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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교회② 교회개척이 실패하는 이유“선교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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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9월 16일 (수) 23:30:59
최종편집 : 2015년 09월 25일 (금) 03:35:25 [조회수 : 1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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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선교적교회① 60년간 믿었던 미신적 확신, “교회성장” 기사 보러가기

 

마크 교수는 지난 2000년부터 풀러 신학교에서 실천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교육학과 리더십, 회중의 선교적교회에 집중해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 지역사회에서 교회를 섬기며 어떻게 선교적교회를 만들어 갔는지 북미적 상황에서 연구한 10가지 사례가 있다.

 

마크 (Mark Branson)의 강연

 

   
 

여러분이 대부분 감리교 목사라 해서 내겐 참 격려가 됩니다. 나도 프리 메도디스트 출신입니다. 우린 공통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 아내의 언니는 연합감리교회 목사입니다. 그 목사님이 스무살 때 우리가 예수 영접시키고 안수를 줬습니다. 웨슬리 신학에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통점을 가지고 교류하고 싶습니다.

웨슬리의 영향을 받은 감리교회도 유럽교회에서 영향을 받은 교회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웨슬리신학만 가지고는 유럽과 북미에서 일어나는 교회운동을 다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알렌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 일하신다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일상보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 보다 항상 하나님은 앞서서 일하시죠. 웨슬리가 우리에게 가르쳤던 것 중에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동참하는가’가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웨슬리에 입각한 선교신학을 얘기하는게 아니니까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알렌교수가 얘기한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북미상황에 맞게 설명하겠습니다. 내가 교수일 하는거 포함해서 이 사역에 30년 넘게 동참했습니다. 사실 학자로서의 삶은 제 사역보다 좀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동안 내가 신학교에서 청빙받을 때마다 계속 거절했던 이유는 학문적 영역과 실천적 영역을 효과적으로 다리를 놓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런건 불필요한 겸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지도자가 된다는 의미는? 

 

제가 15년전에 풀러 교수로 임용된 이후 수업때마다 학들에게 질문 받는 것으로 항상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석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시에 교회에서 어느 정도 지도자적 위치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이 신학교에 올때는 교회에서 지도자적 위치에 오르려고 오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 물어봤습니다. “교회에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통적인 표현을 썼는데 그 뜻은 이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하게 하는 것” 이것이 리더십의 의미였습니다. 내가 좋은 교회, 좋은 교인, 좋은 성도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다른 사람도 그리되게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세대간 다소 차이가 있긴 했지만 거의 그런 식이었습니다. ‘우리 앞세대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를 통해 이뤘고 이제 우리는 우리시대가 왔으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들을 통해 펼쳐나가는 것’이 우리시대의 리더십이라고 생각하더군요. ‘다른 구성원들로 하여금 교회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하고 그 교회가 되어가도록 돕는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주여 이들을 불쌍이 여겨주옵소서’라고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신학교육을 받는다면 절대로 교회에 건강한 도움을 주지 못할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내 수업을 들었다가 몇 년 뒤 찾아오는 학생들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졸업하고 새 교회를 개척한 것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사실, 난 교회개척을 가르친적 없기 때문에 교회개척 때문에 그들이 찾아온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들이 두가지를 말했습니다. “제가 교수님께 배워 교회개척 방식을 바꿨다”, “교회개척 훈련프로그램에서 배우면서도 그 가르침대로 하지 않고 교수님이 가르쳐준대로 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말에서 아까 알렌교수이 말씀하신 ‘기능적 합리주의’가 학생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리더가 어떻게 하면 통제하고 경영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 교회개척학교입니다. 그런데 내가 가르쳤단 학생들은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에 동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리더싶의 편견을 제대로 깨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각 교단마다 항상 교회개척의 실패담이 있습니다. 수 백명을 투입하고 50만불 이상을 투입해도 실패합니다. 분명한 전략을 가지고 시도했음에도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거듭 실패하는 이유, 잘 나가고 잘 먹히는 방법을 시도하고도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계속 들려옵니다. 그래서 소위 시장성이 있는 문화적 방법들을 도입해 교회성장에 활용해서 새로운 마켓을 형성하는 것을 교회성장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식의 새로운 방법으로 교회를 개척하면 3~5년 길게는 7년까지 잠간 교회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분명한 것은 실패담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능적 합리주의라던지 통제와 경영의 미신에 빠져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렇게 교회개척한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왜 북미에서 교회개척사역이 실패하는지 4가지 이유를 추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많은 교회와 컨설팅하며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들의 실패한 네가지 교회개척의 방법은 이렇습니다.

