형이었고, 35명은 마녀사냥처럼 처참한 화형이었다. 그들은 "이 부패한 도시에 실질적인 도덕과 기율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칠, 팔백명을 처형할 교수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신 이런 주장들이 나올 때마다 혹시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오래 전부터 쥬네브의 역사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의 마녀 사냥("La magie et la sorcellerie en France”)>이라는 책과 <사모니 계곡에서 발생한 마녀 사냥(Des montagnards endiablés. Chasse aux sorciers dans la vallée de Chamonix( 1458-1462 )이라는 두 권의 책에서 쥬네브에서 일어났던 학살들을 자세히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이 책의 한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458년에서 1462년 사이에 샤모니 계곡에서 쥬네브의 <종교 재판소(Inquisition)>에 의한 수 많은 마녀 사냥이 있었다. 13명의 수도사 그들 중에는 4명의 남자와 9명의 여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극심한 고문을 가한 이후에 이단 혐의로 화형을 선고했다.”

불어 원문입니다. “Entre 1458 et 1462, la vallée de Chamonix vit plusieurs chasses aux sorciersmenées par le tribunal d’<inquisition de Genève>. Treize personnes au moins, parmi lesquelles quatre hommes et neuf femmes, sontcondamnées au bûcher pour hérésie après avoir reçu, pour certaines, des peines exemplaires – une particularité toute chamoniarde.”

제가 제시한 프랑스 원문의 이 부분을 복사하셔서 인터넷에 치시면 책 이름과 저술가, 출판 연도를 비롯한 모든 내용이 나올 것입니다. 이 학살은 분명 <쥬네브의 종교 재판소>(inquisition de Genève)에 의한 것으로 발생 년도를 보아 천주교회가 행한 학살입니다.

셀더르하위스라는  “1495년 마녀 사냥으로 한 사람을 화형시키고, 1531년까지 12명의 사람들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1531년에는, 깔뱅은 학생으로서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쥬네브가 1536년 5월 21일에 개혁주의 노선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에 일어났던 학살은 개혁주의 진영이나 깔뱅과는 전혀 무관한 <천주교 종교 재판소>에 의해 저질렀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책은 Simon Sophie, «Si je le veux, il mourra!». Maléfices et sorcellerie dans la campagne <genevoise> (1497-1530), Lausanne 2007 (CLHM, 42)라는 책입니다.

역사가들은 쥬네브에서 자행되었던 <학살들>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그 모든 학살이 천주교회에서 행하여진 자료들 뿐입니다.

제발 부탁이니 인터넷에서 <쥬네브의 종교 재판소>(inquisition de Genève), 아니면 쥬네브의 콩시스투아르(Consistoire de Genève)라는 단어로 검색해보시면, 칼뱅 시대를 제외한 천주교에 의해 자행되었던 학살만 자세하게 나올 것입니다. 사료가 없는데, 무슨 근거로 사실이라고 주장하시는지 그 정당성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카스텔리옹은 어떤 자료를 근거로 <13명>이라는 주장을 했을까요? 혹시 카스텔리옹이 칼뱅이 밉고 그를 공격하기 위해 1531년의 <3>자를 <4>자로 바꾸지 않고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아무런 역사 근거는 없습니다.

그 당대에도, 백년 가까운 리셀리유 추기경 시대에도, 또 백년 뒤인 볼테르의 시대에도, 현재 역사가들의 저서에도 전혀 언급이 없는 내용을  20세기로 넘어와서 전기 작가이며, 극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1881년-1942년) 홀로 카스텔리옹의 주장은 역사적 진실이라고 외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칼뱅 시대에, 칼뱅의 명예를 먹칠하기 위해 칼뱅을 공격하였던 두 사람인 카스텔리옹과 볼섹 두 사람 뿐입니다.

볼섹은 프랑스인으로 천주교 수도사로 활동하다가 개신교로 개종한 후, 쥬네브로 건너와 살다가 “칼뱅과 칼뱅의 견해를 따르는 이들은 우상숭배자”라고 비난한 죄명으로 시의회로 부터 추방받게 됩니다. 그 이후 프랑스로 넘어 와  그는 다시 천주교로 개종하게 됩니다. 이 정도의 그의 전력이라면 그가 어떤 역사를 기록할 것인지 이미 추측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사실이 될 수 없음은 합동 헤럴드에 올린 첫 번째 반박문에 잘 올려져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여러모로 서로 닮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프랑스 사람이며, 칼뱅 시대에 쥬네브에서 살았던 인물이며, 두 사람 다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쥬네브 시의회로부터 추방 당하였다는 점과 두 사람 모두 칼뱅에 관한 비난을 사실인냥 책으로 출판하였는데, 두 사람 다 깔뱅과 함께 쥬네브에 머물고 있을 동안이 아닌 한 사람은 쥬네브를 떠난지 10년 뒤 가명으로, 볼섹은 칼뱅이 죽고 난 다음에 <칼뱅 전기>라는 책을 저술합니다. 이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뒷담화 즉, 비겁함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놀라운 공통점은 그들이 애써 노력한 칼뱅에 대한 공격에 관하여 그 어떤 역사가도 그들의 말을 사실로 인정하여 역사적 사실로 받아 들이지 않았는다는 점입니다.

로날드 윌레스는 카스텔리옹과 볼섹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합니다.
“칼뱅을 싫어 하는 이들은 카스텔리옹의 능력을 과대시하는 경향과, 본능적으로 패배자를 옹호하려는 자들은 항상 그를 순교자로 평가하려 하였다. 볼섹 역시 칼뱅 사후에 칼뱅의 전기를 저술하였는데, 칼뱅에게 불리한 무엇인가를 찾고 싶어하는 로마 천주교 신학자들은 종종 볼섹의 말을 곧이 들었는데 이는 유감스럽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칼뱅의 신학과 칼뱅 자체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 뿐 아니라 오늘날 까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칼뱅을 살인자나 동성 연애자라고 말하는 저급한 사람들은 이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3. 물론 유럽에 많은 기념 비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로마 가톨릭에 의한 수많은 박해자에 대한 비석이 별로 없는 이유와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들이 주도합니다. 그리고 종교 개혁 당시 개신교에 의해 죽은 사람들보다 로마 가톨릭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예 비교조차 안 되지요. 그래도 이를 애도하는 비석이 별로 없는 이유는 학살 당시 가능한 증거를 인멸하고, 설사 증거가 있더라도 후대에 이에 대한 기록 전승을 최대한 방해하거나 숨기려 했기 때문입니다. 로마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반대자 학살이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이를 널리 알리고 홍보했을까요.


반박 : 집사님이 그 친구처럼 보이는 것이 계속적으로 <사실>이나 <사료>를 근거하지 않고, <개인적인 추측> 내지는 억지를 사실처럼 주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럽에서 23년째 살고 있으며, 교회사와 관련된 역사의 현장은 거의 빠뜨리지 않고 다녀왔던 사람으로, 수 많은 기념비나 동상, 기념판을 사진으로 갖고 있습니다. 파리만 해도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는 기념판, 비석, 동상은 길거리에 널려 있습니다.

