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느낌으로 진단한다?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로 인한 국론분열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여권이 끄집어내어 야권이 반대함으로 생긴 분열이다. 다 아는 사실이다시피 여권은 보수성향이고 야권은 진보성향이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에 의한 분열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이 나라의 희망이요 미래를 짊어진 아이들이 배울 교과서를 그런 식의 진영논리의 프레임으로 가두어 말하지 말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국가 백년지대계의 교육내용이 될 교과서가 진영논리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은 교육을 망치고 나아가서는 나라를 망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현실은 교육도 나라도 망치는 길로 가고 있다. 보수 측에 속한 사람들은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찬성하고 진보 측에 속한 사람들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을 보면 그렇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어느 것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느 게 자신이 속한 진영이 주장하는 것인가를 본다. 그리고는 그것이 옳다고 막무가내로 우겨댄다. 자신의 인격을 파탄 내며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역사를 국정교과서로 가르치고 있는 선진국은 하나도 없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며 지속적으로 발전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도 없다. 우리나라는 종전의 검정 이었던 국사 교과서를 1974년 박정희 정권 때 국정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2002년에 근‧현대사를 분리해 검정으로 했는데, 2010년에는 국정으로 있던 국사와 검정이 된 근‧현대사를 하나로 합쳐 모두를 검정으로 했다. 그런데 그런 국사교과서를 다시 국정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역사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이고 북한이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며 국사 교과서가 국정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렇다면 국정이고 검정이고를 따지기 전에 그런 책을 한 시라도 빨리 거둬들여 모두 불태워야 한다. 저자들을 잡아들여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했던 정옥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교육부에서 그때그때 검정위원회를 만들어 하던 검정작업을 2011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맡으면서 준비부족 등으로 오탈자나 사실오류, 역사관 문제 등을 초기에 제대로 못 걸러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정과정을 거쳐 지금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극우세력들은 수정되기 전의 역사교과서를 가지고 문제를 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것을 가지고 박 대통령은 “전체 책을 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부끄럽다는 “그런 기운이 온다”고 말한다. 일국의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식의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기운’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박 대통령은 아마 그 가운데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분위기 따위로 알 수 있는 느낌’ 정도의 의미로 말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 같은 애매모호한 말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전쟁하듯 밀어붙이겠다는 말인가

흉탄에 의해 양친을 다 잃은 딸로서의 인간 박근혜가 부모를 생각하는 것이 각별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의 공적(功績)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공적(公的)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검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의 80%가 편향된 역사관을 가져 결국은 하나의 좌편향 교과서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무엇에 근거를 둔 말인지 모르지만, 자기들의 뜻에 맞지 않으면 좌빨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과 같은 사고를 갖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말이 못된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이 땅에 공산주의자들이 성인 국민 전체의 40%는 될 것이다.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의 국사학자들은 90%가 좌파로 전환되어 있다”면서 “좌파의 사슬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국정 교과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집권 여당 대표의 힘이 막강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의 말 한 마디로 학자들의 성향까지 결정지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역사 전쟁이 시작됐다”고도 했는데, 국정 교과서로 가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국정 교과서가 됐건 검정 교과서가 됐건 그 결과는 충분한 토론으로 도출되어야 함에도 전쟁으로 결정하겠다니, 그의 기준에 의한 90%의 국사학자들과 국정화를 반대하는 수많은 국민들을 적으로 삼겠다는 것인가.

그는 많은 사안들에서 대통령과 파열음을 내오다 모처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내년의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에게 수세에 몰리자 납작 엎드려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어떻든 그와 대통령의 둘 사이에는 선친들이 친일의 행적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나라는 하루도 제대로 지탱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행 역사 교과서 집필진의 80%가 편향된 역사관을 가져, 학생들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이고 북한이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는 교과서로 배우고, 국사학자들의 90%가 좌파로 편중되어 있는데도 나라가 어떻게 거덜나지 않고 온전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역사학회인 ‘한국역사연구회’를 비롯한 다대수의 학자들이 국정교과서의 집필을 하지 않겠다 선언하고, 국정화의 반대가 찬성을 10% 넘게 나타난 상황에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자들로서는 포기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국정화 추진은 그 방법부터가 잘못되었다. 이것저것 다 제쳐두고 이번에 실상이 드러난 국정화를 위한 TF팀의 비밀 운영만 봐도 그렇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관련 업무의 증가 때문에 역사교육 지원팀 인력을 한시적으로 보강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런 어설픈 말을 누가 믿겠는가.

