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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의 '제네바 학살'에 대한 반박글'신학은 정통, 사역은 밥통(신성남)' 내용 중 칼뱅의 행적은 사실과 다르다
권현익  |  pariskw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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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0월 29일 (목) 07:16:57
최종편집 : 2015년 11월 09일 (월) 00:03:25 [조회수 : 23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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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박근혜 정부의 열의는 참으로 대단합니다. 김무성 대표는 자신의 선친에 대한 평가는 왜곡된 것으로, 친일파가 아니라 오히려 독립군에게 자금을 전해 주었던 애국지사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모든 역사 교과서는 좌편향되었기에 반드시 개편해야 한다는 굳센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분들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아닌 정상화라는 이름하에 자신들의 노력이 정당화 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재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역사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이렇듯 몇몇 사람들의 목소리의 큼이나 권력과 언론을 동원한 프로파겐다(사상을 강요, 주입하기 위한 선전)로 만들어지거나 바꿔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오로지 사료로 말해지는 것이며, 그 사료의 정당성은 역사가들에게서 그 사실성과 적합성을 인정 받기 위하여 오랜 시간동안의 논쟁을 통하여 확정되어야만 비로소 역사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김무성 대표가 아무리 자기 아버지는 애국지사였다고 침 뛰기며 주장한다 할지라도 그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사료가 없다면 그것은 ‘꽝’인 것입니다. ‘꽝’이란, 그의 주장들은 자신의 정치 행보를 위한 걸림돌들을 제거하기 위함 내지는 아버지를 향한 애뜻한 마음에서 나온 거룩한 사견일 수는 있어도, 북한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결단코 그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백보 양보해서 그의 선친이 독립군에게 자금을 넘겨주는 일이 은밀하게 이루어줘야 하는 일이기에, 아니면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그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증언해 줄 사람, 혹 그것이 없다면 그것을 증명해 줄 정황이라도 있어야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에 관하여 비로서 논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긴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지금부터 제가 서술하려는 역사 형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함입니다.

최근, 신성남 / 집사·<어쩔까나 한국교회>의 저자께서 본지에 올리신 <신학은 '정통', 사역은 ‘밥통'>이라는 글을 접하면서, 망가지고 찢겨진 한국 교회의 현재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교회의 회복을 위한 집사님의 간절한 절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목사나 장로가 나서야 할 일을 집사직의 직분자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음에 더욱 가슴 아프게 동감을 하며, 현재 한국 교회의 작태는 분명 비판 받고도 남는 것임에도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를 향한 남다른 그 분의 사랑이 어떠하든 그 분이 언급한 역사 이야기가 그야말로 검정되지 않은 편향을 넘어 악의적 왜곡을 위한 글들을 근거로 서술되었다면 자칫, 교회를 향한 글쓴이의 열정이 애정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거룩성을 무너뜨리려는 악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을 접한 이후 곧바로 신성남 집사님께 메일로 게재한 글에 대한 저의 의견을 제시하였고, 집사님은 많은 부분에 동의를 하시면서 반박하는 형태의 글을 지면에 올리는 것이 어떠하겠느냐는 제의를 하셔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로 글을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칼뱅(칼빈)에 대한 왜곡 역사가 비슷한 그 맥락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서술된 역사에 적합성과 정통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는 그것을 서술한 사람의 객관적 시각인 것입니다.

프랑스사를 저술한 앙드레 모로아는 그의 책 서론에서 “사가(史家)가 싫던 좋던 한편을 택해야 했던 논쟁거리를 다룬다고 할 때 감정과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아주 힘들지만… 그러한 것을 해 내는 것이 史家의 사명”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르게 말하면, 어떤 누군가 사실과 다르게 아니면, 나쁜 의도로 주관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다면 그것은 역사 기록이 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유신 독재와 친일파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국사책의 오류가 많으니 다른 국사책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신들의 가정사를 국사책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신성남 집사님께서 언급하신 “칼뱅이 수 십명의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였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16세기 그 당시의 역사 자료들이 제시되어야 하고, 그리고 그 자료가 다음 세기로 넘어가면서 그 사실이 어떻게 변질되었다든가 아니면 그대로 역사 학자들에 의해 전승되었다든지 하는 사료의 변천사 역시 언급되어야만 그 주장이 옳바른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절차는 역사의 한 사건 내지는 한 사람을 단정, 정죄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인지를 보여 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칼뱅은 이미 죽어 없어졌지만 그의 명예는 산자처럼 여전히 보호 받아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 집사님의 논지 어디에서도 1차 자료는 커녕, 1차 자료를 다뤘던 2차 자료 역시 단 한 곳도 없을 뿐더러, 어느 누구나 인터넷을 뒤지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찌라시(?)에 불과한 자료들을 마치 숨겨진 귀한 사료를 발견이라도 한 처럼 사용하였다는 것은, 한 인물을 살인자로 평가해야 하는 이 엄중한 역사적 작업에 있어 너무나 쉽게 다루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글쓴이께서 사료의 근거로 제시한 심상용, 조찬선 목사는 두 사람 모두 목사라는 직임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그들의 주장이 마치 사실일 것이라는 확신을 주게 되지만,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려는 학자 내지는 글 쓰는이로서는 저런 류의 글을 인용하는 것은 연구 내지는 검정을 거치지 않은 무책임한 가벼운 행동이라는 점입니다.

역사를 언급할 때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인용한다는 자체가 부끄러운 것은, 언급한 이 두 사람은 역사 학자도 아닐 뿐 더러 과연 이들은 최소한 역사 원서 한 권 정도라도 읽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편향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편향성은 오로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사람의 주장 하나만을 사실 확인 절차도 없이 그대로 옮겨다 놓은 앵무새의 역할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니면 말고, 그 카더라’가 이제는 역사적 정설이 되어 버린 것이 현재의 실정입니다.

일본 도쿄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감리교 신학대학, 이화여대, 목원대 교수, 전국 기독교학교 교목회장, 미국연합감리교 목사 등을 지낸 원로 신학자이자 목회자라고 소개되는 조찬선 목사의 <기독교 죄악사>라는 책은 저자 스스로가 밝히기를 순교자적 각오로 글을 썼다고 말하고 있지만, 칼뱅에 관한 부분만큼은 천주교의 쓰레기 자료들을 마치 자신이 어렵게 발굴한 귀한 사료인 것처럼 마구잡이로 갖고 와서 거기에다 자신의 저급한 상상력까지 동원하므로 기독교 역사 왜곡의 앞잡이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던 뿐 입니다.

조찬선 목사 뿐 아니라 최근 만나 교회 김병삼 목사 역시 설교 시간에 “칼뱅은 수많은 사람을 잔혹하게 학살한 살인자”라고 힘주어 강조하였으며, 감리교 진영에서 발간되는 당당 뉴스에서도 검증되지 않는 이런 글들이 올려지는 것을 볼 때 이런 식의 역사 해석이 감리교 트랜드(경향)가 아닌가 하는 의심조차 들게 만듭니다.

조찬선 목사는 그의 책에서 “장로교 창시자 존 칼뱅은 사지절단 같은 가혹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며 생각이 다른 이들을 처참하게 탄압했다. 중세 마녀사냥은 여성에게 고문을 가해 스스로 마녀라고 허위자백하게 한 다음, 마귀와 간음한 죄의 대가라며 산 채로 불에 태워 죽게 했다."

그렇게 죽임 당한 단 한 사람의 이름이라도 언급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저자가 그 당시를 살지 않았기에, 이런 자료들을 과연 어디에서 갖고 왔으며, 어떤 학자들이 어떤 책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기에 이런 책은 사실을 언급한 역사책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쥬네브의 중세 역사를 찾아 내기 위해, 수 도 없이 쥬네브 시내를 돌아 다니면서 과거 역사적 잘못에 대하여 인정하고 사과하는 팻말은 봤지만, 칼뱅 당시 세르베 사건을 제외하고 그 어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사인 규정 및 인권 회복을 요구했던 그 흔적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세르베투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석은 유럽 곳곳에 세워졌고 그 현장을 찾아가 봤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이런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는 비석 하나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정상적인 역사책은 말할 것도 없이 심지어 천주교 역사 학자의 책에서도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하여 언급되지 않음에도 도대체 이런 자료를 어디서 찾아 내었다는 것인지… 역사 학자들 모두가 칼뱅의 추종자들이라서 침묵하는 것일까요?

깔뱅에 대하여 작은 흠집을 하나라도 더 내야만, 자신 혹은 자기 교파가 칼뱅보다 더 진정성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착각이라도 한 듯 역사 날조 혹은 날조된 역사를 조 목사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조찬선 목사가 칼뱅에 대한 ‘자기 증오’를 ‘역사’라는 이름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반기독교인이 개신교를 공격하는 짓과 다를바 없는 무지를 근거로 한 어리석은 저술이었음을 이제 증명하겠습니다.

"(세르베는)…. 칼뱅의 저서 『기독교 강요』를 비판했다가 칼뱅에 의해 제네바 근교에서 불태워 죽임을 당하였다. 칼뱅은 세르베투스가 산 채로 서서 참혹하게 불타 죽기까지 <다섯 시간> 정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총칼에 의해 일 순간에 죽는 것도 아니고, 이글 이글 <서서히> 타는 불에 죽는 처참한 광경을 상상해 볼 때, 신앙의 잔악성은 그 어느 전쟁의 잔악성보다 수 백 배 더하다고 보아야 하고 <보복적 수단>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칼뱅의 신학을 따르는 장로교는 문을 닫아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글의 출처는 1908년 뉴욕에서 출간된 <로마 가톨릭 백과 사전>에서 대부분을 그대로 빼껴 오
면서 아무런 인용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글인냥 서술해 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천주교 백과 사전은 “깔뱅은 <세르베의 죽음>을 <주도>할 뿐 아니라 세르베가 죽는 그 현장에 친히 <참석>하여 죽어가는 모습을 <즐겼다>”고 서술하면서, 영국의 역사학자 기븐 (Edward Gibbon 1737 - 1794)의 칼뱅에 대한 저주스러운 평가를 인용해 놓습니다. "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auto-da-fé(천주교 종교 재판)에서 <타오른> <수 많은 희생>보다 세르베 <한 명>의 <처형>에 대해 <더 깊이> <분개>한다”... 로마 천주교회는 이 글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행하였던 다른 수천, 수 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 학살의 희생들은 깔뱅에 비하면 그 죄악이 <경미>하며 매우 <신사적>이었다는 동정을 받아내고 싶었을지는 몰라도 조찬선 목사가 몰래 훔쳐다 쓴 이 글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판단이 안됩니다.

조찬선 목사는 일제시대의 일제 앞잡이 형사 나까무라 상보다 더 지긋지긋한 천주교 앞잡이처럼 보입니다. 그는 auto-da-fé라는 단어를 해석할 수 없어 그랬는지 <그 어느 전쟁의 잔악성>이라고 표현을 달리 했을 뿐, 그 내용은 왜곡을 일삼는 천주교회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놓으면서 자신의 비신사적인 분노까지 토해 놓았던 것입니다.

혹 어떤 분은 천주교의 주장이라고 해서 이 서술이 반드시 왜곡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는가? 라고 질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왜곡이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 하면, "세르베(투스)가 칼뱅의 저서 『기독교 강요』를 비판한 죄목으로 화형을 당했다"면, 왜 로마 천주교회는 이 보다 앞서 세르베를 두 번이나 화형 선고를 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로마 천주교회 역시 칼뱅의 기독교 강요를 좋은 책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칼뱅의 똘마니 집단이었기 때문에 칼뱅의 거룩한 손에 피를 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둘러 화형을 선고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오늘날도 용서되지 않는 기독교의 근간인 삼위일체를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조찬선 목사가 말하려는 것이 단지 장로교에 흠짓을 내려는 의도였라면, 화를 낼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그 유치 찬란함에 쓴 웃음만 짓을 뿐입니다. 웨슬레 정도를 공격하고 나서야 스스로 순교자적 자세로 글을 썼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찌라시를 그것도 몰래 훔쳐다 빼겼다 놓고 그 자신을 누가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겁이 난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는 학자로서, 나아가 개신교 목사로서도 이미 죽음었습니다.

왜곡의 또 다른 증거는 이것입니다. 천주교 백과 사전의 첫 주장부터 역사라고 말하기도 아까운 <비 사실>은 <필리핀>은 <한국> 옆에 위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르베의 화형은 현재 깔뱅의 집이 있는 쥬네브에서 직선 거리로도 2킬로 떨어진 외곽지 <샹펠>이라는 곳에 이루어졌습니다. <깔뱅의 집 앞>이라고 말한다면 깔뱅의 집은 <반경 2킬로>가 넘는 <어마어마한 궁전>에 살았던 추기경이나 영주여야 했을 것입니다. 하긴 추기경이나 주교만 되어도 궁궐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았기에 이런 추측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깔뱅은 월세로 살았으며, 손님들이 많은 관계로 다른 사람에 비하면 큰 집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리 큰 집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쥬네브의 깔뱅의 집 앞을 한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깔뱅의 집 앞이 화형 장소로 적합하지 않은 좁은 골목길이었음을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어리짐작>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은 당시 로마 천주교회가 <화형을 집행>할 때 시민들에게 <경고의 의미>를 담아 <도시 한 가운데>에서 파리의 경우는 <파리 시청>이나 <파리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종교 범죄자들을 화형하였고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볼 수 있도록 뜨겁지 않은 불로 하루 종일 사람을 그슬려 죽였던 것입니다.

