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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사랑
홍지향  |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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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1월 02일 (월) 23:34:41 [조회수 :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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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령 흘리에는 결혼이주 여성들이 있습니다. 옆집에 사는 희재(가명)씨도 베트남에서 이주해 온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희재씨의 6살 딸은 저희 집의 작은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4살 된 아들입니다.

   처음 결혼을 하고 흘리에 온 희재씨는 자신이 살던 곳과 전혀 다른 고산지대에 적응하느라 3개월을 코피를 흘렸다고 합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6개월을 달걀 후라이와 간장만 먹고 살았다고 하니 낮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9년을 성실히 산 희재씨는, 이제는 저도 잘 못하는 약식에 잡채까지 척척 해내는 주부가 되었습니다.

   희재씨는 베트남에서 2남 3녀 중 넷째였습니다. 큰언니와 두 오빠는 베트남에서 거주하고 있고, 희재씨와 막내 여동생이 한국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국과 연이 닿은 희재씨의 베트남 부모님도 농번기에는 한국에 와서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품을 파셨습니다. 지난주일 이제 농번기가 지나 베트남으로 돌아 가야하는 부모님이, 가기 전에 희재씨를 보고 가려고 흘리에 오셨습니다. 예배시간 내내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부모님이 버스정류장에 내리는 시간과 자신이 마중을 나갈 시간을 계산하는 희재씨의 얼굴에는 설렘과 초초가 함께 서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희재씨의 즐거운 시간도 잠시였습니다. 부모님이 베트남을 돌아갈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하루를 함께 보냈는데, 이틀째 아침에 희재씨의 아버지가 다발성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습니다. 놀란 희재씨와 어머니는 급히 아버지를 지역의 의료원으로 모셨지만 수술이 불가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지난 며칠 동안 희재씨는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태로 중환자실의 아버지를 면회하고 있습니다.

   처음 희재씨를 만났을 때 10살이나 어린 희재씨가 어딘지 낯설기도 했습니다. 각자의 삶으로 바빠서 함께 곰살스레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고향으로 보내드리고 싶은데 혹시 이것이 아버지의 마지막인가 하고 마음 아파하는 희재씨를 마주하고 있노라니, 나와 너의 구분이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파하는 희재씨의 마음이 곧 저의 마음이고, 고단한 희재씨의 모습이 곧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허공을 바라보는 희재씨를 뜨겁게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저 자신과의 포옹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결혼을 하고 남편과 단독목회를 하던 시절 기억에 남는 장례가 있습니다. 한 번도 살 부비던 가까운 이들의 장례를 경험한 적이 없었던 저는, 예배를 위해 방문한 교인의 병실에서 조금 전까지 살아있던 들숨과 날숨이 코끝에서 떠나는 모습을 처음 보았었습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자연스러운 임종 앞에, 살아있는 자들의 자만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렇게 서울로 고성으로 이사를 다니면서, 한 달에도 수차례씩 부고를 듣고, 장례를 치르고, 조문을 가게 됩니다. 눈시울을 붉히고 황급히 집에 들어와 검은 넥타이를 찾는 남편을 볼 때마다 ‘누구’의 임종인지를 묻기가 두렵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마음을 깊이 나누는 것조차 두려워 질 때도 있습니다.

   어떤 일들은 빈도가 잦아지면 익숙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던 이들의 장례는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익숙했던 사람들과의 이별은 깊은 슬픔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가지만, 얼마가 될지 모르는 긴긴 이별은 마음을 무너지게 합니다. 오늘 희재씨의 아픔과 눈물 앞에 어설픈 위로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이 떠올랐을 따름입니다. 뜨거운 포옹으로 주의 사랑과 위로 그리고 연대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세상은 울기를 그치라고 말합니다. 우는 것은 약한 것이라고, 아무 소득이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어린아이와 같이 유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뜨겁게 사랑한다면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허다한 죄를 모두 덮는 뜨거운 사랑의 눈물이 아니라면 어떻게 슬픔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울고 있을 때,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사랑이 필요할 때, 우리는 서로 아무 장벽 없이 서로를 자기 자신인양 안아줄 수 있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함께 우는 것이야 말로 희재씨와 저를 뜨거운 사랑의 연대로 묶는 가장 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는 자들을 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는 자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는 자들에게 그만 그치라고 다그쳐서도 안 됩니다. 다 울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뜨거운 사랑이 있다면 함께 울어주어야 합니다. 부디 제게도 그런 뜨거운 사랑이 있기를 오늘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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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누리 (61.79.251.138)
2015-11-04 12:34:49
로마서 12장
무더웠던 여름의 끝자락에 선돌교회에서 예배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설교주제가 로마서 12장 말씀었습니다.
오늘 칼럼에서도 로마서12장의 말씀이 언급되니
참 반갑고 감사합니다.
즐거워하는자들과 함께~
우는자들과 함께울라...
왜냐하면 1760쪽정도 기록된 말씀중
제가 가장 소중한 마음으로 품고 살아가며
살아내는 한쪽 분량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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