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신성남 칼럼
신학은 '정통', 사역은 '밥통''칼뱅'의 제네바 학살과 종교개혁사의 그늘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5년 10월 25일 (일) 02:02:45
최종편집 : 2015년 10월 31일 (토) 00:59:50 [조회수 : 1414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장 칼뱅(1509-1564)'은 장로교의 창시자이다. 그가 저술한 <기독교강요>는 사실상 개신교 신학의 큰 흐름을 주도한 최초의 조직신학 책이다. 특히 중세 가톨릭의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항해서 그만한 신학을 체계화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나중에 침례교, 감리교, 성결교, 그리고 성공회 등 대부분의 개신교 신학은 칼뱅의 작업을 기반으로 도전과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기 때문이다.

물론 칼뱅 역시 홀로 독창적인 신학을 창안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앞에 섰던 선각자들인 위클리프, 후스, 루터, 에라스머스, 그리고 아나뱁티스트 등의 신학과 사상이 그의 신학을 체계화하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여하튼 칼뱅의 신학적 업적과 종교개혁사에 남긴 선도적 역활은 가히 지대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모든 개혁 교회들은 그의 열정적 헌신에 결코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필자가 여기서 굳이 칼뱅 사역의 어두운 부분을 재론하게 된 이유는 일부 목회자나 성도들 중에는 칼뱅의 신학이나 또는 그가 수립한 교회 제도에 대해서 다소 절대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칼뱅의 장점이 자주 부각되다보니 그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혹 간과하고 있다.

아울러 근자에 보면 국사 교과서를 가지고 장난치려는 자들이 적지 않은데, 앞으로 교회도 그런 발칙한 꼴을 보지 않으려면 종교개혁사를 조금이라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말고 진상을 사실대로 알리고 바르게 가르쳐야 옳다고 본다.

 

종교개혁사의 어두운 진실, 제네바 학살

16세기 칼뱅의 종교 개혁은 스위스 제네바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제네바는 인구가 겨우 1만 3천명의 아주 작은 도시였다. 칼뱅은 여러 유여곡절을 겪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시 의회와 종교국을 기반으로 많은 개혁을 추진하였다.
      
아래에 서술한 내용은 한때 칼뱅의 동료 신학자였던 '카스텔로(Sebastian Castellio, 1515-1563)'의 글과 나중에 이를 인용한 전기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내용이다. 물론 이 내용에 대해 강한 반론이 있고 칼뱅의 무고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독자들의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필자는 '카스텔로'의 증언을 소설로 보거나 일방적으로 묵살할 근거가 부족하고, 또한 '세르베투스' 화형에서 보여준 칼뱅의 살인적 처신이 결코 우발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칼뱅과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과 4년 동안 적어도 58명을 처형하고, 76명을 시외로 강제 추방했다고 한다. 그 중에 10명은 참수형이었고, 35명은 마녀사냥처럼 처참한 화형이었다. 그들은 "이 부패한 도시에 실질적인 도덕과 기율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칠, 팔백명을 처형할 교수대가 필요하다"고까지 말했다.>

심지어 칼뱅은 "이단을 처형한다는 일은 결코 그리스교도적 사랑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 신자가 이단의 거짓 가르침에 물드는 것을 막아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의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목적을 위해서는 한 도시의 주민 전부를 없앨 수도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기독교인이라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엄청난 주장이다.
   
한 출판업자는 칼뱅을 비난했다고 해서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혀를 잘렸다. 어떤 사람은 '예정설'을 반대하는 말을 했다고 해서 가혹한 고문을 받고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게다가 '자크 그뤼에'란 사람은 단지 칼뱅의 정책을 반대하고 그를 '위선자'라고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극한 고문을 받은 후 처형되었다.

또한 칼뱅과 그의 종교국은 80세 노인과 그녀의 딸을 무참하게 처형했다. 헌데 그 유일한 사유는 자녀들에게 유아세례 주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딸은 여섯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러니 어떤 소녀가 부모를 구타했을 때 그녀의 목을 자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제네바 시민들은 가정생활까지 사찰을 당해야 했고, 주일예배를 몇 번 불참했다거나, 춤을 추었다거나, 술을 마셨다거나 하는 사유로도 가차없이 투옥됐다.

보다 엄청난 사실은 단순히 '혐의'만 받고 잡혀온 사람들에게도 잔인한 고문이 행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너무나 심한 고문을 가했기 때문에 그들은 고문실로 다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차라리 미리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자주 빈발하자 나중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마침내 시의회는 "죄수들은 밤낮으로 손뼉을 치라"는 규정까지 만들어야만 했다.

그들이 받은 고문을 대략 열거하자면, 엄지손가락을 조이고 발바닥을 불로 지지는 고문, 천장에 도르레를 달아 놓고 공중에 매다는 고문, 사람들의 배를 가르고 꼬챙이로 쑤시는 고문, 신체의 일부분을 절단하는 고문, 발가벗긴 채 밧줄로 묶고 물 속에 넣어 죽이는 고문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사람의 가죽을 벗겨낸 후 소금으로 문질렀다. 중세 가톨릭 교회의 '이단심문소'에서 행했던 악마적 만행을 칼뱅은 거의 그대로 재연했다.

특히 삼위일체론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한 '세르베투스'는 칼뱅이 "그 자가 제네바에 나타나기만 하면 결코 살려 두지 않겠다"고 작심했던 중요한 목표였다. 지하 감옥에서 세르베투스는 "벼룩이 나를 산 채로 물어뜯어 죽이고 있다. 신발은 다 망가졌고 옷도 내복도 없다. 나의 배설물조차 치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너무나 잔혹한 짓이다!"고 절규했다. 그는 무려 2개월 13일 동안이나 인간 이하의 동물적 학대와 고문를 받았으나 끝까지 자기 신념을 지키다가 화형대에서 죽었다.

 

   
▲ 제네바에 입성하는 칼뱅(가운데) 일행. 1541년

'신학'과 '사역'의 간극

여하튼 칼뱅과 그의 지지자들은 교회법과 국법을 명분으로 비인간적인 범죄를 무수히 저질렀다. 초대 교회 사도들의 치리는 어디까지나 교회 내부로 한정시켰지만, 칼뱅은 이를 일반 시민 전체에 적용하였다. 이는 가톨릭 교황의 중세적 신정국가 통치 발상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무지막지한 행위였다.

결국 칼뱅의 일부 사역은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앙이나 신념을 잘못 적용하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결과가 가능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여기서 비록 칼뱅의 과오를 아프게 지적했지만, 그의 학문적 능력이나 신앙적 열정까지 폄하하는 것은 이 글의 의도가 아니다. 칼뱅은 분명히 뛰어난 신학자이다. 그리고 그는 평생 매우 검소하게 살았다. 적어도 돈으로 부패한 한국의 저질 교권주의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신학은 정통일지 몰라도, 그의 사역까지 모두 정당하고 정통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감연히 중세 교회의 불의에 맞서 개신교 신학의 토대를 세우고 성경적 목회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노력한 점은 높히 평가해야 하지만, 그의 사역에는 지나친 독선과 편견과 오류도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옳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에 그토록 투철했던 신앙의 사람 칼뱅이 유독 '인간의 기본권'과 '신앙의 자유'는 왜 그리 쉽게 경시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마치 오늘날 광신적 극단주의자들이 하는 미친 행위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그가 '사단의 종'이나 하는 만행을 무수히 저질렀다.

도대체 칼뱅 신학의 어떤 그늘이 그를 그처럼 눈멀게 했을까. 이는 앞으로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연구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유사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학은 비교적 정통인데 사역이 밥통이다. 교회의 본질을 망각해서 전기 나간 밥통처럼 바보가 된 교회도 있고, 그저 사역자의 밥그릇에 만족하는 철밥통 교회도 있다.

그러니 자기 신학에 너무 자만하지 말자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신학을 지닌 교회라 하더라도 그 사역이 사이비라면 그 교회는 결국 사이비 교회가 된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교회당 속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제 아무리 거창한 예배를 드리더라도 그들의 사역이 변질되면 그건 그냥 '종교적 사기'일 뿐이다. 이런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회복 불능이다.

 

신학을 몰라서 헌금 횡령하나

교회 역사가 알려주는 냉엄한 진실은 '바른 신학'이 저절로 '바른 사역'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단과 사이비들이야 본래 애초부터 전문 사기꾼들이니 당연히 막장이다. 그런데 멀쩡한 정통 교단의 목회자들이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은 단순히 신학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근본적으로 인간 양심의 문제이고, 상식의 문제이고, 그리고 자질의 문제이다.

그들은 결코 신학적으로 무식해서 교회 돈을 횡령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교인들보다 훨씬 더 성경을 잘 알고 신학을 잘 안다. 그럼에도 기복 설교하고, 교권 독재하고, 장부 숨기고, 표절하고, 세습하고, 성추행하고, 그리고 패거리 작당하여 신도를 우민화한다.

물론 바른 신학을 추구하며 열심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난 2000년 동안 허구한 날 파먹은 것이 신학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무슨 새롭게 영감을 받은 특별한 신학의 발견이나 성취가 아니라, 도리어 사도들의 교회가 지녔던 처음 사랑과 처음 양심과 그리고 처음 상식의 회복이 아닐까.

요즘 어떤 사역은 너무 방자하다. 세계 최대 교회의 창립자란 위인은 거액의 교회 공금 횡령자이고, 교계의 슈퍼스타였던 한 대형 교회 목사는 노련한 성추행자이다. 그리고 초호화 예배당을 건축한 표절 목사는 치졸한 학력 사칭자이다. 그들은 결코 우발적 실수로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매우 상습적이다. 따라서 교계를 조금만 유심히 살피면 목회는 물론이고 인생 자체가 사기인 자들이 제법 많다.

그럼에도 저들은 여전히 교인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강단에서 큰 소리로 설교하고 있다. 이게 바로 한국 개신교의 독보적인 영적 수준이며 적나라한 현주소다. 신학은 정통이고 설교도 형통하지만 그 사역이 영 밥통이다. 그러니 "목사도 밥통, 신도도 밥통"이란 말이 절로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건강한 교회와 진실한 목회자들도 아주 많다. 그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밥그릇에 쌀알이 돌알보다 많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반면에 흰 돌은 단지 몇 개만 섞여있어도 어금니가 부러지는 법이다. 그러니 "오직 극소수가 돌이니 괜찮다"는 식의 구차한 변명은 이제 그만 하는 것이 좋다. 게다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절대로 극소수는 아니다.

도리어 옛말에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오랜 기간 비교적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유명한 대형 교회들마저 저 모양이니 나머지 상당수의 중소형 교회들은 또 오죽할까. 사실 더 이상 언급하기조차 부끄럽다.

칼뱅은 학문적으로 매우 뛰어난 신학자이며 논리적인 설교자였으나 그럼에도 성경의 가르침을 크게 오해하여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살육을 저질렀다. 따라서 어느 목사가 제 아무리 신학 공부를 많이 했고 설교를 청산유수로 잘 하더라도 그것을 너무 과신할 필요는 없다. 개인의 신학이 홀로 완벽할 수도 없고, 또한 신학과 사역이 항상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어느 경우이든 교회가 특정 직분자나 개인 중심으로 운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덩치만 큰 중세적 바보들

칼뱅은 그의 저서에서 당시 로마교의 성직자인 주교들을 향해 가차없이 '무례한 바보들'이라고 아주 원색적인 독설을 날렸다. 그런데 만일 그가 오늘날의 혼란한 한국교회를 본다면 또 뭐라고 말할지 매우 궁금하다.

특히 칼뱅 신학의 후계자로 자처하는 한국 장로교의 소위 '개혁주의' 정통 보수 교단들인 '합동', '고신', 그리고 '합신' 등 대부분이 사실상의 성직매매인 중세적 교회 세습을 노골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이 한심한 꼬락서니를 보았다면 그의 심정은 어떨까. 과연 그런 북한 공산당식 부자 세습이 "성경만을 따르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개혁교회 목사들이 할 짓인가. 정말 표리가 부동하고 양심머리 없는 작자들이다.

그러니 고작 유아세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평범한 시민들을 비정하게 처형했던 평소 칼뱅의 칼같은 성정으로 볼 때 그는 또 다시 교수대를 세우거나, 아니면 그 철없는 애송이 세습목사들의 목을 당장 자르겠다고 달려들지도 모르겠다.

아마 적어도 "목사도 바보, 신도도 바보"라고 하며 덩치만 큰 아이처럼 자기 밥상만 챙기는 여러 교회들을 매우 신랄하게 책망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도 정통과 밥통의 혼돈 속에서 개신교 부패와 몰락의 방조적 공범자가 되어 '중세적 바보'로 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녕 두려워해야 할 시대이다. 과거 칼뱅의 제네바 학살 못지않게 더욱 더 무서운 것은 현재 교인들의 영혼을 조용히 말살하고 있는 '유사 교회'들의 타락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상당수의 밥통같은 교회들로 인해 어차피 모든 기독교인들이 바보로 조롱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래도 이왕이면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겸허히 따르면서 이웃 사랑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며 사는 그런 '거룩한 바보'들이나 더욱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원할 뿐이다.

"교회가 혼돈하고 공허한 가운데 주교들은 대부분 무례한 바보들이며 믿음에 대한 초보적 상식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유모에게서 방금 떨어진 덩치만 큰 아이들이다." - 칼뱅  


신성남 / 집사·<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관련기사]

신성남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62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74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성남 (49.50.206.22)
2015-11-16 05:46:03
칼뱅의 제네바, 1542년부터 4년 동안 58개의 처형이 이뤄졌다.
세계적인 교회사 학자인 '필립 샤프'는 '기독교역사' Vol 8, section 107에서 가능한 칼빈을 두둔하는 말을 많이 썼으나, 그럼에도 다음의 사실을 확인해 준다.