이런 자신들의 역사적 배경을 쥬네브에 그대로 대입하다보니 쥬네브 역시 도시 한 가운데서 그것도 깔뱅의 집 앞에서 세르베를 죽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하나만 봐도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깔뱅의 잔인성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에서 <추측>과 <악의적 감정>으로 서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추측과는 달리 세르베가 죽임 당하는 곳은 칼뱅의 집 앞도 쥬네브의 도시 한 가운데도 아닌 도시 밖의 외곽지 '샹펠'이라는 곳이며, 더 중요한 사실은 깔뱅이 그 형장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조찬선 목사는 세르베의 죽음 현장이 쥬네브에 있지 않음을 알았든지 근교라는 말로 바꿔 놓았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것은 칼뱅이 화형의 그 현장에 있었다고 천주교 백과 사전과 동일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함에도 이런 잡동사니의 글이 역사 사료로 채택될 수 있는 것일까요? 김무성 대표의 선친인 김용주가 친일파가 아닌 애국지사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당해 보입니다. 누가 어떤 의도로 역사를 서술했느냐가 정당한 역사로 평가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처음에 언급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천주교회가 아무리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그것도 천주교 주교가 발행한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부수의 책을 발간했다 할지라도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닌 악의적 왜곡을 위한 전술적인 부끄러운 책일 뿐입니다. 이 외에도 입에 다 담지 못할 더 많은 악의성 글들이 있지만 다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면 이런 상식 이하의 글을 분별하지 않은 채, 그것도 몰래 뺐겨 쓰면서도 순교적 각오로 글을 썼다는 자신을 자찬한 조찬선 목사의 책은 분명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기에 이런 책을 인용한다는 것은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부끄러워할 부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쥬네브에서의 칼뱅이 학살을 행했다는 주장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아닌 카스텔리옹(1515~1563)이라는 칼뱅 시대의 사람이, 천주교 백과 사전과 비슷한 또 하나이 공상소설을 저술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그 당시 그 어떤 역사 책에서도 인용되지 않은 죽은 책으로 남아 있다가, 400년이 지나서야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에 의해 일략 베스트셀러로 둔
갑되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400년의 긴 시간을 40년으로 줄인다 할지라도 슈테판 츠바이크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글인지를 반박해 보겠습니다.

 

#주장 01

"깔뱅이 통치한 불과 5년 동안에 당시 전 인구가 1만 3천 명에 불과한 제네바 시에서 13명이 교수대에서 살상되었고, 10명이 목이 잘리고, 35명을 화형시키는 끔찍한 범죄들을 벌였다." (카스텔리옹의 주장을 인용)

 

반박 1

깔뱅은 두 차례에 걸쳐 쥬네브에 정착하게 되는데, 1차 체류 기간은 추방으로 인하여 다소 짧았는데 1536년부터 1538년까지이며, 2차 체류 기간은 쥬네브 시의회가 다시 그를 초대하므로 1541년부터 사망하는 1564년까지 쥬네브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카스텔리옹이 말하는 깔뱅 사역 초기 5년이라는 것은 2차 기간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깔뱅은 1555년 초까지도 쥬네브 시민들에게 심한 반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쥬네브라는 도시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깔뱅을 위하여 존재했던 도시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사부아 공국에서 나온 부르조아 계급들이 만든 도시 국가였습니다. 그들은 칼뱅이 오기 전까지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시켜 왔던 로마 천주교회 사제들을 추방시키고 난 후 이단 집단이라고 무섭게 공격해 오는 로마 교회로부터 자신들의 정당함을 신학적 이론으로 막아주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부여해 줄 똑똑한 신학자 하나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쥬네브가 깔뱅에게 아무런 권한(심지어 시민권조차 주지 않음)이나 권력을 부여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과거 로마 교회가 쥬네브를 장악했을 때의 잔혹한 피 흘림과 억압을 이미 경험하여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역사의 반복을 원치않음과 동시에 자신들의 권리가 종교적인 것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칼뱅의 도시 쥬네브가 아니라 쥬네브라는 도시의 칼뱅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것입니다. 독재자라고 알려진 깔뱅의 첫 사역 기간 동안 사례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하였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그에게 설교자, 혹은 성경 선생이라는 타이틀만 부여했다는 것을 통해서도 쥬네브에서의 칼뱅의 위치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칼뱅이 스트라스부르에서 만났던 카스텔리옹에 대한 좋은 인상이 남아 있어 그를 쥬네브의 한 학교 교장으로 추천을 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카스텔리옹은 쥬네브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1544년 5월 시의회로부터 모든 직위가 파면되므로 생계를 위해서라도 쥬네브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깔뱅의 초기 5년이라는 기간(1541-1545)동안 카스텔리옹 역시 칼뱅과 거의 4년을 함께 사역했다는 말입니다. 그의 파면은 자신의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교장 뿐 아니라 목사로서도 활동하겠다며 목사직을 요청하였지만 거절을 당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분풀이로 한 성경공부 모임에 나타나 난동을 부리다가 시의회로부터 파면을 당하는데, 이 사건 이전에도 그는 돈 문제로 많은 이들과 싸우는 것이 칼뱅에게 목격되기도 하였습니다.

목사가 되고 싶을 정도로 영혼 구원에 뜨거운 열정을 가졌던 그였다면, 칼뱅과 함께 4년 동안 머무르는 그 긴 시간 동안, 그가 주장하는대로 깔뱅이 수 많은 살상과 화형을 집행했다고 한다면, 그는 왜 그 기간 동안 침묵만 하고 있었으며, 그런 피비린내 나는 와중에 그 악독한 살인 집단인 쥬네브의 목사가 되겠다고 나섰단 말인지…

그렇다고 그가 목사로서의 사명감이 철철 넘친 것이 아니었음은 사상의 자유가 마음 껏 주어졌으며, 누구나 쉽게 책을 출판할 수 있는 바젤이라는 도시에 가서 그가 쥬네브 보다 까다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로서의 삶을 살지 않고 생계형 직업만을 갖고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대로 칼뱅이 살상을 저지를 수 없었던 것은 그에게 그런 권력이나 그 일을 집행하기에 합당한 직임을 시의회가 부여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칼뱅은 글들을 통하여 프랑스 왕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위그노 박해에 대하여 항의를 하며 관용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유럽의 다른 개신교 국가들도 동일하게 관용을 요구하고 있었기에, 당시 유럽 최고 가문인 합스부르크 가문을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개신교 국가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박해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의 글까지 인용하면서 박해는 로마 천주교회를 지키는 일일 뿐 아니라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필요한 정당한 행위라고 밝히고 있던 시절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칼뱅이 제네바에서 그러한 무자비한 학살을 가하고 있었다면, 쥬네브를 다시 빼앗기 위해 손바닥처럼 쥬네브의 형편을 내다보고 있었던 로마 천주교회는 왜 침묵하였으며, 더 적극적으로 ‘니나 잘하세요’라며 칼뱅의 학살을 공격해야 정상적이지 않았겠습니까?

북한처럼 언론을 통제해서 쥬네브의 형편을 천주교회가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개신교 국가로 바뀐 이후에 여전히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얼마든지 편지로나 방문객들의 입 소문을 통해서라도 이 사실들은 전달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수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와 쥬네브를 넘어다니
고 있었고, 엄청난 분량의 책들과 물건들이 두 나라를 오가고 있었음에도 칼뱅을 비판하거나 그 어떤 반박이 없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1908년에 출간한 천주교 백과 사전에서 카스텔리옹의 글을 인용한 것을 제외하고서는 천주교 신자가 쓴 그 어떤 역사 책 어느 한 구퉁이에도 칼뱅의 이러한 학살을 언급하고 있지 않음은 무슨 연유일까요?

더군다나 카스텔리옹은 근대 관용의 선구자라 불려지게 된 그는 이 엄청난 학살이 자행되고 있음에도 자기 생계에만 집중하면서 왜 10년 동안이나 침묵하였을까요? 혹 깔뱅이 쥬네브를 떠나는 그에게 혹시나 도움이 될까봐 써준 추천서가 효력을 잃고 또 다시 실직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 침묵했던 것일까요? 카스텔리옹의 학살이 사실이라면 그런 처참한 학살이 발생했던 도시가 칼뱅이 도착했을 때 13,000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1560년경에는 2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더 많은 사람들이 쥬네브로 몰려 왔을까요?

 

#주장 02

1. "칼뱅의 본모습을 알지 못했던 카스텔리옹도 처음엔 멋모르고 그의 문하에 들어가 일했다."

반박 - 멋모르고 그의 문하에 들어가 일했다고요? 이 대목에서 츠바이크는 정말 역사에 대해 무지한 역사의 문외한이거나 아니면 카스텔리옹를 순박한 사람으로 묘사하려는 극작가로서의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카스텔리옹는 스트라스부르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깔뱅의 집에 머물렀으며, 페스트가 돌았을 때, 깔뱅과 함께 환자들을 돌볼 정도로 아주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그런 카스텔리옹의 모습에 좋은 인상을 가졌던 깔뱅이 쥬네브로 돌아갔을 때, 교장이 비어있는 학교의 교장 자리를 그에게 추천하자, 얼른 달려 왔든 것이지, 쥬네브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난 것처럼 멋 모르고 깔뱅의 문하에 들어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2. 그러나 칼뱅의 독재와 그의 측근들의 위선이 시 전체를 망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까놓고 문제 제기 하다가 결국 제네바에서 쫓겨나고 만다.

반박 - 무슨 문제를 제기했나요? 학살의 잔혹함을 고발했나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1544년, 깔뱅이 바울서신서를 가르치고 있을 때, 카스텔리옹은 깔뱅과 동료 사역자들의 신실성과 신앙에 관해 신랄하게 인식 공격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터뜨렸던 것입니다. 관용의 선구자께서 학살의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가 하셔야 할 일이 겨우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요? 학살의 주범인 깔뱅을 말리든지, 아니면 깔뱅의 실체를 유럽 전체에 알리든지, 시민들을 동원해서 깔뱅을 추방하든지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칼뱅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종교국이라는 것은 쥬네브에 없었습니다. 굳이 종교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천주교회의 한 기관으로 화형까지도 내릴 수 있는 무시 무시한 종교재판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던 것처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종교 재판은 존재하지 않았을 뿐 더러, 오늘날 노회(연회)와 같은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 결의하는 기관인 콩시스투와가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날 장로교의 당회나 노회는 쥬네브의 이 콩시스투와에서 도입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노회가 종교 범죄에 관하여 사형을 선고하든가요? 실제로 이 기관은 신앙 생활과 관련된 사건을 다스릴 수 있었으며, 최고의 형벌은 수찬 정지였습니다. 영적인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시의회는 이 권한 조차도 빼앗기 위하여 칼뱅을 여러 번 코너로 몰아 넣었는데, 도대체 누가 칼뱅에게 사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줬다는 것인지요? 그것도 쥬네브 출신도아닌 비 시민권자에게 이런 권한을 주는 국가가 있단 말인지요? 목사회나 콩시스투아르가 갖고 있는 종교적 권한을 축소시키려는 시의회와의 싸움의 증거는 지금까지 자료로 남아 있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세르베 사건 역시 당시 시의회의 다수당이었던 방종파가 세르베를 불려 들어 칼뱅을 위기로 몰고 가기 위한 것으로, 이미 세르베의 책을 출판하는 일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세르베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시의회는 이 사건을 종교 문제임에도 종교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이 재판에 목사들은 단 한명도 관여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칼뱅은 재판관이 불러야 재판정에 설 수 있었고,

세르베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항상 당당할 뿐 아니라 4개월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당시 사형수로서는 최장기간 동안 재판) 그가 원하는 책들을 마음 껏 볼 수 있었으며, 재판정에서도 수시로 칼뱅을 모욕하는 발언도 서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쥬네브 시민들은 세르베와 칼뱅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오히려 칼뱅을 가엽게 여길 정도로 세르베는 자신이 있었던 것입
니다.

하지만 상황은 세르베와 방종파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스위스의 다른 도시 국가들 모두가 세르베의 삼위일체 부정은 용서할 수 없는 일로서 최고형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었으며, 만약 세르베를 살리기 위해 이 요구를 거부하게 되면 자신들의 세력이 무너질 것이 자명하기에 그들은 서둘러 화형을 선고하고 그 다음 날 곧 바로 화형을 집행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세르베를 살리기 위해 칼뱅은 오랫동안 모욕감을 감수해야 했으며 당국의 허락을 받아 동행인과 함께 감옥으로 그를 찾아가 대화할 뿐 아니라 그의 오류를 고치도록 지속적으로 설득하였던 것입니다. 칼뱅이 세르베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은 칼뱅이 프랑스에서 추격을 받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세르베가 만나기를 요청하여 그를 만나러 갔다가 세르베가 나오지 않아 헛탕쳤던 일이나, 말도 안되는 억지 논리에도 불구하고 수 십장의 편지를 오랜 시간 동안 주고 받았던 것은 세르베를 향한 칼뱅의 애뜻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이 외에도 더 많은 반박 자료들이 있지만 독자들이 이 정도의 글만으로 허구의 역사가 사실인냥 자리잡고 있음을 금방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카스텔리옹은 이런 중요한 글을 그것도 쥬네브가 아닌 바젤에서, 자신의 이름을 숨긴 가명으로 저술하였다는 것은 못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츠바이크는 “ 카스텔리오가 침묵을 깨고 <이단자에 관하여>, <칼뱅의 글에 반대함>과 같은 글을 써서 이에 <목숨을 걸고> 맞서고자 하였다.”고 주장을 합니다.

조찬선 목사 역시 순교적 각오로 글을 썼다는데, 이 두 사람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역사 서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뱅은 카스텔리옹을 죽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죽일 생각도 없었음에도 카스텔리옹은 마치 세르베가 화형 당한 것이 칼뱅의 신학을 공격한 것인것처럼 거짓말을 함과 동시에 그 자신을 세르베에 대입하여 가명 사용을 정당화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책이 출간되었을 때 칼뱅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그 책의 저자가 카스텔리옹이라는 사실을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그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츠바이크는 어떻게 설명할런지 궁금합니다.

카스텔리옹이 깔뱅을 평가 절하는 하고 싶은데 흠집 잡을 것이 특별하게 없고, 그냥 억하 심정으로 몰래 뒤에서 남을 욕하는 뒷담화 정도의 글을 남겼을 뿐인데 아주 훗날 로마 천주교회와 천주교 신자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독점물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공격하고자 하는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역사적 자료로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 감리교 목사님들 조차도 조잡하기 짝이 없는 이 허구적 역사를 사실인냥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다는 형편입니다.

