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8일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성과 관리의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는 직원평가제도를 폐기하는 흐름과 그 이유를 분석한 글이 실렸다.1 저자들은 그 추세에 점점 더 가속도가 붙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기업생산성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딜로이트(Deloitte), 갭(Gap), 아도비(Adobe), 제너럴 일렉트릭(GE)를 비롯하여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들 가운데 10% 정도가 기존의 직원평가제도를 이미 없앴다.2 인사전문 리서치사인 Bersin by Deloitte도 조사대상 기업의 70% 정도가 그들의 현행 성과관리방식을 재고하고 있다고 보고한다.3

그 동안 대부분의 기업들은 조직구성원들의 업무수행 동기를 높이고, 조직의 성과와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중요 수단 중 하나로 직원평가제도를 활용해왔다. 직원들의 성과를 몇 개의 등급으로 나누고, 등급에 따라 급여와 승진 등에서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었다. 한 때 글로벌 기업순위 1위를 달리던 GE는 평가제도를 한층 강화하여 각 등급별로 인원배분률을 사전에 정해놓고 가장 낮은 등급을 받은 10% 인력을 퇴출시키는 강제배분률 상대평가제도를 실시했었다. 그 영향을 받아 많은 국내기업들도 강제배분률 상대평가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해오고 있다. 그런데, 강제배분률 상대평가제도를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GE가 바로 그 평가제도를 폐기한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성과주의 인사시스템의 핵심기둥 중 하나로 간주해온 직원평가제도를 철폐하는 주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얘기하면 기존의 직원평가제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의 요구조건을 충족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장애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실감하듯이 21세기 경영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글로벌화로 인해 국가간 시장 장벽이 허물어지고, 비즈니스의 핵심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분야(예, 정보통신)의 기술 혁명에 가속도가 붙었다. 완전히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 인프라가 구축됨에 따라 전통적인 업종 구분의 경계가 허물어져가고 있으며(예, 수년 전만 해도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구글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누가 예측이나 했겠는가?), 새로운 기술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예, 우버 택시나 에어앤비 숙박업과 같은 공유모델)이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을 시장에서 밀어내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불확실성이 그만큼 높아졌고, 미래에 대한 사전 예측과 대응 계획 수립이 의미를 상실했다. 다가오는 미래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불쑥불쑥 나타날 것이다.

새로운 경영환경에서 조직구성원들에게 부여된 과업은 이미 알고 있는 해답을 적용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성격의 과업이 아니라, 해답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과 같은 과업이다. 시간이 갈수록 후자와 같은 과업의 비중은 급격하게 커질 것이다. 경영 환경이 안정적이고 예측이 가능할 때에는 근속 년수가 높은 관리자들이 문제를 푸는 나름대로의 해법을 가지고 아랫 사람들을 지도하며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런 조건에서 직원평가제도는 조직 구성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일정한 정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경영 환경에서는 직원들이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고객가치 창출을 위한 해법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관료제적 직원평가제도는 그러한 변화 흐름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방향으로의 변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게 된다. 기존 직원평가제도는 조직구성원들로 하여금 위험과 징벌을 피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독려하고 그들의 창의력 발휘와 도전 정신을 약화시킨다. 상호간 등급 경쟁을 강화함으로써 협업 토양도 해친다.

지금은 환경의 변화 흐름에 맞는 평가 제도의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한 변화 흐름에 앞서 가려는 기업들 중에는 조직구성원들이 자발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기존의 평가제도는 물론 제반 관료제적 관리시스템을 전면적으로 폐기하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실험에 뛰어든 기업들도 있다. 자포스(Zappos) 같은 기업은 홀라크라시(Holacracy: 관리자 없이 돌아가는 조직)을 실험하고 있다. 관료제적 명령과 통제 시스템은 직원들의 자발성과 창의력 발휘를 방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급격한 전면적 전환은 아니라도, 적어도 성과관리제도의 패러다임과 목적, 더 나아가 평가의 접근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직원들의 과거 성과를 등급화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직원들의 미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그 용도를 전환해야 한다. 구성원들로 하여금 올바른 업무수행의 방향성과 목표를 가지고 전략적 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창조적 혁신을 촉진하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구성원들의 자기주도적 성장을 자극하는, 진솔한 소통과 아이디어 공유와 협업을 촉진할 수 있는 성과관리제도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

양혁승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