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5년 10월 09일 (금) 22:24:27 [조회수 : 1433]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다. 제목은 다소 의역이다. 시의 제목을 원어 그대로 번역했다면 “나, 살아남은 자”(Ich, der Überlebende)여야 했을 것이다. 시인은 정해진 명보다 일찍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을 생각했었나보다. 자연스런 그것이 아닌 죽음 앞에 시인은 늘 부끄러움을 안고 살았던 것일까?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은 시인이 자신에게 던진 경멸의 비웃음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의 제목은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이었어야 했을 것이다.

이번 주 초 세월호를 위한 예배를 다녀왔다. 그로부터 500여일이나 지났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는 그만하자고 한다.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유원지의 상인들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안산시와 유가족을 고소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상인들의 심정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문제라면 고소의 방향이 빗나갔다는 점일 것이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원고의 정문을 올라가는 학생들은 여느 학생들과 다름이 없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기 전에 잠시 나갔다 온 것일까? 학교로 오르는 심드렁한 아이들의 표정은 어디서나 보게 되는 그런 얼굴이었다. 이 다름없음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이제 3학년이었을 아이들이었다. 학교와 다른 학부모들은 내년에 입학생을 받아야겠으니 더 이상 아이들의 교실을 빈 교실로 놔둘 수 없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여기서도 첨예한 문제를 조정해야 할 상급관청은 언제나처럼 뒷짐을 진다.

유가족과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작은 불행은 큰 불행 앞에 언제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공교롭게도 결국 악수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잊지 않겠습니다.” 말의 무게를 알고 나의 무력함을 알기에 되도록이면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했던 말이 그렇게 튀어나오고 말았다.

책장에서 골라 든 동생의 것이었을 시집의 목차에는 딱 세편의 시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 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공교롭게도 시집의 제목과 같았다. 왜 이 시가 유난히 가슴에 남았는지 처음엔 몰랐다. 그저 어디서 본 듯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월요일 때문이었나 보다.

 

이진경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5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