칼뱅은 장로교의 아버지가 아니라 오늘날 개신교에 많은 영향을 미친 우리가 보호해야 할 소중한 개혁자임을 이 기회를 통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칼뱅을 신화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로마 천주교회가 깔뱅에 대하여 <유독> <거짓>과 <왜곡> 그리고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깔뱅에 의해 그들이 빼앗긴 쥬네브와 그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받은 피해가 그 어떤 개혁자들보다 더 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칼뱅을 논함에 있어 사료적 가치도 없는 심상용, 조찬선 목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억하심정으로 없었던 일도 있었던 것처럼 악의적으로 왜곡한 카스텔리옹과 그의 책을 편역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반드시 제외되어야 할 비 역사서가 되는 것입니다.

신성남 집사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료를 제시하신다면, 그 사료가 옳고 그름을 떠나 역사를 언급하는 글쓴이로서의 자세를 인정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사료들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본인이 올리신 글에 대하여 책임을 지실 줄 아는 지성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권현익 목사 / 현재 프랑스에서 중세역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1) 깔뱅의 시대와 세르베 사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4845
2) 변형된 500년 역사의 충격적 전말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4981
3) 종교개혁사는 개혁교도 핍박사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5310
4) 역사라는 것의 상식성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5848
5) 깔뱅의 비관용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5496
7) 가톨릭이 화형 언도한 세르베투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5850
8) 그 때 가톨릭 손에는 왕들도 죽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6051
9)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프랑스 버전?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6052
10) 살인자들의 칼집, 똘레랑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6398
11) 엑소더스 프랑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6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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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익 (83.204.187.197)
2015-11-11 10:25:35
거짓은 드러나는 법입니다.
합동 헤럴드에 신성남, 그는 과연 <교회 개혁>을 외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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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강숙자 (118.222.232.36)
2015-11-25 18:03:54
권현익!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왕래하며 출장다니는 본인 아들에게
당신 쌍판때기를 보고 확인명령할거니까, 지금 상주하고 있는
주소를 속히 입력해라 그주소로 찾아가서 진정하게 하나님의사역
하는지 보자. 어디다가 페이스북과 이메일로 또는 개인문자로
음해,공갈 치는데? 사역자 기본기가 전혀 바닥을 치는데..
중심 의도가뭐야? 정체를 밝혀라.....

주소나 입력해! 우리 아들 통해 찾아갈거니까!!
님이 뭔데? 한국 감리교 최고 뉴스사이트에 니미친 자료들고 농간해?
빨랑 주소 들이대!... 님은 그리스도사역자라 논하지마라.
가장 악날했던 칼빈밥 처먹고 나가떨어져라!
빨리 님 거주 주소 공개해... 음지에서 농간하지말고....
니가 정신 나갔나?
그리스도인이 맞나 우리아들 통해서 확인사살 할꺼니까/

온전한 사역은 하고 있으면 ,같은 하나님의자녀들께
이리 비열한 행동 못해! 다같이 격려는 못해줄 망정
니중심 잔머리는 뭐야?
중병들어서 그때야 후회할래?
이 비겁한 인간아! 니같은 인간은 나도 확실히 짚는다,
니쌍판때기 들여내? 니정체가 뭐야?
위의글데로 니주소나 공개해 찾아간다
니! 얼마나 떳떳한지 삼위하나님 떠나서 상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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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
익명 (110.92.241.36)
2015-11-02 16:04:40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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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zzz (112.161.121.128)
2015-11-05 17:34:22
좌편향 의혹이 제기된 교과서들은 일부에 불과하고요..
만약 왜곡된 내용이 있다면 수정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정화는 아니죠..
만약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당연히 수정해야 하지만
국정화는 아니지요..
박근혜대통령도 몇년전 직접 국정화시스템을 비판하는 발언도 하셨는데 말이죠.
외신들도 비판하는데 말이죠..
그리고 사실 지금 출판된 교과서들도
박근혜 정부에 의한 교육부에서 심사를 최종적으로 필했던 교과서들이라..
교학사 교과서만 거부됐다고 (교학사교과서는 읽어보셨나요?)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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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이건또뭐야 (1.249.253.226)
2015-11-04 22:27:20
독재자가 뭔지 뜻도 모르는 사람이 왜 역사를 가르치냐?
꼭보면 빨갱이 타령하는것들이 빨갱이랑 똑같은 소리 똑같은 짓을 해요. 힘이 남아돌아 힘쓰는건 그렇다 치는데 니 댓글은 좀 웃기지. 종교판에 까지들어와 물흐리지 마시고 너 노는곳으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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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
참빛 (207.210.3.147)
2015-11-02 10:09:34
칼빈이 1561년 북스페인 나바레의 마이클 파엣이라는 고위급 인사에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출처: (Did Calvin Murdered Servetus, Stanford Reives, Infinity, 2008)


그의 편지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네요.

영문으로 된것을 제가 번역해 보았습니다.
본뜻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급적 직역을 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번역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도 있음을 밝힙니다.


"경의와 영광과 부요함이 귀하의 노고에 대한 상급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대항하여 사람들을 동요하고 있는
저 거짓말쟁이들의 나라를 없애 주시는데에 실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괴물들은 반드시 박멸하여야 합니다.
내가 그 스페인 놈 마이클 서르베투스를 처형한 것 처럼 말입니다" - 존 칼빈 -



내가 그 스페인 놈 서르베투스를 처형한 것 처럼 말입니다.....?


...


칼빈이 '극악무도'한 말종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중세기 기독교가 이단들을 처형한 일은 종종 일어나곤 하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리강요와 설파에 폭력이 사용된 것에 대한 책임으로 부터 칼빈이 완전히 자유로워 질 수는 없다고 봅니다.



...



권현익 선생이 단지 '프랑스에서 중세기를 연구'하고 있는 학도로 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 목사님인 것을 나중에 신집사님의 댓글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문제가 하나 지평위로 떠 오릅니다.
글쓴이가 학자이기 전에 목사라는 점입니다.

저의 궁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학자라는 분이
무슨 이유로
편견적인 관점으로 글을 쓰시고
간단한 내용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실증을 요구하는지와
칼빈을 무조건 옹호하고 변호하려 하는가 하는 저의 끊임없는 의구심이 풀린 것입니다.

권현익 목사님은 공정성과 정직성을 최대가치로 여기는
순수한 학자 (Scholar)라고 죄송하지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권목사님은 이미 교단과 연관지어진 분이시고요...
칼빈을 보호 옹호하기 위하여 나선 변론가 (Apologetic) 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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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4
신성남 (49.50.206.22)
2015-11-01 20:10:58
칼빈의 글을 직접 인용해보자...
칼빈은 세르베투스 화형 이듬해인 1554년 초에 <정통신앙 옹호론>이라는 책을 간행했는데, 그 속에는 종교적 탄압의 정당성을 밝힌 대목이 있다.

그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이단을 처형한다는 일은 결코 그리스교도적 사랑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된다. 일반 신자가 이단의 거짓 가르침에 물드는 것을 막아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의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선한)목적을 위해서 는 한 도시의 주민 전부를 없앨 수도 있는 것이다."

출처: "양심의 자유(세르베투스 사건을 중심으로)" 에서 발췌

(참고: 칼뱅의 원전 자료는 직접 확인 못 했습니다. 혹시 본 내용에 오류가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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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권현익 (86.195.109.69)
2015-11-01 23:13:42
여기서 말하는 <이단>이란 세르베와 같은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그런 종류의 신학사상을 갖고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이 세르베 외에 또 다른 처형이 있었음을 증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당시 천주교에서 성모의 중보를 부정하거나 루터나 칼뱅의 서적만을 소유했다는 이유나 개신교 예배에 참석했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했던 그런 류와는 다르지요. 유아 세례를 반대했던 아나밥티스들이 단 한 명도 죽임 당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칼뱅이 말하려는 이단의 정의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저의 이 진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제가 올리게 될 반박글에서 정확한 사료를 갖고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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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무릇돌 (121.134.210.37)
2015-11-02 11:56:49
<이단>이란 세르베와 같은 .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그런 종류의...

일단 참빛님이 미스터권의 편향성에 대하여 잘 지적하셨습니다만,
권현익목사님, 귀하도 기독교는 삼위일체를 믿어야 하는 종교라
믿으십니까?
그 허접하고 성경 왜곡으로 탄생한 삼위일체를???
귀하는 중세사를 연구한다고 하셨습니다만
그 이전에 제도 기독교 아마도 장로교의 목사인듯 합니다.

저는 단언하여 말합니다.
삼위일체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성경을 쥐뿔도 모르는
성경 문맹의 소치라고!
아, 중세사 연구(전공)이라고요?
목사라면서요?
성경왜곡에 의하여 만들어진 삼위일체와 같은 멍청한
교리를 신봉하는!
귀하는 목사입니까? 성경을 가르치는?
무슨 성경을 배웠습니까?
중세사만 안다고요?
그럼 목사란 말을 빼세요.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은
개독교인임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목사라 한다면, 그걸로 밥벌이를 한다면,
중세사를 집어던지고
성경을 연구하세요.
아주 감정이 철철 넘치는 글을 올려
죄송스럽지도 않습니다.

개독먹사한테는 칼뱅처럼 살의를 느끼지는 않지만
측은지심이 넘쳐 심쿵합니다.

아직도 삼위일체를 믿어야 하는 기독교?
그러니 개독교에서 그냥 좋아라 춤추는 거죠.

예수님게 물어보세요.
삼위일체가 무에냐고?

평생을 성서(신약)을 연구하신 원로교수
정 아무개 신부님이 말씀하셨지요.
빈말이라고.
삼위일체는 빈말이라고!

빈말을 위하여 화형도 서슴지 않았던 칼뱅!
그래서 그 졸개들은 삼위일체를 금과옥조로 여깁니다?


이게 당신들의 기독교입니까?
개독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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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
이형진 (58.231.78.68)
2015-11-02 15:30:22
정말 충격입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면서 기독교인이라 하시는건가요?
제가 알기론 여기는 기독교 인터넷 신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버릇없이 보실 수 있으시겠으나 너무 놀라워서 여쭙습니다. 진정 기독교인이신가요?
그리고 아무리 상대방과 뜻이 다르다 해도 개독이니 먹사니 하는 용어를 쓰는게 과연 기독교인으로서 맞는 건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대체 원글에 대한 반박은 어떤 근거와 논리로 하시는건지요? 그저 개독, 먹사, 등의 용어를 쓰면서 상대방을 한없이 비방하고 깍아 내리시는 의도는 무엇인가요?
신성남님의 글과 권선교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합리적인 대화와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했는데 이런 댓글은 모든 이들로 하여금 불쾌감만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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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
무릇돌 (218.38.162.72)
2015-11-10 21:18:18
기독교에선 삼위일체 교리가 있다.
성부도 하느님, 예수도 하느님,
성령도 하느님이라고 하니 삼신교 아니냐고 한다.
구약의 유일신교를 물려받아서 삼신교가 아니고 유일신교다.
그러나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이고,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다는 게 삼위일체다.
위(位)로선 셋이지만 체(體)로선 하나라는 것이다.
고도의 추상적인 그리스철학 개념이다.
여러분도 상식선에서 경험선상으로 똑부러지게 설명할 분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교리 만든 이들은 그리스 주교들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근본교리니 믿으라고 하니 믿겠다면 모르겠지만
위와 체가 납득이 되어야 할 게 아닌가.
따라서 한마디로 빈말이다.

정양모 신부, 한겨레 인터넷 신문, 2008년 12월 3일자

<참고로 정양모 신부님은 평생을 성서학(신약학) 연구를 하신
신구교가 인정하는 학계(근본주의 제외)의 원로이십니다.
이런 대담이 매스컴에 보도되었는데 교회는 문화지체에
정신지체이니 계몽 이전의 암흑세계에 아직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학의 기초만 제대로 닦은 사람이라면 삼위일체라든지
하는 제 교리들이 사상누각의 허설들임을 잘 이해합니다!
그러나 근본주의 계열의 먹사들은 도대체 알 길도, 이해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냥 성경왜곡의 산물인 500년 케케묶은 교리문답이 길이요 진리요 밥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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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무릇돌 (218.38.162.72)
2015-11-10 22:24:15
기원후 325년 니케아의 콘스탄티누스 궁전에서 열린
제1차 공의회에서 예수님이 하느님과 본질적으로 동등하다는
어처구니없는 교리를 정함으로써 교회는 완전히 그릇된 길로
가게 되었다. <문동환, [예수냐, 바울이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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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무릇돌 (218.38.162.72)
2015-11-02 22:02:55
아직 얼라같으니
공부를 하심이 어떨까 하오만
여기 이글에 대한 조직신학을 거쳐
성서신학을 전공한 박사님의 글이 있으니
그 글이 내 대답을 대신해줄 것이네.

기독교라는 덩어리는 우상숭배의 작당들이지.
케케묶은 교리와 신학을 읊조리는.
목사(먹사)를 얼마나 아시는가?
그들의 무지, 편견, 탐욕, 허세...
안좋은 말을 수없이 붙여도 모자라네.
이제 시간이 된 거야.
기독교가 새로와질 시간.
가짜 기독교(개독교)는 가고
진짜 기독교가 도래하는.
먹사라 하는 막사들을 한 꾸러미로 꿰자면
구슬 하나 조차도 안됨세.
그렇게 밀도가 없는 빈 죽정이들이지.

이제 충격요법으로 각성을 하야
허상에서 우상숭배에서 깨쳐나야 하네.

아, 때가 이르렀습니다.
예수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2000년 개독역사에서 더렵혀진
예수 당신의 실체가 드러나고 숭앙받을!

한토막만 인용하지.

그렇다면 삼위일체를 부정한 그(세르베투스)의 논리가
정당한 것이었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이 지면에서
풀어놓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그가 간지 5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주장이 옳았다는 데는
성.서.학.계.의. 이.견.이 없.습.니.다.<강조>
칼뱅이 주장한 축자영감.삼위일체.예수의신성.예정론.원죄설.등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된 교리들이만 교회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참빛이여, 함께 춤을 춥시다!

악독한 칼뱅의 졸개,
권현익 먹사야, 나와라!
추악한 키보드워리어 노릇 그만하고!
그대야말로 기독교(개독교)의 일베충이니라.

내가 오해하고 착각한다면
네 발등상의 먼지나 평생 닦으리라!
쥐뿔도 모르며 무슨 중세사가 어쩌구...
리플달기
1 4
이형진 (58.231.78.68)
2015-11-03 10:32:12
아. 정말 제가 공부를 더해야 하나 보네요. 아직 얼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일반 성도라 그런건가요? 무릇돌님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모르겠네요.

