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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_마지막 이야기
김명신  |  redpillar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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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0월 07일 (수) 20:28:25
최종편집 : 2015년 10월 10일 (토) 20:50:38 [조회수 : 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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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를 쉽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독자들은 앞의 기사들부터 순서대로 읽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신학을 하기 전에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공돌이도 이해했습니다. 하물며 신학과 인문학을 전공한 분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문서가설은 편집자(R)가 4개의 독립적인 자료(J, E, P, D)를 결합하여 모세오경을 완성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4 자료가 오경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궁금하시지요? Richard Friedman이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게 그림으로 설명합니다. 아쉽게 신명기를 제외했는 데, 신명기에는 누구의 자료가 많을까요? 당연히 신명기사가 자료(D)겠지요, 뭐.

   

Richard Friedman의 그림
https://en.wikipedia.org/wiki/Documentary_hypothesis

    Richard Friedman의 그림을 설명합니다. 그림 밑에 창세기(Genesis), 출애굽기(Exodus), 레위기(Leviticus), 민수기(Numbers)를 구분합니다. 그리고 빨강이 J, 파랑이 P, 연두는 E, 검정은 R입니다. 그림을 보면, 창세기는 야위스트자료(J)->엘로이스트자료(E)->제사장자료(P)->편집자의 편집(R)의 순으로 양이 많습니다. 출애굽기는 P->E->J->R, 레위기는 P-> R의 순서입니다. 민수기는 P->R->E->J 인 듯합니다.

   각 문서의 시간 순서를 생각해 봅니다. 문서가설은 구약시대에 J->E->D->P의 시간 순서로 작성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림에서 보듯이, 성경에서 서술 순서는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 말씀 드린 것처럼, 파랑으로 표시한 P는 시간 순으로 4 자료 중에 가장 늦게 작성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창세기의 제일 앞입니다. 이 ‘왔다리 갔다리’는 무엇을 말할까요? 편집자(R)의 의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것이지요. 문서가설 이후의 학자들은 편집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문서가설이 주장하는 4 자료를 독립적으로 읽고 싶으신 분을 위해 아래의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J:  https://en.wikiversity.org/wiki/Bible/King_James/Documentary_Hypothesis/JE_source/Jahwist_source
E:  위키피디아에 없습니다.
P: https://en.wikiversity.org/w/index.php?title=Bible/King_James/Documentary_Hypothesis/Priestly_source&redirect=no
D:  https://en.wikiversity.org/wiki/Bible/King_James/Documentary_Hypothesis/Deuteronomist_source

   구체적으로 각 자료의 특징과 내용을 살펴볼까요? 많은 특징이 있지만, 제 맘에 드는 것만 써 놓았습니다.

J

E

P

D

- 하나님이 인격적.(마음을 돌이키고, 타협하고, 위협하고, 때로는 장난기가 있어 보인다. 등등).
- 유다와 아론계열의 제사장에게 호의적.

- 북이스라엘에 호의적이고, 아론계열의 제사장에게 비판적.
- 천사가 자주 등장.

- 하나님이 초월적이고 장엄하다.
- 제사장의 직무, 제의의 기원, 족보를 강조.

- 예배 장소는 이 세상에서 한 곳밖에는 없다.
-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 하나님과 체결한 계약의 이행은 축복을, 불이행은 저주를 불러온다.


   이런 요약을 보면서, ‘나는 어떤 신학을 가졌는가?’ 혹은 ‘우리 목사님은 어떤 신학을 가졌는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저는 다음처럼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1) 인격적이고 2) 모든 사람(목사/평신도, 남한/북한, 가진 이들/없는 이들 등등)에게 호의적이고, 3)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성전으로 생각하신다. 이외에도 저의 하나님은 여러 특징을 가집니다. 따라서 저는 짬뽕 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전도자의 말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이 가설을 꼭 알아야, 목사를 할 수 있을까요? 돌아가신 저희 장인은 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 대 부터 농촌 목회를 하셨습니다. 장인은 목회를 참 잘하셨답니다. 그 분은 교우들에게 문서가설에 입각해서 성경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문서가설을 모르셨을 겁니다. 하지만 장인께서는 밭에 나가 성도들과 함께 김도 매고, 모도 심고, 똥도 퍼 나르셨습니다. 대학까지 나온 분이 일자무식의 촌놈들과 함께 온갖 잡일을 하니까, 그 분들이 깜짝 놀라서 뒤로 발라당 뒤집어 지더랍니다.

