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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와 헤른후트 로중2016 말씀 그리고 하루 출간
홍주민  |  juminh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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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0월 25일 (일) 19:43:11
최종편집 : 2015년 10월 25일 (일) 20:19:52 [조회수 : 2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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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와 헤른후트 로중 II

 

개신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큐티관련 자료 중 헤른후트 로중은 단연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하는 영적 보고이다. 286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출간되어 그동안 50여개 국어로 번역 출간된 독특한 책이다. 한 해마다 이 기도서는 내용을 달리하고 수백 만명의 영적 발전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도 한권의 책이 매년 이렇게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제 8년째 한해도 빠지지 않고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다. 매년 한국의 서점에 쏟아지는 큐티용 서적은 이제 연말이면 가판대를 메운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서점에서 거 의 유일한 큐티자료로 이 헤른후트 로중은 성탄이나 연말연시의 가장 귀한 선물로 여겨지곤 한다. 한 해의 영적 양식을 주고받으면서 한해를 마무리하고 준비하고 시작한다.

특히 올해는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정권에 저항하다가 교수대에서 처형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의 서거 70년이 되는 해이다. 로중이 본회퍼 목사님에게 있어 마지막 형장의 이슬로 스러지는 순간까지 영적 무기였다는 사실은 이 작은 기도서의 무게를 더해준다. 지난 기고문에 이어 본회퍼 목사님의 신학교 학장 시절, 극렬한 저항의 도상에서, 결정적 도움의 기재로 영향을 끼친 로중에 관해서 서술해본다.

 

신학교 학장으로서

 

   

▲ 1935년, 칭스트에서 수업하던 곳

로중은 본회퍼에게 있어 1935년 슈테틴 근교 휜켄발데의 고백교회 신학교 학장이었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백교회 신학교는 원래 처음부터 불법적인 것이었지만 비밀경찰은 2년 후, 1937년에 휜켄발데를 점령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로중은 점점 더 본회퍼와 고백교회 신학교의 목사후보생들간에 유일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에버하르트 베트게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휜켄발데와 본회퍼에게 있어 로중은 히틀러의 선전부장 괴벨스의 감독아래 감시당하면서도 위험에 처한 이들과 연결을 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매일 아침 동일한 성서구절을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는 것을 함께 아는 것은 내적인 힘을 주었다.

더 나아가 본회퍼는 휜켄발데에서 여러 날 이어지는 성서본문을 통해 매일의 묵상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실천은 이미 목사임직을 받은 휜켄발데 목사후보생들에게도 계속 이어졌다. 이를 위해 묵상본문은 그때그때 분기마다 이전의 목사후보생들에게 편지로 전달되었다. 국가의 억압으로 더 이상 편지로 전달할 수 없는 경우를 위하여 매일 묵상할 때 로중 아래 주어진 성서본문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합의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동일한 본문으로 묵상할 수 있었다. 에버하르트 베트게는 다음의 내용을 전한다. “본회퍼와 동료들은 이러한 위기의 상황을 준비하면서 다음 분기의 묵상본문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을지라도, 묵상은 계속되어져야 하고 로중 본문에 따라 매일 묵상하고 중보기도를 해야 하는 것을 굳게 약속했다.”

 

히틀러에 극렬하게 저항하는 가운데

 

   

▲ 1939년 8월 미국으로부터 귀국

신학교가 폐쇄되고 히틀러에 대한 저항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면서 본회퍼는 그의 개인적인 경건생활에 있어 로중을 더 중요시 한다. 휜켄발데 형제의 집 사람들과 예비목사들과 공동체, 얼마 후 이런 모임이 중단되면서 그는 로중을 더 가까이 하게 된다.

본회퍼는 이제 로중을 이전보다 더 깊이 있게 의지하면서 하루의 슬로건으로서 삼게된다. 게다가 이제는 오랜 시간을 묵상할 여유와 힘도 거의 없어지게 되면서 로중을 그의 삶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 기도의 근거와 영적인 사고를 위한 추동요인으로 새로이 발견한다. 그러한 사실은 1939년 그가 미국 여행 중에 기록한 일기장에, 특히 종전이후 에버하르트 베트게에 의해 출간된 그의‘저항과 복종’이라는 유고집과 체포이후 보낸 편지글과 기록에서 발견된다.

로중은 본회퍼의 마지막 나날동안 더욱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 그는 종교개혁에 기원을 둔 개신교적 영성의 근본적인 바탕, 다시 말해, 가정과 일상에 스며든 경건과 찬양과 성서경구를 통한 경건으로 돌아갔다. 그럼으로 본회퍼는 초기에 출간한 “공동의 삶”에 표현한 매일의 말씀에 기본적으로 정향되었던 성서사용에 대한 비판을 상대화한다. 나치의 파편화와 위협에 직면하여 신학적인 이상은 현실과 먼 것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심각한 상황속에서 결정적인 도움기재로서 로중

 