1. 이단, 우상숭배, 신성모독 등에 대해서는 사형이 내려졌고 야만적인 고문이 지속되었다.
2. 한 여자아이가 부모를 때렸을때 십계명의 제 5계명의 엄정함을 보여주기 위해 목이 잘리는 형을 받았다.
3. 한 은행원은 반복된 간음때문에 처형되었는데 죽을때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했다.

4. Bolsec, Gentilis, 카스텔리오 가 이단적인 의견을 보인다고 공화국에서 추방당했다.
5. Gruet은 무신론과 선동죄로 목이 잘렸다.
6. 세르베는 이단성과 신성모독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7. 1545년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20명 이상의 남자와 여자가 산채로 마녀사냥과 전염병을 퍼뜨린다는 음모로 화형을 당했다.

8. 1542년부터 1546년 까지 58개의 사형과 76개의 추방이 이뤄졌다.
9. 1558년 부터 1559년 까지 2만명의 전체인구를 고려할 때, 매우 많은 수인 414개의 형벌이 다양한 위반에 대해서 행해졌다.
리플달기
2 2
권현익 (83.204.187.197)
2015-11-11 10:27:56
이 글이 얼마나 비양심적인 글인지...
합동 헤럴드에 신성남, 그는 과연 <교회 개혁>을 외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리플달기
2 6
왜 이렇게? (122.35.176.192)
2015-11-05 12:23:42
칼빈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왜 이렇게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치고 받는 꼴이 칼빈의 시대를 연상하게 합니다. 칼빈의 시대는
이단을 엄격히 따지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이단 처형은 잔혹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신학은 21세기의 신학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500년 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습니까? 지금 칼빈의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문제는 지금입니다. 지금은 마음을 열어야 하는 때입니다. 모두 진정들 하시고 남을 향해 손가락질하기보다는 우리를 그리고 나를 바라봅시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라고 하셨는데, 그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칼빈이 내세운 것 그리고 우리가 내세우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단편적인 것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리플달기
3 4
무릇돌 (121.134.210.37)
2015-11-05 10:05:14
칼뱅의 사역 뿐만 아니라
정통이라 자처하는 칼뱅의 신학까지
밥통을 지키기 위한 사이비임이
반박글과 재반박글에 의하여
거의 증명된 셈이군요.

돌멩이가 현실기독교 자체를 개독교라고 표현한
이유가 조금은 밝혀지는 듯 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기독교라는 덩어리는
철저하게 성경왜곡에 의하여 꼴지어진
모순덩어리의 제도입니다.
때문에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개혁이야기 자체가
그리도 난해한 첩첩산중인 것입니다.
그래도 신성남 님의 열의에 의하여
모순과 왜곡의 덩어리의 일각이
노출되고 증명된 일은 가히 역사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엉터리 칼뱅 변증가에 의한 왜곡이
명쾌한 재반박문에 의하여 여지없이
박살이 난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런데 그 재반박문을 쓰셨던 분이 그글을
내리시겠다 합니다.
밥통들의 공격과 핍박이 외국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목회하시는 분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엿볼 수 있는 현실입니다.

갈길이 멉니다. 이정표도 없습니다.
그러나 찾고 두드리면
길이 발견되고 문이 열릴 것입니다.
뜻있는 분들의, 생각있는 백성들의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리플달기
5 5
무릇돌 (121.134.210.37)
2015-11-05 12:34:17
교회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개혁의 반대세력이 누구인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장로교회와 근본주의 신앙으로
밥벌이 하는 자들이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입니다.
그들은 진리와 진실을 알려고도 않고
(혹 약간 안다고해도 입을 봉합니다!)
오직 밥통지키기에 열중할 뿐입니다.
사실, 왜곡에 의한 전통 속에서 존재가 꼴지어졌는데
무슨 선한 것을 산출하기를 기대하겠습니까?
한국 기독교와 교회는 철저하게
뿌리로부터 재편되어야 합니다.
칼뱅,루터, 어거스틴,바울을 넘고 건너
진리이신 예수에게로 가지 못하면
개혁은 허상입니다.
리플달기
3 4
강숙자 (118.222.232.36)
2015-11-25 11:51:25
~무릇돌님! 화요일엔 지방출장 다녀온다고 조금전에 이사이트의
님의문장보니 :애매한 글구가 "엉터리칼뱅 변증가의왜곡이 명쾌한
재반박문에 의해 박살났다" 이문구가 누구를 향한 뜻인지요?

PS: 다시 정독하니 알겠습니다 하하하~
근데> 개독교라고 하시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십니다
죄인인 저희 들이 하늘의 복음을 명예실추해서
그렇치 하나님은 저희들 죄때문에 예수님을 대신 십자가에 죽이기 까지
하시며 사랑하신분입니다
또한 더럽고 비열한 인생들의 죄도 공의로 갚으시는 엄중하신분이기도
합니다 저희들을 욕하시는건 어쩔순 없지만,
하나님을 대하시는 부분은 겸허하셔야 할것으로 사료됩니다~~
님의영혼이 속히 예수그리스도의 자녀가 되시길 사랑합니다~~~~`
리플달기
3 1
신성남 (49.50.206.22)
2015-11-01 20:12:18
칼빈의 글을 직접 인용해보자...
칼빈은 세르베투스 화형 이듬해인 1554년 초에 <정통신앙 옹호론> "Defensio orthodoxae fidei in Calvini (Geneva 1554)"라는 책을 간행했는데, 그 속에는 종교적 탄압의 정당성을 밝힌 대목이 있다.

그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이단을 처형한다는 일은 결코 그리스교도적 사랑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된다. 일반 신자가 이단의 거짓 가르침에 물드는 것을 막아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의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선한)목적을 위해서 는 한 도시의 주민 전부를 없앨 수도 있는 것이다."

출처: "양심의 자유(세르베투스 사건을 중심으로)" 에서 발췌

(참고: 칼뱅의 원전 자료는 직접 확인 못 했습니다. 혹시 본 내용에 오류가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리플달기
3 4
깨진돌 (121.134.210.37)
2015-11-02 09:00:22
역쉬
개독교 정통(근본)주의가 후안무치, 극악무도한 것이
다 훌륭한(?) 선배들 때문이군요.

<그러니 이 (선한)목적을 위해서 는 한 도시의 주민 전부를
없앨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인용이 진정한 칼뱅의 글이라면
저와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으라 하는
바울은 순진무구한 얼라군요....

예수는 성전모리배들과 정치협잡군들에게
(권력으로 보통사람들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강도들이니 여우들이니 하였지만
바울이나 칼뱅처럼 저와 의견이 다른 자들을
저주하거나 해하려 하신 분이 아닌 듯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나 칼뱅 등을 추종하는 기독교(개독교)는
예수와는 다른 길을 가는 자들이 분명합니다.

아직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만...

성경도 어쩌면 제국종교인 기독교의 국정교과서입니다.
지성수 님이 이런 표현을 하셨는데 경기를 하는
철딱서니없는 분들이 있더군요.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지 못하면 그냥
개독교에서 멍멍대는 존재들입니다.

하여 문동환박사님의 최근 두 저서를
읽어보자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리플달기
2 4
강숙자 (118.222.232.36)
2015-11-25 12:08:52
깨진돌님! 극악무도한 선배라니?
개독교라고 하면서 뭐하러 악플 쓰시는지..
예수님이 누구란 관심은 있으니 이사이트에
글쓴거 아닌가요? 제국주의 국정교과서가 성경 아니라,
가스레인지 불켜 보시죠? 그불길의
천배이상의 아래구덩이도 안보이는 영원한 저주의 지하의옥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님과 저같이 죽임을 당해야할 죄인들이
다시 구원을 받고 지옥 면하고
인간 답게 살아라고 주신 생명의 말씀입니다>
다른 모욕은 용납해도 성경모독죄는 중죄에 속하니 조심하십시오
어떤 과거 상처로 주님을 배도했는지 모르나
죄인인 인간들 바라보면 실망일뿐입니다
하루빨리! 예수님의 품안으로 돌아오십시요, 님의영혼을 사랑합니다!~
리플달기
4 0
익명 (121.134.210.37)
2015-10-31 13:03:59
칼뱅에 대한 근거없는 숭배나 모략은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3 3
참빛 (24.141.15.121)
2015-10-31 16:38:42
개인적으로 저는
칼뱅이 "극악무도" 했던 인간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를 모략하려는 일부 반 캘빈당들이 사실 그의 행실을 매우 나쁘게 부풀렸던 점도 많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캘빈이 당시의 교리강압과 폭력사용에 대한 책임으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는 자기의 교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했을 테고,
제네바 전체가 자기의 교리를 따르게 하였으며
교리에 저항하는 세력을 벌하였고
세르베투스 사건에서도 보여지듯이
이단으로 생각되는 자들을 처형하도록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흥분하는 부분은 칼빈을 무조건 옹호하려는 근본주의자들의 태도입니다.
칼빈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칼빈의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는데도 잘못이 없다..?

칼빈 옹호자들은 왜 칼빈을 그렇게 옹호해야만 하고 사수해야만 할까요?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리플달기
2 4
강숙자 (118.222.232.36)
2015-11-25 12:14:39
참빛님~~세르베투스의 화형을 반칼빈파가 모략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기독교 종교개혁자중에
칼빈이 반대파에 예민했던 실책의 사실입니다

역사는 한 개인의 기술이 아닌 다양한 자료가 존재한답니다
본인이"칼빈은 이단 처형을 주도했다"신성남의 칼럼 아래에
견해를 (토요일) 작성했으니시간 되실때 참고하세요~~~
다양한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리플달기
0 1
무릇돌 (218.38.162.72)
2015-10-31 18:43:51
물론
칼뱅이 주도했건 제네바 시의회가 주도했건
(실제는 서로 서로 결탁하였겠지요)
극악한 살인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칼뱅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의 그 어거지(몰상식)에 가까운 교리는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약간은 신경증적인 인물임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이는 바울도 마찬가지겠지요.
한 인간의 사역과 사상(신학)은 결코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 상식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이지만
칼뱅은 급진적인(극단적인?)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해도 칼뱅이 이 흥건한 피의
전적인 책임자로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동조하면서 이용당한 인물?
결론은 책임면피불가! 이겠지요.

그러나 그의 제네바의 특이한 사역은
그의 특이하고 싸이키한 신학보다
훨씬 그 영향력이 적다고 보여집니다.
어차피 4차밖에 안되는 인물인데
머 사역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 인물에 머 선한 게...
그러니 칼뱅을 무슨 신앙(신학)의 조상쯤으로 여기는
장로교와 개신교는 그 행세가 어찌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에게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미심쩍은 바울도 건너서(넘어서) 말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누구누구라 믿는 종교에서
예수의 실제를 만나고 그를 따르며 함께 가는
그런 종교로 다시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4차인 칼뱅도 안되는 웨스터민스터신조 운운 하며
게다가 누구처럼
성경을 이리저리 조각내어 꿰어맞춘 제 궤변까지 섞으면
참 오색찬란하겠지요?
그래서 개독교를 못벗어납니다.

성경에 관한 관점을 혁신적으로 바꾸기 전에는
한발짝도 개독교에서 출애굽 불가입니다.

예수를 바울이 왜곡했고
바울을 어거스틴이 왜곡했고
어거스틴을 루터와 칼뱅이 왜곡하였는데...
칼뱅을 따른다면 결론은 꽝이지요.
결론은 개독입니다.
그래서 기독판은 개독판입니다.
이걸 어떻게 극복하여야 할런지...
리플달기
1 5
참빛 (24.141.15.121)
2015-10-31 22:44:57
정리를 잘 해 주셨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리플달기
1 5
무릇돌 (218.38.162.72)
2015-11-01 01:21:35
하여
아시다시피
오늘날 기독교가 그리고 믿는 예수는
실제의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 일차 해석하며 왜곡하고
어거스틴이 이차로 왜곡하고
루터와 칼뱅 등이 삼차, 사차로 왜곡한
괴이한 예수를 숭배하는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괴이한 종교, 개독교를
벗어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입니다.

교리와 신학 이전에
성경 본문을 뚫고 나아가
생생한 예수를 만나도록 경주함이
진정한 기독교의 본분일 터인데
루터니 칼뱅이니 하면서
무슨무슨 신조가 어쩌구 하는 작태를 보면
참으로 측은하기 짝이 없습니다.

바울의 제 입맛에 맞게 그린 예수초상화에
어거스틴과 루터, 칼뱅들이
덕지덕지 덧칠해 놓은 그림을
무슨 실제인양 숭배하는 꼴이
지금의 기독교라 하는 개독교!
이지요.

아무리 지적해도
너무 많이 세뇌되어
창조적으로 참신하게
생각하는 법을 잃었거든요.

세뇌란 그래서 무섭습니다.
북쪽의 김씨 삼대를 섬기는 자들과
남쪽의 독재자와 그의 칠푼이 딸을
대대로 섬기려는 족속들...
허니 교회당에서는 대를 이어 목회하고
목사가 어떤 추잡, 추악한 짓을 해도
꺼떡없이 버팀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래도 시간은 갑니다.
이 생각없는 백성들이 조만간
생각을 찾겠지요.
고난을 통해서 정금같이 나온다면...
리플달기
3 4
박창진 (113.130.235.221)
2015-10-30 20:38:31
칼뱅과 관련하여서
우리나라의 어떤 사람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러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나 글 등에서 그렇게 말할 만한 내용이 있었는가? 전혀 없습니다.
그를 반대하는 자들이 자기들의 목적을 위하여 그렇게 말을 만들고 퍼뜨린 것이지요.