집사님은 추모비가 없는 이유가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들이 주도>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역사는 잠시 승자가 주도하였을지는 몰라도, 그 역사의 올바른 진실은 약자들과 그 후예들의 증언과 저술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 남겨 지기 때문에 , 역사의 진정한 <승자>는 <강자>가 아니라 <약자>라는 사실입니다.

   
▲ 칼뱅의 후예들이 세운 세르베 사죄비

그 증거가 세르베의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신학을 여전히 따르는 유니테리언들이 세워 놓은 세르베의 동상이 남아 있고, 세르베를 죽게 하였던 가해자의 후손들이 그 사건을 사죄하기 위하여 개신교 역사가와 목사들이 세운 세르베의 죽음에 사죄하는 사죄비, 그 외에도 곳곳에 칼뱅의 잔인함을 폭로하려는 의도로 세워진 반 칼뱅파들이 세워 놓은 수 많은 세르베의 동상들은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장소를 단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다 찾아다녔지만, 칼뱅에 의해 학살 당하였다는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호소하는 자손들이나 칼뱅을 공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기념비나 사죄비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역사가의 기록도 없고,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람들의 이름도 없고, 그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후손들의 호소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4. 저는 칼뱅의 학살 여부가 장로교 존립의 관건이라고까지 보지는 않습니다. 그의 기여도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 후에 장로교의 신학은 더욱 연구되고 보강되어 온 것이니까요. 이는 마치 영국성공회의 설립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현재 성공회를 비하하지 않는 것과 유사합니다.


반박 : 여전히 학살이라고 주장하시며 제가 제시한 수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칼뱅의 명예를 지켜 주시려는 자세는 전혀 보이질 않군요.

 

   
 


5. 칼뱅에게 사형을 내릴 권한이 없다는 주장은 피상적으로만 맞는 사실입니다. 종교 재판소(장로법원, 치리회의)은 유죄를 판단만 하고, 실제 사형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시당국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정직하지 못한 핑계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 두 기관이 서로 반목과 협력을 반복하며 힘겨루기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단자 처형에 있어서는 거의 공조를 했습니다. 세르베투스 사형이 그 대표적인 실제 예입니다. 칼뱅은 그의 사형을 결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반박 1 : 이런 주장을 하시면 할 수록, 쥬네브의 역사를 전혀 모르시는 분으로 그저 상상력에 의존한 비 역사적 주장만을 하시고 계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부터 위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을 증명하는 자료들을 제시하겠습니다.

칼뱅은 그의 글과 설교를 통해서 <목사가 공직을 겸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기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일은 평신도에게 맡겨야 한다>고 분명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칼뱅을 따르는 프랑스 개신교 역시 이 원리를 따랐습니다. 당회, 노회, 총회는 종교적인 문제만을 다루었고, 국가와 상대해야 할 정치적 사건이나, 전쟁을 결정할 경우 위그노 귀족들이 주도 한 <정치회의(assemblée politique)>라는 회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칼뱅이 정치적인 활동을 했다면, 프랑스의 모든 교회 역시 칼뱅의 행동을 따라 목사들이 정치가로서 활동했어야 했지만, 프랑스 개신교회사 속에 목사가 정치를 겸직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칼뱅은 또한 권징(징계)를 <교회의 권징>과 <사회적 권징>으로 구분하면서 교회는 국가가 당연히 할 일을 떠맡지 않아야 하며, 국가 역시 교회가 행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의 권징은 치리회에서는 어디까지나 목회적으로 성도들을 신앙으로 바로 세우는 일만 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가장 잘 증명해주는 것이 시의회를 통해 결정된 <쥬네브 교회법>에 “<목사들>에게는 시에 대한 <사법권>이 없으며 <오직> 신령한 검인 <하나님의 말씀>만을 <사용>하여야 한다”라고 명문화 해놓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시의회는 목사들을 그들의 영역인 사법권에서 배제시켜 놓았던 것입니다.

쥬네브 교회법은 오늘날까지 잘 보관되어 남아 있으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kalbaeng

반박 2 : 칼뱅은 그의 사형을 결코 반대 하지 않았다 ??

칼뱅의 자신의 글 <세르베투스 논박>에서 칼뱅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사실 내가 이 가련한 악인을 옳은 길로 이끌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공개적으로 소문을 내지 않은 채 은밀히 이 일에 전념했다.

나는 편지들을 통해 관대하게 그를 권면했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끝까지 모든 인간미를 활용하되,
그가 나의 선하고 거룩한 권면에 기분이 상해서,
내게 화를 냈다기보다는
차라리 뭔가 모를 격노를 발했을 때까지 그렇게 했다.

(자신만만하였던 세르베가 의외의 판결인 화형이 선고되자, 세르베는 칼뱅을 만나고 싶다고 제의하여 시법정은 칼뱅에게 증인이 될 동행자들과 함께 세르베를 만날 것을 권고 했습니다. 칼뱅은 곧 죽게 될 세르베를 만나 마지막까지 돌이키기 위해 그를 찾아갔을 때, 세르베는 칼뱅에게 무릎을 끓고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애원하는 그에게 칼뱅의 대답은 이것은 내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에 나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 Servet

그가 그토록 비열하게 <모독한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할 것을 부탁했을 때,
세르베는 <나에게> 자비를 탄원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떤 <개인적인 모욕> 때문에
그를 고소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

이점에 대해서 나는 16여 년 전에 내가 열심히 그를
우리 주님께로 이끌었던 것처럼 그를 부드럽게 타일렀다.

<내 자신의 목숨>을 내걸기까지 말이다.

그가 죄수가 된 것이 <나의 기소> 때문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소송 사건으로 들어가자면,
도시의 법에 따라서 누군가가 상대편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기소한 사람이>
<내> 동의에 의해서 그렇게 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이단성이 입증된 후,
<모두가 알거니와>
<나>는 <그>를 <사형>에 처하도록
<그 어떤 탄원>도 하지 않았다. "

세르베를 그의 오류에서 벗어나 진리에 이르도록 목숨을 걸고 세르베를 도우며, 칼뱅이 오랜 세월동안 베풀었던 지극한 정성은 세르베가 스스로 소신적 죽음을 선택하므로 그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칼뱅은 살인자로, 세르베는 그의 이단성은 숨겨진 채 <영웅>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칼뱅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칼뱅의 이런 무수한 노력들은 애써 지워 버리고, 오로지 세르베의 억울한 죽음으로만 몰고가 칼뱅이 그를 기소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살인자> 혹은 <살인 공모자>로 몰아서야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6. 천주교 신자가 쓴 책들이 칼뱅의 학살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들의 교회는 칼뱅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는데 무슨 염치로 이를 언급할까요. 반대자에 대한 부끄러운 학살은 양측 모두가 숨기도 싶은 역사일 뿐입니다.


반박: 제 글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을 하시지 못하신 듯 합니다. 천주교가 자체적으로 발간한 역사책이 아닌 일반 역사 학자들 가운데 천주교 신자들이 서술한 역사 책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쥬네브 역사는 물론 고문서에서도 이런 학살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고 말하면, 칼뱅의 영향력으로 모든 사료들을 소각했다고 대답할지 몰라도, 사료는 소각될지 몰라도 그 증인과 증언들은 남아 반드시 역사로 다시 기록될 것이기 때문에 이 상상 역시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7. 종교재판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1542년 2월 16일자 장로법원의 회의록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러합니다.