 

   
 

 

교회개척의 4가지 유형

 

첫째, 위성도시, 신도시를 중심으로한 교회개척입니다. 한국에도 신도시가 건설됐을 때, 혹은 재개발되었을 때 필요에 의해 거기에 교회가 개척되어 성장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가요?

둘째, 분리 개척되는 방법입니다. 지도자들이 싸워서 나눠져 개척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론 신학적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음악적 요인으로도 분리됩니다. 유럽에서 북미에서 교회가 개척된 이래 이렇게 분립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셋째, 경영과 통제에 의한 개척입니다. 교회개척엔 전문가적 전략이 있습니다. 아까 알렌 교수님 말한 것처럼 기능적합리주의와 통제와 경영기법을 취합해 최고의 전략을 모아서 교회개척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 지역에 필요를 연구하고, 회중들 가운데 은사와 재능을 발견해서 이 은사와 재능이 이들의 필요를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연결하는 일입니다. 한가지 주의할 것은 이것이 통제하고 경영하는 기법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엔 심각한 신학적 오류가 있음에도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넷 째, 개척운동중 하나가 카리스마틱한 기법입니다. 어떤 사람의 카리스마적 성품 때문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에 의존한 개척방법입니다. 설교가 될수도 있고, 외모, 음악적 요소가 될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해서 사람들을 끌어모아 교회를 성장시키는 방법입니다. 북미의 교회개척운동 가운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요소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까지 시행되온 네가지 요소였습니다.

알렌 교수님이 몇차례 뉴비겐(Lesslie Newbigin) 에 대해서 말씀하셨죠. 여러분도 많이 접해 보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선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는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삼위일체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모든 피조물 가운데, 기리고 그들 마음과 지성가운데 그들이 인지하던 안하던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이 선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성자 하나님께서 그 창조되어진 역사 가운데 일부분이 되셔서, 즉 성육신을 통해 선교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또한 성령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에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교회를 가르치고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하는 일, 그것이 선교다.”(Lesslie Newbigin)

 

 

   
 

 

교회개척이 실패하는 이유

 

공동저자인 우리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교회가 되기로 결정하지 않고 교회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선교하시는 하나님, 선교의 하나님이라는 그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무작정 교회를 시작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 앞서 가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본적도 없고 알리도 없어 어떤 리더십이 그런 교회에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채로 교회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개척이라던지 교회성장 운동들이 결국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질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방법도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된 질문중에 하나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교회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모을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것인가 하는 질문,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섬길까 하는 질문도 잘못된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들 때문에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제 질문이 이겁니다. 아까 알랜교수님이 답을 말씀하셨죠? 도데체 이런 접근방법에는 어떤 질문들, 어떤 신념들(4가지 미신적 확신들) 이 깔려 있는지 아까 알렌교수님이 밝히셨습니다.

 

새로운 질문들

 

새로운 질문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①하나님께서 우리 지역사회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②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일은 무엇인지 어떻게 알수 있는가? ③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④선교적 프레임을 교회개척과 어떻게 융합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① 하나님께서 우리 지역사회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첫째,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나이든 사람이던 젊은 사람이던 간에 사람들 마음가운데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있지만 이미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그 곳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질문, 개개인에게서 일하기 시작하셨고 또 그룹가운데 일하시기 시작한 하나님을 찾아내는 일, 사회정의와 공의와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서 이미 하나님이 시작한 일을 찾아 내는 일을 말합니다.

 

②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일은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두 번째, 지역사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우리의 목적어이지 주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교실안에 있거나 어떤 활동을 할 때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목적어이지 주어가 아니라는 거죠. 시장경제 이론 때문에 일터에서던 직장에서던 학교에서던 항상 우린 대상(목적)으로 취급받지 주격으로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교인들은 항상 교회가 경영하고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주체가 되어 이웃에게 음식을 나눠 준다던지 진리를 가르치던지 하는 대상으로 삼을 뿐 주체가 아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개척할 때 교인들 혹은 리더들의 재능과 은사를 발견하고 지역사회의 필요를 발견해서 그것들을 연결하려는 일은 굉장히 이단적인 발상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을 대상으로 삼을 뿐 주체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가 주체라는 생각의 뒤에는 내가 돈도 가지고 있고 나눠줄 수 있고 능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신들은 항상 받기만 하면 된다고 취급해 버리는 거죠. 북미나 서구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잘못된 물질주의적 생각때문에 사람들을 무시하고 인격을 축소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③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할 것인가?