칼뱅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의 글들,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나 그가 쓴 저서나 주석 등에서 그러한 내용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건 없고 반대자의 주장만이라면요?

좀 신중하게 글을 적었으면 합니다.
리플달기
8 3
무릇돌 (121.134.210.37)
2015-11-02 12:26:52
칼뱅이
4차라 하면

창진형은 얼마큼 되는데?
5차? 아님 55차?
형, 제발 성경을 연구해.
개론이라도 똘똘한 걸 좀 읽어 봐.
성경문맹이 목사라 한다면
이거 문제가 심각하쟎아?

아니면 반론을 잘 해보시던가?
칼뱅만 부둥켜 안지 말고
성경을 보란 말이야!
제국종교 개독교의 경전-국정교과서인 성경!
이정도로 비판적이지 않으면 개독교에서
골백번 죽어도 못 나와!
이말은 형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야!
개독교를 미적미적 못 탈출하는
뭇 중생들을 위한 돌멩이의
단 한개의 안티테제야!
리플달기
0 4
무릇돌 (121.134.210.37)
2015-11-02 12:38:36
성경을 보라 해서
그냥 성경 본문을 읽으라는 의미가 아니야.
성경이 각권이 어떤 맥락에서 기록되었고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며 경전에 편입되었고
경전으로 제정되어 교리와 신학이 산출되면서
어떻게 왜곡되었으며
(교리와 신학은 첫째, 본문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둘째, 그러므로 다양한-상충하는 성경의 소리를
억지로 하나로 통일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야)
어떤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경전이 되고
또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살피란 말이야.

여기저기 조각조각 나열하여 제 입맛에 맞는
허설을 증빙하려 하지 말고!

개독교? 성경을 문자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으려는 그 우매함에서 비롯되지!
(이런 우매함은 종종 악독함으로 비화돼. 칼뱅처럼!)

권력집단의 권력유지를 위하여 제정된 정경으로서의 성경...
그러나 성경 본문은 개독교가 아닌 기독교보다도 훨씬
위대하고 아름답고 유용하지.
왜 인간사의 거의 모든 것이 거푸집처럼 들어있거든,,,
토스토예프스키가 한 말이라는데 난 찾아보지는 못했어.

형, 성경은 위대한 인류의 보고야.
조각내서 제 허설을 증명하려고 인용하는
그런 허접한 책이 아니야.

만나면 할 말이 밤새워 할만큼 많겠지만
이제 접을께.

성경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해!
그래야 개독교에서 벗어날 방도가 생겨.

그럼 이만!
리플달기
1 3
무릇돌 (218.38.162.72)
2015-11-01 07:44:35
어째
창진형도 칼뱅 추종자일텐데
좀 많이 나서네?

게다가 누구처럼
성경을 이리저리 조각내어 꿰어맞춘 제 궤변까지 섞으면
참 오색찬란하겠지요?
그래서 개독교를 못벗어납니다.

누구 이야기일까?
리플달기
1 4
무릇돌 (218.38.162.72)
2015-10-29 21:47:40
만일
이 칼럼의 반이라도 진실이라면
칼뱅은 IS보다 나을 게 없는 짐승입니다.
장로교에서 자랐고 신학나부랑이도 하였지만
칼뱅이 이렇게 악독한 짓에 일조(방조)하였으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성서를 나름대로 탐구하다가 칼뱅의 예정설 교리가
참으로 허접한 교리란 걸 알았으나,
하느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 그가
신앙과 신학의 미명하에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인간존엄을 그토록 짓뭉갠 악당인 줄은
정말로, 정말로 알 수 없었습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듯이,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휘두른 절대권력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한지
칼뱅이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는가요?


<지금 우리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무슨 새롭게 영감을 받은 특별한 신학의 발견이나 성취가 아니라...>

라는 본문에서 신성남님의 신학에 대한 조소를 느낍니다.

여기 베플에도 지적되어 있듯이, 신학을 했다는, 그것으로 밥먹는
목사들의 수준은 참으로 한심할 정도가 넘어 차마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목사가 아니라 먹사에다 막사로 불리는 현실이 이를 충분히
가늠하게 합니다.

한편,

<도리어 사도들의 교회가 지녔던 처음 사랑과 처음 양심과
그리고 처음 상식의 회복이 아닐까.> 라는 표현에서는

기독교 교회의 지향점을 사도행전의 미화된 초대교회 역사에
두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칼뱅의 경우에서 보듯이, 또 현재진행의 IS에서 보듯이,
절대주권의 절대신이란 인간의 절대권력욕의 미화일 뿐입니다.
껍질을 끝가지 깨고 벗기기 전에는 진실에 다가설 수 없습니다.

칼뱅만 그렇습니까?
저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으리라는 바울은
칼뱅과 무엇이 다릅니까?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원천적으로 다시나야 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미화된 초대교회가 아니라 성경을 산산히 분해하고
성경을 넘어 예수에게로 나아가지 않으면
기독교는 영원히 개독교일 뿐입니다!

변방 갈릴리에서 가난한 이들과 약한 자들과
나눔과 섬김의 본을 보이며 함게 울고 웃고 사셨던,
신의 아들과 신으로 승귀하기 전의 진실된 예수를
만나고 경험하고 함께하지 않으면
기독교라는 종교는 어떤 형태로든지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무지와 편견과 탐욕을 추구하는
제도일 뿐입니다.

초.대.교.회.가 아니라,
성경을 뽀개고 쪼개고 낱낱이 분해하여
생.얼.의. 예.수.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리플달기
2 6
권현익 (86.195.109.69)
2015-10-30 05:55:13
신성남 집사님께서 말씀하신 칼뱅의 살상이 거짓인 것을 이 당당 뉴스에 올릴 예정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리플달기
4 2
무릇돌 (122.42.179.193)
2015-10-30 12:28:51
칼뱅이 악독한 살인자가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칼뱅의 교리가 보편적인 인간정서와 지성에 맞지않고
지독한 편견에 의한 것은 알고 있지만
그의 행실조차 이 칼럼의 내용처럼 극악하리라곤
상상이 안됩니다.
무슨 오해와 착각이었으면 합니다.

만에 하나 이 칼럼의 내용이 반이라도 진실이라면
개신교 특히 장로교는 사상누각이 아니라
혈상누각일 것입니다!

반듯한, 진실된 반론을 기대합니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이제는
칼빈은 잊어야 하고 버려야 합니다.
바울조차도 예수왜곡의 혐의를 받고 있는 현시점에서
바울을 왜곡하고 오해한 루터나 칼뱅은 이차, 삼차
인물과 사료밖에 안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넘어, 예수에게로
생얼의 예수를 만나야
기독교가 오롯이 설 수 있습니다...
리플달기
2 5
맞습니다. (203.226.192.112)
2015-10-30 16:47:23
제가볼 때는 예수를 바울이 왜곡했고요, 바울을 어거스틴이 왜곡했고요, 어거스틴을 루터와 칼뱅이 왜곡했지요. 그렇게 볼 때, 무릇돌님 말씀처럼 루터와 칼뱅은 4차 입니다.
리플달기
2 5
무릇돌 (218.38.162.72)
2015-10-30 22:15:33
루터와 칼뱅은
아, 4차 이군요!
감사합니다.

그 4차 가지고 무슨 정통 운운이 가당합니까?
그러니 기독교가 개독교일 수 밖에요.
미심쩍은 칼뱅의 사역(학살?) 이야기는 없어도 됩니다.
리플달기
3 5
신성남 (49.50.206.22)
2015-10-29 09:28:47
출처를 추가할 예정입니다...
아래 댓글을 주신 '홍승헌'님의 '출처 누락' 지적에 따라 본문에 출처를 추가할 예정입니다. 제가 너무 부족해서 종종 이런 잘못을 자주 저지릅니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며, 아울러 매우 유익한 지적을 주신 '홍승헌'님께 깊히 감사드립니다.~
리플달기
2 1
신성남 (49.50.206.22)
2015-10-28 21:44:37
'카스텔로'가 적대한 칼뱅의 사역에 대해 양쪽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
아래 '정수영' 교수의 글에서 단편적이나마 참조가 되실 것입니다. 긴글을 요약 발췌한 점 깊히 양해를 구합니다. 시간이 허락되시는 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
교회 치리기관-장로법원 (Consistory System)

1542년 2월 16일자 장로법원의 회의록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러하다.

한 여인은 카톨릭의 책 「성자들의 생애」라는 책자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되어서 출두했고 어느 이발사는 사제에게 삭발식을 해 주었다고 고소되었다. 어느 금속공은 미사에 쓸 잔을 만들어 주었다고 적발되었고 어떤 이는 교황을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가 적발되었으며 이러한 사소한 것들까지도 모두 재판을 하였다(중략).

칼빈은 제네바 시민 l만 3천명을 주일날 모든 예배에 의무적으로 참석하게 했다. 그 방법으로 제네바 시를 네 교구로 나누었다. 그래서 주일 낮에 3회의 예배를 실시했다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 이 세 번의 예배 중 한번의 예배라도 참석하면 그것은 문제가 안 되었다. 그러나 예배에 한 번이라도 참석하지 않으면 그는 장로법원에 보고되었다. 이와 같은 강제적 공포 분위기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계속해서 여기 저기서 불만과 반항이 터졌다. 칼빈은 그가 대학시절 법률을 공부했기 때문에 세속적인 문제들에 관해서도 시의원들과 평의원들의 자문에 응했다. 그래서 치리법원 은 세속적인 문제도 다 취급했다. 마술, 이단. 간음, 신성모독, 난동 등 공공질서에 관한 모든 문제가 다 취급되었다.

어떤 시민은 자기 개를 칼빈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해서 감옥에 가기도 했다.

1546년 l월이었다. 트럼프 제조업자인 아모오는 제네바 200인회 의원이었다. 이 사람이 칼빈을 비난하고 니섰다. 그가 사업적으로 파산 지경에 이른 개인적 문제도 있었지만 칼빈을 쓸데없이 시 정치에 간섭하는 내정 간섭자라고 비난하였다. 그리고 악당일 뿐만 아니라 잘못된 교리를 전파하는 자라고 하였다.

이때 장로법원에서 는 아모오로 하여금 의회 석상에서 칼빈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라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아모오가 자기 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였으니 그 처벌 역시 공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모오에게 속옷만 입고(추운 겨울에) 양초를 켜든 채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면서 시가를 행진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장로법원은 다시 칼빈이 바라는 대로 판결해야 했다. 이 일로 인해 모든 시민들은 칼빈에 대한 적개심을 갖기 시작했다.

1546년 6월이었다. 목사들을 비방하는 글과 칼빈의 설교에 대한 시정을 요망하는 글이 성 피에르 교회의 강단 위에서 발견되었다. 그 글의 주모자가 누구인가, 칼빈은 의회로 하여금 그를 색출하도록 했다. 그래서 평소 회의주의에 빠져 있고, 불신앙인의 서적을 휴대하고 다니던 그레이트를 의심하였다. 결국 이 자를 체포하여 고문하고 '참수'해버렸다.

프랭코스(Francois) 이 사람은 나이 70이 된 노인이었다. 그는 자기의 장수를 다른 이들과 더불어 즐기고자 했다. 그래서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홍이 돋자 댄스를 허용하였다. 이것을 장로법원에서 알고는 그를 부도덕한 댄스 파티를 연 사람이라고 파문을선고했다.

이때 시 의회에서는 그가 70 고령의 노인임을 참작하여 처벌을 완화해 주도록 칼빈에게 건의를 했다. 그러나 칼빈은 더욱 완강했다. 칼빈은 그 노인과 그 가족들까지도 처벌을 내렸다. 칼빈은 이 일로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즉 전에 칼빈이 스트라스부르크에 있을 때 그를 후원하여 칼빈을 다시금 제네바로 귀환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 중에 아미 페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페린은 1553년에 특별 평의원이 되었다.

그런데 칼빈이 처벌한 70 노인은 바로 이 페린의 장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페린의 아내와 사위까지도 치리하였다. 이렇게 되자 전에 칼빈을 좋아하던 페린이 이제는 칼빈을 대적하기 시작했다. 이 페린은 칼빈의 콧대를 꺾으려고 장로법원이 가진 파문권을 폐지하고 이를 다시 의회에서 소유하도록 주동하였다.

이 외에도 수많은 처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 처벌로 인해 4년 동안 58명이 처형을 당해 죽고 76명이 시외로 추방되었으나 기록되지 않은것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카스텔로(Sebastian Castellio)는 프랑스 마틴 시에서 출생하여, 리용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이 카스텔로는 서로 다른 신앙을 용납하지 못하고 세르베투스를 처형한 칼빈의 행위를 비난하다가 수난을 당했다. 카스텔로는 1541 년에는 칼빈과 함께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그 당시 대다수가 쫓던 견해를 따르지 않음으로 성직에는 임명을 받지 못하였다.

칼빈은 성경은 이성의 도움 없이 무조건 믿어야 된다고 했고, 카스텔로는 성경을 믿되 무조건이 아닌 인간의 지식과 양식으로 검토된 후 믿는것이 더 확고하다고 주장했다.

그후 1554년 칼빈은 「마이클 세르베투스의 과오에 대항한 정통 삼위일체 교리의 수호」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같은 해에 카스텔로는 '이단들에 관하여, 과연 그들이 박해를 받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과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를 저술했. 이 책은 그후 33판을 거듭해 장기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 속에서 카스텔로는 재침례교도들에 대한 핍박을 비난하였다. "그들은 가련하게 참살당했다. 무기를 들고 대항하지 않는 자들까지도 죽임을 당하지 않았는가,보다 잔인한 것은 책을 썼다고 하는 이유 때문에 살인하는 야만성은 영원까지 존속할 것이다"고 하였다.