삼위일체 자체를 부정하시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건 확실하게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 대화 자체가 불가능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이 성서학계의 이견이 없다는게 정말 놀라운 말이네요.
그게 교단의 차이는 아니겠죠?

제 바램으로는 '무릇돌'님께서 후에라도 삼위일체의 놀라운 진리를 깨달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만 이 원글에서 권선교사님이 칼빈이 저질렀다고 하는 여러 오해들을 풀고자 객관적 자료와 근거로 설명하려는 것이지, 지금 '무릇돌'님께서 주장하는 삼위일체의 부정에 대해서 탓하거나 판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믿는 바가 다르기에 그렇다면 서로가 그런가보다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만 충실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주장하면 될 일이지, 그렇게 상대방을 헐뜯고 비아냥 거리며 악담을 늘어놓는 것은 결코 성숙하지 못합니다.

여기는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공간이며, 기독교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 곳이며, 그 댓글을 다는 공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지만 주안에서의 한 지체라면 부디 태도에 있어서 좀 더 온화한 모습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괜시리 이 글을 읽고 더 악에 바쳐서 어떤 식으로는 비방하는 댓글을 달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쓰는 건 스스로 조금이라도 찔림이 되시길 하는 바램에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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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
무릇돌 (121.134.210.37)
2015-11-03 11:17:57
괜시리 이 글을 읽고 더 악에 바쳐서
는 근본주의, 칼뱅주의자들이 하는 짓이오.
내 격한 표현을 형제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보네.
왜? 어차피 형제는 그 삼위일체가 정통이라 믿는
일종의 우상숭배에 빠져있기에!


그런데 성서학계에서는 벌써 끝장난 삼위일체를
아직도 믿으려 하고 믿으라 하니 참으로
서글프이.
그건 머리를 떼어놓고 어거지 신앙질을 하려는
개독들의 전매특허 행위임을 모르시는가?

아직도 유창윤 목사님의 글을 해독하지 못하시는가?
유독 한국에서만 거지같은 교리와 신학을 읊조린다는...
그러니 교회판이 개판이요 개독판이네.
사실도 아니고 진리도 아닌 개독의 교리를
몰상식하게 믿으려하기에
개독이 횡행하는 것이지.

혹 신학을 하시는 분이 아니신가?
정신차리고 깊이 하시게.
엉터리학교에서 학점이나 챙겨야
인생과 영혼에 아무 도움이 안되니...

자세한 것은 검색하면 다 나오이.
그만 줄이겠네.

-뱀발-

이 돌멩이도 한참동안 그 삼위일체를 신봉했다네.
장로교의 아들이며 근본주의의 아들이었었지.
그러나 성경을 파면 팔수록
기존의 교리란 모두가 사상누각이며
지독한 성경왜곡에 의하여 꼴지어졌음을
깨닫게 되었지.
조금씩 허물어진 교리에 의한 신앙은
성서에 대하여 어느 정도 개안이 되면서
완전히 무너졌지.
그리고 이런 변화는
개판인 교회판과 먹사판을 함께 온몸으로
부딪히며 체득하게 된 것이지.
먹사들의 그 무식, 무지, 편견, 탐욕, 허세...
물론, 아주 적은 수의 목사님들은 아직도
나름 성실한 목회를 한다고 봐야지.
그러나 기존의 교리와 신학을 고수하는한
어떤 명목의 목회활동이라도
<사기>임이 분명한 걸세.
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진리로
믿으려하고 믿으라하기 때문이야.
형제도 교회라는 겟토 안에서
삼위일체를 믿게 된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겠지.
그러나 철이 나고 진실이 보이게 되면
그런 허무맹랑한 교리가
교회사람들을 영적, 문화적 지체상태에 감금하는
도구임을 알게 될 걸세.
어쩌면 불행히도 죽을때까지 깨닫지 못할수도 있겠지만...
(그리하여 우상숭배에서 인생을 허비하겠지만)
그러나 진리와 진실을 향한 열망이 있다면
분명 문은 열리고 진리와 진실을 보게 되네.
그럼 건투를 비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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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
이형진 (58.231.78.68)
2015-11-03 13:31:52
사과를 해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일반 성도입니다.
저는 다른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도움을 받아 삼위일체를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삼위일체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저는 '무릇돌'님께서 끝장났다고 표현하셨으나 삼위일체는 성경이 말하는 바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 믿음이 비록 '무릇돌'님과는 다른 것일지라도 또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할지라도 부디 날선 표현과 과한 언어로 아닌 것을 비난하시진 않았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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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88.161.132.141)
2015-11-04 23:34:47
삼위일체를 믿는다에 대하여
'삼위일체를 믿는다' 라는 말은 정확한 신앙의 표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예수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그는 신의 대열로 고백한 것이 처음 제자들의 고백이고 바울의 고백으로 생각할 수 있지요.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신 말과 삶을 추구하는 것만이 참된 구원이라고 인식한다는 그들의 고백이기 때문에 예수를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삼위일체는 교리적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일 뿐이지 삼위일체를 믿고 안믿어서 이단이네 삼단이네 죽이네 안죽이네 라는 상황은 옛날 지독한 과거의 칼빈의 시대,,,, 교리의 시대였다고 할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믿게되었다'라는 말은 문장상 옳은 표현일 수는 없고 신약성경에 나타난 신을 구지 이해함에 있어서 '삼위적인, 삼위일체적인 표현으로 정의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것이 이시대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신앙하는 그리스도인의 표현이 되지 않을 까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표현 역시 신학적인 표현이지 생물학적 표현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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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
무릇돌 (218.38.162.72)
2015-11-11 21:23:42
삼위일체를 믿는다에 대하여

만일 누가 삼위일체를 믿는다 하면
그는 허깨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며
일종의 우상숭배를 자인하는 꼴입니다.
만일 교회에서 목사(먹사)가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으라 한다면
그 또한 잘못된 전통을 따르는
우상숭배자일 뿐입니다.
삼위일체는 그냥 헛소리(빈말)이며
예수를 하느님과 동등으로 삼은
니케아 종교회의는 기독교 타락의
기점이라는 것이 상식입니다.
먹사들과 개독교만이 이를
외면하고 있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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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익명 (88.161.132.141)
2015-11-04 23:34:39
삼위일체를 믿는다에 대하여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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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8.38.162.72)
2015-11-07 10:04:44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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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15.121)
2015-11-03 14:08:31
이형진 님의 말씀 옳습니다.
저도 일반 성도입니다. ^^

무릇돌 목사님이 열이 바치면 가끔씩 표현이 강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도 저에 비하면 젠틀하신 편이시죠.


저는 사실 여리고 생각도 많은 그런 사람입니다.
근데, 목사들의 비리나 거짓됨을 보면 못참겠어요.

님처럼 예의를 갖추시고 정직한 자기고백적 말씀을 하시는 분을 뵈오면
저의 모습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믿음은 자기의 것입니다.
저는 님의 그러한 순수한 믿음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고 존경합니다.

그런데요.
성서학 학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나 기독교의 여러가지 교리들이 성서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수용하기에 매우 어려우실 줄로 압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

문제는 목사들입니다.

그들은 저희들이 하는말 다 알아듣고 또 이미 알고 있어요.
다만, 그런 말을 교회에서나 교단에서 못하는 것이지요.
닥쳐올 고난 수난 비난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어떤 먹사들은 그런 성서학적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알아보고자 하는 생각조차도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비겁한 목사들과 무지한 먹사들을 향하여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가리고, 진실을 바꾸고, 교리로써 행하여진 악한 행실들, 왜곡된 배타적 가르침들 이제 그만 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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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이형진 (58.231.78.68)
2015-11-03 14:49:15
순수하다 말씀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 댓글에 그 어떤 다른 의도가 없음을 잘 이해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제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기준에 대해서도 존중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권선교사님의 글 또한 그분께서 진리와 진실을 탐구하는 마음으로 본인께서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과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접근하고 또한 그것으로 토론하고 알리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근데 답글에서 "당신이 알고 있는, 또는 당신이 찾아낸 그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진실이 아닙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객관적 진실과 자료가 이렇습니다"라고 토의가 되었다면 제가 굳이 댓글을 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랬다면 저같은 일반 성도들은 양쪽의 얘기에 모두 귀를 기울이고 더 객관적 사실과 진실을 알고자 함에 노력했을 것입니다.

지금 댓글의 방향은 너무나 비아냥과 비꼼과 헐뜯음으로 치우쳐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참빛'님께서도 다른 댓글들에 3자가 보기에 다소 심하다 싶은 표현들을 쓰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제가 무례를 범하며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양해를 부탁드리는 것은 이글과 댓글들을 읽는 많은 신자분들을 생각해보심이 어떠실까 함입니다.

여튼 온라인 공간에서의 서로에 대한 배려는 더욱 조심스럽고, 우리 신자들은 그런 것에 남들보다 더 엄격하게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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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15.121)
2015-11-03 15:10:43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죄송할 따름입니다.

...

제가 보는 권선교사님은 학자가 아닙니다.
캘빈 변론가는 맞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그 분이 나는 변론가다 라고 밣히셨다면
저는 아무런 댓글도 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변론가는 이미 어느 한편을 변호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변론가로 부터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진실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자라고 하여서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을 뒤엎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한편으론 우려를 품었는데 정말 이거는 아니더라고요.

학자라면,
객관성과 중립성을 위해서 어느쪽에 치우쳐 있으면 절대 않됩니다.

이 분의 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본문에 분명히 우리는 캘빈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하기에 캘빈에 대한 그의 말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캘빈 당시 신정정치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폭력으로 희생된 것은
부인할 수도 부인되어서도 아니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교리수호를 위하여 캘빈이 그렇게 귀한 존재라고 할찌라도
진실을 가리고 오도해서는 아니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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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 (58.231.78.68)
2015-11-03 15:54:26
친절한 댓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도 온라인 상에서 밑도끝도 없이 누굴 옹호하거나 부인하거나 하는 분들을 접해봤으나, 권선교사님의 글은 1차 자료를 근거로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권선교사님과 아무런 친분도 안면도 없으나, 어쩌면 제가 믿고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어 저 스스로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참빛'님께서도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권선교사님의 글이 학자가 아닌 변론가의 글처럼 읽히실 수 있겠단 생각입니다.

아무튼 말씀대로 유창윤목사님의 글을 정독해보겠습니다. 저도 제가 믿는 바가 확실하다고 생각하기에 유목사님의 글이 이해되고 동의되지는 않을지 모르나, 선입견을 전혀 배제한다고 확실히 말씀 드릴 수는 없겠으나 그럼에도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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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218.38.162.72)
2015-11-02 22:15:08
창진이는
어디에 있느냐?
칼뱅의 5대 강령을 읊조리는 창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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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5-11-02 06:56:51
설사 진짜 이단이라고 하더라도...
이단을 '물리적인 처형'으로 응징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신학과 사역은 중세 가톨릭이 저지른 행위와 동일한 오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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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5-11-01 09:04:41
칼뱅이 제네바의 '종교적 학살'에 대해 책임을 면하기 힘든 이유...
권현익 목사님의 반박글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으로서 저의 입장을 추가로 밝히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해서 여기에 글을 올립니다.

우선 권 목사님의 주장과 논점을 서술한 순서에 따라 요약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칼뱅의 명예는 역사적 사실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
2. 원전 자료인 '카스텔로'의 글은 '공상소설'이다. 따라서 400년 이상이 지난 후대에 인용한 글들은 모두 날조된 거짓이다.
3. '세르베투스'의 죽음 외에 이런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는 비석 하나도 없다.
4. 만일 칼뱅의 학살이 사실이라면 그의 신학을 따르는 장로교는 문을 닫아야 옳을 것이다.
5. 칼뱅에게 살상을 저지를 만한 권력이 없었다.
6. 천주교 신자가 쓴 그 어떤 역사 책에도 칼뱅의 학살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7. 종교 재판은 존재하지 않았을 뿐 더러, 오늘날 노회(연회)와 같은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 결의하는 기관인 콩시스투와가 있었을 뿐이다.
8. 칼뱅은 세르베투스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9. 카스텔로가 가명으로 책을 저술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카스텔로가 깔뱅을 평가 절하는 하고 싶은데 흠집 잡을 것이 특별하게 없고, 그냥 억하 심정으로 몰래 뒤에서 남을 욕하는 뒷담화 정도의 글을 남겼을 뿐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칼뱅의 명예는 물론 소중합니다. 다만, 마찬가지로 카스텔로의 명예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2. 카스텔로는 무명인이 아닙니다. 그는 칼뱅의 동료로서 제네바 신학교의 교장이었으며 당대에 이미 베스트셀러 책을 내기도 한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따라서 칼뱅에 대한 글을 허위 조작하여 '공상소설'을 쓸 정도로 몰지각한 사람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할 근거가 없다고 봅니다. 즉 그가 신학 이론이나 논조에 있어서는 적대적이고 감정적으로 서술할 수는 있으나, 칼뱅과 관련한 여러 사실(Fact)들을 실명까지 동원하며 전체 내용을 소설처럼 조작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게 더 무리한 주장입니다.

3. 물론 유럽에 많은 기념 비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가톨릭에 의한 수많은 박해자에 대한 비석이 별로 없는 이유와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들이 주도합니다. 그리고 종교 개혁 당시 개신교에 의해 죽은 사람들보다 가톨릭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예 비교조차 안 되지요. 그래도 이를 애도하는 비석이 별로 없는 이유는 학살 당시 가능한 증거를 인멸하고, 설사 증거가 있더라도 후대에 이에 대한 기록 전승을 최대한 방해하거나 숨기려 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반대자 학살이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이를 널리 알리고 홍보했을까요.

4. 저는 칼뱅의 학살 여부가 장로교 존립의 관건이라고까지 보지는 않습니다. 그의 기여도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 후에 장로교의 신학은 더욱 연구되고 보강되어 온 것이니까요. 이는 마치 영국성공회의 설립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현재 성공회를 비하하지 않는 것과 유사합니다.