 

세 번째, 우선순위는 경계선을 어떻게 넘나들지의 문제(질문)입니다. ‘이러이러한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 교회와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들만 와서 우리에게 동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백인중심의 교회에 황인종이 온다면 괜찮지만 우리와 동화될수 있을 때 까지만 허용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보아야 우리가 다른 사람의 그 사람됨을 인정할 것인가?’ 이것이 사실은 삼위일체 신학의 핵심아닙니까? 하나됨이란 것은 다양성 가운데 일치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삼위일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서양신학의 취약점이 바로 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에 내 이웃이 더 이상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이고, 그들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대상 가운데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과 그들의 삶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④선교적 프레임을 교회개척과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

 

마지막 우선순위가 있다면 복합적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한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처럼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중에서 누가 최종적, 혹은 최고의 권위를 갖는지를 논쟁하지 않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도 그렇게 다양한 리더십 가운데 누가 위인지 아래인지 따지지 않고 함께 공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면 리더의 역할이 통제하고 결정하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리더의 위치는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게 수업을 들으러 왔던 학생들은 자기들이 원했던 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원했던 것은 ‘자기가 리더가 돼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일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내가 가르친 리더십은 그런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리더십이란, ‘하나님이 공동체 가운데서 기도를 통해서 수많은 시간과 서로의 작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함께 발견하고 그 일에 놀랍게 동참하게 하는 방법을 발견해내는 것’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70명을 전도하라고 짝지워 보내시며 “너희의 짐을 놓아두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그 땅으로 가라. 성령께서 너희를 앞서 가셨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질의응답

 

마크 - 북미에서 배웠던 것은 거기까지 말하겠습니다. 저는 한국 상황은 모르기에 목회자이자 학자인 여러분을 통해 배우기를 원합니다.

 

이후천 - 두 분 강의 잘 들었습니다. 선교적 교회운동을 준비하면서 미국 상황도 마찬가지겠지만 목회자에게 선교적교회운동이 어떻게 가능한지, 사례가 있는지, 교단소속 목회자들이 어떻게 선교적일수 있는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신복현 - 1952년에 WCC 세계대회에서 채택한 미쇼데이(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두 분의 말씀이 새로운 사역의 역동성은 ‘이웃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 보고 그 분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이해 했는데 WCC의 ‘하나님의 선교’와 지금 교수님들의 ‘선교적교회’가 신학적 근저에서 어떻게 다른가요?

 

앨런 - 이 모임에 학자적 마인드를 가지신 목회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강의에 대해 열려있는 분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마크 목사님처럼 우린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교단 지도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등 알고 있는 모든 교단의 목사님들과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런겁니다. 교단신학이 가지고 있는 일들, 또 교단에 속해서 일하는 목회의 한계를 본인들도 잘 알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30년간 연합감리교회에서 60%의 성도들이 떠났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떠났기 때문에 자기들의 리더십에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하여 교회중심과 성직자 중심의 교회가 잘못했다고 지적받을 때 크게 저항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좀 열려있는 미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굉장한 저항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마크 - 두 번째 질문에서 미쇼데이가 자유주의적 신학계에선 환영받았지만 보수진영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1952년에서야 그 하나님을 발견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그 이전부터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웃음). 북미나 남미나 매우 복음적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이 선교운동에 동참한 교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이 대화에 동참하면서 매우 유익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대화와 운동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북미에서 권력다툼에 힘빼느라 교회가 무엇인지를 정의내리는데 힘을 쏟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신학적이라는 것이 그리 중요한 논제가 아니었습니다. 북미, 특히 서구적 사고방식에서 어떤 개념을 정립해 가는 과정에 열려있지 않고 건전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저희 풀러같은 경우, 신학적으론 정확히 복음주의적 노선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비신학적 논쟁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라는 학교중에 하나인데 알랜교수가 주창하는 선교적교회운동이 풀러를 대변한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여전히 리더십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있고 여전히 경영과 통제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선 어떻게 하면 교회를 성장시킬지를 여전히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새로운 접근을 들어주는 동료교수들이 있다는데 감사합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저희같이 새로운 접근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함께 대화하고 들어주는 동료교수들과 함께 학교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목사님이 질문하신대로 좋은 모델 교회가 있는지에 대해 답변하기엔 매우 조심스런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능적합리주의가 미국에만 국한된건지 한국에서도 통용되는 건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히 그런 작용을 하는 교회가 있는지를 알려드리기가 곤란합니다. 내가 학교에서 프로그램이나 전략이 중요한게 아니라 정신이 중요하다고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프로그램화 되며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알랜교수님의 경우 복음과 문화라는 네트워크조직과 오랫동안 일하시고 계십니다. 그분들의 세미나에서 많이 배우고 유익을 누립니다.