이런 글을 보고 칼빈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칼빈은 카스텔로가 솔로몬의 아가서에 대한 정경성을 의심하는 자요, 그리스도가 음부에 내려갔다는 전통적 신앙을 부인하는 자라고 고발하였다. 카스텔로는 이단으로 재판을 받던 중 1556년에 사망하였다.

볼세크가 성직자 토론회에서 방청하던 중 칼빈의 예정 교리가 난해한 것임을 표명하였다. 1551년 10월 16일 금요 성직자 토론회가 있었다. 이때 볼세크는 예정론에 관해 이견을 제시하였. 여기에 대해 칼빈은 매우 불쾌하게 여기고 언성을 높여서 어거스틴과 토마스아퀴나스등을인용하면서 예정론교리의 진실됨을강조하였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칼빈은 볼세크가 악의로 남을 비방하는 이단이라는 죄목으로 소위원회에 고발을 하였다. 갑작스럽게 구속된 볼세크는 너무 당황했다. 그래서 볼세크는 제네바 시 의회는 칼빈이 장악하고 있으므로 다른 도시의 도움을 얻으려고 했다.

볼세크는 베른, 비젤, 취리히 등의 타 도시 개혁교회 목사들에게 자기 입장을 설명하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려고 했다. 이때 대부분의 목사들은 내용보다는 볼세크에 대한 선처 를 바라는 회답을 보내왔다. 그러나 칼빈은 그 회신들을 고려하지 않고 소위원회로 하여금 볼세크를 제네바에서 추방시켰다. 볼세크는 다시 프랑스 카톨릭으로 귀의하였다. 그리고 칼빈에게 복수라도 하듯 악랄한 험담에 가득찬 전기를남겼다 이 전기는 1557년에 출판되었다.

전직 수도승이었던 트롤라에트는 제네바에 와서 다시 신학교육을 받고 1552년에 목사가 되었다. 그런데 트롤리에트 역시 칼빈의 예정론에 이의를 갖고 있었다 그런 중에 볼세크에 대한 편파적 재판을 보았다. 그래서 트롤리에트는 재판의 편중성에 대해 불평을 하였다.

칼빈은 이 사실을 1552년 6월에 소위원회에 고소하였다. 여기서 트롤리에트는 잘못을 사죄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트롤리에트로 하여금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는 건전한 책이며, 전혀 논란할 필요가 없는 바른 교리의 책이라고 선포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사상적으로 온건하고 진실한 목사라는 것을 선언하도록 했다. 그런 후 트롤리에트를 목사직에서 파직시켰다.

칼빈의 생애 중 가장 큰 실수로 거론되는 문제가 바로 세르베투스의 문제이다 세르베투스는 스페인에서 왕실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특출한지적 능력을받았으며, 원래 법학과의학을공부하였다. 그것도 만족하지 않아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다. 툴루즈 (Toulouse) . 볼로냐(Bologna). 바젤 (BaseD. 스트라스부르크,파리, 리용 등 명문학교는 다 거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네바에서 최후를마쳤다.

세르베투스는 나폴리로 가던 도중 제네바에 들르게 되었다. 이때 전에 칼빈과 서면논쟁을 통해 여러 번 교제를 나눈 적이 있으으로 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몰래 칼빈의 설교를 들으려고 교회로 갔다. 그런데 그의 정체는 쉽게 드러나서 체포되고 만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영적 지다로서 확고한 위치를 누리고 있을 때였으므로 세르베투스의 체포는 그의 오랜 숙적을 처치하는 데 절호의 기회였다. 칼빈은 그의 비서 폰테인을 고발자로 삼아 세르베투스를 투옥시켰다. 그의 죄목은 신성모독죄였다.

칼빈은 세르베투스를 2개월 1 3 일 동안 지하실 감옥에 가두고 온갖 방법으로 그의 개심과 수정을 요청하였다. 이때 세르베투스는 바꿔 입을 옷도 주지 않고 벌레가 우글거리는 곳에서 인간 이하의 학대를 당했다. 1553년 9월 26 일 에 제네바 시 의회에 의한 재판이 열렸다. 재판은 그에게 사형을 시키고 그의 저서와 함께 분살을 시키도록 선고가 내혔다.

드디어 1553년 10월 27 일에 제네바의 삼펠 사형장의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을 당해서 죽는다. 이때 칼빈은 화형 대신 참수형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르베투스가 죽는 것은 국법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이때 마지막으로 죽어가면서 세르베투스가 남긴 말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를 긍홀히 여겨 주소서"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칼빈을 후세인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미국의 저명한 교회사 학자 롤란드 베인톤은 "카톨릭에 의해서 허수아비가 태워지고, 개혁주의자들에 의해서는 실제가 화형을 당했다."고 하였다. 그 누가 말하기를 ‘민주주의의 원조를 칼번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하나 아무리 보아도 칼빈은 민주주의와는 먼 사람이었다.’라고 했다.

우리는 몽테뉴(Motagne)가 말한 것처럼 "모든 인류는 '세바스티안 카스텔로'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 복음적인 합리주의자들이나 재침례교도들이나 자유 사상가들은 전통적 교리를 거부하므로 희생되어 사라졌다. 그렇지만 현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온갖 고상한 자유들은 그들의 희생 위에 피어난 결실들인 것이다.

당시 국가의 힘을 배경으로 한 집권 세력들은 정통 신앙수호라는 이름으로 모든 소수파들을 토벌하고 그들의 사상을 뿌리채 뽑아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 실패하고 말았다. 오히려 종교의 자유 사상은 마침내 승리를 거두어 인류의 진정한 양심 속에 영원히 흐르고 있다.

- 정수영 교수의 <새교회사>에서 발췌
리플달기
3 2
지나가다 (99.225.53.85)
2015-10-30 09:16:55
영어가 되시는 분들은 가서 읽어보세요.
구글에서 이렇게 입력하면 나옵니다.
Was John Calvin a Heretic-Burning Maniac?
by James Pruch.
교회사에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 많이 해소되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확실히 해외 자료중에서 참고할 만한 것이 많네요.
조금만 구글링 해 보시면, 자료들이 많습니다.
리플달기
1 0
박창진 (113.130.235.221)
2015-10-28 20:52:35
이런 내용도 있네요.
권영진 목사라는 분의 글입니다. 다음 카페 정언향교회 의 알려주세요 메뉴의 368번 질문에 대한 답글입니다.

링크해 주신 글의 출처는 비록 작성자가 기록하지는 않았지만(이런 것이 바로 학문적 불성실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나치 치하의 오스트리아의 극작가의 [칼빈 비판서] 속에서 또 한 명의 반칼뱅주의자 세바스티앙 카스텔리오(칼뱅과 신학적 견해가 달랐고 그로 인해 제네바에서 추방당한 후 결국 그의 대적자가 되었던 사람)의 일방적 주장을 인용하여 각색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라기보다는 일종의 소설에 가까운 글입니다. 왜냐하면 츠바이크는 신학자나 역사가가 아니라 소설가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팩션(faction)이 되겠군요.

츠바이크는 유대주의를 옹호하고 권위주의를 부정한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늘 정서가 불안했고 결국 자살로 삶을 마무리 한 사람입니다. 그의 글들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그것은 그의 글이 균형적이지 않다는 말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삶에 대한 간략한 이해는 그의 글의 성격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입니다.

그의 책에서 카스텔리오가 말하고 있는 칼뱅의 정치적 희생양으로 묘사된 미겔 세르베투스는 사실 칼빈의 적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공적이었습니다. 그는 칼뱅 이전에 이미 가톨릭으로부터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이단자로 판정받았고 종교재판을 위해 소환된 상태였습니다. 세르베투스는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신세였고 한 때 제네바에도 몸을 피한 적이 있었습니다. 칼뱅과의 서신교제는 이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는 칼뱅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칼뱅은 그의 편지 중에서 [당신이 제네바에 와도 당신의 안전은 책임질 수 없고 나 역시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니 당신이 잡혀간다 해도 나는 도움을 주지 않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츠바이크의 소설에는 칼뱅이 [나에게 걸리면 내가 반드시 당신을 죽이겠다]는 식으로 왜곡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세르베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톨릭의 적이었고 결국 제네바(쥬네브)에서 붙잡혀 제네바 시의회의 재판을 받고 화형을 당합니다. 여기에 칼뱅이 기여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는 단지 세르베투스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것 뿐인데 당연하게도 칼뱅은 인간이지 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칼뱅은 같은 가톨릭을 적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신학적 노선과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세력을 긁어모은 사람이 아님을 이 사건은 보여줍니다. 특히 당시 세르베투스의 재판과 판결을 내린 제네바 시의회가 칼뱅에 적대적인 기관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제네바 시를 칼뱅이 다 휘어잡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것은 정말 당대의 역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편견입니다. 칼뱅은 평생 대적들에게 공격당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츠바이크의 소설은 칼뱅 자체를 공격하기 위한 의도적 왜곡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칼뱅은 세르베투스가 화형을 당하는 것은 과하다고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칼뱅과 세르베투스에 관한 츠바이크의 이런 왜곡된 글은 사실 칼뱅주의와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진 유니테리안들의 주장과 칼뱅주의를 혐오했던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 맞아 떨어져 당시의 사회에 유포되었던 일종의 [도시전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츠바이크 역시 개신교에 혐오를 갖고 있었던 이였기 때문에 매우 적절한 소재가 되었죠.

또한 세르베투스의 동상 역시 제네바에서 만든 것이지 개혁교회에서 정식으로 참회하거나 헌정한 것도 아닙니다. 사실 개혁교회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는 소리죠. 이런 부분들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사람들의 오해입니다. 사실 이 내용들이 알려진 것 역시 유명한 반칼빈주의자인 조찬선, 심상용 목사 두 사람의 글들에서 츠바이크의 글이 재인용된 것 때문입니다. 그들은 츠바이크의 글을 가지고 더 심각한 소설을 써댔죠. 이것이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반개신교 진영에서 일제히 인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역사적 사실인지 확인도 안한 것은 물론입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이게 역사적 사실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칼뱅을 깎아 내릴 수 있다면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람들이니까요.

친구분은 아마도 개신교 자체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을 알려 드릴 수는 있겠으나 아마 믿지 않으실 것 같군요. 이미 굉장히 편견을 가지고 계신데 뭐라고 말씀드린들 쉽게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과 그들의 사상을 후손들이 이용한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루터와 칼뱅이 가톨릭 군주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지역 영주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루터와 칼뱅은 그런 정치적 욕망은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들의 삶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초라할리가 없었겠지요.
리플달기
7 3
무릇돌 (121.134.210.37)
2015-10-28 11:38:23
따라서 개신교 개혁을 위해...
성서 배후의 역사적 배경과 역사비평적 성서읽기를
지속적으로 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성서를 읽으면서,
신의 뜻보다 먼저 생존을 위한
인간의 투쟁을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댓글중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사실, 먹사니 개독교니 하는 문제는
이 성서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편견에서
비롯됩니다.

성서는 하늘을 향한 인간들의 고뇌와 투쟁과 술수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보고입니다.
이점을 놓치고 성서를 문자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서
현금 기독교(개독교)의 모든 문제가 발원한다고 보여집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를 극복하며
성경에 대한 관점의 혁신적 전환이 없이는
먹사는 막사로 개독교는 개개독교로 악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개신교(모든 종파의 기독교)의 개혁을 위하여...
성서를 새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새로운 고수의 출현을 기대하며...
리플달기
2 2
W (198.208.251.23)
2015-10-27 20:55:55
말꼬리
그동안 눈팅만 하시고 기회를 옅보시던 소위 공부 좀 하셨다는 목사님들 신나셨군요. 촛점을 현재 한국 교회의 문제에서 다른 쪽으로 몰아가시는 군요. 이걸보니 국정교과서를 밀어부치는 한국정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심합니다.
리플달기
5 5
참 빛님께 (203.226.192.4)
2015-10-27 14:10:59
원복과 창조영성이 현 기독교 교리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과도기적 대안일 뿐입니다. 언제든지 그 교리 또한 부패한 목사들의 목적에 따라 수시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개신교 부패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사회적인 원인도 있겠고, 개신교 자체 원인도 있습니다.

사회적 원인은 제외하고, 개신교 자체의 주요원인을 다음처럼 봅니다.
1) 성서무오류설과 문자영감설
2) 목사들의 반윤리과 반도덕(비윤리 비도덕이 아닙니다.)
3) 목사들의 수준 낮은 지적능력.
이 세 가지가 순환하고 중첩되며 개신교가 부패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개신교 개혁을 위해
1) 성서 배후의 역사적 배경과 역사비평적 성서읽기를 지속적으로 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성서를 읽으면서, 신의 뜻보다 먼저 생존을 위한 인간의 투쟁을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신성남 집사님처럼, 반상식적이고 반양심적인 목사들의 행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야 합니다. 몇 몇 사람들은 일부목사들만 부패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것이고, 목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겁니다. 중형교회와 소형교회 목사들도 대부분 반양심적이고, 그들은 거의 동물 본능 수준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목사들은 십일조가 법칙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십일조를 안 하면 기본이 안 된 교인이라고 매도합니다.
- 목사들이 바람피고 성범죄 저지르고 오리발 내미는 것은 유명합니다. 일반인 보다 범죄율이 높습니다.
- 목사들은 거의 일베 수준으로 타인을 비하하고, 검찰청장 급으로 타인을 재단합니다.
3) 목사들의 지력이 얼마나 수준이하인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목사들의 지적 능력이 매우 심각합니다. 대학입학성적 이야기 할 필요 없이, 논리적으로 똑똑하다고 자평하는 목사들과 토론해 보십시오. 금방 그들의 지적 수준이 들통 납니다.