로중말씀(구약성서)과 가르침의 본문(신약성서)은 디트리히 본회퍼에게 있어 심각한 상황 속에 결정적인 도움기재가 되었다. 베를린대학에서 교수직 중지와 임박한 전쟁 때문에 1939년 여름, 미국인 친구가 그에게 강연을 위해 미국으로 초청하였다. 이면에는 본회퍼가 바로 발발할 전쟁을 피해 안전한 미국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히틀러의 군대에 양심적인 이유로 징집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여행은 그에게 혼란을 가져왔다. 본회퍼의 생각은 그가 미국에 남아있을지 아니면 독일로 돌아가야 할지에 대한 물음이 계속 교차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기록된 하나의 긴장감있는 일기내용이 있다. 이 안에는 여러 날 동안 본회퍼가 필사한 로중과 가름침의 본문이 담겨있다. 그는 거의 항상 두 개의 성서말씀으로 하루를 마친 것 같아 보인다. 분명하게 로중은 그에게 내적인 평화를 가져다주었고 분명한 결정을 할 수 있게 하였다. 1939년 6월 8일 그가 미국으로 가는 배위에서 읽은 로중은 스가랴서 7장 9절이었다. “올바로 판단을 하여라. 서로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어라.” 본회퍼는 여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긴다. “나는 먼저 집에 있는 형제들께 간청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생각 깊은 곳에 두고 있습니다.”

1939년 6월 9일 가름침의 본문은 요한복음 12장 26절이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고자 하는 이는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자도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는 여기서 확신한다. “위대한 계획이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이 계신 곳에서만 발견되어 집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있든지, 내가 미국에서 있든지, 우리는 주님이 계신 곳에 함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아니면 내가 주님이 계신 곳을 피합니까?” 미국에 도착하기 전 날 로중과 가르침 본문은 시편 44장 22절의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바닥을 다 아신다.”라는 말씀과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의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만,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처럼,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의 말씀이다. 본회퍼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갈 길을 가면서 의심을 극복하게 하소서.”

 

   
 

미국에 도착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본회퍼는 몇 일간 기력이 빠질 정도로 고민을 하고 나서 독일로 되돌아갈 것을 결정한다. “라이퍼에 방문하면서 나는 독일로 되돌아 갈 것을 결정했다... 이는 현재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만이 그것을 아신다.” 6월 20일 돌아가기로 결정한 날의 로중은 이사야서 45장 19절 말씀이다. “나 주는 옳은 것을 말하고 바른 것을 알린다.” 가르침 본문은 베드로전서 1장 17절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니, 여러분은 나그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의 말씀이다. 본회퍼는 덧붙여 서술한다. “로중은 오늘 하나님으로부터 엄격한 심판에 대해서 아주 두렵게 말씀한다. 하나님은 오늘날 많은 이들이 두려움가운데 결정을 하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계신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고 용서하시길 간구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날에 나는 하나님이 오늘 내린 나의 결정에 은혜로 심판하시길 간구할 수 있다. 이제 그 분의 손에 달려있다.”

6월 21일 본회퍼는 일기에 확고한 그의 의지를 남긴다. “물론 나의 결정에 대하여 늘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후회하게 될 것인가? 나는 후회할 수 없다. 그것은 확실하다. 다시 로중은 엄하게 말씀한다. “하나님은 은을 정련하여 깨끗하게 하신다.(말라기서 3장 3절) 그러한 것도 필요하다. 나는 나를  더 이상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행동과 실천은 분명하게 되고 깨끗하게 될 것이다.” 본회퍼가 독일로 다시 돌아오는 결정에 있어서 로중과 대화를 한 흔적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에서 본회퍼가 성서의 말씀을 그의 개인적인 상황 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일 후, 6월 26일, 유럽으로 다시 돌아오기 직전에 본회퍼는 디모데후서 4장 21절을 접한다. “그대는 겨울이 되기 전에 서둘러 오십시오.” 그는 디모데에게 전한 바울의 청원을 전적으로 자기 개인에게 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루가 지나간다. 휴가를 갔다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는 병사처럼, 다시 돌아가는 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예견될 지라도... 이것은 경건한 것이 아니라 아주 생생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경건한 것을 통하여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생생한 감정을 통하여 행동하신다. ‘겨울이 되기 전에 오라’ 이것은 만약 나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면, 성서의 오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다.”

디모데후서 4장 21절의 말씀은 본회퍼로 하여금 미국을 떠날 마음을 굳히게 했다. 문헌에는 자주 헤른후트 로중의 성서구절이 그 날 나왔다고 언급된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로중은 단지 구약성서만 뽑혀진 것이다. 하지만 본회퍼가 미국에 있는 동안 신약성서에서 선택되어진 가름침의 말씀은 디모데후서 4장 21절이 아니다. 본회퍼가 성서를 읽다가 우연히 만난 구절이었다.

본회퍼는 뉴욕에서도 그가 무엇 때문에 미국에 머물 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미국인 친구였던 라인홀트 니버에게 편지를 썼다. “역사의 아주 어려운 국면에 나는 독일 그리스도인과 함께 살고자 합니다. 나는 이 시대의 시련을 내 민족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전쟁이후에 독일 그리스도인들과 재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2016 헤른후트 로중 한국어 판 <2016 말씀 그리고 하루> 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출판

영풍문고, 교보문고, 예스 24 판매

홍주민(juminhong@hanmail.net; 010-6439-2497)

 

한신대신학대학원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디아코니아학 디플롬

동 대학 신학박사(Th.D)

한신대 연구교수

서울과 성남에서 국제이주민관련 디아코니아 현장활동

현재 (사)한국디아코니아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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