   반대의 이야기도 좀 해 볼까요? 제가 목회를 하면서, 수년간 주말 농장을 빌려서, 고추 심고, 상추 심고, 고구마 심고, 옥수수도 심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마음껏 따다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에 저는 農奴(농노)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 해야 한다. 저것 해야 한다’하고 끊임없이 명령하면서, 교인들은 따다 먹기만 합니다. 상전이 따로 없습니다. 아! 갑자기 에누마 엘리쉬의 마르둑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나는 종이 아니야.”생각하고, 열 받아 게기기 시작했습니다. 농산물을 딱 심어만 놓고 손 안 댔습니다. 그 다음부터 교인들이 알아서 가꾸더라고요. 목회를 잘하는 정해진 방법이 딱히 없습니다. 정체성만 분명하다면, 자~알 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성서를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좀 알려고 노력은 해야겠지요.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아예 노력도 안하고 포기하는 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神學(신학)아, 함께 놀자!” 할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온갖 썰과 이론이 난무합니다. 십일조도 그렇고 교리도 그렇고, 재미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20세기까지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문서가설에 동의했습니다. 그 이후 학자들은 문서가설을 엄청 까대면서 새로운 가설을 발표했습니다. 그 새로운 가설 중에 하나가 단편가설인데, 다음에는 고고학으로 읽는 단편가설을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 시간이 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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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99.225.53.85)
2015-10-10 18:21:34
문서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신분들의 영향으로
대부분 다 압니다. 문제는 학자들입니다. 학계에서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습니다. 이 방면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대다수 인정하는지 안하는지의 차이입니다. 공학계통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이지만 인문학쪽에서는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가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분들이 새운 가설들이 정설처럼 포장이 되어서 시중에 유통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신학계는 이러한 영향이 큽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노력한 결과물에 대한 존중과 배려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만 맞는다는 오류속에서 싸움만 일기 때문입니다. 한예로 서구에서는 새로운 가설에 대한 것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 왜 그런지,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들이 항상 수반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무조건 우기고 보는 시각으로 접근합니다. 제가 아는 유명신 바울 신학자는 자신의 연구방식을 남이 도용하였다고 해서, 난리를 피운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별것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 계통사람들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것입니다.성경에 해아래 새것이 없다는 것처럼 지금 발표되는 학자들의 가설들 모두 누군가 이전에 한번쯤은 생각해 본 것들이었다는 생각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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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07.210.3.147)
2015-10-11 10:53:37
새로운 가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분들이 새운 가설들이 정설처럼 포장이 되어서 시중에 유통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동의합니다.
아주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러한 현상은 한국 신학계 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자기존재 과시용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논문을 발표해야만 하는 압박감 때문에 새로운 가설들을 마구잡이로 만들어 내는것 같습니다.

실제로, 충분한 리써치도 없이 추론 내지는 상상 만으로 쓰여진, 그런 함량부족 일종의 음모론 (Conspiracy Theory)이랄까 하는 그런 내용들도 시중에 버젓이 나도는 것도 여러번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간낭비를 초소화 하기위해, 저는 읽고 싶은 신학책이 있으면 그 책에 대한 Review를 먼저 이잡듯이 찾아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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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07.210.3.147)
2015-10-10 11:19:04
ㄴ.ㅋ. 님께서 올려주신 훌륭한 댓글 이후, 토론이 연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었는데요.
막상 본인께서 댓글원문을 지우셔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경 (Torah)은 속국 유대를 다스리기 위한 페르시아의 법령이었다고 하는
피터 프레이가 제창한 이론에 일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근 30년 동안 여러가지 다른 각도의 Theory가 나오고 있고,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약간은 조급해 보이는 점도 있어 보입니다.

...


혹 이러한 주장 (오경과 페르시아의 법령)에 대해 더 알아 보고자 원하시는 분들은 다음 두가지의 책을 우선 책(논문)을 읽어 보시면 도움이 많이 될 듯 합니다.

(The Authority and Authorization of Torah in the Persian Period, Kyung Jin Lee, Peeters)

(Who Wrote the Bible?, Richard Elliott Friedman, Harper One, 1997 Edition)


두 책을 보시면, 김명신 목사님이 이미 기초그림을 그려주신 바와 같이 jedp 전승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또 그 전승들이 전략적으로 어떻게 엮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하였는지를 알아볼 수 있고, 느브갓네살 왕이 유대민족을 포로로 끌고간 이후의 상황, 팍스 페르시아 시대가 열리게 된 배경, 페르시아에 새로운 정치형태가 나타나고 자리잡는 과정, 고레스왕이 요단강 서편 유대지역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에스라에게 임무를 지우는 배경, 에스라가 유대로 귀한하여 예루살렘 성전건축과 히브리민족의 전통종교를 다시 부활시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와 이집트를 포함한 속국들을 페르시아가 어떻게 상대하면서 대제국을 형성해 나가려 하였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여쨋던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오경은 모세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에스라 때에 오경이 현재의 모습으로 편집(Redact) 되었다는 사실 이 두가지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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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99.225.53.85)
2015-10-10 18:26:50
학자들은 이렇게 씁니다.
대체적으로 학계에서는 오경은 모세가 직접쓴 것이 아니라는 것과 에스라에 의해서 편집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가설에 기초로 해서, 유추해서, 증명을 하였지만,아직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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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15.121)
2015-10-11 12:27:42
죄송합니다
저는 학자가 아닙니다. 그저 layman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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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익명 (80.192.113.130)
2015-10-08 05:46:58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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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180.227.226.250)
2015-10-08 10:10:36
주장하시는 내용과 관련된 논문을 소개해주세요.
속국을 다스리기위한 법령으로서의 모세5경이라는 내용이 잘 이해되어지지 않습니다. 관련 논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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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15.121)
2015-10-08 02:11:43
알면 알수록
알고 싶은것이 더 생겨나는 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
그 안에 신비함이 살아 숨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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