"한 여인은 로마 가톨릭의 책 「성자들의 생애」라는 책자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되어서 출두했고 어느 이발사는 사제에게 삭발식을 해 주었다고 고소되었다. 어느 금속공은 미사에 쓸 잔을 만들어 주었다고 적발되었고 어떤 이는 교황을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가 적발되었으며 이러한 사소한 것들까지도 모두 재판을 하였다." - 정수영, <새교회사>

이런 사소한 것들까지 기소되었으니 당시 제네바의 교회가 얼마나 신정정치, 탄압정치, 그리고 공포정치를 행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요즘 교회의 당회나 노회가 이런 종류의 심사를 했다면, 아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반박 : 이런 사소한 것까지 다루는 것을 보니 당시 제네바의 교회가 얼마나 신정정치, 탄압정치, 그리고 공포정치를 행했을 것이라고 어루짐작을 하셨는데, 그래서 그 기소를 받고 사형 언도를 받았다고 하든가요?

말씀하신대로 콩시스투아르는 이러한 사소한 것만 다루는 곳입니다. 그런데 <새교회사>라는 책에서 이런 사소한 것 외에 집사님이 주장하시는 잔악한 결정들을 내렸다고 언급을 하고 있든가요? 추정하여 살인자라고 공격하는 일은 제발 그만 두셨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칼뱅을 엄격한 독재자라고 비판하는데, 이는 그 당시의 상황을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쥬네브의 정치가 다른 도시보다 엄격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정이 칼뱅이 만든 것이 아니라 칼뱅이 오기 훨씬 이전, 로마 천주교 시절부터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황제의 법>이라 하여 이단을 사형시키는 것을 포함한 법이 채택되어 있었습니다.

1459년 천주교 성당 참사회가 만든 법규에 의하면 매춘부들은 격리되어 통제를 받는다. 도박의 금지되고 특히 카드와 주사위 놀이도 금지한다고 규정해 놓았습니다.

1534년에는 방탕함과 혼인 관계를 끊는 것들에 대해 법으로 금지하고, 또 수호 성인 축제도 반대하였는데, 그 이유는 싸움과 술판과 난잡함, 즉 젊은이들이 수도원에서도 성적인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이 발생시켰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소한 것만 다루는 콩시스투와르(Consitoir)라는 정식 명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칼뱅을 모함하려는 사람들이 한글 번역상의 문제가 아닌 굳이 <종교 재판소(Inquisition)>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콩시스투와르가 마치 <천주교의 종교 재판소>와 <대등한> 권력과 판결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부풀리고> <포장>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유니테리언들이 세운 세르베 동상에 갔더니 동상 아래 이런 기록이 있었습니다.

“BRULE EN EFFIGIE A VIENNE PAR L'INQUISITION CATHOLIQUE LE 17 JUIN 1553”
1553년 6월 17일 <가톨릭 종교 재판소>에 의해 비엔느에서 모형 화형을 당함.
(종교 재판소에서 화형을 선고하지만 당사자가 없이 재판한 궐석 재판의 경우나, 아주 특별한 유일무일하며 전무후무한 세르베의 경우처럼 로마 가톨릭 백과 사전에 의하면, 프랑스 비엔느에서 천주교의 아주 친절한 도움을 받아 탈출하였던 이런 경우에 그의 모습을 한 인형으로 화형을 집행시켰음),

“ET BRULE VIF A GENEVE LE 27 OCTOBRE 1553  A L’INSTIGATION DE CALVIN”
그리고 1553년 10월 27일 <칼뱅의> <종교 재판소>에서 그를 산 채로 화형 시킴

왜 이 사람들이 <종교 재판소(Inquisition)>이라는 단어를 고집하는지 아시겠습니까?
한글상의 번역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칼뱅이 운영하는 종교 재판소가 있었던 것처럼 말하기 위해서, 그리고 칼뱅에게 살인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이 단어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8. 칼뱅은 세르베투스를 살리기 위해 애쓴 것보다는 그의 주장을 취소시키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형에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반박  :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세르베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삼위일체 부정을 취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살려 다른 도시나 나라로 보낸다 할지라도 그는 그 곳에서 반드시 화형을 당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집사님 역시 칼뱅을 존경한다고 하셨으면 이런 식으로 너무 칼뱅을 살인자로 몰고 가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르베의 몸은 쥬네브에서 죽임 받았을지 몰라도 그는 이미 두 권의 이단 서적으로 인해 두 번의 화형 선고를 받고 두 번다 인형 화형을 통해 그의 영혼은 천주교회가 죽였던 점을 애써 부인하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9. 카스텔로가 굳이 가명으로 책을 낸 당시의 절박한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이를 변호하고픈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권 목사님이 본문에 지적하신 대로 "하지만 그의 책이 출간되었을 때 칼뱅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그 책의 저자가 카스텔리옹이라는 사실을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으로 볼 때, 그 자신이 끝까지 저자를 숨기려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그 책의 저자를 몰랐을 것이니까요.

… 저는 "칼뱅을 논함에 있어 사료적 가치도 없는 심상용, 조찬선 목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억하심정으로 없었던 일도 있었던 것처럼 악의적으로 왜곡한 카스텔리옹과 그의 책을 편역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반드시 제외되어야 할 비 역사서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단정하신 권 목사님의 최종 결론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반박 : 카스텔리옹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으로 가명을 사용하면 자신을 철저하게 숨길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이지요. 그가 저자임을 밝혀졌음에도 그 누구도 그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테러는 물론 그가 죽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쥬네브가 살인 집단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말씀하신 4명의 진술에 동의할 수 없는 정당한 근거도 없이 저의 최종 결론에 동의하기가 힘들다는 것은 누가 뭐라하고 해도 <나는 믿고 싶은 것을 끝까지 믿겠다>는 자세로 현명한 지성인의 모습은 아닌 듯 합니다.

칼뱅을 설교 시간에 살인자라고 공격했던 <김병삼> 목사도 이런 자세는 아니었습니다. “좋은 지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새겨두도록 하지요.”라고 상대의 근거 있는 주장을 인정할 줄은 아셨습니다.

역사는 고집이나 억박지름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사료라고 했습니다. 제가 제시한 이런 확실한 자료에도 여전히 카스텔리옹만을 수용하시겠다면 집사님의 개인적 성향이 그러할 뿐이지, 집사님의 주장은 논리적이지 못한 것으로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10. 마지막으로, 칼뱅의 글을 직접 인용해보자...
칼빈은 세르베투스 화형 이듬해인 1554년 초에 <정통신앙 옹호론>이라는 책을 간행했는데, 그 속에는 종교적 탄압의 정당성을 밝힌 대목이 있다.

"이단을 처형한다는 일은 결코 그리스교도적 사랑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된다. 일반 신자가 이단의 거짓 가르침에 물드는 것을 막아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의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선한)목적을 위해서 는 한 도시의 주민 전부를 없앨 수도 있는 것이다."

