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을 가리키는 우리말 중에 오늘이 지난 다음날, 즉 내일(來日)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없다는 사실은 이상함을 넘어 놀랍기까지 하다. 어제와 오늘이라는 순우리말도 있는데, 더 나아가 이틀 뒤와 사흘 뒤를 가리키는 모레와 글피도 순우리말인데 어째서 내일만큼은 한자어일까? 원래는 있었는데 오래전 언젠가부터 유독 이 단어만 한자어로 쓰이게 된 것일까? 그럴 리가. 어쩌면 우리 조상들의 머릿속에는 아예 내일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말이란 것은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로부터만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너희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난 오늘만 산다.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한 액션영화에서 주인공은 악당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내일을 생각한다는 것조차 사치가 될 만큼 삶이 너무나 참담한 지경이라 그런 것이었을까? 정확한 이유야 알 턱이 없지만 어쩌면 우리 조상들은 이 액션영화의 주인공과 비슷한 생각으로 살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에도 내일과 관련된 무척이나 유명한 구절이 있다. 바로 이 구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그런데 가만,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니, 그럼 결국 나는 매일 매일 염려하고 사는 셈이 아닌가? 당연하게도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구절이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오역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개정판에는 이 오역을 바로 잡아 이 주옥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올바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렇다. 나는 내일과 상관이 없다. 내일 일은 내가 아니라 내 알 바 아닌 내일이 염려할 것이다. 내일?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내 머릿속에 그런 것을 넣어두지 않으련다.

나는 내일이 아니라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산다. 그러기에 늘 삶은 감사일 수밖에 없다. 어제를 이끄신 하나님과 오늘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은? 나는 모른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내일이 아니라 어제였고 오늘이니 그저 감사하며 살아갈 뿐이다.

감사의 계절이다.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부르는 이 감사의 계절, 한 권의 책으로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골라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은 그를 실존주의 문학가라고 부른다. 실존(實存), 실제로 있음이라니, 이 얼마나 오늘과 닮았나. 소설은 남들 보기에 그 어떤 의미 있는 성과도 내지 못한 작은 시골 신부의 목회일기다. 언제나 신 앞에서 자신을 질책하며 짧은 생을 살았던 이 초라한 신부의 마지막 말은 어쩌면 내일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의 감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리라. “아무려면 어떤가? 모든 것이 은총이니.”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는 사람들이여,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약 4: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