5. 칼뱅에게 사형을 내릴 권한이 없다는 주장은 피상적으로만 맞는 사실입니다. 종교재판국(장로법원, 치리회의)은 유죄를 판단만 하고, 실제 사형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시당국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정직하지 못한 핑계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 두 기관이 서로 반목과 협력을 반복하며 힘겨루기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단자 처형에 있어서는 거의 공조를 했습니다. 세르베투스 사형이 그 대표적인 실제 예입니다. 칼뱅은 그의 사형을 결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6. 천주교 신자가 쓴 책들이 칼뱅의 학살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들의 교회는 칼뱅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는데 무슨 염치로 이를 언급할까요. 반대자에 대한 부끄러운 학살은 양측 보두가 숨기도 싶은 역사일 뿐입니다.

7. 종교재판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1542년 2월 16일자 장로법원의 회의록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러합니다.

"한 여인은 카톨릭의 책 「성자들의 생애」라는 책자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되어서 출두했고 어느 이발사는 사제에게 삭발식을 해 주었다고 고소되었다. 어느 금속공은 미사에 쓸 잔을 만들어 주었다고 적발되었고 어떤 이는 교황을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가 적발되었으며 이러한 사소한 것들까지도 모두 재판을 하였다." - 정수영, <새교회사>

이런 사소한 것들까지 기소되었으니 당시 제네바의 교회가 얼마나 신정정치, 탄압정치, 그리고 공포정치를 행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요즘 교회의 당회나 노회가 이런 종류의 심사를 했다면, 아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8. 칼뱅은 세르베투스를 살리기 위해 애쓴 것보다는 그의 주장을 취소시키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형에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9. 카스텔로가 굳이 가명으로 책을 낸 당시의 절박한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이를 변호하고픈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권 목사님이 본문에 지적하신 대로 "하지만 그의 책이 출간되었을 때 칼뱅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그 책의 저자가 카스텔리옹이라는 사실을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으로 볼 때, 그 자신이 끝까지 저자를 숨기려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그 책의 저자를 몰랐을 것이니까요.

아무튼 저는 권 목사님 주장의 많은 부분이 상식성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마땅히 그런 주장이 널리 논의되고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칼뱅을 논함에 있어 사료적 가치도 없는 심상용, 조찬선 목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억하심정으로 없었던 일도 있었던 것처럼 악의적으로 왜곡한 카스텔리옹과 그의 책을 편역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반드시 제외되어야 할 비 역사서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단정하신 권 목사님의 최종 결론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카스텔로의 책이 '공상소설'인지, 아니면 반대로 '역사서'가 되는 것인지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논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카스텔로의 책이 100% 역사서라고 단정하는 것보다 더욱 더 위험한 것은 그의 책이 100% 공상소설이라는 주장입니다. 설사 카스텔로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처럼 "그의 책이 거짓이다"라고 단정할 증거는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칼뱅의 무고'를 쉽게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르베투스 사형에 대한 그의 처신 때문입니다. 칼뱅처럼 성경에 해박하고 상식적인 신학자라면 결단코 그런 사형을 주도하거나 동조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단순히 '시대적 상황'으로 변명할 사항이 아닙니다. 만일 누구라도 "그게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댄다면, 역으로 그런 옹색한 변명은 그 당시 제네바에서는 다른 학살들도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보다 강력한 증거가 될 뿐입니다.

저의 결론은 칼뱅의 제네바 사역에는 분명히 큰 오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근 25년간이나 제네바의 종교 지도자였던 그가 어떤 경우이든 거기에서 무수히 일어났던 독재적 신정통치, 폭력적 종교통치, 그리고 반기독교적 시민 학대와 학살에 별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황당한 공상소설이 될 것입니다.

유익한 토론의 장을 마련해 주신 권현익 목사님과 독자님들의 참여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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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7
두리네 (199.119.233.206)
2015-11-02 12:24:34
신집사님의 답변 아주 명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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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권현익 (86.195.109.69)
2015-11-01 20:03:11
집사님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제가 다른 신문에 집사님의 댓글에 대하여 상세하게 답변을 올리겠습니다. 이곳에 달려지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댓글로 인하여 이번에는 저희 교단 출신의 목사가 발행하는 인터넷 신문사에 기고하겠습니다. 글이 올려지게 되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집사님의 4년 동안 적어도 58명을 처형하고, 76명을 시외로 강제 추방했다고 한다. 그 중에 10명은 참수형이었고, 35명은 마녀사냥처럼 처참한 화형이었다. 그들은 "이 부패한 도시에 실질적인 도덕과 기율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칠, 팔백명을 처형할 교수대가 필요하다"고까지 말했다는 이 주장이 진실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카스텔리옹의 명예도 소중하시다면 칼뱅의 명예를 실추할만한 다른 역사적 사료들을 제시해주셔야만 집사님의 글이 사료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훗날 집사님의 글은 또 다른 거짓 사료로 악이용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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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5-11-02 06:35:37
권 목사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장로교단의 상당수 신학자들은 '카스텔로'의 글은 신뢰할 수 없기에 무시해야 한다는 논조를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물론 "4년 동안 적어도 58명을 처형하고, 76명을 시외로 강제 추방했다고 한다. 그 중에 10명은 참수형이었고, 35명은 마녀사냥처럼 처참한 화형이었다."는 그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현재 우리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총체적으로 '거짓말'이라고 단정하는 것만은 삼가하자는 것입니다. 칼뱅의 발언과 성정으로 볼 때 그의 증언이 결코 소설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권 목사님의 우려는 저도 이해하며 공감합니다. 그래서 제가 쓴 글에 서술한 내용이 단정적인 '거짓 자료'로 오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본문을 수정하여 출처를 추가하고 그것이 '카스텔로'의 주장임을 밝혔습니다.

현 시점에서 저는 권 목사님께서 틀린 주장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카스텔로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시는 것도 거기에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추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만... 카스텔로가 옳다 또는 그르다를 그 누구도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카스텔로가 언급한 '제네바 학살'에 대해서 '무작정 부정'이나, '무조건 긍정'보다는... 그가 말한 그대로 알리고 가르쳐서... 성도들의 이해를 돕고, 그분들의 현명한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굳이 카스텔로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칼뱅이 제네바에서 폭력적인 신정통치를 한 것은 이미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니 만큼, 그의 일부 사역에 대한 평가도 바르게 정립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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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13.130.235.221)
2015-11-01 13:14:32
이제까지의 글을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서
신집사님의 논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빨갱이다.
그런 주장이 담긴 글 열심히 옮기고는 그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우기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깔뱅의 글에서 그렇게 말할 만한 내용을 찾아서 올리세요.
깔뱅이 신집사님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의 그 많은 글에 그러한 내용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이나 글에서 빨갱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그분을 그렇게 말할 때에 달리 반박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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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5-11-01 14:27:47
박 목사님, 카스텔로의 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유입니다...
칼뱅의 무고를 믿는 것도 자유입니다. 저는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반대로 카스텔로의 글이 허위적 '공상소설'이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하는 것이 더 큰 무리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건 김 대통령의 경우와 아주 많이 다릅니다. 과연 김 대통령의 측근 중에 그 누가 사건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피해자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책을 쓴 사람이 있던가요. 만일 그런 책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 책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카르텔로는 한때 칼뱅의 가까운 동료였던 신학자입니다. 제네바 학교의 교장까지 했습니다. 그런 그가 칼뱅을 반대하는 글을 썼는데... 그의 글은 '허구'이고 따라서 사료적 가치가 전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하기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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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13.130.235.221)
2015-11-01 13:47:18
위키피디아의 내용입니다.
결국 세르베투스는 칼뱅 생전에 제네바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사형을 당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21][24] 세르베투스의 형집행은 1553년 10월 27일에 이루어졌다. 그 전날 칼뱅이 파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내일 세르베투스는 사형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사형 방식을 바꾸려는 모든 노력을 다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다음에 만나면 왜 우리가 실패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 사건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론이 계속되고 있다. 칼뱅의 비난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칼뱅은 권력을 탐하고 반대를 절대 용납 못하는 사람으로 그리며 그에게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존경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또 칼뱅을 세르베투스의 화형과 연결시켜서 주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당시 세르베투스의 (사형에는 찬성했지만) 화형에 반대한 것은 칼뱅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현대의 칼뱅주의자들은 세르베투스의 사형을 찬성한 그의 결정을 변호하지 않는다.[25]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죄 있는 사람이자 그가 살던 시대의 윤리를 뛰어넘지 못한 사람이나,[26] 그 외 그의 다른 면에서의 기여로 인해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고 있다.[25][27]

세르베투스가 종교적인 이유로 사형을 당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하고 있네요.

이 글이
"깔뱅이 통치한 불과 5년 동안에 당시 전 인구가 1만 3천 명에 불과한 제네바 시에서 13명이 교수대에서 살상되었고, 10명이 목이 잘리고, 35명을 화형시키는 끔찍한 범죄들을 벌였다." (카스텔리옹의 주장을 인용)는 글보다 훨씬 객관성을 가진다고 여겨지고요.

권현익님은
그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적은 그러한 이유로 이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식입니다.

그에 반해 신집사님의 글은
그렇게 제시된 근거에 대한 반박이 없습니다.
그냥 두리뭉실하게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다는 식입니다.

반박을 하시려면 세부 내용 자체에 대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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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nim (211.208.159.21)
2015-10-31 22:13:44
전 부터 궁금했습니다.
그렇다면 칼빈과 루터의 성모마리아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95개조 반박문을 독일어로 보셨다면 현 개신교의 태도와 많은 괴리를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리고 글의 문맥상 저정도의 단언을 한 글이 존재한 다는 것은 글의 문맥과 상관없이 그의 죽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것과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후 문맥을 원문과 함께 재시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 분야의 전문인이니 그정도는 하실수 있으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뭘 알고서나 말하라고 한다면 지식의 우위로 여겨지는 교만으로 생각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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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
권현익 (86.195.109.69)
2015-10-31 23:18:53
글은 자신의 얼굴이라고 합니다. 가명이라는 가면 아래 무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질문하신 첫 내용은 제가 글을 올린 요지와 상관 없는 질문이며, 또한 신학자들에게 질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이 무슨 논문 발표장인지요? 왜 제가 님의 요구에 따라 원문을 제시해야 하는지요? 이런 무례한 요구를 하기 이전에 제 글에서 제시한 글들 가운데 잘못된 인용을 지적하시든지,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이런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식의 예의를 갖춘 질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특히 님이 저에게 반박글의 원인을 제공한 신성남 집사님도 아님에도 더 이상 이런 식의 무례는 범하지 말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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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참빛 (24.141.15.121)
2015-10-31 15:21:07
몇가지 짚어봅시다.
존 칼빈 왈, "만약 서르베투스가 제네바에 나타난다면 나의 권위(권력)이 살아있는 한 나는 그 자를 결코 그냥 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존 칼빈 왈, "재판에서 서르베투스에게 사형이 내리기를 바란다."


칼빈은 서르베투스가 제네바에 도착하자 마자,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여 1553년 그를 화형시키는데 동조하였다.
<교회역사 누가 누구인가, 1969, 페이지 252쪽>

칼빈은 제네바의 잔인하고도 저항할 수 없는 독재자였다.
<옥스포드 크리스챤 사전>

우리가 제네바의 사도로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칼빈이라는 자가 개신교의 교황자리에 스스로 올랐다.
<철학자 볼테어>



칼빈이 자기의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은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한 말과, 서르베투스가 사형당하기를 바란다는 말, 그리고 그가 죽게 동조한 사실, 그 이상 무슨 증명이 더 필요한지요?

간단한 예로써,
예수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도 실제로 증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실존했을 것으로 믿는 것 뿐이지요.
저도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실존인물이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실제 증거를 보여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역사는 모두 그렇게 실증으로 증명해 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는 문서로 하는 겁니다.
사관(관점)으로도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그 어떠한 유형의 폭력이라도 우리는 용납해서는 아니됩니다.
교리설파나 선교를 위함이라 할찌라도!

칼빈은 자기교리를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죽이도록 방조 동조 독려 등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당시 행해진 폭력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겸허한 자세를 우리는 보여 주어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크리스챤이라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하지 않나요?
이것이 예수가 가르친 바로 "평화"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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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4
권현익 (86.195.109.69)
2015-10-31 17:23:37
마지막으로 댓글을 드립니다. 올리신 글들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앞 뒤 다 짤라 먹고 중간 몸뚱아리만 갖고 비판하면 그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칼뱅의 편지를 찾아 다시 읽어 보십시오. 그런 의도로 편지를 썼는지.. 볼테르가 1766년에 출간한 “어느 시골 변호사가 쓴 「범죄와 형벌」 해설”이라는 글을 한번이라도 읽어 보셨는지요? 앞으로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찌라시를 수집하지 마시고 제대로 된 책들을 한번이라도 읽어보시고 어떤 책에서 누가 어떻게 말하더라는 학문적 토론을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비기독교 인이라 해도 서로 예의를 갖추고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진정한 토론을 위한 자세로 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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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
참빛 (24.141.15.121)
2015-10-31 22:34:59
예의를 갖추라 하셨습니까?
"조찬선 목사가 말하려는 것이 단지 장로교에 흠짓을 내려는 의도였라면, 화를 낼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그 유치 찬란함에 쓴 웃음만 짓을 뿐입니다. 웨슬레 정도를 공격하고 나서야 스스로 순교자적 자세로 글을 썼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찌라시를 그것도 몰래 훔쳐다 빼겼다 놓고 그 자신을 누가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겁이 난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는 학자로서, 나아가 개신교 목사로서도 이미 죽음었습니다." 본문중에서..

물론 전문가를 대항하여 저 같은 부지랭이가 역사를 놓고 싸워 이길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중세기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지독한 편견적 사고를 지니고 있어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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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5
권현익 (86.195.109.69)
2015-11-01 00:28:14
저는 님에게 최선의 예의로 댓글에 임하고 있습니다. 단지 저는 조찬선 목사님이 출판하신 책을 근거로, 그 분이 학자로서 가져서는 안되는 비양심을 지적하고 공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거짓된 책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오해하도록 할 뿐 아니라, 신앙적 정체성을 포기하도록 하였고 심지어 기독교를 떠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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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
참빛 (207.210.3.147)
2015-11-01 02:01:40
조찬선 목사님이 기독교의 새로운 변화를 갈급하면서 지필하신
<기독교 죄악사>를 두고
"거짓된 책"이라고 선언하고
조목사님의 양심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이
진심으로 옳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본문에서 언급한 대로,
존 칼빈이 개신교 교리를 세우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니,
그를 무조건 감싸 보호해 주어야 하고
그의 생존시 교리강압 때문에 발생했던 폭력에 대하여
그 어떠한 책임도 그에게 지울수 없다고 변호해야 하는 것이
님이 말하는 신앙적 정체성인가요?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일은 지금도 (용서 못한다?)고 님은 본문에 또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의 진의는 무었인지 궁금합니다.