우리가 했던 프로젝트중에서 동일한 반응을 이끌어 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크랜드에 있는 어떤 감리교회는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이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미 지역사회에 들어가서 그런 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당시 선교적교회의 9가지 지표를 가지고 우리들을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런 연구에 대해 큰 의문을 갖습니다. 자기들이 보고싶은대로만 보기 때문에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자기들이 선교적인 교회라고 말하고 우리도 그렇게 봐주고 싶지만 우리들이 얘기했던 선교적 교회의 중요한 부분을 자기들이 정한 지표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알렌 교수의 책에 굉장히 많은 케이스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제 책에도 4가지 일이 중심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각각에서 배울 것은 있지만 어느것 하나를 딱 정해서 모델이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얘기들이 실제 한국에서 벌어진다 할 때 그 사례가 어떨지 참 궁금합니다. 저희가 같은 질문을 받아도 그렇게 답할 것 같습니다.

 

   
 

 

알랜 - 신약성경을 읽으면 그들이 가는 곳에 교회를 세울 때 교회가 만들어진 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 가서 교회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려운 것은 한국이 북미상황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뿐 아니라 유럽교회가 종교개혁 이후에 탄생했던 개신교의 후예라는 공통점 때문에 교회가 무엇이라는 정의를 이미 내려 버리고 교회를 시작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칼빈조차 교회는 이런거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명확히 정의를 내리고 시작하고 전략을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모든 교회는 이 정해진 교회를 흉내내거나 카피해 버리는 교회운동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거라는 하나의 그림을 딱 보여주는 것입니다. 계몽주의 이후에 일어난 운동이고 서구사회에서 소개됐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여과없이 그게 교회고, 옳고, 우리는 흉내내고 따라가야 된다고 마음을 정하기 쉽습니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선교하는 역사 한 중앙에 서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성령께서 지금까지 가졌던 교회에 대한 개념을 다 깨버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다른 지역사회, 독특한 어떤 나라에 복음을 들고 가는 정형을 깨뜨리라고 한다면, 나는 이게 선교적교회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잘못되면 다신 풀러에서 가르치지 못할 것입니다.

 

통역 전병철 Acts 교수

정리 심자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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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102.232.192)
2017-08-20 00:53:35
.....
이런 기사처럼 훌륭한 목사님들과 교수님들의 말씀 지당합니다.
맞습니다. 어디 하나 틀린 말씀이 있겠습니까...
근데..너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교인이 없는 교회에 다니기 싫다며 다른 교회로 나가겠다고 말하는
자식을 두고 눈물흘릴 수 밖에 없는 작은교회 목사님들좀 돌아봐주세요..
목회자는 목회지인 교회를 떠나면 안된다며
사모가 직장을 다니고, 부업을 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작은교회 목사님들좀 돌봐주세요....
이중직이 허용되었다고해서
"네 저 이중직입니다. 저녁에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여전히 나 혼자의 목회라면 감내하고 굶고 감당할수 있는 것을
자녀와 아내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일을 해야만하지만 이중직의 시선이
곱지 못한 실정때문에 해가지면 일늘 나가는 작은교회 목사님들좀 돌봐주세요...
제발 누구라도 교회문좀열고 들어와 봤으면 하는 마음에
'신천지 아웃'스티커마저 때버리고, 신천지와 말싸움이라도 했으면
하는 작은교회 목사님들좀 돌봐주세요...