교육부는 세종시에 있다. 그런데 서울 동숭동에 TF팀의 사무실을 둔 이유에 대해 교육부는 “세종시 청사에 여유 공간이 없었다”고 말한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거대한 청사에 50명도 안 되는 사람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말을 믿으라는 말인가.

TF팀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출입구에 지문인식 출입시스템이 있는데,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TF팀이 입주하면서 교육부가 설치한 거라 한다. 이러고도 단순히 역사교육 지원을 위한 일을 위해서라 할 수 있는가.

TF팀 운영계획을 보면 ‘집필진 구성 계획 수립’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그건 국사편찬위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왜 그들의 계획에 들어 있는가. 계획에 나오는 ‘BH 일일점검회의 지원’은 무엇이며, ‘09 BH’라는 이름의 폴더명도 있는데, 그것은 또 무엇인가. ‘BH’가 무엇인가. 청와대 아닌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청와대가 교육부에 직접 지침을 내린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필자로서는 그 사실 여부를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검찰 수사에 영향을 주어 왔다는 것을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안다. 물론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지시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미리 말한 대로 수사의 결론이 났다면 그것은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그러기에 대통령은 수사 중이거나 그 직전의 사안에 앞서 수사의 결론이 될 만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말하면 정상과 비정상이 서로 바뀔 수도 있는가

사실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핵심 인사도 과거에는 교과서의 국정화에 부정적이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박정희 정부가 1973년에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겠다 하자, “국사가 획일적으로 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반발했다.

국정화 추진 소관부처인 교육부의 기재춘 차관도 2009년에 집필한 논문에서 “국정보다 검인정이 자율성과 창의성을 많이 지닌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정은 독재국가나 후진국에서 사용되는 제도”라고도 역설했다.

새누리당도 당내 연구기관인 여의도연구원이 불과 2년 전인 2013년에 펴낸 정책 보고서를 통해 국정화가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고, 특정 정권의 치적을 미화할 수 있다”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10월 27일) 있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제가 추진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사회 곳곳의 관행화된 잘못과 폐습을 바로잡아 기본이 바로선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육 정상화도 미래의 주역인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자라게 하기 위해서”라 말했다. 한 마디로 말해 국정제는 정상이고, 검정제는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국정제를 채택한 몇 안 되는 공산국가나 후진국은 정상이고 현재의 우리나라처럼 검정제를 채택한 선진국들은 비정상이라는 말도 된다.

국사교과서의 국정제와 검정제 중 어느 것이 정상이고 어느 것이 비정상인가. 보수‧진보를 막론한 다대수의 역사전공 학자들이 반대하고, 찬성보다 반대하는 국민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도, 심지어 보수층과 대구․경북 지역에서조차 찬성하던 사람들이 반대로 돌아서 가고 있는데도 대통령 한 사람이 정상이라 한다고 국정화가 정상적인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지금은 짐이 곧 법이라고 하는 말이 통했던 군주시대도 아닌데 말이다.

박 대통령은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두고 더 이상 왜곡과 혼란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아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인데, 입을 닫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국민이기를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박 대통령이 정상적인 현행 교과서를 왜곡해 이해하여 국정화하려 하지만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 지금과 같은 분열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어제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가리켜 ‘비정상의 정상화’로 규정했던 그 국회 시정연설 자리에 청와대는 보수단체 회원 80여명을 청와대 초청행사라는 명목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초청해 방청토록 했는데,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은 대통령의 경호문제로 외부 인사의 방청을 제한했었다. 이것만 봐도 아직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가 어떠한 내용으로 채워질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정옥자 교수의 말이지만, 그의 말이 아닐지라도 “역사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길인데, 지금 아이들에게 주입식으로 한 가지 해석만 강요하려 드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