답변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어짜피, 관점의 차이가 서로간에 크게 다르기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할 것 같아서, 저는 여기서 접고 물러갈 작정입니다.

저는 님처럼 학식이 높지 못합니다.
그래도 적어도 편견과 공정을 가를 줄은 압니다.
그리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자 하는 작은 반폭력 평화주의자입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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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
권현익 (86.195.109.69)
2015-11-01 03:39:46
거짓 책을 거짓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 양심을 함부로 재단한다면, 칼뱅을 살인자로 몰고자 하는 님의 태도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요? 제 논지에서 무엇이 거짓인지, 어떤 부분에서 그를 거짓으로 몰고 있는지를 말씀하셔야지요. 칼뱅이 세르베의 죽음 현장에 가지 않은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데, 그곳에서 세르베의 죽음을 즐겼다는 거짓말이 과연 양심의 자유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것은 학식의 문제도 아니고 진실에 관한 문제입니다. 편견과 공정을 가르실 줄 아신다면... 공정함에 손을 들어주셔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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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바울 (49.143.133.244)
2015-11-01 00:18:39
예의좀 갖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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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참빛 (207.210.3.147)
2015-11-01 01:20:55
염려 마십시오~!
저는 예의를 갖추신 분들에게는 깍듯이 대합니다.
아래 강한경씨나 님 같은 끼어드는 사람들에게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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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경 (96.52.162.41)
2015-11-01 02:29:33
가명을 사용하면서 예의 운운은 어불성설
이미 가명으로 자신을 감추어둔상태로 컴퓨터 키보드 뒤에 숨어 계속 거의 저주에 맞먹는 말들을 퍼붓는 당신 같은 사람이야 말로 예의의 기본이 전혀 안되어있는 사람이올시다. 이런 사람들을 세상은 뭐라 하시는지 아시오? 악플러라고 말합니다. 어디서 감히 예의를 운운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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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홍승헌 (198.178.167.2)
2015-10-31 12:25:29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제네바의 상황에 대해 오래된 신문 빠트리오트(Le Patriote)의 표현을 빌려옵니다:

"제네바는 유럽에서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영웅적인 도시다. 거기서 일어날 역사를 미리 알려줬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제네바는 사보이 공작과 교황 뿐만 아니라 황제인 카를 5세에게도 항거했으며 그에 맞먹는 프랑수아 1세에게도 대항했다. 그들에게 맞서 먼저는 정치적인 자유를 그다음으로는 종교적인 자유를 쟁취했는데 이는 자신만이 아닌 북유럽 전체를 위한 것이었다. 여러차례 그곳은 개신교와 자유를 위한 ‘테르모필레’가 되었고 페르시아에 맞선 레오니다스의 300명 보다 많다 할 수 없는 적은 영웅적 무리에 의해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자들로부터 용감히 지켜졌다."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제네바가 칼빈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된 것 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제네바 시민들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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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5
참빛 (207.210.3.147)
2015-10-31 12:02:53
이미 눈에 콩깍지가 끼어 볼 것을 못보는
칼빈 추종자 숭배자들의 현란한 농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칼빈 당시 칼빈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형시켰다는 사실에 대하여 칼빈에게 총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저의 지난 댓글을 모두 유심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간에, 칼빈은 당시 제네바에서 일어났던 참수, 처형, 화형에 대하여 책임이 완전 없다고 우기며 자료를 대라고 우겨대는 개독님들과는 대화가 완전히 불가능하여 보입니다.



칼빈은 말도 되지 않는 상식이하의 교리를 세워 놓고 믿으라고 강요하여 믿지 않으면 형벌을 주고 죽이기도 한 일은 이미 북미 같은 경우에서는 대다수의 크리스찬들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인정하는 상황입니다. 역사의 한 오점이었던 것을요.

그런데 여기에서 함부로 배설하느니 뭐니 해대는 캘빈추종 한국 개독님들은 말하기를 캘빈은 ((아.애. 책.임.이. 없.다.!)) 라는 식으로 말하여 증거를 대라고 박박 우깁니다. 칼빈이 신입니까? 우상숭배를 하게요.

한국먹사들은 칼빈을 숭배하여야만 합니다. 그가 만든 5대 강령을 고수해야만 그들의 밥그릇을 지킬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칼빈을 부정하면 그의 교리를 부정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장로교가 무너지고 그러고 나면 먹사들 밥통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겠지요.

...

그들에게 나는 묻습니다.
예수가 2천년 전에 실제 존재하던 인물이었다는 증거를 ((단. 하. 나. 만.) 나에게 증명할 수 있는 자료로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는 응당 칼빈 당시 종교의 자유 때문에 처형을 당한 수없는 예를 너희들에게 보여 주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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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
강한경 (96.52.162.41)
2015-10-31 12:44:48
꽁깍지는 당신이 더 씌인 것 같소만?
칼빈 추종자 숭배자들의 현란한 농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어떻게든 깔려고 앞뒤 안가리고 덤벼드는 치졸하고 유치한 사람들의 낭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칼빈 당시 칼빈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형시켰다는 사실에 대하여 칼빈에게 총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저의 지난 댓글을 모두 유심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간에, 칼빈은 당시 제네바에서 일어났던 참수, 처형, 화형에 대하여 책임이 완전 없다고 우기며 자료를 대라고 우겨대는 개독님들과는 대화가 완전히 불가능하여 보입니다.
-> 근거는요? 이유는요? 정확하고 적확한 문서로 된 근거와 역사와 사실에 바탕이 된 근거는요? 그런 것 하나 없이 무작정 그냥 당신 말만 믿고 당신의 근거없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라고요?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 누구신데 이러시나요. 바쁜 사람들 의견 듣고 싶으신 것 치곤 참 염치도 없으셔.

칼빈은 말도 되지 않는 상식이하의 교리를 세워 놓고 믿으라고 강요하여 믿지 않으면 형벌을 주고 죽이기도 한 일은 이미 북미 같은 경우에서는 대다수의 크리스찬들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인정하는 상황입니다. 역사의 한 오점이었던 것을요.
-> 저는 이전에 미국에서도 살았었고 지금은 캐나다에 사는 사람입니다만, 북미에서 대다수의 크리스찬들이 그리 말하고 생각한다는 건 어디서 누구의 머리와 입에서 나온 것인지 정말 궁금하네요. 저는 당신이 말하는 북미의 두 나라에 살아봤고 살고 있으나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소이다. 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 계속 대화를 하던지 말던지 할텐데...에휴.

그런데 여기에서 함부로 배설하느니 뭐니 해대는 캘빈추종 한국 개독님들은 말하기를 캘빈은 ((아.애. 책.임.이. 없.다.!)) 라는 식으로 말하여 증거를 대라고 박박 우깁니다. 칼빈이 신입니까? 우상숭배를 하게요.
-> 누가 신이래요? 누가 우상숭배해야한데요? 없는 이야기, 없는 말 만들어서 어떻게든 깔려고만 감정적으로 덤벼들다 보니 나오는 당신의 헛소리들 좀 보시구려. 칼빈은 되려 "나를 우상으로 만들지 말고 제네바를 또 하나의 예루살렘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했을 뿐더러, 이 글을 쓰신 분부터 해서 되려 많은 사람들은 다들 칼빈에 대한 잘못된 주장들에 대해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지금 설명하며 반박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그 증거들을 뒤덮을 또다른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당신의 감정에만 매달려서 이리 억지를 쓰면 이건 뭐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나요?

한국먹사들은 칼빈을 숭배하여야만 합니다. 그가 만든 5대 강령을 고수해야만 그들의 밥그릇을 지킬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칼빈을 부정하면 그의 교리를 부정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장로교가 무너지고 그러고 나면 먹사들 밥통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겠지요.
-> 에구구 어쩌죠? 전~혀 아니거든요? 어디 화성에서 살다 오셨나...북미 상황도 모르고, 그렇다고 한국 상황을 아시는 것 같지도 않고, 칼빈이 있었던 유럽도 모르시는 것 같고...

그들에게 나는 묻습니다.
예수가 2천년 전에 실제 존재하던 인물이었다는 증거를 ((단. 하. 나. 만.) 나에게 증명할 수 있는 자료로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는 응당 칼빈 당시 종교의 자유 때문에 처형을 당한 수없는 예를 너희들에게 보여 주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 뭐죠? 결국 당신은 예수님이 실재 존재하셨다는 것 조차도 믿지 않는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대체 뭘 위해 이토록 열심히 한 사람을 싸잡아 비난하고 비방하는 것이지요? 아...안티 기독교인인가요? 그렇다면 애초에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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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참.. (175.223.15.113)
2015-10-31 14:08:33
이건뭐...
사료를 가져다 눈앞에 풀어줘도 모른척 하니 안타깝네요.
그리고 역사적 예수문제라고 검색해보세요.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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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박창진 (113.130.235.221)
2015-11-01 13:11:06
진짜 허참이네요.
사료를 가져다 주었다.
그렇지. 사료를 가져왔지요.
근데 그 사료가 신빙성이 있느냐는 것이에요.
그걸 문제 삼는데 신빙성에 대한 증명은 없이 그 사료를 무조건 믿으라니요?
거기에다가 참빛님의 위 글 자체가 얼마나 허술하느냐고요?
그런 글을 적고는 내 글이 옳다고 우기니 웃기지요.

이전 글에 적었다시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빨갱이다.
그런 주장이 담긴 글 열심히 옮기고는 그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우기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니까요.

깔뱅의 글에서 그렇게 말할 만한 내용을 찾아서 올리세요.
그러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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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헌 (121.129.110.146)
2015-10-31 10:04:39
글 작성자님의 역사 접근 방식에 공감합니다
사료를 힘써 수집한 뒤 비판적으로 관찰하여 그것을 재료로 삼아 역사를 재구성하는 방식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하며, 저도 더 배우기를 원합니다.

역사가는 자료에 접근하기 전에 자체적인 선호, 배경, 선입견 등을 가지고 있어, 말씀해주신 것처럼, 최대한 공정해야 함에도 불구하도 그러한 요인들이 전혀 작용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인간인 이상 이것은 어느 정도 ‘허락된 것’이되, 거기에서부터 ‘역사가로서의 자질’(객관성, 공정성, 비판성, 근거, 그리고 재미!)이 결정되는 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역사는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요. 그런데 또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요. 고인을 두 번 세 번 죽이기도 하고, 의인을 악인으로 악인을 의인으로 둔갑시키기도 하니까요. 여하튼 깨어 있는 역사가들이 더욱 균형 잡힌 역사를 남겨주는 것은 교회 몇 개를 세우는 것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중대한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교회사 최대의 역사왜곡 중 뚜렷한 하나는 감리교회의 고 이용도 목사에 대해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 연구하고 또 발표하고자 합니다. 혹 보시면, 많은 조언과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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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 (124.111.35.50)
2015-10-31 09:37:12
참고자료 6번
참고자료 리스트를 보면 5번에서 7번으로 넘어갑니다. 6번이 없습니다. 오타인가요?

아니면 6번이 "크리스천투데이" 홈페이지에 없거나, 있는데 빼신 이유가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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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펌글 (183.109.99.69)
2015-10-31 07:34:29
펌글
(1) 세르베투스의 처형에 대하여 많은 장로교인들은 칼빈을 옹호하면서 한편으로는 세르베투스는 처형되었어야 마땅한 인물이었다고 말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칼빈은 그 사건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2) 세르베투스는 < 삼위일체>에 관하여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한 세르베투스의 많은 문헌들이 불태워졌고 그의 진술기회가 우리에 충분히 없는 까닭에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3) 그러나 유아침례에 관한한 칼빈은 아주 잘못 생각하고 있었으며 유아침례는 아직 믿음이 없는 갓난아기를 침례함으로서 기독교인 이름을 붙여주고,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행사로서 사탄의 중요 전술임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수십억의 불신자들을 교회안으로 끌어들이는 교회 무력화 전술입니다.

(4) 예정론은 그러한 유아침례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믿는자들의 자녀들은 언젠가는 구원하시도록 하나님이 예정해놓았기 때문에 유아들을 침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칼빈 신학에서 유아침례와 예정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인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거룩함을 도출받는다고 하였습니다.
( 칼빈 기독교 강요 4권 16장 15절)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혈통으로 나지 않는다는 요한복음 1장 13절 말씀에도 어긋납니다.

(5) 칼빈은 유아침례를 위해 침례중생주의 혹은 세례 구원론을 펴고 있는데 그의 기독교 강요 4권 16장 22절에서도 밝히듯이 어린이들은 먼저 물로 거듭나야 하며, 침례가 바로 죄들을 사함받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물침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 4-16-22) Baptism is given for the remission of sins. 칼빈의 유아세례에 관한 수많은 교훈들은 참으로 믿기 어려울 만큼 엉뚱한 것입니다.

(6) 칼빈은 침례든 세례든 상관없다는 말로 세례를 옹호했습니다( 기독교 강요 4권15장 19절) 침례는 교회의 minister 들만 할수 있다 하여 성직자제도를 전제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4-15-20)

(7) 칼빈은 재침례에 반대하였는데 즉 유아침례로 족하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4-15-18) 반대로 재침례파들은 유아때 받은 침례는 무효이며, 거듭난 이후에 다시 침례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칼빈 자신은 로마 카톨릭에서 유아침례 (유아세례) 받은 것외에는 거듭났다는 간증이나 그가 거듭난 이후에 침례받았다는 간증을 내놓은 것을 찾아볼수 없습니다.