 


반박 : 그런데 이 주장의 출처가 반 칼뱅주의자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작인 "양심의 자유(세르베투스 사건을 중심으로)" 에서 발췌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책의 정확한 제목은 <정통 신앙 옹호 (미셀 세르베의 삼위일체 오류에 대한 반박)>이라는 책이며, 이 책을 몇 차례 자세히 읽었지만, <한 도시의 주민 전부를 없앨 수도 있는 것이다.>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칼뱅을 공격하려는 자들이 늘 인용하는 문구인데, 원문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인데,  이 문구의 정확한 출처를 제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히려 칼뱅은 이 책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매우 합당한 말을 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이단이라 하더라도 만일 그들을 <가르치지 않은 채> 무섭게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지배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칼뱅은 그의 책에서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을 한다는 것인지요?

 

이번 주 <썰전>에서 역사 논쟁에서 사료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더군요.

김무성 대표가
우리 아버지는 친일파가 아닌 것의 증거가
일본이 죽일려고 했던 제 1 순위이었다는 사실이
<역사 사료는 없고>
자기 <아버지가 하신 말씀>(김용주 회고록)이 <고작> <전부>라면
그게 무슨 역사적 사실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칼뱅이 학살한 것이 명백한 사실인 것은
이것을 증명할 사료는 마땅히 없지만
우리 아버지 카스텔리옹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저희들의 논쟁을 다 읽은 어느 분의 다음 고백은 잘못된 지식이 진실을 만나게 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리교 교수목사들이 주장하는 글만 보고 칼뱅을 비난했던 <나>는 <죽은 칼뱅>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집사님은 박사 출신으로 교회 개혁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사실 무근한 책임 없는 글을 유포하는 것이 집사님이 말씀하시는 교회 개혁의 진정한 모습인가요?  집사님의 이런 글들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는 그 영혼들에 대하여 일말의 책임을 느끼신다면 인용하신 글들의 출처가 아무런 역사적 근거가 없는 인터넷과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이었음을 시인하시고 사과문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제 긴 글을 읽어주심에 감사를 드리며,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글과 무관하게 공격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본 신문사에 댓글 삭제를 요청할 것이며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제 글 자체를 반박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제 양심껏 정직하게 대답을 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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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171.36.204.245)
2015-11-09 12:59:55
수필 대 논문을 보는듯...
신성남 집사님의 글이 감정에 기대어 쓴 수필 수준이라면(비하가 아닙니다.) 님의 글은 논문을 읽는 것 같군요. 신성남 집사님께서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신집사님은 칼뱅을 살인자로 매도하시면서 그의 신학은 인정하는 도저히 이해못할 태도를 취하시는데, 그러면서 어떻게 교회 개혁을 외칠 수 있는지 의심마져 드네요. 그런데 제목이 유창윤 목사님 글에 대한 반박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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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9
강숙자 (118.222.232.36)
2015-11-25 11:36:21
신성남님께서 지금 얼마나 중대한 사실의역사를 말씀하셨는지
기독교과거 부끄러운 역사를 한번은 조사해봤나?
다른 칼럼의 신성남님의 글보니 웬만한 사이비목사들과
비교안될 정도로 하나님의 인도 받는 분이시던데,,
너눈에 수필로 보이더나?.. 눈에 안약을 바르고
악령도구로 쓰임받지 마라
일개:어느한인간의 이상한 자료들고 맹신하지말고..
그래서 인간은 교육이 필요하다

아무리 과거 칼빈과 그후예들의 비리를 몰라서 그렇다 치자
도서관에가서 책을 대여받아 공부나 해보고 인생연장자께
무지한 댓글쓰라 한국및영미권교회가 칼빈신학으로
쓰레기 더미가 되어있다 어두운 영안부터 열어달라고 회개기도해라
또한,과거 역사가 천차만별로 각자료가 많으니 열람도 좀한후,
다양한 통찰력을 길러야지,,, 이거원!
한국교회 몰락주범을 들고 뭣하는 짓이냐?
내가 어젠 출장 다녀온다고 인제 리플 쓰지만,
무책임한 댓글을 책임져라! 그리스도인은 맞니?...
하나님께서 왜? 일면식없는 목사 통해 이런 충고를
리바이벌 듣게 하시는가 성찰 좀 하고..
공부 해보고 난뒤, 신성남님께 정중히 사과드려라!!
자존심 상하나? 역으로 신성남님은 어떻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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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3
강숙자 (118.222.232.36)
2015-11-23 21:20:38
김정미님~ 신성남님과 권현익님의글을 동시에 정독했습니까?
그렇다면 신성남님의 글을 수필로 단정 하지못하는 이유가
권현익님의자료도 과거 역사 지필한 작가들의 의도가
다양하단겁니다 공개적으로 신성남님의 글에 좀더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는 글표현은 잘 못됬습니다
그이유는: 권현익씨가 각종 자료를 들이대어 근거를 기술했어도
과거의 역사는 다양한 기술이 있으므로
유럽에 20여년 거주했다고 해서 권현익분의 일방 자료에
동의 못합니다 이유는; 과거 역사의 앞뒤의 다양한 스팩트럼이
있기때문에 공개적으로 신성남님께 칼빈을 살인의매도로
비역사적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다고 보면 안됩니다

칼빈의 최대 오점이 스위스 제네바의 사태입니다
보아하니,이사이트에서 처음으로 칼빈의 실책을 접한거 같은데
권씨의 글로 파악하기 이전에 먼저 다소 김정미님의 역사 공부가
있어야 할거 같은데요?...
역사왜곡은 어제,오늘이 아니니 본인이 마지막 권현익씨에게
작성한글 참조 하란겁니다
아울러 공개적으로 신성남님의 근거있는 글을 수필로 단정지은
부분은 신성남님께 용서를 구하고 사과 하십시요
인생의 연장자뿐만 아니라 참으로 귀하신 분이던데
신성남의 글을 수필이라니?
그래서 님의 마음을 들여다 보며 다시 돌아보고 비록 다양하진
않아도 기독교 근세,종교개혁교리사 정도는 열람후
이런류의 기울어진 댓글 쓴게 부끄러운줄 아십시요!
현대시대는, 과거 기독교 정보가 상세히기록되어 있으니
경거망동을 삼가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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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4
강숙자 (118.222.232.36)
2015-11-23 14:53:40
본인이 당당뉴스에 21일(토)에 들어왔다가 신성남님의 글과
권현익씨의 글 확인후 님께 리플이유는 수필과논문으로 비교하는게
신집사님의 모욕으로 보입니다:
본인은 신성남님을 당당칼럼에서 처음 뵙는데 정미님의,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할것 입니다
본인이 권씨의 글에 최종 답변은"칼뱅은 이단학살을 주도했다"
칼럼에 조금전 의견제시 해놨으니 시간될때
참조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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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4
지나가다가 (1.254.215.219)
2016-11-10 09:03:10
지나가다가 답답해서 글을 남깁니다.

신성남 집사님이 교회개혁에서 소리를 내시는 분이고 존중받아야 될 분이라면

권목사님은 칼뱅쪽은 잘 아시는듯 하네요~

저도 역사학 박사가 있는 사람으로 양쪽글을 다 읽어보니 권목사님의 글에 더 무게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에 대해 평가할때 사료를 다룰 수 없는 사람이 글을 쓴다면 그쪽 방면의 전문가가 쓴 의견을 참고하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교회개혁이 유행가처럼 불리우는 시기인데 이럴때일수록 정확한 fact에서부터 개혁을 외쳐야 할듯 합니다.