목사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문자영감설의 권위를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하나님의 제사장이니 하나님께서 심판한다는 것이지요.
리플달기
9 3
참빛 (207.210.3.147)
2015-10-28 09:54:00
고맙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세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신 한국 개신교의 문제해결을 위한 방책, 참 좋습니다.
고수를 만나뵌 것 같아 기쁩니다.

새로운 동지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위로를 받게 되고 이 세상에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어 저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

북미의 한 한인교회에서 실재로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 하나 전해 드리지요.

십여년 쯤 되었을 겁니다.

어느 교회에서 새로 담임목사를 한국에서 부터 청빙하였습니다.
새로 청빙받아 온 그 목사는 열심으로 목회하시고 설교도 잘 하시고
무엇보다도 본인 스스로가 매사에 솔선수범을 보이셔서
교인들이 무척 따르고 존경하는 그런 분이었답니다.

당연히 순풍에 항해하는 듯한 교회 전체적 분위기이었구요.
그러던 어느날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한국에서 유학와서 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어느 여학생의 부모가 교회의 장로님을 찾아가 그 목사가 딸을 성추행했다고 밝힌 것입니다. 사건이 그렇게 터져 버리자, 그동안 감추고 있던 다른 여자 유학생들도 너도나도 자기들이 당한 일들을 장로와 교인들에게 밝히게 되고 그 목사의 더러운 성추행들이 솥아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유학생 교인 여학생들을 하나씩 따로 불러내어 외진 곳에서 갑자기 포옹을 해대고 가슴을 만지기도 하고 키스를 요구하며 어디를 만지라고도 요구하며.. 등등...


...


결국, 교회는 두편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목사파는 "목사가 그럴리가 없다. 여학생들이 다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다" 라는 식으로 말하며 오히려 피해자들을 겁주며 목사를 철옹성으로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과반수 이상의 나머지 교인들은 목사가 조용히 사임해 주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그 때, 목사파의 주장은 한결같이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1. 감히 목사에게 덤비면 큰일난다. 벌 받는다.

2. 목사가 잘못 했다면, 목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소관임으로 하나님이 알아서 처리할 것임. 일반 성도는 기도만 해주면 된다.


...


평소 서로 나누고 위하며 세상 끝까지라도 함께 갈것만 같던 교인들이 목사 문제로 인해서 두 파로 갈라진 이후로는 서로 대화조차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에 까지 이르른 것이지요.

무조건 목사를 옹호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상식이하의 무뇌한들이 되어 버리고..

목사와 목사파는 그 교회에서 나가서, 자기들끼리 따로 교회를 하나 차렸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목사는 그 교회에서 조차도 더 버티지 못하고 한국으로 다시 들었갔다고 전해집니다.
리플달기
3 4
공감 (72.196.233.169)
2015-10-28 23:53:21
저는 목사들의 그런 면책권적 특권의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끔은 교회가
목사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이익집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됩니다.

회개라는 단어는 참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회개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목사들입니다.
얼마전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던
대형교회 목사들이 강단위에서 회초리들 들고
자신의 다리를 때리는 코메디를 연출하는 장면을
보고 모처럼 배꼽을 잡았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기가 범한 죄를 모두 고백한 후
그로 인해 부당하게 취한 이득이나 이권, 지위,
명예를 완전 반납하고 법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돌아 온 탕자의 회개입니다.

국회의원들이나 공무원들의 비리도
그렇게 처리되고 있습니다.

.
저는 솔직히 잔악한 칼뱅의 비행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되었습니다. 다른 댓글에서
지적한데로 물론 과장된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종교적 이유로 살해된
사람들이 일억이 넘는다는 주장은
지난 기독교 역사에 비추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굳이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을 언급할 것도 없이
미국 인디언들이 2천만 이상이 기도교인들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북남미를 통털어 일억 가까이
살해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
십자군 전쟁을 천년이 뒤에야
케토릭 교황이 정식으로 사죄를 했습니다.
그러나 신교에서는 여지껏 그런 사과조차
한 적이 없는 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테리 역사학자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신으로 군림하고 있는 .
한국 기독교 모습이 바로 한국기독교의 지난 역사이고
그 역사의 현주소입니다.
사랑과 평화의 신과 예수는 사라지고
타락한 목사, 호화 찬란한 교회건물,
물질적 축복론의 마약에 중독된 신도들이
판을 치는 모습....
그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한국교의
모습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사랑관계입니다.
그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이득을 챙기는 중매쟁이들을
왜 필요로한단 말입니까?

모세에 얽힌 이런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숲속에서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
한 양치기 목동의 기도 소리를 듣게되었습니다.
그 기도 내용이 가관이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천국에 보내주시면
매일 하나님 이를 잡아드리겠습니다.
매일 안마도 해 드리겠습니다.
참, 저는 움식도 아주 잘 합니다.
매일 맛있는 양고기 음식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모세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 목동을
불러세워 호통을 쳤습니다.

"하나님 이를 잡아준다고? 이 무식한 놈아!
그건 기도가 아니라 신성모독죄다.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신성하게 하는 것이다." 하고
자기가 평소에 되풀이 하는 기도를
목동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목동은 죽을 죄라도 지은 듯 머리를 숙이고
'저는 아는 것이 이것밖에 없습니다.
양치는 목동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몸에 들끓은 이입니다.
그리고 가끔 몸이 쑤시고 굶주림을 견디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들과 같은 고통을 겪고 계실거리고
믿고 있었습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요.
앞으로는 그런 고상하고 격식있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모세가 그 소년을 떠나 한참을 걷고 있던 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하나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모세, 이 못된 놈아!. 내 사랑하는 자녀들을
나에게 보내라고 너를 보냈더니 너는 순수하게
나를 사랑하는 자녀들을 오히려 나로부터 쫒겨내고 있다.
당장 그 양치기 소년을 찾아가 용서를 빌고
나에게 다시 되돌려 보내거라!"

모세는 허겁지겁 달려가서 그 양치기 소년 앞에
무릅을 꾾고 자기의 잘못을 사죄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리플달기
5 8
참빛 (207.210.3.147)
2015-10-29 05:12:50
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어느 종교이든지 그들의 목적당설을 위해서 (그 목적이 비록 선하다고 할찌라도)
"폭력"을 사용한다면
그건 더 이상 "선의 종교"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악의 종교일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강압과 폭력을 도모하거나 사용해서는 아니됩니다.
오히려 당해주고 핍박하는 자들을 향하여 용서를 구하는 낮은 자세...
이 모습이 바로 예수가 보여준 비폭력 저항이었고
그의 십자가 죽음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독교의 진수입니다.

폭력을 도모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사라져 주어야 할 악 중의 악입니다.


존 칼빈이 직접적이었던 간접적이었던 간에, 칼빈 기독교 교리를 강제로 설파하기 위해 폭력이 동원된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은 커녕, 지금까지도 많은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칼빈과 그의 일당을 무조건 옹호하고 있어 보입니다.

신성남 선생께서 쓰신 본문에 대한 다른 의견이나 반론을 여러분이 댓글로 올리셨는데,
모두 나름대로의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지면상 다 거론할 수는 없고요...

...

이번 본문을 통해서 각자가 단 하나의 교훈만이라도 얻어갈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싶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에 대한 폭력행사는 그 누구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
리플달기
5 3
신성남 (49.50.206.22)
2015-10-27 08:59:32
칼뱅의 제네바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일부 근본주의 신학자들이 반박하는 주요 논리가 있다.

1. 우선 Stefan Zweig나 기타 '반칼뱅적 저서'들은 모두 믿을 수 없는 책이다.
2. 칼빈은 사람들을 학살할 만한 정치적 위치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매우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1. Stefan Zweig(1881-1942)는 수십 권의 책을 쓴 유명한 전기작가로 그렇게 무책임하고 몰상식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더구나 칼뱅에 대한 서술 내용이 한두 개가 아니고, 아주 구체적으로 많은데 그것을 모두 일방적으로 묵살하는 것이 더 몰상식하다. 다른 자료들도 마찬가지이다. 특정 사안에 관련된 책들에 대해 그렇게 "모 아니면, 도"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2. 당시 제네바에는 분명히 가톨릭의 이단심문소와 유사한 '종교재판국'이 설치 되어 있었고, 그들의 잔학한 행위는 온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같은 기간 제네바 외에 스위스의 전지역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죽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그곳의 실제적 지도자였던 칼뱅이 그런 마녀사냥 재판과 만행에 별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아마 제네바 시의 강아지들도 비웃을 것이다.

세르베투스 화형 사건만 해도 우리는 칼뱅이 과연 어떤 성정의 사람이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를 비하할 필요도 없지만, 반대로 너무 미화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물론 요즘 역사 교과서 논쟁에서 보듯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따라서 역사의 진실도 결국 각자의 눈으로 볼 것이다.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점이 있다. 한 쪽만 보지 말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2개의 눈을 주신 이유는 양쪽을 모두 잘 살피라는 것이 아닐까.

아울러 주요 <참고자료>를 아래에 밝힌다.

1. 폭력에 대항한 양심, Stefan Zweig, 안인희 역, 자작나무. 1998
2. 기독교 죄악사, 조찬선. 2000
3. 기독교사, 카시와 이엔. 1957
4. 새교회사, 정수영, 도서출판 명현. 1991
5. 문화사, 이혜령외 7인,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1995
리플달기
4 7
홍승헌 (198.178.167.2)
2015-10-28 06:14:44
정직하지 못한 기사이며 형제를 중상하는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권현익 씨께서 쓰셨듯이, 카스텔리오의 얘기에 근거한 츠바이크의 글은 사료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신빙성 있는 1차 사료를 가지고 기사를 써야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라면 "츠바이크는 이렇게 주장한다"고 분명하게 출처를 제시해야 정직한 것 아닙니까? 권현익 씨께서도 지적하셨듯이 조찬선 씨도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츠바이크의 글을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 글들을 참고자료로서 백 권을 나열한들 신빙성이 올라갑니까?

칼빈 시대에 종교적인 의견을 근거로 제네바에서 사형 당한 사람으로 확인이 된 것은 세르베투스가 유일합니다. 쓰신 기사에 보니 종교적인 의견 차이로 사형 당한 사람이 여럿인 것 같은데, 확인 할 수 있는 공식 기록이 있습니까? 없다면 "확인 할 수는 없다"고 해야 최소한의 정직성을 갖추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에 관해서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내용을 옮겨옵니다: 112문: 제9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내가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 증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뒤에서 헐뜯거나 중상(中傷)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성 급히 정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성급히 정죄하는 데에도 참여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당하지 않기 위해 본질적으로 마귀의 일인 모든 거짓과 속이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법정에서나 기타 다른 경우에도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고백해야 하며,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의 명예와 평판(評判)을 보호하고 높여야 합니다.
리플달기
8 3
신성남 (49.50.206.22)
2015-10-28 17:53:40
홍승헌님, '카스텔리오'가 신빙성이 없다구요?
하지만... 그건 또 누구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인지요?

칼뱅의 무고를 지지하는 분들은 한결같이 " '카스텔리오'의 책은 1차 자료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잘라서 단정하시는데, 반대로 저도 묻고 싶습니다. 왜 신빙성이 없고, 사료적 가치가 없고, 허위가 되는 것입니까.

적어도 제가 살펴본 바로는... 프랑스어 성경을 번역한 '카스텔리오'는 그렇게 말 몇마디로 매도 당해도 좋을 신학자는 결코 아닙니다. 저는 칼뱅이 중요한 만큼 그도 소중합니다. 그가 칼뱅의 이론에 논박한 내용들만 보아도 그의 사람됨을 충분히 잘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제가 그의 신학에 모두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글에는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특히 신학 논쟁이 아닌... 여러 사건(Fact)들을 기록한 부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가 무슨 소설가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그 많은 사건들을 모두 허위로 써서 공개했다고 단정하시는지 대단히 놀랍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그런 확고한 확신이 정말 경이롭습니다. 어찌 한 신학자의 열정이 담긴 책을 그토록 통채로 묵살할 수 있는지요.

제가 본문에서 굳이 참고자료를 인용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 여러 매체들에서 칼뱅의 행적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이 여러번 반복되어 다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용자료와 출처 누락에 대해 지적을 하신다면, 그건 분명히 제게도 책임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깊히 사과드립니다.

다만, 만일 '카스텔리오'가 거짓말장이이고 따라서 그의 글이 부실하고 1차 자료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어느 분이든 그 1차 자료라는 것을 가지고 '카스텔리오'의 증언이 왜 <반드시> 허구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반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능하시다면, 이곳 <당당뉴스>에 올려 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저도 진심으로 그 '진정한' 1차 자료들을 제대로 견식하고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보고 칼뱅을 중상한다고 하셨는데,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렇다면 '카스텔리오'를 편협한 거짓말쟁이로 매도하고 있는 분들은 그게 중상이 아니고 무었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거짓말장이로 정죄되었기에... 결국은 저도 함께 거짓에 동조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지금 여러분은 당신의 이웃인 '카스텔리오'의 명예를 진정 보호하고 높히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리플달기
2 6
홍승헌 (198.178.167.2)
2015-10-29 10:20:55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1차 사료를 가지고 증명해야 할 사람은 카스텔리오 혹은 카스텔리오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신성남 님을 만나 대뜸 "당신이 내 지갑에서 돈 빼 갔어!" 하면서 "안 빼 갔다면 안 빼 갔다는 증거 대 봐요!"라고 요구하는게 논리적으로 말이 됩니까? 근거는 고소인이 먼저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고인은 제시된 증거에 반박을 하는 것이고요.