조금만 더..현실적으로 이 문제가 다루어졌으면 하는마음에..
문맥, 논리, 두서 없이 떠들어봅니다...ㅠ-ㅠ

결국,,,주님만이 답인 것을 말입니다..
리플달기
4 10
다좋은데 (183.102.232.192)
2017-08-20 00:48:01
다좋은데요.
그런데, 그게, 작은교회를 제발 돌봐달라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작은교회를 생각해보자는겁니다. 월 10만원 지원해주는게 전부가 아닙니다. 차라리 교구별로. 선교회별로, 10명씩만 예배에 보내주는게 훨씬 감사합니다. 그 작은교회로 등록시켜달라는게 아닙니다. 마중물이라는게 있잖아요. 마중물이 있어야 물이 끌어올려져서 쓸수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마중물 역활을 해줄 수 있는 같이 예배만이라도 드려줄수있는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지교회 세우지 말고. 그냥 그 주변에 같은 교단이든. 열심히 목회하는 것을 본 교회든. 매일 매일 같은 자리에서 전도하고 애쓰는 목회자의 교회가 분명 있습니다. 그 교회들에게 성도 10명씩만 돌아가면서라도 예배드릴 수 있도록 보내주면. 그 교회는 매월 10만원 선교해주는 교회보다 성장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썩좋아하는편은 아니지만..인천에 뭐교회에서 일부성도를 그렇게 파송보내서 성장하고 자립하는 교회를 여럿봤습니다. 왜 그 성공사례는 무시합니까. 내 교인 빼앗길까봐 두려운건가요?
한국교회를 살리는 마음으로 해주실수는 없는건가요?
대형교회로 모이는 성도를 어쩔수 없다는 변명은 제발 안하셨음좋겠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세우셨을까요. 예수님 혼자 그 수많은 무리들을 다 짊어지셨으면 되셨을 텐데. 왜 제자들에게 그 사역들을 나누셨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도와주실수 없는건가요? 안타깝고 또 안타깝습니다.
목회자에게 이중직을 허용해주는게 돕는건가요? 정말 10만원씩 후원해주시면 그 교회 목히자가 이중직을 내려놓고 목회에 전념할수있다고 보시나요? 후원을 받으면서도 이중직에 매달릴 겁니다.
돈이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동역자입니다. 협력자입니다.
제 마음의 기준일지 모르겠지만...저라면...매주 바뀌는 10명일지라도..
그 10명을 향해서라면 굶어서라도 못입으면서라도, 걸어다니면서라도 계속
목회에 집중할 수 있을것같습니다. 철저하게 제 기준이지만요...
개척시작할때 입교인 12명... 이거 몇명이나 지킨다고 보십니까...
기독교세계 책 맨뒷면 임면공고 보십니까? 새로 개척한교회 개척맴버가 정확하게 12명인것 보십니까? 대부분 그냥하는 겁니다. 그는 써낸겁니다. 이름만 있는겁니다. 아는 사람, 가족, 형제 이름 다 붙여넣는겁니다.
그거 모르는거 아니잖아요? 다 아시면서 도와줄 수는 없고, 불쌍은 하니 개척은 시켜줘야하겠고, 그래서 넘어가주시는거잖아요.
그럴꺼면 차라리 철저하게 검증하고 막으시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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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좋은데 (183.102.232.192)
2017-08-20 00:42:59
다좋은데요..
솔직히 말해서.. 대형교회의 지교회(말이좋아 지교회지...분점 느낌)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 티 안나게 이름이라도 바꾸던가요..이름바꿔도 소문 금방 퍼져서 서로 다 압니다. 자본이로 밀고 들어오는 대형교회를 작은교회들은 이겨낼 제간이 없습니다. 뻔히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대형 마트들들이 옛날에 미니버스를 돌렸습니다. 그거 정부에서 막았지요. 왜요? 동내 시장, 슈퍼들이 죽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우후죽순으로 점포수를 늘려갑니다. 결국 작은 시장은 다 죽습니다. 그 와중에 편의점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으면서 그나마 살아있던 슈퍼들마져 하나둘 문을 닫습니다.
그분들도 잘못이 있지요. 흘러가는 시장경제에 뒤처지고 매일 먼지가 쌓여가는 가게를 돌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열심히 장사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물량으로 밀고들어와서 더 저렴하고 더 서비스 좋은 마트를 어찌 이기겠습니까?
작은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도 무리해서 빚 짊어지고, 새 희망가지고 신도시에라도 개척했는데 몇주후 대형프란차이즈 교회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자리잡아 버리고, 스타렉스 여러대 줄세워서 성도들 대려가고. 사람들 우르르 나와서 물량으로 전도하고, 전도물품도 고급으로 쓰고,
물론 전도가 인력 물질이 전부가 아니지만, 상당부분 차지한다는 것을 모른다고하지 않으시겠죠?
성도들이 대형교회를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들 하시면서 애둘러 작은교회의 아우성을 묵살들 하십니다. 맞습니다. 그건 성도들 마음이지요. 이마트도 고객마음이지요. 고객이 더 좋은 것을 찾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그런데 이마트가 없는 곳은 여전히 슈퍼가 그 지역을 책임집니다.
대형교회도 부흥해야합니다. 성장해야지요. 언제까지나 작은교회들 퍼다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암요.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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