그렇다고 신성남 집사님의 논지가 흐려져서는 안될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집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대부분 맞습니다.

서로 존중하면서 교회를 세웠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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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자 (118.222.232.36)
2015-11-25 18:40:45
권현익!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왕래하며 출장다니는 본인 아들에게
당신 쌍판때기를 보고 확인명령할거니까, 지금 상주하고 있는
주소를 속히 입력해라 그주소로 찾아가서 진정하게 하나님의사역
하는지 보자. 어디다가 페이스북과 이메일로 또는 개인문자로
음해,공갈 치는데? 사역자 기본기가 전혀 바닥을 치는데..
중심 의도가뭐야? 정체를 밝혀라.....

주소나 입력해! 우리 아들 통해 찾아갈거니까!!
님이 뭔데? 한국 감리교 최고 뉴스사이트에 니미친 자료들고 농간해?
빨랑 주소 들이대!... 님은 그리스도사역자라 논하지마라.
가장 악날했던 칼빈밥 처먹고 나가떨어져라!
빨리 님 거주 주소 공개해... 음지에서 농간하지말고....
니가 정신 나갔나?
그리스도인이 맞나 우리아들 통해서 확인사살 할꺼니까/

온전한 사역은 하고 있으면 ,같은 하나님의자녀들께
이리 비열한 행동 못해! 다같이 격려는 못해줄 망정
니중심 잔머리는 뭐야?
중병들어서 그때야 후회할래?
이 비겁한 인간아! 니같은 인간은 나도 확실히 짚는다,
니쌍판때기 들여내? 니정체가 뭐야?
위의글데로 니주소나 공개해 찾아간다
니! 얼마나 떳떳한지 삼위하나님 떠나서 상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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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강숙자 (118.222.232.36)
2015-11-21 13:48:51
모사이트에서 칼빈의 세르베투스에 대한 화형의 주장을 확인한후
오늘 당당뉴스 통해 진의를 확인하고 몇자 작성해봅니다.
본인은 오랜전(2007년) 칼빈5대교리를 배웠고 또한
평신도때도 성경을 칼빈의안경으로 장로교단에서 배워왔지만,...
지금은, 칼빈의 안경을 벗어냈고,
정직하게 홀로 독대 성경의 말씀을 마주 한후, 과연
구원의길은 확실히 좁다는거 가면갈수록 확고한 성경적 믿음으로
인도받고 있는 여성입니다.

두해전에 츠바이크의 책을 읽었고, 칼빈의 정치행정 가담의
세르베투스 사건은 칼빈의 씻을수 없는 오명으로 이책을
읽기전 칼빈5대교리를 배울때에 칼빈의 이때 실수와 냉혈함의
오점은 벌써 알고 있었습니다.

카스텔리오가 자신만의 칼빈부정의 오판으로 그때에 칼빈을
직,간접 살인으로 몰아세웠다고 볼순 없습니다
그때의 종교가 정치권에 개입했던 시기였고,
천주교도들이 행한일을 칼빈에게 뒤집어세웠다느건
도대체 어느 인간의 허위로 말했답니다까?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왜곡도 있고 다양한 시각이 있기에
그역사라는것도 권현익님 글대로란 것도 신빙성 부족입니다

신성남이란 분도 오늘 제가 글을 접했지만,
아마, 이분은 츠바이크의 책을 올해서야 접하신것 같은데....
그러면, 권님께서는 츠바이크나, 카스텔리오가
고의적 칼빈음해 란건지 본인이 님의 위의글 보니
유럽에 계셨다는데, 물론 현장에서 그들의 과거 역사의 전철을
되돌아볼수있는 정확도는 다소 있겠지만...
카스텔리오가 적쟎히 목숨의 위태로운 상황이 당시에 숨막힐 정도 였었는데..
님께서는 마치 칼빈의 음해하기위해 츠바이크가 카스텔리오의
과거 사실의 서술을 기록한거 같이 몰아부쳤네요
역사는 기록으로만 알지만 카스텔리오가 반대파에 대해 꽤 오만하고
적대적이었던 칼빈의 소심성을 몰랐을까요?
카스텔리오는 그때에 숨어서 어쩔줄 모르고 글을 썼던 위인입니다,

본인은 과거 역사는 반반으로 ..냉정히 판단하거니와
칼빈의 극단이중예정론과 무책임한 영원견인론이 영미권 비롯하여
한국교회의 진리를 망친 주범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칼빈,웨슬리 두교리를 과거 선조들이 물려줬고
성경한권에 그분들의 교리가 균형잡힌 시각이 아닌
영원택정자 및, 불택정자의 숙명론의 칼빈이 성경 꼭대기에서
지금까지 성경을 망쳐놨고 무지한 성경관심 없는 성도들을
세속신학으로 타락주범이 칼빈 엉터리 신학이 톡톡히 한목 차지했다는거
아시고 웨슬리가 과거 전세계가 내교구라고 할정도로
전도목회 중심이었는데,
그때 칼빈 이중예정이 시험들어 나가 있는 수많은 양들을 더욱
죽음으로 내모는 위선의 교리란거 깨달은 겁니다

지금,현재 칼빈신봉자들은: 교회건물밖으로 청년60만명이 교회 역겨워
이탈한거는 알고나 있습니까?
400만의 이탈자중, 장년부외에 60만이 칼빈교리 듣던 청년들입니다
근데 ,솔선수범해서 최다 자범죄재생산은 장로교목사들이
주류,, 그다음이 감리교 과거 감독쟁탈전 순입니다

지금, 칼빈의 실수없었다.. 이런류로 땜방대변 할때가 아닙니다
바울도: 복음설파후 자신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버림받을까 두려워했는데..
다른분야들의 리더들은,개선의 의지라도 있는데
칼빈신봉자들은,성경을 안보는지 그런류로 자아신념 갖고 있다가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지옥심판이 기다립니다
예정론의 열매들 보면 현재 그증거가 나오는데 무슨 여러말 필요합니까?

세르베투스 화형때는 칼빈의 입김도 작용했고 가담했습니다
칼빈의 지나친 견제 예민성이 교활하게 작용했던건 사실입니다
근데.. 어찌하여 지금,유럽에서만 의 소견해로 말합니까?

