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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세상
오늘 TV를 켰더니 어느 기자가 놀이동산에 나가서 취재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기자가 귀엽게 생긴 초등하고 학생에게 다가가서 누구랑 왔느냐고 물으니까, 그 꼬마는 “이모하고 동생하고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이모라는 말을 듣고 일전에 식당에서 한 젊은이가 “이모 깍두기 한 접시 더 주세요.”라고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옛날에는 고모와 더 가까웠는데, 요즘은 꼬마들을 비롯해서 젊은이들이 이모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식당 이름도 옛날에는 ‘고모네 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이모네 집’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가정생활이 어머니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아버지 중심이어서 고모가 집에 자주 찾아왔고 아이들이 고모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고모와 친근했다. 집안에서 일을 치루더라도 아버지 중심이 되다 보니까 고모를 비롯한 친가의 어른들이 주동하고, 이모를 비롯한 외가의 식구들은 뒷전에 서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외할머니가 아이들을 키워주는 경우가 많고 이모를 비롯해서 외가의 식구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 우리가 국내여행이나 해외여행을 하더라도 친가의 식구들과 함께 가는 경우보다 처가의 식구들과 같이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아들을 낳으면 버스를 타고 딸을 낳으면 비행기를 탄다는 말이 나온 지도 퍽 오래 되었다. 그만큼 가정에서 여자가 중심에 서 있다는 이야기다. 여러 면에서 여권이 많이 신장되었다는 것을, 가정이 여성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아들을 선호하기보다는 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 물정이 아주 많이 그리고 빠르게 바뀌는 것을 이런 데서 실감하게 된다. 물론 이런 인간관계보다도 문명의 이기는 더욱 빠르게 변하는 것을 본다. 옛날에는 동사무소에 가서 호적등본을 떼려면 직원이 일일이 기재사항을 펜으로 기록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 자판을 누르면 잠깐 사이에 깨끗하게 프린트된 호적등본이 나온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한 동네에 전화기 있는 집이 한두 집뿐이었는데, 지금은 식구들마다 전화기가 한 대씩이고 손에 들고 다니니까 서로 연락하기가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자동차도 많고, 지하철도 편리하고, 근래에 와서 참 많이도 좋아졌다.
사회도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관공서에 가서 일을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심지어 급행료라는 것이 일반화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관공서의 직원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일을 빨리 처리해주는지 모른다. 병원에 가도 그렇다. 전에는 병원에 가면 의사가 환자들에게 반말을 하면서 거만을 떠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존댓말을 쓸 뿐 아니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국민이나 고객이 왕인 세상이 되었다. 대학에서도 전에는 대부분의 과목이 필수과목이어서 선택의 폭이 아주 좁았고 학년별 과목이 정해져서 1학년 학생은 2, 3학년 과목을 들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을 뿐 아니라 학년별 벽도 없어졌다. 그리고 학기말에는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를 평가하기도 하고 성적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이렇게 많이 그리고 빨리 바뀌어 가고 있다.
가정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가서 설거지를 하고, 집안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한다. TV에서는 남자들이 요리를 배우는 프로그램이 많아 나온다. 5년 전에는 밥을 잘 먹는 남자가 인기였는데, 지금은 요리를 잘 하는 남자가 인기란다. 주말에는 식구들이 함께 지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고 아버지가 자녀들과 함께 놀아주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좋은 아버지로 인정받는다. 더구나 토요일이 휴무제가 되면서 식구들이 차를 타고 야외로 나가는 횟수가 늘고 같이 나가서 외식하는 것도 유행이 되었다.
아주 좋은 세상이다. 많은 것이 편리하게 변하고 있다. 10년이나 2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도시들이 변한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한지만, 그들은 한국이 외형적으로 변한 것 못지않게 삶의 방식이 많이 변한 것을 보고 놀란다. 한국에 계속 살고 있는 나도 변하는 사회에 적응해 나가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몇 년 전에 시골에 가서 소일삼아 농사일을 시작했는데, 내가 어릴 때 농사를 짓던 것과는 아주 많이 달라진 것을 보고 놀랐다. 농기계를 사야하고, 약의 종류도 알아야 하고, 약을 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모종을 키우는 법도 배워야 하고 배워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변하지 않는 교회
그런데 변하지 않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교회다. 물론 건물들은 많이 커지고 현대식으로 변했지만, 교회의 운영이나 교리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모두들 식당 이름을 이모네로 바꾸었는데, 교회만은 이름을 고모네로 고집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성경의 어투는 100여 년 전의 권위적인 어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이런 권위적인 어투의 성경을 고집하는 목사들의 태도 역시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다. 요즘 페이스북에서는 어느 보수교단에서 교인의 자격조건으로 십일조 항목을 헌법에 신설했다고 말이 많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야 할 헌금을 교인의 자격요건으로 법제화했다는 것은 은혜를 중시하는 기독교가 율법주의적인 유대교로 퇴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세상은 자꾸만 그리고 빨리 변해 가는데, 교회는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때로는 뒷걸음질치는 것처럼 보인다. 고등비평이 성경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이론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아직도 그런 신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취급하는 목사들이 한국교회에 많다. 그래서 아직도 오경은 모세가 기록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성경의 기록은 과학적인 글이라고,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현대라는 단어에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면서 현대적인 것을 받아들이면 성경의 진리가 변색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현대를 외면하고 전근대적인 교리나 신학을 고수하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모두들 지구는 둥글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지구는 평평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것과 같다. 천문학자들이 지구는 돌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지구는 돌지 않고 제자리에 있다고 고집하면서 지구가 돈다고 말하는 과학자를 정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시대에 마차를 타겠다고 버티면 되는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면 그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제주의 시대가 좋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학교에서 학문을 연마하는 시대에 서당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인가?