칼빈을 학살자라고 하는 카스텔리오와 카스텔리오를 지지하는 신성남 님께서 1차 사료를 근거로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근거가 없다면 무고죄를 범하는 것이고, 그것 자체가 신뢰를 받을 자격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신뢰는 잃기는 쉬워도 얻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리플달기
9 1
허참... (223.54.153.118)
2015-10-28 19:01:41
카스텔리옹...
집사님, 어떤 책을 보시고 카스텔리옹에 대한 그런 확신을 가지시게 됐는지 궁굼합니다. 츠바이크를 위시한 카스텔리옹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책 말고 카스텔리옹에대한 어떤 사료를 확인하셨나요?
리플달기
1 2
신성남 (49.50.206.22)
2015-10-28 19:46:49
일단은 츠바이크를 위시한 다른 번역서들 내용이 큰 참조가 되었구요...
'카스텔리오 칼빈' 그리고 'castellio calvin'으로 검색을 해보니 그동안 보도된 그의 행적과 발언, 칼럼, 사전, 관련 도서의 내용과 서평 등을 다양하게 볼 수 있더군요. 저같은 아마추어 수준이야 뭐 뻔한 것이지요.^^
리플달기
0 8
익명 (198.178.167.2)
2015-10-28 06:11:34
정직하지 못한 기사이며 형제를 중상하는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1 0
허참.. (211.244.71.7)
2015-10-27 20:27:09
위의 책들 말고
registre du consistoire de geneve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 죽였다고 그렇게들 떠드는 종교재판국(종교재판국이 아니라 치리회가 맞는 번역입니다)의 회의록입니다.
고전불어 수기로 되어 있는 책을 영어랑 현대불어로 번역해서 출판하고 있죠.
칼뱅 시대 내용은 번역이 아마 끝났을 겁니다.
1990년대 이후 나온 책들 말고 당시 책들을 먼저 읽어보시고 말씀을 하시죠.
공학박사시니 아마 불어는 몰라도 영어는 읽으실 수 있겠죠.
허참... 16세기 사람을 평가하는 글에 참고자료라고 1990년대 이후 책들만 나열하다니...
리플달기
9 3
익명 (49.50.206.22)
2015-10-28 04:06:46
저라고 영문 검색 정도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5 7
허참.. (211.244.71.7)
2015-10-28 10:01:41
사료에 관하여
우선 치리회 회의록 내용은 근래들어 심도있게 진행되고 있고요, 위에 나열하신 책들을 당대 기록들과 비교해서 그 내용을 비판하고 분석해서 쓴 책들은 아닙니다. 당연히 칼뱅에 대한 전통적인 적대적 입장에서 쓰여진 책들이죠.
슈테판 츠바이크야 카스텔리옹 책 가져다 베껴놓은 수준이니 논할것이 못되고 문제는 카스텔리옹인데 16세기 당시 카스텔리옹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 책들에 대해서는 확인해 보셨나요? 카스텔리옹 본인이 쓴 책 말고요. 카스텔리옹이 유능한 성경학자에 신실한 사람이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본인의 책과 그걸 고대로 옮긴 츠바이크의 책 말고 당대 주변인들이 카스텔리옹을 어떻게 봤는지를 보여주는 문헌들을 동시에 연구해 보시고 이런 글을 쓰시는게 맞지 않을까요?
그리고 16, 17세기도 돌아가지 않아도 당대 제네바와 칼뱅, 그리고 카스텔리옹에 대해 분석한 책들이 근래(2009년 칼뱅 500주년 이후) 상당히 쏟아져 나옵니다. 영어로 검색 해보셨다고 하는데 그런 근래의 연구결과들(치리회 회의록을 포함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확인 하신 후에 이런 글을 쓰셨는지 궁굼합니다. 견해차라고 하셨는데 1차 사료가 남아 있고 거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데 그쪽은 살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폄하하는 글만 확인하고 글을 쓰시면서 견해차라고 말씀하시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자시고 해당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하셨다니 말씀드리는 거지만, 현재 국제학계에서 집사님이 하시는 주장을 근거로 칼뱅을 묘사한다면 비웃음거리 됩니다. 언제적 헛소문을 가지고 지금 얘기를 하냐고.

그리고 끝으로 덧붙여서 본인은 잘못된 소문을 근거로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서 부관참시에 가까운 글을 쓰시면서 남들에게는 예의를 갖추라고 요구하시는 것도 이상하군요.
리플달기
8 3
허참.. (211.244.71.7)
2015-10-28 10:27:10
종교재판국?
consistoire de geneve를 말씀하시나본대, 종교재판국이 아닌 치리회 정도로 번역하면 맞을겁니다. 왜냐하면 한 일이 현대 교회의 치리회랑 비슷하거든요.

꽁시스투아 회의록이 로버트 킹던교수에 의해서 현대 불어와 영어로 번역되고 있고 1542, 43년 분량이 2000년 9월에 영어로 출판됐습니다. 아마 지금은 칼뱅 당대 분량은 다 번역, 출판이 완료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꽁시스투아 구성은 목사들과 소의회 회원 두사람, 60인회 회원 네사람, 200인회 회원 6사람 등 의회쪽 인물 12명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단순히 치리회만으로 보기 조금 어려운 이유가 이것인데 목사와 장로들만 아니라 의회 대표들이 열두석이나 차지해서 결정에 영향을 끼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칼뱅이 꽁시스투아 의장이 되어서 권력을 휘둘렀다고 알고 계시는데, 의장은 칼뱅이 아니라 행정장관이었습니다. 제네바를 제정일치 사회로 생각하고 칼뱅을 종교와 정치 양분야 모두에서 권력을 휘두른 사람으로 묘사하는데, 기독교강요만 읽어봐도 칼뱅의 생각이 얼마나 정교분리적이었는지 잘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기본사료마저도 무시하는 기초적인 실수죠. 그리고 칼뱅은 그런 생각 아래 시의회 회원들과 의장이 꽁시스투아에 들어오는 것을 매우 반대했습니다.

여타의 내용들은 요새 논문들이 점점 나오고 있으니 확인하시고요, 특히 임종구 박사의 칼빈과 제네바 목사회라는 책이 이 분야에 있어서 원전(회의록)을 연구하며 탁월한 업적을 남겼으니 꼭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 떠나서 그렇다면 치리회가 무슨 재판을 했냐, 재판의 판결내용이 뭐냐가 중요하고 거기에 칼뱅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냐 또한 중요하겠죠. 우선 치리회의 판결 권한은 1555년까지 최고형이 수찬정지였습니다. 성찬에 참여를 금하는거요. 옥에 가두고, 태형을 치고, 목을 자르고 그런거 말고요. 출교권도 꽁시스투아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시의회랑 13년을 싸워서 1555년 겨우 출교권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꽁시스투아 안에서 칼뱅의 역할은 난민이었습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의장은 행정장관이었고, 구성원은 '제네바인'으로 이루어진 목사회와 '제네바인'으로 이루어진 의회 의원들이었죠. '프랑스 난민'이었던 칼뱅에게는 옵저버 자격만이 주어지고 의결권도 없었죠. 당연하지 않습니까? 국제화된 현대 사회에서도 자국민에게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지는데 지금보다 훨씬 닫힌 사회였던 500년전 유럽에서 어느 나라가 난민에게 그런 권한들을 주겠습니까. 칼뱅은 1559년 비로서 제네바 시민권을 받게 됐는데, 그것도 피선거권은 없는, 말하자면 공직으로 나가서 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2등 시민권이었습니다. 그리고 1559년 이미 칼뱅은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고 5년후 1564년 사망하게 되죠.

칼뱅이 제네바에서 철권을 휘두르는 독재자였다는 주장은 당대 사회도, 칼뱅의 인생도, 현실 정치도 이해 못하는 어리석은 주장입니다. 자신의 죄로 쫓겨난 카스텔리옹의 주장과 칼뱅에게 위기감을 느낀 카톨릭 세력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에 휘둘리는거죠. 칼뱅이 정말로 극단적인 독재자에 살인자였다면 카스텔리옹은 어떻게 살아서 저런 글을 썼을까요. 말이 앞뒤가 안맞는거죠.

당대 문헌들이 연구, 조사되면서 더이상 칼뱅에게 살인자를 누명을 씌우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학계에는 공고해졌는데, 교회 안에서는, 심지어는 개혁주의를 따른다는 목사들도,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외치는 분들도 이런 거짓말을 사실로 여기고 퍼뜨리는게 참으로 참담한 일입니다. 안타깝습니다.
리플달기
9 5
허참.. (211.244.71.7)
2015-10-27 20:36:14
그리고 그게 어려우시면
칼빈, 헤르만 셀더르하위스, 코리아닷컴
개혁자 칼뱅, 크리스토프 슈트롬, 넥서스크로스
이 사람 존 칼빈, 테아 반 할세마, 성약
이 정도 책은 보시고 말씀하세요.
아, 그리고 저 책들 중에 집사님이 진실한 역사학자라고 굳게 믿고 계시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에 대한 내용도 좀 있으니 도움이 되실겝니다.
리플달기
9 1
허참.. (211.244.71.7)
2015-10-27 20:40:11
아, 그리고 여기에
그 잔인한 종교재판국에 관한 내용을 쓰셨군요.
아마도 consistoire를 종교재판국으로 번역하셨나본데,
꽁시스투아가 가지고 있던 권한이 수찬정지였고,
출교권을 시의회로부터 가져오기 위해서 1555년까지 싸웠던 사실은 알고 계시는지?
칼뱅은 설립 법령은 만들어 제출했지만 정작 의결권 없이 발언권만 있는 회원이었던 것은 알고 계시는지?
게다가 1559년, 사망 5년 전까지 독재자가 아니라 제네바 시민권도 없는 난민 신분이었던 것은 알고 계시는지,
1559년 받은 시민권도 피선거권 없는 2등 시민권이었던 것은 알고 계시는지
몹시 궁굼합니다.
그정도는 알아 보시고 글을 쓰셨겠죠?
리플달기
8 3
권현익 (86.195.250.130)
2015-10-27 19:27:31
집사님의 메일 주소가 갑짜기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알려주시면 중세 역사를 공부하는 저와 사실을 두고 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을 사실인냥 오도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정을 요청하겠습니다.
리플달기
5 0
권현익 (86.195.250.130)
2015-10-27 19:18:04
집사님이 올리신 글에서 처럼 비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는데 카스텔리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칼뱅의 추천을 받고 학교 교장이 되었지만 돈 문제와 신학적 문제가 있음에도 그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목사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을 칼뱅을 비롯하여 제네바 목사회가 갖고 반대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공개적 장소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시의회에 의해 추방이 되어 바젤로 가게 됩니다. 물론 칼뱅이 제공한 추천서를 들고... 그것 때문에 밥은 굶지 않았지만 상당히 힘들게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세르베 사건이 터지자, 가명으로 마치 자신이 그곳에 있었던 사실처럼 소설책 한 권을 쓰지요. 그리고 훗날 스테판 츠바이크가 마치 대단한 역사책이라도 발굴한 것처럼 카스텔리오의 글과 자신의 격한 감정을 쓴 것이 그의 책입니다. 그의 책 어디에도 역사책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다른 역사 사료가 전혀 없는 단 한 사람 카스텔리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놓았기에 그 책은 역사 학계에서는 역사적 사료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츠바이크의 글을 조찬선, 심삼용과 같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인용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화형을 당한 것이 사실이라면 수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가족이나 제네바를 싫어했던 천주교 측에서 단 한 사람의 이름이라도 거론하거나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항변하는 역사 바로 잡기와 같은 투쟁 내지는 추모비 하나 정도는 세워 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것들이 없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프로파겐다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글을 쓰시려면 1차 자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것을 번역한 책 정도는 보시고 쓰셔야 하지 않을런지요
리플달기
9 2
신성남 (49.50.206.22)
2015-10-28 03:42:29
예~ '카스텔리오'에 대한 시각이 바로 문제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그는 칼뱅의 승인으로 제네바의 개신교학교 교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성경을 번역하기도 한 유능한 신학자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칼뱅주의 신학자들은 고작 그가 나중에 칼뱅을 적대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책을 사료로 인정 못하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게 과연 설득력이 있는 논리라고 보시는지요.

이는 마치 본회퍼가 히틀러를 대적했기에 그의 글은 신뢰할 수 없다는 단순 논리와 무엇이 크게 다를까요. 역으로 말하자면, 카스텔리오가 칼뱅을 적대했기에 그의 글은 무조건 100% 신뢰하겠다는 논리만큼 억지인 것입니다.

저는 카스텔리오가 칼뱅에 대해 악의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글을 쓸 수는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가 전혀 없었던 사실이나 사건을 소설처럼 허구로 실제화하여 있었던 일로 둔갑시켰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카스텔리오는 그렇게 황당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카스텔리오의 글이 사료적 가치가 전혀 없다고 무시하고 소설책으로 단정하는 것은... 그의 책이 100% 진실만을 기록한 역사책이라는 주장보다도 더욱 공감하기 힘든 논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참고자료로 주로 근래에 번역된 책들을 소개한 이유는 그 내용들이 이미 시중에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귀한 의견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리플달기
4 7
권현익 (86.195.250.130)
2015-10-28 04:36:32
카스텔리오에 본회퍼를 적용하는 것은 너무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동정적이거나 적대적 감정으로 기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료나 사실을 근거로 기록을 해야 역사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스텔리오의 주장이 본회퍼의 글처럼 정당한 역사적 사실이라면 왜 그의 주장이 그 당시 역사에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고, 적의적 태도를 가진 천주교회에서조차 카스텔리오의 글을 옹호하는 글을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개인적 감정에서 나온 것이지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16세기 17세기 당시를 기록해 놓은 1차 자료를 연구하는 사람인데 단 한 곳도 카스텔리오의 주장을 옹호하거나 그의 주장이 옳을 것이라고 기록해 놓은 자료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러다가 갑짜기 20세기에 카스텔리오의 글을 옮겨 놓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주장이 마치 역사적 사실인냥 주장하는 것은 그 중간에 너무나 많은 역사성 결여와 비약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지요...
리플달기
10 7
참빛 (207.210.3.147)
2015-10-27 08:02:48
아, 드디어...
때가 이르렀나 봅니다.