마귀들이 성경을 없앨려고 발악했어도 하나님이 후대들 구원받으라고
철저히 사본을 전수하셨듯이 카스텔리오의 현장목격자 통해.
숨겨진 비밀을 죽은 츠바이크 통해 공개된것이 하나님의 지당하신
섭리입니다 이미, 영미권 비롯 한국 교회가 이지경으로
타락된거 아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어떤인간이 타락의 위선으로 더욱 악해 질지도 다아시고
계시는데.. 무소부재,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앞에...
감추일 비밀은 없습니다 ~~~~~~~~~
본인 볼때는 님께서 신성남집사님께 사과 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PS:단, 본인은 신성남님을 이사이트에서 처음 글을 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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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
권현익 (83.204.187.197)
2015-11-11 10:29:38
신성남 집사님이 기고하신 글이 도용한 글임을 증명
합동 헤럴드에 신성남, 그는 과연 <교회 개혁>을 외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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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
강숙자 (118.222.232.36)
2015-11-25 17:47:31
권현익씨!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왕래하며 출장다니는 본인 아들에게
당신 쌍판때기를 보고 확인명령할거니까, 지금 상주하고 있는
주소를 속히 입력해라 그주소로 찾아가서 진정하게 하나님의사역
하는지 보자. 어디다가 페이스북과 이메일로 또는 개인문자로
음해,공갈 치는데? 사역자 기본기가 전혀 바닥을 치는데..
중심 의도가뭐야? 정체를 밝혀라.....

주소나 입력해! 우리 아들 통해 찾아갈거니까!!
님이 뭔데? 한국 감리교 최고 뉴스사이트에 니미친 자료들고 농간해?
빨랑 주소 들이대!... 님은 그리스도사역자라 논하지마라.
가장 악날했던 칼빈밥 처먹고 나가떨어져라!
빨리 님 거주 주소 공개해... 음지에서 농간하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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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강숙자 (118.222.232.36)
2015-11-21 19:21:00
오늘 오후 처음 당당뉴스란을 정독후 본인의견을 권현익님께 작성했습니다~~~~~```~
리플달기
2 2
이기명 (211.247.49.237)
2015-11-11 04:31:20
자기 지식의꾀에 자기 스스로가 넘어가는 헤프닝을 접할때 마다 뭐라고
평가 해야하지? 라는 물음표를 던지게 만듭니다.

제가 개혁본부라는 필명으로 기독교인이 굳이 다알고 있고, 잘 알고있는 기독교인들을 매도하는 글들을 볼때마다 참...가슴이 아파 계속 그 짧은지식의
칼끝에 서있는 글쓴이들을 향하여 한마디씩 하곤 하였습니다.

신 집사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진정한 신학공부좀 하시기 기대합니다.
물론 저또한 신학전공은 아니지만 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다 중요한문제는 나쁜기독교인 이 누구라는것 이러한 매체에대고 굳이
꼬집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 다알고/ 잘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의 비아냥을 마치 새로운 개념의 기독교인비판내지 새로운
글제목의 아이템인냥 , 그 아이템에 충실한 글을 써대면....참 답답해
지더군요.
진정한 글은 제목과 시류흐름에 돌을던져 파문을 보고자하는 그 심성으로
쓰는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아우름으로 바라보아야 진정한 글이 됩니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자기들끼리 잘났다고 모이는 교회들...많지요~
특정집단의 아류속에서 자기들끼리의 위안으로 모이는 교회들...많지요~
특히 큰교회들 중에서 아주 그 교회에 속한 자신들이 마치 실생활은 그러
게 부유하게 소속교인들 처럼 따라잡을수는 없지만 그리 속하면 마치 그러
한 부류에 속하는냥 심도있는 깊이를 가지고 그 교회를 섬기는 이들도
아주 많지요.

반대로 부자들의 동네 큰교회들은 자기들이 무슨 특정집단인냥 아주 신앙인
임을 내던지고 교회라는 명목속에서 특권층 의식으로 똘똘 뭉친교회들도
많지요.
그들의 신앙또한 장독대에 정한수 떠노코 "비나이다 비나이다" "달님께 비나이다." 처럼 주님께 십일조, 감사헌금 드렸으니 복달라고 비는이들 참~
많지요.

이러한 현실을 지금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 파생적인 심리적 속성을 마치 글의 제목(주제)로 쓰면 아주 비판적이고
솔찍한 글을 쓰는냥 착각하는 기고자들이 간혹 있는데...

그러치 않기들 기도합니다.

이젠 굳이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압니다.
지금시대는 다시 기독교인들 뭉쳐서 세상을 바로잡을 시대 이지...'
아는 사실들을 인식 시키려고 노력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이제 기독교인이 기독교인들 까는일 고마 합쎄다!
뭉쳐야 합니다.

서로 보듬어야 합니다.
큰교회들 어려운 교회들 지목하여 맡아, 지체들의 어려움 보듬어야 합니다.
작은교회들도 큰 자부심으로 더욱 정진해야 합니다.

우리모두 아름다움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신앙생활 합쎄다.
할렐루야~
리플달기
13 6
강숙자 (118.222.232.36)
2015-11-23 15:05:48
저는 지난 21일(토) 저녁에 당당 신성남집사님의 칼럼과 권씨의
글,동시 획인하고 이제 권씨에게
답변할일이 있어서 들어왔는데 귀하의글에 공감이며
"칼뱅은 이단학살을 주도했다"칼럼에 권씨에게
본인견해(답)를 작성해놨으니 시간될때 열어보세요~~
리플달기
2 1
권현익 (83.204.187.197)
2015-11-11 01:19:36
김요한 님께
김요한 님께
그 시대를 이해하며, 비난보다는 그 시대의 정황 속에서
그 시대의 관점 속에서 그들을 평가해야 한다는 의도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어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세르베가 화형을 당하게 된 뒤에 칼벵에게 탄원을 위해 만나길 원했고,
그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칼벵이 당시에 영향이 어떠하였는가를 알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라는 부분은
김요한 님의 또 하나의 추측으로
그 당시 재판 절차의 과정을 살펴보면
세르베의 행동을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르베는 추방 명령이 내려졌음에도 그는 거절하였던 것은
어쩌면 무죄를 풀려 나와 쥬네브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내지는 나름대로의 그런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책 출판을 도와주었던 리베르탕 파가 집권당이었기 때문에
그는 재판 중에 오만 방자하여
마차ㅣ 자신은 고소인이며 칼뱅은 피고인인 것처럼 칼뱅을 모욕할 뿐 아니라,
판사를 향하여 무례한 행동을 하였던 것이 기록에 나옵니다.

그 당시 어떤 화형수가
자신의 감옥 환경이 나쁘다고 원망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편지를 통해 그런 원망을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단 한번도 그는 칼뱅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던 그가
화형 선고가 결정 나자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다가
칼뱅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여
칼뱅은 판사의 요청에 따라 증인과 함께 세르베를 만나러 갔습니다.