(8) 칼빈은 예정론을 펼쳤는데 그중에는 인간은 거듭나기 이전에는 완전부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 하였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완전부패함이 성경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그 완전부패는 완전 무능과는 다릅니다. 완전히 부패하였지만 복음을 들으라 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 듣고 과연 그러한가 하여 분별할 수 있으며(행 17:11) 주 예수를 믿으라 하면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행 16:31)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가서 그들이 구원얻기로 예정되어 있는지를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항상 < 주 예수를 믿으라> 고 외쳤던 것입니다.

(9) 칼빈의 예정론의 또다른 요소는 제한 속죄론이며 그것은 예수님의 속죄는 믿기로 예정된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우리 뿐만 아니라 세상 모두를 위해 속죄하셨다고 가르칩니다(요일 2:2) 또한 주님은 십자가에서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해주옵소서, 저희는 자기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룩 23:34) 하여 제한속죄가 아니라 무한 속죄를 위해 피흘리셨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10)칼빈의 예정론의 최대의 문제점은 이 세상의 절대 다수의 사람들, 90% 이상의 대다수는 안믿도록 하나님이 창세전에 예정해놓고,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믿기로 배척하고, 그 결과 수많은 범죄를 행하도록 하나님이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정해놓으셨으며 그것이 그분의 기쁘신 뜻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고 하나님에 대해 잘못 대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보코하람과 ISIS, 하마스 같은 집단들이 기독교인들을 죽이도록 창세전부터 예정해놓으셨으며, 심지어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도록 하나님 스스로가 그렇게 예정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예정론은 분명히 하나님을 잘못 대변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믿는자들,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람들의 운명을 설명하는데는 그다지 문제가 많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원래의 고유 예정과 일치하기 때문으로 분별됩니다.

(11)칼빈의 예정론은 어거스틴을 400회 이상 인용하면서 작성된 것으로서, 하나님을 인류 세계의 수많은 죄악을 범하도록 설계하고 계획하며 인류안에 죄를 짓도록 입력시키는 죄의 근원자가 되는 것으로 묘사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 칼빈주의자들은 이점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은 죄의 근원자가 아니라고 변명합니다.

(12)이러한 예정론에 대해서 세르베투스가 잘못을 지적한 것은 옳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의 지적의 음조는 상당히 도발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문제는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수련의 과정을 겪어야할 사안들이라 믿어집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를 불태워 죽였어야 되었겠습니까?

(13)칼빈 옹호자들은 칼빈이 제네바에서 전혀 실권이 없었고 세르베투스의 죽음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변명합니다. 그들은 칼빈은 그저 목사였고 당시 공의회에서 결정한 사안이라 말합니다.

(14)그러나 칼빈은 세르베투스를 처음 목격했고, 그를 경찰에 알려서 체포하도록하였으며, 그를 기소하도록 40가지 죄목을 모두 그의 비서인 니콜라스에게 가르쳐주고 제시했으며, 사실상 칼빈이 검찰이 되어 세르베투스를 처형하도록 줄기차게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제네바에서 칼빈의 권위는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칼빈이 세르베투스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겠습니까? 적어도 칼빈은 세르베투스의 목을 자르도록 참수형을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15)칼빈의 주장들이 모두 옳았고 정당했다 해도, 제네바 시민이 아닌 세르베투스를 그냥 추방시켰으면 충분했다고 믿어집니다. 만일 그것으로 부족했다면 몇대 때려서 내보냈으면 되었습니다. 칼빈은 세르베투스가 제네바에 오기 전부터 그를 죽이겠다는 살인욕구를 그의 친구 파렐에게 이미 분명히 밝힌바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도, 행테도 아닙니다. 반대로 칼빈의 유아침례 교리가 사탄의 전술이라는 이유로 칼빈을 불태워서야 되겠습니까? 칼빈의 세르베투스 처형 개입의 증거는 그가 프랑스 국왕 시종에게 보낸 편지로 증명됩니다. 그는 자랑스럽게 세르베투스를 처형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한 살인자를 굳이 옹호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성경 한권이면 충분합니다!

(16) 오늘날 칼빈의 교리를 좇는 집단이 바로 장로교 교단입니다.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와 한국에 주로 성행하고 있으며 미국내에서는 침례교의 1/20 가량의 교세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반이스라엘 보이콧 운동을 열심히 행하는 한편 하마스와 손을 잡고 있습니다. 그러한 장로교의 분파가 바로 한국의 장로교 집단인 것이며 오늘날 기독교인 범죄자들중에도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이제 칼빈주의와 예정론 등에 대해서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실상을 살펴서 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주 하나님의 은혜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함께하기를 바라겠습니다.

2015. 5. 8일 하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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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6
아 감리교회... 답없다.. (121.143.236.76)
2015-11-05 13:46:58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출처는?
장로교단과 개혁교회야말로 웨슬리와 메소디스크 운동의 출발점인 모라비안 경건파의 뿌리라는걸 모르는가?
온갖 엉터리 자료들을 긁어모아 칼빈을 공격하는데 성공했다고 치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슨 가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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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권현익 (86.195.109.69)
2015-10-31 07:41:00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런 주장이 누구의 글, 어느 책에서 갖고 오셨는지 말씀해주셔야 됩니다. 그리고 이곳은 신학 토론을 위한 장이 아나리 칼뱅의 살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칼뱅이 "세르베투스를 처음 목격했고, 그를 경찰에 알려서 체포하도록하였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 역시 천주교에서 말하는 주장입니다. 칼뱅은 세르베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세르베를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만약 칼뱅이 세르베를 알고 있었음에도 세르베가 칼뱅의 설교 자리를 스스로 찾아갔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그는 이미 화형 선고를 받고 추격을 받고 있는 죄수의 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르베를 잘 알고 있었던 시 행정관이 그를 알아봤고 그리고 행정관이 체포를 명령하였습니다. 제발 제대로 된 책 한 권이라도 읽으시고 역사를 논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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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
펌글 (183.109.99.69)
2015-10-31 09:44:52
(댓글들 모음)

세르베투스가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의문시하는 듯하는 글을 썼다가 그것에 대하여 철회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삼위일체가 삼두일신이 되어 괴물스러운 교리라는 것을 은근히 지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성령의 일체성을 더 강화시킨 교리를 주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아세례는 마귀의 교리임이 분명합니다.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삼위일체를 반대하였다 하여 도끼로 목을 찍어죽여야 한다고 하나님은 판단하셨을까요? 그러나 칼빈은 그것을 주장하였고 제네바 공회는 더 나아가 화형을 판결하였습니다. 제네바 공회가 그런 판결을 하도록 라틴어를 통역해준 사람은 칼빈이었습니다. 재판관들은 독일어 사용자였고 세르베투스는 독일어에 능숙하지 못하였고 재판관들에게 라틴어 문서를 번역해줄 때 강력하게 처벌하도록 세르베투스의 주장들을 편향된 시각에서 번역해준 사람은 칼빈이었습니다. 재판관들은 모두 칼빈의 친구들이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분별입니다.

Xxxxx
이댓글이 없다면 모두 이말들을 그대로 믿지 않겠습니까?
<<칼빈이 그 당시 세르베투스의 (사형에는 찬성했지만) 화형에 반대한 것은 칼뱅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

세르베투스의 형집행은 1553년 10월 27일에 이루어졌다.
그 전날 칼뱅이 파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내일 세르베투스는 사형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사형 방식을 바꾸려는 모든 노력을 다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다음에 만나면 왜 우리가 실패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칼빈 지지자들의 글들만 볼수 있을 뿐입니다.

만일에 하토브님의 이런글이 없다면 대부분 떠다니는 자료들의 내용들은 이런내용들입니다.
칼뱅에겐 증인의 자격은 있었지만 재판의 자격은 없었다. 왜냐하면 칼뱅은 프랑스 국민으로서 스위스 제네바에 거주하는 외국인이었다. 그에게는 시민권이 없었고 그래서 투표권도 없었으며 공무원도 될 수 없었다

다만 교사나 목사의 경우엔 적격한 시민이 없을 때 비시민이 그 직책은 맡을 수 있었고, 그래서 칼뱅은 그곳에서 목회를 하였다..칼뱅이 세르베투스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종교회의에서 뿐이었고, 세르베투스의 재판은 시의회 주관이었다. 거기서 칼뱅은 세르베투스를 정죄할 권리는 없었다.
라고 주로 칼빈을 옹호하는 내용들의 글만 볼수 있습니다.


Xxxxxxx
칼빈이 참수형을 요청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논고를 통해서 그 재판관들을 격앙시킨 것은 칼빈의 부추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화형을 결정하자 만족하였고 한번도 저항한 적이 없습니다. 10월27일 화형식 날 칼빈은 집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런 취지의 글들을 한글로 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 식의 거짓말은 영어로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반박들이 영문으로는 수백 수천개가 있기 때문에 문헌의 쇄국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에서나 통할 수 있지 국제무대에서는 안통합니다. 칼빈이 세르베투스를 죽여야 한다는 글은 그가 수감된지 6일만에 파렐에게 주어졌고, 그는 줄기차게 세르베투스를 제소하고 논고하였으며, 사형집행일 전날에도 자기는 참수형으로 만족한다고 다시 편지했습니다. 칼빈이 반대하는 일이 제네바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칼빈이 고집하는 일이 안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만 참수형이 화형으로 바뀐 것 이후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칼빈은 트집잡을 것에 혈안이 되어 세르베투스가 독신 생활하는 것을 트집 잡으려 했습니다.

세르베투스가 참으로 무엇을 주장했는가? 에 관한 문헌 자료들은 카톨릭과 칼빈측의 사람들이 모두 소각시켰습니다. 이단 서적이라는 이유였지요. 그러면서 인류는 칼빈측의 사람들이 평가해놓고 옮겨놓은 글들을 통해 그의 주장이 무엇이었는가를 상상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행히 기독교의 회복 등 몇 권의 책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만 그 책들은 전세계에 3권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같이 누구를 신앙상의 이유로 죽인다음 정죄하고 왜곡시켜 남들을 가르치는 예는 카톨릭에서 무수히 있어 왔습니다. 그 예가 알비파들에 대한 카톨릭의 왜곡 선전입니다. 또 네스토리우스 재판도 그러했습니다. 그와 똑같은 방식을 칼빈과 그 후예인 장로교 목사들이 뒤집어 씌우기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절대로 장로교 목사들은 제가 분석한 자료에 수긍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젠가 제가 성경 번역이 끝나면 이 부분에 집중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 경우 역사자료들과 당시 재판기록 라틴어 문헌 자료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할 것입니다.

칼빈이 죽인 사람들은 이외에도 많습니다. 그루엣도 그중 하나인데 이사람은 실제로 칼빈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리하여 불에 달군 꼬챙이로 혀가 뚫린 채 고문당한후 처형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루엣의 분노를 야기시킨 것은 칼빈이었습니다. 그의 수많은 행동들이 위선이요, 고압적 교만으로 드러났음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칼빈은 그를 결코 용서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준 적도 없습니다. 16세기는 교황들의 춘추 전국 시대였습니다. 독일교황 루터, 루터파 교황 멜랑흐톤, 스트라스부르 교황 부써, 취리히 교황 쯔빙글리, 제네바 교황 칼빈. 이에 반하여 재침례파는 빛도 없이 이름없이 싸우다 죽었는데 휩마이어, 샤틀러 등이 대표였습니다.

칼빈에 대한 비판을 하다보면 열심히 칼빈을 비판한 다음 진정한 기독교 교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보게됩니다. 그들은 바로 무신론자들과 카톨릭 들로서 기독교를 흠잡고 말살하기 위한 열심으로 가득찬 사람들이며 그러한 개혁주의자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참 기독교인들이 다수 있어서 그들이 형제들, 혹은 재침례교도들 재세례파 혹은 침례교도들로 불리웠다는 사실을 알려하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부류의 책들 중의 하나가 조찬선의 기독교 죄악사 입니다. 그 책은 카톨릭 죄악사를 마치 기독교 죄악사인 것처럼 착각하게 써놓고 기독교에 뒤집어 씌우고 있습니다.

Ooooo
순례하는 교회사를 읽어보니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편안하게 신앙 생활 할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할 따름 입니다

Ooooo
인류역사상 그런 시대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은 은혜시대 중의 은혜시대입니다. 그렇지만 곧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핍박이 시작되기 전의 폭풍 전야와 같은 시기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2011. 10. 1 씀 2015. 5. 24 고쳐씀 하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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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1
강한경 (96.52.162.41)
2015-10-31 12:51:17
제네바는 그때도 지금도 불어를 사용합니다만...
제네바에서 독일어라니요...;

스위스가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세 언어를 다 사용하긴 합니다만, 지역별로 확실하게 언어가 정해져 있습니다.
제네바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계속 불어를 사용 중입니다.
독일어 사용 지역은 동북부 쪽인 베른이나 루체른 같은 도시이지요.

이거 하나만으로도 할말을 잃게 만드시네요.

제발 퍼오실 때, 아무거나 가져오지 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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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
허참.. (223.54.248.236)
2015-10-31 10:13:01
그리고
De Trinitatis erroribus libri vii 라고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세요. 라틴어 해독이 가능하시다면 얼마든지 세르베투스의 주장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931년에는 영어로도 번역이 됐군요. 무슨 책이 안남아서 칼뱅을 통해서만 세르베투스의 주장을 알 수 있다고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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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
권현익 (86.195.109.69)
2015-10-31 10:24:01
세르베투스에 대한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이미 세르베투스를 재판하였던 프랑스 비엔느에다가 세르베투스의 재판 자료를 쥬네브 시의회가 요청하였지요. 쥬네브 시의회는 프랑스까지 가서 자료를 다 불태워 버렸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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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허참.. (223.54.248.236)
2015-10-31 10:37:06
구글링 해보시면 찾을 수 있습니다.
De Trinitatis erroribus libri vii 이 세르베투스의 책 구글링 해보시면 찾을 수 있습니다. 화란어랑 영어로 번역된 것도 나오고요. 세르베투스,org라는 싸이트에 잘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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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허참.. (223.54.248.236)
2015-10-31 10:07:20
헐...
제네바는 그때나 지금이나 프랑스어 사용하는데요.
세르베투스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의사로 활동하던 사람이고...
왠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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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
권현익 (86.195.109.69)
2015-10-31 09:53:21
정말로 모르셨나요? "제네바 공회가 그런 판결을 하도록 라틴어를 통역해준 사람은 칼빈이었습니다. 재판관들은 독일어 사용자였고 세르베투스는 독일어에 능숙하지 못하였고 재판관들에게 라틴어 문서를 번역해줄 때 강력하게 처벌하도록 세르베투스의 주장들을 편향된 시각에서 번역해준 사람은 칼빈이었습니다. 재판관들은 모두 칼빈의 친구들이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분별>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어느 학자가 이딴 소리를 하든가요? 제네바는 불어를 사용합니다. 세르베는 스페인 사람이었지만 파리에서 공부를 하였고, 프랑스에서 의사로 활동하였기에 불어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프랑스 불어나 제네바 불어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기에 제네바에서 발행한 책들이 프랑스로 건너가 사람들에게 읽혀졌는데 무슨 통역이 필요하고, 칼뱅이 왜 통역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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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4
참빛 (207.210.3.147)
2015-10-31 01:57:12
준비하시느라 고생했습니다
광주사태때 수백명이 군인들의 총칼에 학살된 사실에는 동의하는지요?
선량한 시민들이 개죽임을 당했는데 그에 대하여, 계엄사령관이었다가 나중에 대통령 자리까지 했던 사람의 총책임은 아애 없다는 논지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부분은, 천주교를 시정잡배로 여기는 글쓴이는 역사학도로서 중립을 지키려는 의지 내지는 정직성이 깊게 결여되어 보이는 군요.