기억이 새롭습니다.
3-4 년전 쯤 됩니다.
개독들과 각개전투까지 치뤄가면서...
기독교 교리에 심각한 문제들이 있으며
그것들 때문에 한국기독교가 개독교가 되었다고 저는 지적했습니다.
당시엔 서너분 정도 만이 저의 의견에 동조하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를요.

...

어느 분께서 이미 말씀한 것 처럼, 제 2의 종교개혁은 "칼뱅을 부정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먹사들의 비리 등등을 밣혀내는 일.
그거 좋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떠들어 보았자 당사자 먹사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악행은 오히려 더 보란듯이 또 버젓이 행해질 것입니다.
겉모습이 바뀐다고 속까지 바뀌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단언합니다.
신주단지 모시듯 해 온 칼뱅의 다섯 강령을 모두 내려놓지 않는 한 한국교회와 먹사들은 눈꼽만큼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속을 바꾸어 주어야 바깥도 자동적으로 바꾸어지는 법입니다!

...


칼뱅의 다섯교리 중에도 특히 그 첫번째가 되는 인간의 "전적타락 (Total Depravity)"은 연이어 악한 교리를 낳고 기독교를 개독교로 만든 악당이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전적으로 (?) 타락한 상태' 라는 말도 아닌 말을 실제로 믿는 사람이, 정신이 혼미한 사람이 아닌 이상,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교회에서 그렇다고 끊임없이 세뇌시키니까 무조건 그렇게 믿는 것이지, 두 손을 가슴에 얹고서 성찰한 후에도 그와 같은 황당무개한 주장에 동의할 사람이 솔직하게 몇이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현재의 기독교가 살길은 오직 이 길입니다.
칼뱅과 그의 5대 강령을 먼저 우리는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과 예수님이 직접 증거하시는 "창조영성 (Creation Spirituality)"과 그에 따른 "원복 (Original Blessing)"을 새롭게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 창조영성
그러하기에 한사람 한사람이 천하보다도 귀하고 고귀한 생명입니다 - 원복

감사합니다.
리플달기
6 10
무릇돌 (218.38.162.72)
2015-10-27 22:12:52
생각해 보니
전적 타락이 칼뱅의 작품이라면
예정설보다 더 악독한 개독의 교리 같군요.
하느님도 할일이 없으셔서
당신의 모습을 닮게 창조한 인간을
전적으로 타락하게 예정하셨다?

이런 견설을 믿으라, 믿으려 하니
개독(dog-god)이 됩니다!

교리와 신학이 얼마나 허접하고
우스꽝스런 것인지!
리플달기
3 3
참빛 (207.210.3.147)
2015-10-28 10:23:45
첫단추를
잘못 끼운 격입니다.

장 칼뱅은 성경에서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는 창조영성과 하나님이 허락하신 원복을 간과하고 인간의 타락과 부패에만 연연하여 "전전부패와 타락" 이라는 어불성설의 큰 오류를 범한 셈이지요. 그러니 예정론과 같은 허설이 나오게 되고 그 허설을 설파해 보려는 밥통 든 허설가들이 난무하게된 것이고요.
이게 한국교회의 현주소입니다.

칼뱅의 첫단추가 맞지 않았으니,
둘째도 맞지 않고, 셋째도 않맞고..
물론 그 다음 단추도 맞을 리가 없지요.

기독교의 정통(?)교리 라는게 이토록 허황된 것입니다.

사람을 위하고 생명을 존중하고
그리고 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심없는 나눔과 섬김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예수가 가르친 메세지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리플달기
3 3
펠리페 (211.214.139.72)
2015-10-26 15:24:15
엄청 웃었습니다....쏘리
칼뱅이 한 짓에 비하면, 횡령, 성추행, 세습 뭐 요런 건 거의 애교 수준이네요. 사이비 목사님들이 알고 보니 완죤 천사분들이셨어요.

그러니까, 요즘의 도둑, 성범죄자인 후예들을 보고, 살인마 시조는 뭐라 꾸중했을까 그말인가요??

너무 웃어서 미안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리플달기
3 5
신성남 (49.50.206.22)
2015-10-26 16:13:39
펠리페님, 그리 이해하셨나요??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많이 미안해 하십시요.~

본문은... 그나마 자기 고유의 신학 수준 만큼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딴 짓을 하는 소위 자칭 '정통' 교단들의 일부 목회 행태를 지적하고자 한 것일 뿐입니다.
리플달기
4 5
공감 (72.196.233.169)
2015-10-26 15:16:05
글을 읽으며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저는 신학이나 교회사를 공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칼뱅을 신학의 아버지로 존경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통해 그분의 진면목에 접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식했는가를 새삼 깨달게 됩니다.
하긴 그런 근본주의적 신학들의 마녀사냥으로 살해된
사람들이 족히 일 억이 넘습니다.
미국에서만도 수 천만의 인디언들이 십자가를 앞세운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총칼에 살해되었습니다.

예수는 신이 창조한 인간의 한 생명은
우주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그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살해하는 행위는 창조주 하나님을
살해하는 행위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십계명에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명시되어있습니다.
또 예수는 안식일은 하나님을 위한 날이 아니라
인간들을 위한 날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이 인간의 몸으로 내려와 십자가에 못박혀
살해되었다는 예수사건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기독교만의 위대한 신화라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분신이며
그 인간들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고 수단이라는
의미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사 미국 B 목사에
얽힌 일화를 소개합니다.

그 목사의 전도집회에 모은 헌금이 도난을 당했습니다.
경찰들이 두 도둑을 체포해서 목사 앞에 대리고 왔습니다.
이에 B 목사님이
"너희들은 하나님의 돈을 흠친 범죄자들이다.. .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죄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도둑들이
"저희들은 하나님의 돈을 훔친 도둑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돈이 중간에서 진짜 도둑들에게 떼어먹히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께 직접 전달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
하고 항변했다고 합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왜?
중간 거래인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아버지와 자녀들 사이에 왜?
종이라는 중개인을 필요로 하는지?

하나님에게 바치는 헌금을
도둑들에 떼먹히지 않고 직적접 전달하는 방법은 없는지?

과연 누가 진짜 도둑들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입니다.
리플달기
6 11
권현익 (86.195.250.130)
2015-10-27 19:03:47
윗의 글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페이스북 개혁포럼에 올려진 글에 댓글로 반박을 해 놓았으며, 제가 글 쓰신 분에게 공개 토론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리플달기
4 4
정박사 (175.213.80.116)
2015-10-26 14:32:34
집사의 글에 목사가 반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칼뱅이 당시 종교재판국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위치였는지 교회사를 다시 보고 오시오.
리플달기
2 10
칼뱅 (203.226.192.4)
2015-10-26 18:02:46
집사의 글에 목사가 반박이 부끄럽다? ㅎㅎ
당신 글이 반박으로 생각되오?
정중하게 질문하던지 공부 다시하시오.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마시오.
리플달기
5 1
신성남 (49.50.206.22)
2015-10-26 15:58:52
[참고자료] 칼뱅과 종교재판국...
칼빈, 그 잔악한 인간사냥의 실상

(1) 생략...
(2) 칼빈과 그의 수발이 되었던 종교국

칼빈과 제네바의 종교국과의 관계가 어떠한 성격이었는지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종교국은 칼빈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목적과 행위들은 그의 충직한 '종교국'을 통해서 성취시켜 나갔다. 따라서 종교국은 칼빈의 손과 발이었기에 종교국의 행위와 제네바의 권력을 장악하고 칼빈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동조한 기욤 파렐(Guillaum Farel)에 대한 평가는 칼빈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칼빈은 자신의 '도덕적 테러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감시할 조직체를 만들었다. 종교국의 그것이었다. --어떤 것도 그들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었다'('폭력에 대항한 양심' Stefan Zweig, 안인희 역. 자작나무. 1998, 4. p.72).

그러므로 종교국은 칼빈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대신하는 수발 역할을 하였다. 그의 활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종교국은 제네바에서 근심없이 숨쉬는 것도 죄악이라고 규정하였기 때문에 곧 안전하다고 느끼는 일은 불가능하였다. --칼빈의 도덕경찰은 칼빈만큼이나 망각이나 용서를 몰랐다'('폭력에 대항한 양심' Stefan Zweig, 안인희 역. 자작나무. 1998, 4. p.81&83)고 하였다.

이러한 칼빈의 지배 아래 종교국은 칼빈의 전적인 지시와 명령에 따라 움직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종교국의 형리인 장로들에게는 모든 개인의 생활을 감독할 의무가 주어졌다. 어떤 것도 그들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었고, --그와같은 종합적인 감독체계가 도입된 그 날부터 제네바에서 개인의 사생활이란 없어졌다. 칼빈은 어디로든 고소나 고발을 하도록 밀정과 감시인을 보내곤 하던 카톨릭의 종교재판 당국을 단번에 추월해 버렸다.'('폭력에 대항한 양심' Stefan Zweig, 안인희 역. 자작나무. 1998, 4. p.72)

칼빈 자신에 의해 제네바 각 처에서 발탁된 장로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조직은 칼빈의 도덕경찰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종교국을 통해 시행되었다. 따라서 이 종교국과 여기에서 활동하는 장로교들은 칼빈의 지도이념 하에 움직이고 행동하였다('종교국-목사5, 장로-12, 합1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국은 제네바 시의 신정일치를 원칙으로 하는 과두정부의 중추기관이었다').

13,000명의 제네바 시를 3교구로 구분하고 이유 없이 예배 출석치 않는 자들은 벌금을 바쳐야 했다.


(3) 종료국의 모든 판단을 독점한 칼빈

칼빈은 종교국에서 '최후 판결권을 독점한 왕자의 지위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종교국(법원)을 좌우할 수 있는 판사의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그의 성경 해석 여하에 따라 모든 죄의 유무와 경중이 결정되었다.'(柏井園 저'基督敎師' 1957. p.427; 조찬선 op.cit. p.90)

그리고 칼빈은 '자기 없이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종교국의 의장이었고...시의회의 상설 고문관, 종교전쟁의 정치적 사령관...신정 국가의 모든 장관직을 한 몸에 갖고 있었다.'(Stefan Zweig. op.cit. p.67)고 하였다.
칼빈이 종교국에서 어떠한 위치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를 말해준다. 이는 도덕경찰국인 종교국이 칼빈의 분신과도 같았으며 칼빈의 모든 의사를 반영한 기관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관계는 칼빈의 종교국이 행하는 모든 결정 다시 말해 사형을 내리는 일이나 잔악한 고문의 방식조차 모두 칼빈의 결정과 명령과 허락 하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4) 반드시 해명과 전제되어야 하는 역사적 진실

흔히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이 사람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 때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칼빈은 그 때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었다.' '포악한 카톨릭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등등의 변명과 이유로 합리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칼빈이 무수한 사람들을 죽인 것은 카톨릭과의 전쟁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칼빈이 제네바에 입성했을 때는 이미 제네바는 신교로 바뀌어 있었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제네바 시의 카톨릭과의 쟁투는 파렐에 의해서 거의 평정되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이 카톨릭과 관련한 전쟁의 과정 속에서 불가피하게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던 직접적인 사례는 거의 없었다.
칼빈이 사람들을 살상한 대상들은 대개 칼빈이 제네바 시를 통치하는 과정에서 그의 무자비한 통치와 사상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참혹하게 살상하였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2) 칼빈의 인간사냥에 대한 역사적 증언

(1) 4년동안 제네바 시를 통치하며 58명의 사람들을 죽인 칼빈

칼빈이 불과 1만 3천명의 제네바 시를 4년 동안 통치하며('조찬선' op.cit. p.94참조)그 자신은 물론 그가 장악한 종교국을 통해 죽인 공식적인 인원만도 58명에 이르며 추방한 인원은 76명에 달한다.
칼빈과 그의 후예들인 청교도들에 의해 자행한 인간 사냥은 신교 가운데서도 가장 잔혹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역사는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칼빈이 자행한 인간사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다. '칼빈 역시 사회통제를 위해 당시 대중적이던 마녀사냥에 집착했다'('문화사' 이혜령외 7인,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p.431)고 확인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살상들을 한 줄의 말로 축약시켜 버리기에는 그 인간사냥의 규모가 적지 않으며 이에 수반된 수많은 고문과 가혹한 행위들이 종교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덮어 버리는 것은 만부당한 일이다.

이에 대한 모든 행위와 역사를 바로 규명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자행한 수많은 살상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졌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그들의 가르침이 성경을 말하는 정통으로 숭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칼빈주의자들에게 권력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칼빈과 같은 살상적 행위를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칼빈이 그와 같은 교리에 의거하여 잔악한 행위를 자행했기 때문에 그의 후예들 또한 그것이 그리스도의 신앙인 줄 알고 그 같은 일을 행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작은 도시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평화와 사랑에 의해 질서 되어진 복음적 방식으로 다스려졌는가?
과연 칼빈과 그의 후예들이 인간의 존엄적 방식으로 다스렸는가? 과연 칼빈과 그의 후예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높였고 이웃을 사랑하고 사유재산이 아니라 그 귀중한 이웃의 목숨과 자유를 얼마나 지켜 주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재임기간 4년 동안 58명 중 35명을 불태워 죽인 칼빈

칼빈의 참혹한 통치는 그가 재임하는 4년여 동안에 불과 1만 3천명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도시에서 순전히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으로 죽인 사람들만도 35명이나 되었다.
역사가는 '칼빈이 통치한 처음 5년 동안에 비교적 작은 이 도시(제네바)에서 35명이 화형 당하였다'(Stefan Zweig. op.cit. p.128)라고 고발하고 있다.
제네바시의 인구비율로 보면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살상을 앞세운 종교개혁이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엄연한 살상적 행위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빙자한 살상 행위들인 것이다.