칼뱅이 실세라서가 아니라
세르베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마음으로
칼뱅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고
이전과 전혀 다른 자세를 취한 것이었음을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음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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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88.161.132.141)
2015-11-11 00:08:28
칼벵에게 탄원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세르베가 화형을 당하게 된 뒤에 칼벵에게 탄원을 위해 만나길 원했고, 그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칼벵이 당시에 영향이 어떠하였는가를 알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벵의 '영광의 신학'을 중심으로 장로교의 전통에 있는 분들에게는 충분히 감정이 상하고 안타까운 역사라고 볼 수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봅니다.
또한 감리교에 몸담고 있는 분들에게는 자칫 장로교에 대한 폄하로 작용될수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칼빈당시 그러한 교리적인 것으로 정죄당하며 결국 죽임으로까지 몰려 가야 한다는 시대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한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는 세속화된 시대로써 종교밖에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고, 그 교리를 믿지 않는다고 죄를 묻거나 혹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내면에 그 교리에대한 수긍을 하지않는다고 교회에서 배척당하거나 배척할 수는 없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칼벵이 세르베를 죽였는가? 라는 문제는 그 정황으로 보아 교리적으로 이단으로 판단하여 그를 기소하여 그를 죄인으로 결정이 나도록 한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며, 그러한 세대와 그러한 교리적 권위의 시대를 가슴아파 할 뿐입니다.
웨슬레 보다는 전 시대로써 종교의 권위가 행정부에 영향이 깊은 시대로써
그러한 시대를 먼저 아파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며, 삼위일체 교리와 성경이 말하는, 예수께서 말씀하는 '구원'이 무엇인지, 그'구원론'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더 우선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시에 교리는 구원을 죽음이후에 천국과 지옥을 결정짓기 위한 신앙의 체계적 신념으로 '살아있음'에 대한 '생명'과 '실존'에 대한 삶의 질적차원의 관심은 그리 깊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르베와 칼빈의 마지막 대화 자체역시 그 대화를 가지고 어느 한 관점으로 그르고 옳고를 오늘날 결론을 유도하는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고 보여 집니다. 그 두 사람은 기본 전재 자체가 다르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예수께서도 요한복음 10장 35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세르베는 시대의 고통속에서 죽임을 죽은자로써 그 죽음에 대해 칼빈의 '하나님 영광의 신학'으로 감동을 받고 장로교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장로교가 폄화되는 듯한 마음이 유발되는 글이 되지 않기를 기도드릴 뿐이지요.
오늘날의 한국의 정치 형태를 생각해 볼 때, 남북의 분열의 역사속에서 많은 고통속에서도 사상적인 이유로 고통받는 일들이 가장 마음이 아프며 이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비극으로 생각합니다. 교조적인 강요로 고통받고 있는사람들은 비단 종교안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역시 유사종교로써 그 교조적 선전과 강압이 생명과 인권보다 위에 있다는 현실이 마음아플 뿐 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과거 역사 돌아보며 무엇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그 가치가 역사속에서 어떻게 발현되어졌고, 어떻게 왜곡되었는가를 계속 질문하여 지금과 오는세대 속에서 '천하보다 귀한 생명'에 대한 죽임이 아닌 살림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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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 (118.217.72.188)
2015-11-09 22:56:45
다른 곳에서 10번과 관련하여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보았는데, 원문에도 없는 내용을 책에 있는 내용이라며 여기저기서 퍼 나르고 있었군요.
혹 이걸로 또 트집을 잡으시려거든 직접 책을 읽고 몇 페이지 몇줄에 나오는지 정확한 근거로 논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댓글도 익명에서 실명제로 바뀌어서 그런지 댓글도 없고 조용해진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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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윗 (103.10.197.130)
2015-11-09 20:30:27
신성남 박사님 전 상서
소생은 선생님 두분께서 논의하시는 깔뱅의 쥬네브 에피소드는 잘 모르옵니다만 신성남 집사님께옵서 박사 출신이시라면 1차 자료를 취합해 학위논문을 써보신 경험을 갖고 계실 것이오되 학문적 주장을 할 때는 각주를 비롯해 정확한 출처인용이 마치 심장처럼 중요함을 이미 아실 것이오며 심장이 없으면 산 사람이 아니듯이 정확한 1차 자료가 없으면 <죽은 주장>이오니 권현익 선생님의 말씀에 반론을 하시오려면 신성남 집사님께옵서 직접 1차 문헌을 인용해서 해주십사 소생 감히 부탁 올리오니 신박사님께서 박사학위논문 작성의 기억을 떠올려보시면 될것이옵니다.

논문을 학회지에 투고해보신 분들은 저의 말씀을 알아들으실 것이온데, 논문을 학회지에 투고하면 곧바로 실어주는 것이 아니오라 심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학회지에 인쇄해주는 바 만약 신성남 박사님께옵서 당당뉴스에 기고하신 <깔뱅 제네바 에피소드>를 논문으로 작성해서 학회지에 투고하신다면 정녕 심사통과할수 있을지를 신박사님의 학문적 양심에 비추어 심각하게 고민해보심을 부탁드리옵나이다.

1차 자료는 논문작성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말씀드리오며 출처없는 논문은 만장을 써도 일절 통과가 되지 아니하옴을 다시 한번 숙고해주심을 감히 부탁드리오며 1차 문헌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신박사님께서 잘 아실 줄 알고 소생은 이만 잡설을 줄이옵니다. 두분 선생님께옵서 건승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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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자 (118.222.232.36)
2015-11-23 20:52:38
본인의 성령인도받은 메세지는 ; 유튜브(강숙자목사설교) 한국KAICAM
소속입니다 시간되실때에 시청하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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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자 (118.222.232.36)
2015-11-23 15:14:15
최다윗님" 21일(토)에 당당뉴스의 처음으로,신성남님의 칼럼을
접했다가 님의 글보니,님의 저울이 치우쳤습니다
본인은 신성남님을 모르오나, 전체적 맥락은 역사의 사실입니다
과거 역사는 여러자료가 있는데 권현익분이 자신만의 자료만을
우기면 님포함하여 역정보의 희생양이 됩니다
권현익씨의 견해에" 본인이 토욜 작성하다가
어제 주일이라 오늘 조금전 본인의견해를 작성해놨으니:
시간될때 참고하심 됩니다"칼뱅은 이단학살을 주도했다"칼럼에
작성해놨습니다 건강하옵시고 균형잡힌 성경시각으로
승리하옵소서~~~~~~~~~~~~ 강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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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171.36.204.245)
2015-11-09 12:59:55
수필 대 논문을 보는듯...
신성남 집사님의 글이 감정에 기대어 쓴 수필 수준이라면(비하가 아닙니다.) 님의 글은 논문을 읽는 것 같군요. 신성남 집사님께서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신집사님은 칼뱅을 살인자로 매도하시면서 그의 신학은 인정하는 도저히 이해못할 태도를 취하시는데, 그러면서 어떻게 교회 개혁을 외칠 수 있는지 의심마져 드네요. 그런데 제목이 유창윤 목사님 글에 대한 반박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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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자 (118.222.232.36)
2015-11-25 11:36:21
신성남님께서 지금 얼마나 중대한 사실의역사를 말씀하셨는지
기독교과거 부끄러운 역사를 한번은 조사해봤나?
다른 칼럼의 신성남님의 글보니 웬만한 사이비목사들과
비교안될 정도로 하나님의 인도 받는 분이시던데,,
너눈에 수필로 보이더나?.. 눈에 안약을 바르고
악령도구로 쓰임받지 마라
일개:어느한인간의 이상한 자료들고 맹신하지말고..
그래서 인간은 교육이 필요하다

