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서가에 법정 스님의 책 『아름다운 마무리』가 꽂혀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그 책이 소파에 놓여 있었다. 아마도 집사람이 그 책을 읽으려고 꺼내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언제 이 책을 샀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산 것이 아니란다. 오히려 내가 산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누군가가 자기에게 선물로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우리 집사람에게 인생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라는 뜻에서 이 책을 보내준 것 같다.

그리스도교 TV의 설교는 열심히 들어도 진지한 그리스도교 서적을 읽지 않는 집사람이 불교의 승려가 쓴 책을 사지 않았다는 말은 믿을 만한 것으로 들렸다. 누군가가 이 책을 사서 집사람에게 보냈다면 헛돈을 쓴 것이다. 집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그 책을 꺼내 놓기는 했지만, 더 이상 손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상대의 취향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면서 귀한 돈을 허비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법정의 책을 읽은 일이 없지만, 그의 『무소유』가 베스트셀러였다는 말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집착을 버리라는 불교의 중심 가르침을 어느 승려가 실천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냐는 생각으로 『무소유』도 우리 집을 찾아와서 서가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마무리』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는 무료한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이나 한번 읽어 볼까 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집어 들었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이 어느 소식지에 한 달에 한 편씩 게재했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소박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는 그가 산속에 집터를 마련하기 위해서 땅을 고르고, 돌을 가져다가 축대를 쌓고, 일꾼의 도움을 받아 그와 함께 통나무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뒤뜰의 옹달샘에서 물을 길어다가 밥을 짓고 차를 끓여 마시는 그의 삶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불교의 교리에 대해서도 자기가 어떻게 도를 닦는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가 가끔은 초청을 받아서 법회에서 설법을 한다는 말은 있지만, 그 설법의 내용이 무엇이었다는 언급도 없다. 단지 산속에 사는 한 자연인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자연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들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그는 자연 속에서 산 사람이었지만, 인간의 삶을 외면한 사람은 아니었다. 세계 고전을 두루 섭렵하고 특히 고전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그의 책에 그려진 소박하게 보이는 지혜는 실상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 기초하고 있었다. 모든 사물의 깊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고 쉽게 표현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임어당이 그의 수필에서 젊은 강사의 강의는 어려운 단어들과 복잡한 논리로 인해서 이해하기 어렵지만, 원숙한 교수의 강의는 이해하기 쉽다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진지한 내용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불교인도 그리스도교인도 혹은 종교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누구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불교를 대표하는 한 승려가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이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의 소박한 삶 그리고 열려있는 마음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어떻게 해서 그는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산속에서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었을까? 그는 집착을 버리라는 석가의 가르침을 실천한 사람인 것이 분명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집착을 버리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예수님도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치셨고 몸소 그러한 삶을 보여주셨지만,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삶을 본받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물질을 탐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부자 청년에게는 가진 것 모두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고 부자의 탐욕을 경계하시면서 들의 백합화나 공중의 새들처럼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법정 스님이야 말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사람으로 보인다. 불교를 대표하는 한 승려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들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잘 따랐다는 생각이 들어서 허전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길을 잃은 것인가?

오늘 아침 상가 골목을 산책하면서 7층의 상가 3층에 하나님의 성회에서 세운 교회가 있고 그 5층에는 장로교회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건너편 건물에는 순복음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교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그 개척교회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러한 작은 개척교회들에는 교인들이 10명이 채 안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정 수로는 3가정이나 4가정이 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교인들이 대부분 노인들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시작했겠지만, 그런 상태에서 처자식이 있는 목사가 어떻게 여러 해를 견딜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이 답답했다.

법정 스님이 그렇게 산속에서 여유자작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신생활을 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처자식이 딸려 있었다면 그의 생각이 그리고 삶이 그렇게 여유를 찾을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배우자가 있게 되면 내 마음대로 선택하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가 없다. 여행을 떠나더라도 혼자 베낭을 메고 가볍게 떠나면 내가 원하는 곳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여행하면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내 마음에 드는 곳에서 그때그때 잠자리를 할 수 있다. 마음도 몸도 가볍게 여행할 수 있다. 그러나 내외가 함께 집을 나서면 상대의 취향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더구나 자식들까지 함께 나서는 여행이라면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진다.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들이 독신이라면 훨씬 부담 없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벤처사업 같은 것이어서 성공하는 경우보다는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교회 개척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을 경우에는 생활비에 대한 부담이 있어서 집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심적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혼자라면 훌훌 털어버릴 수도 있고, 막노동이라도 하면서 교회 개척을 지속하는 데에 마음 부담이 적지 않을까?

가톨릭에서나 불교에서 사제나 승려가 독신 생활을 하는 것은 그만한 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정 스님에게 처자식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산속에서 도를 닦는 일에 정진하면서 초연하게 살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의 글에서 그러한 여유가 베어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면서 가톨릭 사제들과도 교류를 나누는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까?

요즘 목사들이 목사 자리를 세습시킨다고 말이 많다. 혹은 목사들이 생활비에 목을 맨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식이 있는 사람이 자식을 염려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한국인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기대는 유별나다. 내 자녀도 학원을 보내야 하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유학을 보내고 싶다. 가능하면 좋은 목사 자리도 마련해주고 싶다. 그리고 내 집사람에게도 명품 가방을 사주고 싶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을 짊어진 가장이 생활비를 걱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처자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습을 시켜서는 안 되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목회를 해야 하는 목사가 생활비에 연연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원칙이지만, 그들도 처자식을 사랑하는 인간인지라 그런 유혹에 빠지게 되어 있다. 그런 유혹을 제거할 수는 없는가? 한가로운 주말에 이런 한가로운 생각을 해본다.

목사들이 가톨릭의 사제들이나 불교의 스님들처럼 독신 생활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목사들이 예수님이나 바울처럼 가볍게 여행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교회세습이라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생활비에 연연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목사들도 법정 스님처럼 자유롭게 사고하고 초연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인들을 섬기는 데에 더욱 전념할 수 있지 않을까. 목사들도 그리스도인이나 불교인이나 혹은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나 모두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