세상은 빨리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렇게 교회가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사회와 교회는 자꾸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계속 뒤처지면,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할 교회가 그 직분을 감당하기는커녕 어두운 우물 안에 갇혀 있는 꼴이 될 것이다. 결국 교회가 청학동에서 사는 일심교처럼 골동품이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이 온 만물, 온 우주를 지은 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과학자들이 캐어낸 그 우주의 몇 가지 법칙을 거부하면서 뒷걸음질치고 있다. 그들이 과연 우주의 모든 법칙이나 비밀을 만드신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가? 하나님은 현대 과학자들이 캐어낸 물리적 법칙이나 과학적인 연구의 결과를 모두 만들어 내신, 그 모든 것을 포괄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자신감을 가지고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관습도 변하고 윤리도 변하고 사상도 변하고 정치도 변하고 과학도 변한다. 신학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것은 변해도 교회는 변하면 안 된다거나 신학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옹고집에 불과하다. 우리의 문화가 바뀌면 교회의 예배형식도 거기에 따라 바뀐다. 그래서 옛날에는 마루 위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는데 지금은 모두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린다. 전에는 찬송가에 있는 찬송만을 노래했는데, 요즘은 복음송을 많이 부르고 전에 금기시했던 기타나 드럼으로 반주한다.
우리의 지식이 바뀌면 성경을 보는 시각도 바뀌게 되어 있다. 전에는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성경 여기저기서 서로 다른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에, 축자영감설 대신에 유기적 영감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톨릭에서는 한때 교황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교황무오설을 주장했지만, 지금은 교황도 인간인지라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죽은 후에 가는 천국만을 강조했는데, 요즘은 땅 위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중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전도 표어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 되었다.
우리는 500년 전이나 300년 전에 개혁자들이나 웨슬리가 정해준 교리나 신학을 답습하고 있다. 그 교리나 신학에 맞지 않는 것이면 무조건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외면한다. 그런데 지난 500년이나 300년 동안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전제군주체제에서 민주주의로 변했고, 마차의 시대가 가고 자동차의 시대가 왔다. 그리고 세탁기, 컴퓨터, 핸드폰들 사용하는 시대에, 로봇트가 사람들을 대신해서 일하는 시대에, 우주에 위성을 쏘아 올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아가서 DNA를 검사하여 범인을 잡고, DNA를 조작하여 새로운 곡물을 생산하는가 하면, 체세포를 복제해서 새로운 동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전근대적인 시대에 확립된 교리를 지키면서 현대라는 이름이 붙기만 하면 모든 것을 외면하고 있다. 그것이 온당한 일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을 되새겨야 할 때다.
교회가 세상을 이끌어 가려면 세상을 앞서 가거나 최소한 세상과 발맞추어 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교회가 세상을 이끌어갈 수 없고, 세상을 이끌어갈 능력을 잃은 교회는 세상의 빛도 소금도 될 수 없다. 현대의 문화 안에 사는 사람들은, 현대의 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전근대적인 문화와 언어를 외면하게 되어 있다. 그러면 한국교회도 서양의 교회들처럼 문을 닫아가게 될 것이다.
마치면서
한국교회의 부패상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고, 지난주에 나도 재물을 탐하는 교회에 대해서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급변하는 현대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우리가 당장 당면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서 외부적인 시대상보다도 내부의 부패가 더 심각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큰 교회들이 타락의 늪에 빠져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일이다. 교회 밖의 사람들도 교회를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고 교회 안에서도 제2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을 시작한 지 오래다.
지금 한국교회는 교회 내부의 부패와 시대의 변화에 따른 문제라는 안과 밖의 심한 바람에 직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교인 수가 줄어들고 가나안 성도가 느는 것은 교회의 부패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상 그 문제 외에 현대인의 의식의 변화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어쩌면 의식의 변화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때에 책임감이 있는 교회 지도라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의 부패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디서 길을 잃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우리가 체감하기 시작한 급변하는 시대의 풍랑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우리는 먼저 내부적인 부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곧 세차게 불어올 외부로부터의 바람을 막아낼 방안도 찾아내야 한다. 내부적인 문제만도 감당하기 어려운 판에 외부적인 바람까지 막아내기가 아주 힘들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만 막아내지 못한다 해도 한국교회가 넘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안간힘을 다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참으로 어려운 때를 맞이했다.
지금 우리는 한국교회를 구할 수 있는 일꾼들을 부르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선지자를 찾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한 이사야처럼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는 일꾼들이 나와야 한다. 지금 기울어져 가는 한국교회를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일으켜 세우려고 발 벗고 나서는 사명자들이 나와야 한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내외의 바람을 막지 못한다면 한국교회가 무너져 내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본회퍼가 히틀러에 의해서 무너져 내리는 그의 조국을 살리기 위해서 편안한 미국생활을 버리고 독일로 돌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일어서야 한다. 이 일은 한두 지도자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일이다. 한국교회가 무너지면 우리 모두가 함께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구하면서 지혜를 모아야 한다. 힘을 합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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