아무리 과거 칼빈과 그후예들의 비리를 몰라서 그렇다 치자
도서관에가서 책을 대여받아 공부나 해보고 인생연장자께
무지한 댓글쓰라 한국및영미권교회가 칼빈신학으로
쓰레기 더미가 되어있다 어두운 영안부터 열어달라고 회개기도해라
또한,과거 역사가 천차만별로 각자료가 많으니 열람도 좀한후,
다양한 통찰력을 길러야지,,, 이거원!
한국교회 몰락주범을 들고 뭣하는 짓이냐?
내가 어젠 출장 다녀온다고 인제 리플 쓰지만,
무책임한 댓글을 책임져라! 그리스도인은 맞니?...
하나님께서 왜? 일면식없는 목사 통해 이런 충고를
리바이벌 듣게 하시는가 성찰 좀 하고..
공부 해보고 난뒤, 신성남님께 정중히 사과드려라!!
자존심 상하나? 역으로 신성남님은 어떻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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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자 (118.222.232.36)
2015-11-23 21:20:38
김정미님~ 신성남님과 권현익님의글을 동시에 정독했습니까?
그렇다면 신성남님의 글을 수필로 단정 하지못하는 이유가
권현익님의자료도 과거 역사 지필한 작가들의 의도가
다양하단겁니다 공개적으로 신성남님의 글에 좀더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는 글표현은 잘 못됬습니다
그이유는: 권현익씨가 각종 자료를 들이대어 근거를 기술했어도
과거의 역사는 다양한 기술이 있으므로
유럽에 20여년 거주했다고 해서 권현익분의 일방 자료에
동의 못합니다 이유는; 과거 역사의 앞뒤의 다양한 스팩트럼이
있기때문에 공개적으로 신성남님께 칼빈을 살인의매도로
비역사적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다고 보면 안됩니다

칼빈의 최대 오점이 스위스 제네바의 사태입니다
보아하니,이사이트에서 처음으로 칼빈의 실책을 접한거 같은데
권씨의 글로 파악하기 이전에 먼저 다소 김정미님의 역사 공부가
있어야 할거 같은데요?...
역사왜곡은 어제,오늘이 아니니 본인이 마지막 권현익씨에게
작성한글 참조 하란겁니다
아울러 공개적으로 신성남님의 근거있는 글을 수필로 단정지은
부분은 신성남님께 용서를 구하고 사과 하십시요
인생의 연장자뿐만 아니라 참으로 귀하신 분이던데
신성남의 글을 수필이라니?
그래서 님의 마음을 들여다 보며 다시 돌아보고 비록 다양하진
않아도 기독교 근세,종교개혁교리사 정도는 열람후
이런류의 기울어진 댓글 쓴게 부끄러운줄 아십시요!
현대시대는, 과거 기독교 정보가 상세히기록되어 있으니
경거망동을 삼가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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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자 (118.222.232.36)
2015-11-23 14:53:40
본인이 당당뉴스에 21일(토)에 들어왔다가 신성남님의 글과
권현익씨의 글 확인후 님께 리플이유는 수필과논문으로 비교하는게
신집사님의 모욕으로 보입니다:
본인은 신성남님을 당당칼럼에서 처음 뵙는데 정미님의,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할것 입니다
본인이 권씨의 글에 최종 답변은"칼뱅은 이단학살을 주도했다"
칼럼에 조금전 의견제시 해놨으니 시간될때
참조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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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4
수정 (117.28.251.177)
2015-11-09 12:45:06
잘 읽었습니다. 평소 신성남 집사님의 글을 즐겨 읽고 또 집사님을 존경하는 한 사람이지만, 이번 칼뱅에 대한 글은 주로 천주교회와 칼뱅 반대자들의 글을 맹신하신 경솔함이 보입니다. 권현익님은 역사학도로서 신중하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학문적 성실성이 보입니다. 이번 논쟁의 여러 글을 정독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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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자 (118.222.232.36)
2015-11-25 17:07:14
수정씨(모든 경어생략함)
내가 자매의 댓글보니 신성남님의 칼럼을 지금까지 정독했다면서?
근데 신성남님께서 그동안의
기독교종교개혁자중에 가장 비열하고 잔인했던
칼빈의실책에 어느 반칼빈주의자들의 글을 봤다고 생각하니?

자매의 기독교 역사의 지식이 부족하면 .개인적으로 기독교의 비리역사책이나
아니면, . 역사의 종교개혁과정의 어두운 비리가
다양한 자료가 흘러 넘치는데.

수정씨가 그간 신성남님의 칼럼을 보고 느낀점이 많았을건데..
한갖,권씨란 남성의 (자료)견해를 맞다라고
인식하는 자세와 신성남님에 대한 명예실추를생각해봐라
누가 역사학도인데?
자료를 아무거나 들이대거나 유럽에 상주한다고 무엇을 들이댔는지
증명하니? 수정씨 같이 바람 불면 날아가는 휘청하는 유약한 갈대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탄식하신다

내가 보니 나름데로 감성이 있으니 신성남님의 각종칼럼을 정독하였나본데
진정한 하나님의 사명자 보는 영안을 열어라
신성남님께서 수정씨의 댓글 보면 어떻겠나?
수정씨도 후일에 사역자의입장에서 글을 쓰고 의견 제시해봐라

얼마나!! 그분이 한국 추락하는 교회에 디딤돌의 하나님쓰임 받았는지,,,
무책임하게 댓글을 갖다대면 지켜보는 삼위하나님과 신성남님의
가슴은 어떻겠나? 니가 남의가슴을 찢으면 니가슴도 찢긴다
인생의 연장자에다가, 귀하신 분이라는 판단이 그리안 되더나?

왜? 하나님께서 한번도 뵌적 없는 목사통해 이런
충고 듣게 하는가 좀 역사 공부하고, 그간 신성남님 존경해왔다면서?
권씨를 언제 봤다고 짜집기글들고 신중하지 못하니?
그러면,그간 수정씨가 봐온 신성남님을 조롱한다는거 모르나?
다수의 책과 자료가 있으니 알아본후 ,공개로 신성남님의 가슴을
때린죄는 공개적으로 정중히 용서를 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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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자 (118.222.232.36)
2015-11-23 19:46:51
수정님~각자 믿음의 분량은 삼위하나님만 아실겁니다
근데 과거 한신학자의 실수와악행은 성경외에는 주관적 저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데 함부로 신성남님의 글에 명예를 하락시킨 부분은
재고려 해야합니다,
권현익씨 혼자 독단자료로 치우쳐 다수주의로 나가는건 경계해야 합니다
누가 과거 시대를 타임머신 타고 돌아갑니까?
중립적 아닌 시각으로 치우치면 낭패 당하니 마땅히 신성남의 견해를
존중해야 하며 사실입니다
별로,최선을 다하진 않았지만 본인의글을 참고하고
신성남님 칼럼 보니 예수님의 아픈 가슴을 여실히
드러내셨던데 님이 모르던 과거 역사라고 괜스레 한쪽견해에
치우친거 회개하시고 신성남님께 용서를 구하길 바랍니다.
경솔의 단어를 이런류에 쓰는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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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자 (118.222.232.36)
2015-11-23 15:18:24
수정님" 본인은 21일(토)에 당당뉴스의 신성남님의 칼럼 접했고
권현익님의 글 동시에 확인후 권님에게 의견 보내다가
어제 주일이라 조금전 본인이 권님앞으로 답을 작성"칼뱅은 이단학살을
주도했다" 칼럼 밑에 해놨으니 시간될때 열어보십시요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로 보입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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