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오후, 급작스레 카톡으로 문자를 받았다. 발신자는 독일에서 자란 2세로 얼마 전 한국으로 시집 온 친구였다. 곧 방송하는 ‘MBC 무한도전’을 보면 반가운 얼굴이 여럿 나올 것이라고 귀뜸을 주었다. 무명의 다큐멘타리면 몰라도, 유명세를 탄 프로그램에 알 만한 사람들이 출연할 리가 없을 텐데 의아해 하면서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았다.

  상상의 번지수는 영 엉뚱한 곳에 다다랐다. 독일 광부와 간호사에게 고향음식을 배달한다는 것이었다. 늘 고향의 맛과 어머니 솜씨를 그리워하며 살던 나그네들에게 ‘마치 짜장면 배달하듯’ 음식을 날라다 준다는 상정은 만화처럼 재미있었다. 독일 뿐 아니라 세계 다섯 대륙에 흩어져 사는 한인 디아스포라에게 배달한 것은 음식도 음식이지만, 넘치는 인정처럼 느껴졌다.
 
  독일로 간 ‘배달의 무도’는 한국 남해마을에 사는 두 자매의 사연과 음식을 45년 째 독일 복흠 시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자매에게 전달하였다. 석 씨 자매 중 셋째와 넷째는 일찍이 독일로 가서 간호사로 일했다. 언니는 먼저 귀국해 지금 남해마을 촌장이 되었고, 동생은 19살 학생간호사부터 시작한 병원 일을 은퇴를 앞둔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그리움은 별식과 함께 두 나라 간 세 자매 사이를 연결해주었다.

  경상남도 남해마을에는 독일에서 귀향한 한인들이 한 촌락을 이루어 살고 있더라. 명절이 되면 ‘내 고향 남쪽바다’를 노래하던 그들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소원 성취한 셈이다. 1995년 쯤, 남해군수가 독일 전역에 흩어진 한인들을 찾아다니며 은퇴 후에 한국에 와서 살라고 역(逆) 이주(移住) 세일즈를 했는데, 놀랍게도 콧방귀를 꾸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무한도전의 진행자들은 대륙을 넘나들며 음식을 배달하는 일을 통해 이야기의 소재가 얼마나 ‘무한’(無限)한 지 증명하고 있었다. 얼마 전 영화 ‘국제시장’이 보여준 장면에서 연상하듯 독일의 광부와 간호사는 대개 부부를 이루어 살고있다. 3년 계약의 광부들은 5년 약정의 간호사들과 결혼하여 독일에서 장기체류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대도시로 흩어져 사업을 시작하였고,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무한도전이 찾아간 곳은 복흠 시 외곽의 ‘한국인의 집’(Korean Zentrum)이었다. 복흠한인교회 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빈 학교건물을 장기 임대한 이 공간은 수 십 년째 문화와 교육의 중심역할을 해 왔다. 동네와 떨어져 소란스러운 한인들이 놀기에 안성맞춤의 공간이었다. 1세대 풍물 팀을 이어, 2세대 풍물 팀이 이곳에서 훈련하였고, 지금도 온갖 잔치와 강습, 회의와 놀이가 열리는 단골마당이다.

  한국에서 온 음식이 복흠에 사는 한인들에게 ‘홍복’(洪福)처럼 주어진 것은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한국인의 집을 만들어 30년 가까이 이웃들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독일인이나 한인동포나,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교민이나 유학생이나, 북에서 온 사람이나 남에서 온 사람이나,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에게 차별 없이 고향음식을 나누었다. ‘배달의 무도’가 임자를 제대로 찾았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TV 화면에서 이미 노인이 된 그분들을 보니 평생 겪어온 고된 객지생활이 연상되어 목울대가 울컥 하더라. 함께 모여 배달음식을 먹는 옛 교우들 틈에서 마치 나도 어울려 있는 듯, 반갑고 즐거웠다.
 
  잊고 산 디아스포라를 문득 기억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배달의 무도’는 역사의 현장으로, 잊혀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배달하고 있었다. 이미 일본 우토르 마을을 방문하였고, 그날은 최악의 환경에서 석탄을 캐던 하시마 섬으로 찾아갔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탄광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소망은 배고픔을 면하는 것이었다면서, 너무 늦었지만 추모탑 앞에 쌀밥과 고깃국을 배달하기도 했다.

  어느덧 추석이 다가온다. 아침 밥상에 어울린 식구들은 반가운 얼굴보다 빈자리를 더 크게 의식하기 마련일 것이다. 이산가족이든, 디아스포라든, 이런 저런 사연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가족과 마음을 나누는 명절은 더욱 명절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