교회개혁 당시에 교리설파를 위하여 폭력이 동원된 것은 비록 글쓴이 같이 역사학자가.아니더라도 모두 인식하고 있는 점입니다..

문제는 캐토릭은 그들의 과오에 대하여 용서를.구하고 참회를 하지만, 개신교 특히 칼빈 일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교단에서는 회개와 용서구함은 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고 콧대높은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날조라고 하면서...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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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
무식해도 (121.143.236.76)
2015-11-04 15:29:39
정도껏 무식해야지...
남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만 듣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거나 또는 증폭하는 수준들... 거기다 몇 가지 자극적인 이야기를 곁들이며, "천주교 큰집설"로 마무리...
그리스도교회에 속한 사람 맞으시오?
진실이 궁금하면 역사를 좀 더 연구해보시오. 부끄러운 줄 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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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허참.. (223.54.248.236)
2015-10-31 09:02:28
근거
첫번째, 두번째 문장은 감정의 배설이시니 넘어가고

교회개혁 당시 교리설파를 위하여 폭력이 동원되었다는 근거는요?

카톨릭이 그들의 과오에 대하여 용서하고 참회를 구한다는 근거는요?

자신의 감정이 아닌 무언가 사실에 대한 주장을 하시려면 근거를 가지고 말씀하셔야죠.
근거가 될 사진이나 참고문헌 제시하시리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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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
박창진 (113.130.235.221)
2015-10-31 07:38:45
참 유치하기 그지 없는 댓글이네요
몸글 자체에 대한 정당한 평가 곧 반박 자료에 입각한 평가는 없고
자기 감정만 배설하고 있으니요.

좀 바르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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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3
익명 (207.210.3.147)
2015-10-31 12:14:26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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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동의 (99.225.53.85)
2015-10-31 11:56:17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으니...
비록 라틴어를 하지 못할지라도, 영어 자료만 잘 찾아도 알 수 있는데, 요즘은 한국분들 중에도 영어 자료를 통해서 이와 같은 사실을 웹사이트에 기술해 놓으신 분들이 많으세요. 그리고 공부하실 때 자료에 대한 가치를 학자들이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를 생각한다면, 본질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도 다 책이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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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동의 (99.225.53.85)
2015-10-31 11:56:15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으니...
비록 라틴어를 하지 못할지라도, 영어 자료만 잘 찾아도 알 수 있는데, 요즘은 한국분들 중에도 영어 자료를 통해서 이와 같은 사실을 웹사이트에 기술해 놓으신 분들이 많으세요. 그리고 공부하실 때 자료에 대한 가치를 학자들이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를 생각한다면, 본질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도 다 책이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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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1
권현익 (86.195.109.69)
2015-10-31 02:24:44
이런 감정적인 댓글이 올려질 것 같아 글을 올리는 것에 머뭇거렸습니다. 제 글을 다 읽지 않으신 듯 하며, 논리도 굉장히 비약적이십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살상입니다. 살상의 흔적들은 사료로 증인들의 증언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쥬네브의 살상이 과연 있었느냐?는 짐작이 아닌 정확한 사료로 반드시 제시되어야만 합니다. 제가 사료의 가치가 없다는 네 명의 글 외에 어떤 책에서 누가 살상을 증언하는지 사료를 제시하셔야만 합니다. 역사 논쟁은 목소리 큼의 싸움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천주교의 자료가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17세기 프랑스 천주교회가 자체적으로 발간한 역사 책에서도 칼뱅의 그 어떤 악행이나 살상도 찾아 낼 수 없었다는 이 전제를 무너 뜨릴 수 있는 다른 역사 사료가 반드시 제시돠어야만 합니다. 과연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이 그 긴 공백을 메꿀 수 있을까요? 제가 과연 꽁각지가 끼었는지 다음 글을 읽어보시고 다시 반박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주로 다루는 2차 자료에 의하면 (1차 자료는 자료 자체에도 접근이 쉽지 않고, 중세 불어라 해석도 쉽지 않지만, 1차 자료를 근거로 다룬 2차 자료) 1640년 리셀리유 추기경(왕 다음의 제 2인자)이 칼뱅을 중상 모략하기 위하여 칼뱅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였지만 칼뱅에 대한 아무런 혐의를 찾아 내지 못하였고 그가 죽고(1642년 사망) 난 다음에 그의 이름으로 책이 발간됩니다. (역사책 원문 번역 : 리셀리유 추기경은 칼뱅을 결정적으로 중상모독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내기를 희망하며 고문서와 기록들을 상세하게 파헤치도록 명령했다. 끈질기게 찾았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리셀리유의 관심이 될 수 있을 만한 조금한 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추기경이 죽은 후 그의 이름으로 출판된 저서에서 볼섹의 유명한 글을 상세하게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책에 칼뱅에 대한 그 어떤 추문이나 악행에 관한 기록도 없었고 볼섹이라는 사람이 칼뱅이 동성 연애자였다고 주장한 글이 실려져 있을 뿐입니다. 볼섹의 주장에 의하면 칼뱅은 동성 연애 죄목으로 잡혀 기둥에 묶인채 불에 달구어진 인두로 지짐을 당하였고 일정 기간 동안에 감옥에 갇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칼뱅이 쥬네브에서 학살을 저질렀다는 소문은 천주교 내에서 발행한 자료에 의해서도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헛소문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볼섹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진위 여부만 남게 되는데 칼뱅이 학살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카스텔리옹 조차 이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을 뿐더러 칼뱅이 동성연애자였다면 왜 천주교회에서는 그를 당시 법에 따라 화형시키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천주교회 내에 동성 연애자들이 너무 많아 그냥 넘어간 것일까요? 칼뱅에게 아주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이 엄청난 사건을 칼뱅의 고향인 느와용의 역사에는 물론 다른 어떤 역사책에도 나오지 않는 것을 오직 칼뱅에게 악 감정을 갖고 있었던 볼섹만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볼섹은 쥬네브에서 그의 잘못으로 추방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이 엄청난 사실을 누설하지 않았고 칼뱅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왜 일체 언급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카스텔리옹 역시 칼뱅이 학살했다고 주장하였는데 왜 이런 큰 비밀을 쥬네브에서는 침묵하였는지...) 볼섹(Jerome Bolsec, ?-1584)은 프랑스 출생의 수도사로 개신교로 개종하여, 1550년 쥬네브에 거주하였고, 그는 칼뱅과 칼뱅의 견해를 따르는 이들을 우상숭배자라고 비난한 죄명으로 쥬네브 시의회에 의해 추방. 프랑스로 넘어가 천주교로 개종하였고 그 후 칼뱅을 험담하는 책을 저술(1577년)하였습니다. 칼뱅의 신학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물고 넘어지기만 해도 사형을 당했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스텔리옹이나 볼섹은 왜 추방만 당했는지... 당시 쥬네브에는 칼뱅 반대파들이 칼뱅을 몰아 세우기 위해 핏발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칼뱅의 등에 새겨졌다는 동성연애자범의 흔적을 확인해 보라는 말 한 마디만 해도 되었을 던 것을 나중에 책으로 그것을 폭로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칼뱅이 죽고 난 다음에 알게 된 모양입니다. 그런데 칼뱅이 죽고 난 다음에는 별의별 소문들이 다 나옵니다. 미쳐 죽었다. 미친 개에 물려 죽었다...) 이런 역사 자료들을 일명 쓰레기라고 하며 왜곡 정도가 아닌 악의적인 중상 모략이라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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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익 (86.195.109.69)
2015-10-31 02:43:49
천주교회는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까지 교회사와 관련된 곳은 수 십 차례를 방문하였지만.. 수 천, 수 만 명을 잔인하게 살상한 현장 그 어떤 곳에서도 자신들의 살상에 대하여 사과의 비석은 커녕 이곳이 그들이 사살했던 곳이라는 역사 안내문 하나조차도 없었습니다. 단 한번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나간 시절에 저질렀던 악행들을 사과한다는 말 한 마디만 있었을 뿐입니다. 댓글에 사진을 올릴 수 있다면 제가 제시한 역사책 원서 사진과 칼뱅이 동성 연애자였기에 인두로 지짐을 당하였다는 천주교 측에서 만든 그림을 보여드릴 수 있었을터인데 안타깝습니다. 제 펫북에 이 두 사진을 올려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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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헛수고 (121.143.236.76)
2015-11-04 15:38:26
왜냐하면 감리교목사들만큼 무식하고 목소리큰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글은 좋은 자리에서 빛나지요.
이런 허접들만 모여 있는, 신학도 없는 이들 사이에서는 진흙속 돌맹이들 취급밖에 못 받습니다.(감리교신학? 감리교에 신학이 있나요?)
칼빈의 대학살 및 세르베투스 처형건은 이미 역사적으로 결론이 나 있는 이야기인데도, 큰교회 목사가 공적인 설교자리에서 서슴없이 거짓을 말하고(물론 본인은 나중에 난 그런 줄 몰랐다고 말하겠지요?), 신학깨나 배웠다고 글 좀 쓰고 말 좀 한다는 목사들 역시 주워들은대로 읊어대는 동네입니다.
게다가 칼빈과 기독교강요는 이름만 들어봤을뿐, 서문이나 헌사조차 읽어보지 않고 손가락을 놀리는 이들일뿐이니까요.
이들이 중세 카톨릭의 무식한 신부들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요?
오히려 더 악하다면 더 악하지요. 당시 그들은 읽지 못하는 라틴어에 갇혀 있었지만, 이들은 읽을 수 있는 성경을 들고도 영적 무지의 늪에서 헤매고 있으니까요.
목사님의 좋은 글이 패대기쳐지는게 안타까와서 지나가다 멈추고 몇 자 씁니다.
선하신 주님은 다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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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94.97.43.210)
2015-11-01 15:35:26
진실이 재조명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권현익목사님,
타국에서 연구하는 중에도 칼벵에 대한 왜곡을 밝혀, 한국교회 신앙의 건전성을 위해 진실규명을 하는 인내와 수고를 아끼지 않고 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진실규명이 그 대상자들에게 적실한 이해와 설득력을 지니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해 주셨습니다. 학자의 수고를 통해서 밝혀지고 규명된 진실을 인하여 칼벵시대나 그리고 역시 지금도 그 종들에게 은사를 주셔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뵙습니다.
글은(학문)은 이론적 사유를 통해서 만들어며, 사유는 언어(인간의 모든 문화활동을 통해서 생산된)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의미규정이 공시성과 통시성을 따라서 제약을 갖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따라서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것에는 많은 책임과 의무가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 합니다. 따라서 그 시대마다 신실한 학자들이 항상 요구 될 수 밖에 없고 목회자나 신도들은 그들을 후원하므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도모하고, 또한 그와 같이 그들을 존경해야하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이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 현실이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안타까운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고들 합니다.
부디 연구하는 분야가 우리시대에 진실이 재조명되고 새로운 진실들이 알려지며 더욱 폭 넓은 대중에게 다가 갈수 있는 작품들이 탄생되길 기도합니다.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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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94.97.43.210)
2015-11-01 15:35:24
진실이 재조명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권현익목사님,
타국에서 연구하는 중에도 칼벵에 대한 왜곡을 밝혀, 한국교회 신앙의 건전성을 위해 진실규명을 하는 인내와 수고를 아끼지 않고 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진실규명이 그 대상자들에게 적실한 이해와 설득력을 지니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해 주셨습니다. 학자의 수고를 통해서 밝혀지고 규명된 진실을 인하여 칼벵시대나 그리고 역시 지금도 그 종들에게 은사를 주셔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뵙습니다.
글은(학문)은 이론적 사유를 통해서 만들어며, 사유는 언어(인간의 모든 문화활동을 통해서 생산된)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의미규정이 공시성과 통시성을 따라서 제약을 갖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따라서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것에는 많은 책임과 의무가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 합니다. 따라서 그 시대마다 신실한 학자들이 항상 요구 될 수 밖에 없고 목회자나 신도들은 그들을 후원하므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도모하고, 또한 그와 같이 그들을 존경해야하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이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 현실이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안타까운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고들 합니다.
부디 연구하는 분야가 우리시대에 진실이 재조명되고 새로운 진실들이 알려지며 더욱 폭 넓은 대중에게 다가 갈수 있는 작품들이 탄생되길 기도합니다.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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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99.225.53.85)
2015-10-31 12:02:10
카톨릭은 순종 서약이라는 것을 하지요.
순종 서약의 의미를 알면 카톨릭이 얼마나 무서운 집단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교황이 취임할 때, 전 교황이 순종 서약을 했지요. 그 밑에 있는 쫄 다구들은 이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싫으나 좋으나 시키는데로 하는 집단이 카톨릭입니다. 그러기에 권혁익 님이 이야기하신 일들이 반대없이 그대로 일어난 것을 봅니다. 밖에서는 보면 참 고귀해 보여도 안에서 보면, 열불 나는데가 거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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