그야말로 그 작은 도시 제네바를 피로 물들였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칼빈의 잔인성과 폭력성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을 여실히 말해 주는 것이다. 그들이 칼빈주의자들이 외치는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산실이었다는 말인가?
1만 3천여 명밖에 되지 않는 도시에서 4년 동안 35명을 불태워 죽였다는 것, 더구나 그들의 손에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이 살인죄를 진 것도 아니고 국가 반란죄를 진 것도 아닐텐데 그들을 죽인 것은 그냥 사람을 죽인 살인자에 지나지 않는다.

증언자들에 의해서 보더라도 칼빈은 이 잔혹한 처형 방식인 화형을 가장 선호하였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간악한 사람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칼빈주의 자들이 주장하는 '칼빈주의 원리에서 세운 나라치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높이 보지 않는 나라가 없다'는 말은 언제나 그들의 교리와 신학과 신앙관의 이중성이 그러하듯이 가증스러운 기만적인 거짓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칼빈부터 종교를 앞세워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을 대로 짓밟은 파렴치한 기만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3) 통치기간 4년 동안 10명을 목잘라 죽인 칼빈

"칼빈이 통치한 처음 5년 동안에 비교적 작은 이 도시(제네바)에서 --10명이 목이 잘리고--"(Stefan Zweig. op.cit. p.128)라는 증언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4년 동안에 10명의 사람들의 목을 잘라 죽였다.
화형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목 자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와 같은 만행이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휘장을 내 걸어 놓고 하였는데 실로 찬란한 위장을 통한 합법적인 산인이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사람들의 목을 수없이 자를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가차없이 목을 자르라고 명령하였던가?
물론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계시가 그렇게 하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이것이 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좋은 대로 가져다 붙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석하여 정당화시키며 서슴없이 살상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칼빈주의에서 인간의 생명이나 인권 따위는 한낱 거룩함을 가장하기 위한 위장이라는 것은 칼빈의 행위를 통해 여실히 증명되는 것이다.
우리가 냉정한 시각을 가지고 주시해야 하는 것은 이렇게 적용하는 하나님의 이름이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철저하고 교활하게 이용하는 칼빈의 위장된 사상과 교리적 적용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전무가 전면적으로 공개된 바가 없어 칼빈과 칼빈의 후예들이 기독교 정통으로 행세하고 있지만 무수한 사람들을 불태워 죽이고 목잘라 죽이는 만행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 아니듯이 그의 만행을 합리화시켜 주는 칼빈교리의 위장된 허상은 반드시 밝혀져야만 하고 그 진상은 공개되어져야만 한다.

심상용 목사


교리에 다른 견해를 가진 종교학자 세비투스 화형
제네르 아미, 약혼자와 안식일날 춤을 춘 죄목으로 감옥행
교리에 다른 의견을 가진 쿠르트 역시 교수형
수요일, 일요일 예배 불참시 3일동안 굶김
아버지를 때린 아들 교수형
고기와 술을 먹은자 사형
타종교를 가진자와의 혼인 역시 사형
자신의 교리와 다른 의견을 가진자 사형
설교가 형편치 못하다고 한 자 3일동안 물도 못마심
자기의 행운을 자랑삼아 떠든자 역시 굶김
.
모두 신학자 칼뱅이 한 일입니다.

<출처: noaids.co.kr/~noaids/cgi-bin/technote/read.cgi?board=library&y_number=319&nnew=1>
리플달기
4 6
권현익 (86.195.250.130)
2015-10-27 19:06:02
제가 메일을 드릴 것입니다. 언급하신 글들은 역사적 사료로 전혀 인정 받지 못하는 4차, 5차 자료라고 하지요. 제대로 된 역사 책을 한번 쯤 읽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원하시면 저랑 공개 토론을 한번 해보시는 것이 어떨런지요.... 일단 제가 메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플달기
8 1
생각은 바른데 (118.37.49.233)
2015-10-26 00:27:18
행적이 개판이다. 그럼 그는 과연 좋은 사람일까요, 나쁜 사람일까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지만, 그의 신학은 정통이다?
즉 공과 과를 나누어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겠죠.
미안하지만 개 풀뜯어 먹는 소리 같습니다.

그럼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사람들을 강제로 잡아 고문하고, 살인한 독재자도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참이었다고 말해주어야 한단 말입니까?

제가 보기엔 오늘날의 먹사들이 칼뱅을 배신해서가 아니라 너무 잘 따라하고 있어서 문제인 것 같습니다만...

칼뱅의 행적을 비판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칼뱅으로부터 평가를 받아라? 전형적인 원칙혼동의 오류입니다.
제2의 종교개혁은 그의 행실을 기준으로 칼뱅의 신학을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리플달기
12 6
신성남 (49.50.206.22)
2015-10-27 13:49:55
왜 그리 극단적이어야만 하나요?
칼뱅이든 그 누구든 세상에 온전히 모두 맞거나, 또는 모두 틀리는 신학자란 없습니다. 부분적으로 맞고, 부분적으로 틀릴 뿐입니다. 칼뱅의 사역 또한 공도 있고, 오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학의 특정 부분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면 그것을 지정하여 찬반을 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제가 님의 신학과 주장은 모두 정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동의하실 수 있으신지요? 물론 아닐 겁니다.

만일 개혁주의, 복음주의, 자유주의, 메노나이트 등 각교단이 자기 신학과 다르니 서로 정통이 아니라고 매도한다면, 역으로 말하면, 세상에는 사이비 신학만 있다는 말인가요.

바른 신학자라면 자기 신학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견에도 귀를 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플달기
3 3
극단? (171.111.46.78)
2015-10-27 23:50:35
못된 짓 하는 목사님들은 어떻게?
총체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말이 왜 극단적인 것인가요? 설교는 은혜롭게 하는 목사님이 사역이나 삶은 엉망이라면 이것도 공과 과로 구분해서 평가해야 하나요? 설교가 삶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해야지요. 마찬가지란 말씀입니다. 그의 삶과 사역이 엉망이었다면 아무리 신학이 훌륭해도 그 인물은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플달기
4 1
한 인물에 대한 (118.37.49.233)
2015-10-27 18:19:16
역사적인 평가는 그의 생애(행적)와 사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어떤 사람의 말보다는 그의 행적이 훨씬 더 그 사람의 본질에 가깝다는 것이 제 견해랍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부른 독재자가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쓰고 이론을 정립했다고 해서, 그의 말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까닭입니다. 독재자가 쓴 민주주의에 관한 책. 그것은 곧 위대한 사상이 아니라 쓰레기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칼뱅의 신학은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나와 다르기 때문에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구요.

카톨릭의 면벌부 신학을 부정하며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그러나 당시에는 보편적 상식이었을) 이런 신학적 주장들에 대해 반기를 든 종교개혁가들의 힘은 그런 신학들로부터 초래된 비윤리적 상황에 대한 바른 인식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칼뱅의 신학이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먹사들의 타락에 대한 변명으로 작용한다면, 제2의 종교개혁은 칼뱅의 신학을 부정함으로써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플달기
7 2
참빛 (207.210.3.147)
2015-10-27 09:54:46
정곡을 찌르셨어요!
칼뱅의 행적을 비판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칼뱅으로부터 평가를 받아라? 전형적인 원칙혼동의 오류입니다. 아멘!!
리플달기
7 2
제 2의 종교개혁 (175.213.129.53)
2015-10-25 20:28:40
신성남 집사님 상식이 통하는 글 감사합니다.^^* 집사님 글은 한국 성도들이 목사에게 우민화 된 성도들이 이 글을 읽고 깨달은 다면 제 2의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한 한국교회. 돈횡령. 성추행. 논문표절.교회에 권력, 교계 줄서기, 교회 성도와 불륜..교회세습..목사들 부동산에 투자!! kbs9시 뉴스와 모든 매스컴들이 합동교단 목사가 서로 칼 찌른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이것이 목사인가요~~교회인가요. 참 답답해요. 정말 예수님 믿는 분들인가요~~ㅠㅠ..침몰하는 한국교회. 도전받는 목사왕국. 상식이 통하는 한국교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리플달기
13 22
무릇돌 (218.38.162.72)
2015-10-25 18:16:44
그러나 그의 신학은 정통일지 몰라도...
물론, 그의 신학조차도 정통이 아닙니다!
그는 그의 시대에 그의 능력에 맞게 신학을 조직하였지만,
성경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그 예정설은 참으로 허언의 꽃이지요.
(예정설은 개독교의 최악의 발명품 중 하나입니다!)

바른 이론, 정통 신학이 있어야
바른 실천, 정통 실천이 있겠지요.
그러나 기독교는 바른 이론조차 없습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신학은 갈림길과 혼돈 속에 있습니다.
아직도 루터나 칼뱅을 정통운운한다면 그런 분은
신학의 입문에도 들지 못한 분이라 보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오해하며 왜곡하였는데
그 성경조차도 오해하며 왜곡하여 꼴지어진 신학이란
얼마나 빈말투성이 이겠습니까?

예수에게로,
성경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며
예수에게로 나아가지 못하면
기독교는 영원히 개독교에 머물 겁니다.

다 아시쟎아요?
교회가 화려하고 찬란할수록
예수는 헐벗고 욕보신다는 사실을!

정통은 예수에게 가장 근접한 이론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밥통들은
정통이란 말을 자신들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를 즐깁니다.
본래 정통을 들먹이는 밥통들은
거의가 먹통들입니다.

-뱀발-

정통을 들먹거리는 자일수록
먹통들이 허다하며
밥통을 지키는 데에는 열심인 자들입니다.

먹통인 자들이
밥통을 지키려는 구호가
정통이라는 허언입니다.
리플달기
20 31
동의 (203.226.192.4)
2015-10-26 20:48:18
막사들에게 지금 신학이론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판단할 능력 없습니다.
막사들에게 신학이론을 창조적으로 개선할 능력 없습니다.
막사들에게 도덕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능력 없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석두들이고, 석두이기에 마구 우기고 마구 행동합니다. 그래서 막사입니다.

현대인의 지적으로 성숙할 수록 기독교는 점차 소멸될 겁니다.
잘 아시잖아요. 너무 기독교에 미련갖지 마세요.

무릇돌님은 아직 예수를 못 떠났나봅니다.
아마 예수가 시대의 반항아였고 선동가였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이 우러러 볼 정도로 멋있는 사람은 아니었을겁니다.
오히려 현대 기독교의 행태를 보면, 예수가 문선명과 이만희류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리플달기
12 23
깨진돌 (121.134.210.37)
2015-10-27 13:31:35
오히려 현대 기독교의 행태를 보면
예수가 기독교라는 개독교의 옷을 입어
이 모양이지
본래의 예수는 시대의 반항아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고
선동가보다는 선구자로 보입니다.
나눔과 섬김의 삶을 함께 살기를 꿈꾸었던...
리플달기
8 19
하도... (1.234.194.161)
2015-10-26 14:47:33
무릇돌님 위대하십니다..
한마디로 대단하십니다..
어떤 말이든 어떤 내용이든 훤히 보고 말을하니..
깊이 연구하고 고심하며 고독하셔나봅니다..
댓글 댓글마다 학식이 철철넘처남이..
님 그러시면 역사의 한획을 그을수 있도록 책을 내시던지 강연을 하시던지..
협소하고 작은 공간에서 개독 개독 하지 마시지요..
어떤때는 좀 안스럽기도하고 어떤때는 음~~ 생각을 하게하기도 하고...
결론은 현 기독이 무더지고 새로운것이...이것 아닌지요..

신자유주의와 신개인주의가 사람들의 사고를 다시 보게한다고 하지만..
기독은 신이 없다고 하면 예수의 말이 일부는 맞고 틀리고.... 이러면
신화와 거짓이 판치는 어처구니 없는 개색기 종교입니다..
개색기 종교에 미친것들이 이곳 저곳에 다수들이 사기치는 사기종교지요..
불교가 정답입니다.. 기독처럼 거짓의 경전은 없으니까...
여기서 이러지마시고 넓은곳으로 오시지요... 개독들의 터전에서 멀 얻어먹고 싶어서 그러는지 모르겠읍니다... 그만 남탓하고 불교로.... 전 개독이라 잘 몰라서리...
리플달기
17 25
깨진돌 (121.134.210.37)
2015-11-02 15:29:26
개독들의 괴이한 논리
개독들을 깨치려고 이리 허우적대는데...
그대는 넓은 곳 불교의 고수?
개독이라며!
역쉬 앞뒤없는 개독같으니!

내 사랑하는 현각이 무어라 한줄 아시나?
불교수행이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첩경이라 믿는다 하였오.

합장!
리플달기
7 17
깨진돌 (218.38.162.72)
2015-10-27 21:27:57
결론은
현 기독이 무더지고 새로운 것이...겠지요.
교리와 신학 이전의 섬김과 나눔의 삶, 운동...
그런 것이겠지요, 아마도...
합장!(시원한 김치를 좋아한다는 현각의 기억을 떠올리며...)
리플달기
15 18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